톤레삽에 빠지다
사람들은 수월하게 행과 불행을 얘기한다. 어떤 사람은 나를 불행하다 하고 어떤 사람은 나를 행복하다 한다. 전자의 경우는 여자의 운명을 두고 한 말이겠고 후자의 경우는 명리를 두고 한 말이 아니었나 싶다. 혹은 잡사에서 손을 떼고 일에 전념하는 것을 두고 한 말인지 모르겠다. 그들 각도에서 본 행, 불행에는 각기 타당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때론 노여움을, 때론 모멸감을 느끼며 그런 말을 듣곤 한다. 애매모호하기 때문이다. 무궁무진한 인생의 심층을 상식으로 가려버리려는 짓이 비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분류되는 불행, 그렇게 가치지어지는 행복이라면 실상 그 어느 것과도 나와는 별 인연이 있을 성싶지 않았다. 분명 환난을 겪는 욥에게는 행복의 비밀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 박경리의 ‘토지’ 自序 중에서 -
숨가쁘게 달려온 나의 서른다섯해. 선물처럼 5박6일의 여행이 찾아왔다. 베트남, 캄보디아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곳으로의 여행. 지난 4월초 여유없이 다녀왔던 일본으로의 첫 해외여행이 아쉬웠던지라 이번엔 많은 걸 준비해서 떠나, 많은 걸 보고, 많은 걸 느끼고 오고 싶었다. 그러나 어김없이 이번에도 나의 바쁜 삶은 여행을 준비할 시간도, 맘의 여유도 주지 않은채 날짜는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그렇게 여유없는 시간속에서 낯선 나라로의 짧으면서도 긴 여행을 하고 왔다.
스콜이 쏟아지던 호치민 탄손나이트 공항에 비와 함께 도착하여 시작된 여행은 호치민시내, 메콩강에 이어 찾아간 앙코르유적이 빛나던 캄보디아 시엠립. 시엠립에서 한시간을 달려 도착한 동아시아 최대호수 톤레삽 그리고 이천여개의 섬들이 모여있는 베트남의 하롱베이까지 이어졌다. 호치민, 시엠립, 하노이로 이어지는 빡빡한 일정. 그속에서 난 진흙속의 연꽃처럼 톤레삽을 만났다.
여행의 넷째날 오후. 일행을 태운 버스는 시엠립을 벗어나 톤레삽을 향했다. 건기와 우기에 따라 면적이 달라진다는 톤레삽. 인도차이나 반도를 흘러내리는 메콩강과 연결되어 있는 이 호수는 건기에는 메콩강을 향하여 흘러가지만 우기가 되면 역류하는 메콩강의 물을 받아들여 몇배이상 넓어진다고 한다. 그리고 그 시기를 통해 호수주변의 땅은 비옥해지고, 호수내의 어족자원이 풍부해진다고 한다. 그 호수를 통해 크메르민족은 찬란한 앙코르문명을 탄생시켰고, 현재 캄보디아사람들의 삶도 이어지고 있었다.
톤레삽으로 가는 길에 만난 마을 풍경은 고즈넉했다. 황토빛의 흙먼지 날리는 길옆의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과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전날 둘러본 앙코르유적의 찬란함과 오버랩되어졌다. 길이 험해지자 차의 요동이 심해진다. 먼지를 뒤집어 쓴 길옆의 나무를 바라보며 그곳이 우기에는 호수가 된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그 길을 지나자 사람들이 모여있는 그들의 시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버스는 멈추어섰다.
파란하늘과 하얀구름. 그리고 황토빛의 넓은 호수. 호수에 대한 첫 기억은 그 황토빛의 기억이다. 호수로 들어가기 위해 배를 탔다. 황토빛의 호수물이 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다. 그 황토빛 물위에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만들어 놓고 호수를 믿고 그 곳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10여년넘게 수질검사를 해온 나였기에 문득 직업적인 관심이 떠오른다. 이들은 생활에 필요한 물을 어디에서 가져오는 것일까? 이 지역의 물은 대부분 석회수이기 때문에 생수만을 먹으며 여행을 하던 우리였기에 더 관심이 갔다. 거기다 수상가옥에서 나오는 오,하수는 다시 호수로 내보내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답은 예상했던대로다. 사람이 사는 곳과는 조금 떨어진 호수의 중심으로 들어가 물을 떠다 간단한 정수과정(침전)을 거친 물을 식수로 사용한다고 한다. 그리고 배를 타고 수상가옥촌을 지날 때 바라본 풍경에서 어떤 여자아이가 호수물을 그대로 떠다 머리를 감는 모습도 있었다. 취수와 배수가 같이 이루어지는 톤레삽. 상수와 하수가 구분되어져있는 우리의 관점으로 바라볼때 분명 이곳은 사람들이 살아가기 팍팍한 곳임이 분명하다.
관광객들이 배를 타고 호수로 들어오자 집집에 있던 아이들이 ‘give me 1$'를 외치며 우리들이 탄 배 주변으로 몰려든다. 사전에 가이드의 당부가 있었기에 우린 그들의 모습을 외면했다. 여행기간내내 이러한 모습들을 자주 볼수있었다. 돈을 달라 관광객주변에 몰려드는 아이들, 자그마한 기념품을 팔기위해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드는 아이들, 장사에 도움이 될까 짤막한 한국어를 배운 아이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착찹한 마음이 되어갔다. 어찌보면 아이들의 장난스런 행동일수도 있지만 한창 꿈을 키워가야 하는 아이들이 너무 빨리 세상에 물드는게 아닌가 생각하게 만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그들이 사는 현실이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도록 한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앙코르유적을 돌아볼때 기념품을 팔던 열 살정도 되어보이던 소녀의 발이 생각났다. 슬리퍼에 끼워진 소녀의 발은 까맣고 발가락은 넓게 벌어져 있었다. 그 발이 무척 슬프게 보였던 전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수상가옥촌을 지나 선상카페에 오른다. 넓은 호수의 모습이 펼쳐진다. 저멀리 수평선이 보인다. 몇평방미터라던 호수의 크기는 짐작이 되지 않았는데 그렇게 펼쳐진 호수를 보며 아직 우기에 들어서지도 않은 호수가 이정도이니 우기가 되면 호수는 얼만큼 커지는 것일까 생각해본다. 내가 짐작할수도 없는 크기이겠지.
그렇게 수평선을 바라보자니 저 멀리 보이는 하늘이 심상치 않다. 우리가 있는 곳의 하늘은 맑은데 그곳엔 비가 쏟아지고 있나보다. 이정도 넓이의 호수에 이 정도의 기온이라면 증발량도 많으니 한번에 내리는 비의 양도 많겠지. 가끔씩 우리나에서도 볼 수 있는 게릴라성 폭우의 한 원인이 곳곳에 건설되어진 다목적댐이라는 사람들의 주장도 틀린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귀로를 서두른다. 우리들이 타고갈 배로 돌아오니, 아이들이 몰려온다. 가방안에 있던 사탕들을 꺼내 아이들에게 전해준다. 그들이 몰려온 이유는 달러한장을 받을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었지만 그런 기대가 충족되지 못해도 그들의 표정만은 밝았다. 잠시 친구들과 즐거운 놀이를 하는 것 같은.. 어쩜 비관적으로 바라본 내 시선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단지 친구들과 같이 즐거운 놀이를 한 것 뿐인데.
황토빛의 물을 바라보며 출발점을 향해 간다. 황토빛물위의 초록거품과 초록빛작은알갱이가 눈에 거슬린다. 이곳도 수질오염에서 자유로울수 없는 것인가.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은 어쩔수 없는 것인가.
우리나라의 부영양화된 호수에서도 여름철이면 관찰할수 있는 부유성조류(algae)의 모습을 이곳 톤레삽에서 보리라고는 생각못했는데... 수상가옥에서 흘러나오는 처리되지 못한 생활하수때문이겠지. 이곳도 점차 오염되어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착찹하다. 그나마 다행인건 우리들이 방문한 지금이 건기라는점. 비가오면 이것들은 사라져버리겠지.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이런 부분에 관심을 기울여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이곳의 사람들에게 지금 중요한건 환경문제가 아니라 배고픔을 해결하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곳 사람들에게 아직 환경문제는 사치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런 문제들에 관심기울여야 하는건 이런 오염문제들을 겪고 해결에 골머리를 썩었던 우리들 아닐까.
다시금 직업적인 호기심이 발동한다. 사람들의 분변이 그대로 배출되는 이곳 수상가옥촌에 수인성전염병이 발병한다면 어떻게 될까. 더운 기후이니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은가. 돌아오는 길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분명 이곳이 그러한 전염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걸 깨닫게 된다. 영아들의 사망률이 높다는 거 그리고 그것이 위생적이지 못한 생활환경과 그들의 부족한 위생관념때문이라는 거. 맘이 아파온다. 아이들이 아프고, 아이들이 힘들다는 거 분명 어른들의 잘못이다. 아이들은 어느 곳에 살던, 어떤 환경이던 보호받아야 하고 꿈을 꿀 수 있어야 한다.
착찹한 심정이 되어 버스에 오른다. 구경꾼들.. 우리들은 잠시 구경꾼이 되어 치열한 삶의 현장을 둘러보고 나왔다. 철저하게 보호받은 채. 더위와도 멀리 떨어지고, 비가와도 맞지 않을 보호막에 싸인채. 저 창밖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를 어떻게 볼까. 그들이 사는 모습을 몰래 훔쳐본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호수를 떠나며 가이드가 행복과 불행에 대해 이야기 한다. 나 또한 수첩에 ‘많은 것을 가지지 못했으나 아이들의 미소는 밝다.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인지..’라고 적고 있었다. 박경리선생님의 토지 서문이 떠올랐다. 행,불행에 대한 이야기.
분명 내 상식으로 바라본 톤레삽의 사람들은 힘겨운 삶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들을 불행하다라고 말할수 있을까. 남보다 좀더 많이 가지기 위해 남보다 좀더 편하게 살기위해 아등바등거리는 우리들, 심지어는 남의 것을 탐내어 남을 해치는 우리들이 행복한 것일까. 문명의 이기속에서 편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이 저들보다 더 여유롭다 할수있을까. 아니 아닐것이다. 분명 행복은 물질의 풍요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여유는 사람들의 손과 발을 대신하는 기계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남의 것을 넘보며 그것에 매여 웃음을 잃은 채 사는 우리들보다는 자신이 가진것에 감사하고,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일하며 웃음을 웃을수 있는 그들이 더 행복할수도 있다. 또 그들에겐 넓고 깊은 자연의 품이 있지 않은가. 자그마한 수상가옥입구에 화분하나 가져다 놓는 여유가 있지 않은가. 그리고 힘든 현실에서도 꿈을 키우며 밝게 살아가는 아이들이 있지 않은가.
5박6일간의 여행. 많은 곳을 가고 많은 것을 보았지만 그 여행기의 첫장을 톤레삽으로 열게 되었다. 나에게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곳 톤레삽. 어쩌면 그곳이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그냥 둘러보는 유적지나 잘 포장된 관광상품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캄보디아사람들의 치열한 생존의 터전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처음 디카를 사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풍경사진을 많이 찍었다. 물론 이번여행에서도 풍경사진이 더 많다. 그러나 그 풍경속에 사람이 담긴 모습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그래서 톤레삽이 내 기억에 많이 남았는지도 모른다. 사람..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사람에게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결국 우리들이 살아감에 있어 위안받을 수 있는 존재는 사람이 아닐까.
톤레삽을 떠나온다. 곧 호수가 될 평원이 펼쳐진다. 담번 여행을 기약해본다. 그때는 구경꾼이 아닌 사람으로 이곳에 오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 손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그들의 틈에서 생활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마도 그럴것이다. 내가 살고있는 현실이 조금 힘들어지면 톤레삽에서 바라보았던 사람들을 떠올릴것이다. 그리고 문득 내 방랑벽이 발동되면 이곳 톤레삽으로 오기위해 배낭을 꾸릴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그렇게 깊게 내 온몸으로 톤레삽에 빠져들고 싶다.
첫댓글 그동안 너무 침묵하고 있어서 다들 날 잊지는 않았는지..새로이 시작하는것처럼 기대반 두려움반 설레이네요^^ 그동안 정신못차릴정도로 헤매었노라고 애써 핑계만들어 봅니다. 여행하고 돌아온지도 벌써 한달이 지나가버렸네요.. 돈받고 다녀온 여행이라 의무감에 급히 썼던 여행기를 올리며 긴 침묵의 시간을 깨봅니다.
잘 다녀오셨네요...^^
좋은 직업을 가지셨읍니다. 돈받고 다니실정도면 자유기고가...?저도 한 20년동안 다녔지만 항상 내돈이였는데 하여간 여행은 마음을 넓게 해주니까 많은 여행하세요.
앗! 저 자유기고가 아닌데^^ 하는일은 공무원인데요..이번에 사무실에서 보내주는 여행기회가 있어서 다녀왔거든요~그래서 사무실에 여행기를 제출해야해서 급히 썼던 글입니다. 여행..언제나 여행을 꿈꿔요..내년엔 몽골(이건 제돈으로 가야죠~)에 가고 싶은데 어찌될지...
에긍! 나는 아 저런데 못가보노....추억에 기리남을 여행을 하셨네요..
근데 삽은 왜 안나와?
누나 정말 부럽다~ 난 언제 우리나라 벗어 나본다죠?
여행은 이탈이다.여행이라는 이탈의 매력은 근원적으로 우리 삶의 보금자리를 떠난다는데 있다.루틴(routine)이라 부르는 생활의 궤적, 이탈을 통해 새롭고 참신한 생명력을 구할수도 있다. 인도차이나, 그리고 호치민...(앙코르와트.월남을가다-도올)
멋진 여행 다녀 오셨네요 몽골 도 기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