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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예배 | 김국희 전도사] 열왕기상 7장 1-22절 | 2024. 4. 16
https://www.youtube.com/live/qucTxcgF30U?si=tVrOTNxqHEeI7lvg
백향목 궁전을 지은 솔로몬 7:1~12
1 솔로몬이 자기의 왕궁을 십삼 년 동안 건축하여 그 전부를 준공하니라
2 그가 레바논 나무로 왕궁을 지었으니 길이가 백 규빗이요 너비가 오십 규빗이요 높이가 삼십 규빗이라 백향목 기둥이 네 줄이요 기둥 위에 백향목 들보가 있으며
3 기둥 위에 있는 들보 사십오 개를 백향목으로 덮었는데 들보는 한 줄에 열다섯이요
4 또 창틀이 세 줄로 있는데 창과 창이 세 층으로 서로 마주 대하였고
5 모든 문과 문설주를 다 큰 나무로 네모지게 만들었는데 창과 창이 세 층으로 서로 마주 대하였으며
6 또 기둥을 세워 주랑을 지었으니 길이가 오십 규빗이요 너비가 삼십 규빗이며 또 기둥 앞에 한 주랑이 있고 또 그 앞에 기둥과 섬돌이 있으며
7 또 심판하기 위하여 보좌의 주랑 곧 재판하는 주랑을 짓고 온 마루를 백향목으로 덮었고
8 솔로몬이 거처할 왕궁은 그 주랑 뒤 다른 뜰에 있으니 그 양식이 동일하며 솔로몬이 또 그가 장가든 바로의 딸을 위하여 집을 지었는데 이 주랑과 같더라
9 이 집들은 안팎을 모두 귀하고 다듬은 돌로 지었으니 크기대로 톱으로 켠 것이라 그 초석에서 처마까지와 외면에서 큰 뜰에 이르기까지 다 그러하니
10 그 초석은 귀하고 큰 돌 곧 십 규빗 되는 돌과 여덟 규빗 되는 돌이라
11 그 위에는 크기대로 다듬은 귀한 돌도 있고 백향목도 있으며
12 또 큰 뜰 주위에는 다듬은 돌 세 켜와 백향목 두꺼운 판자 한 켜를 놓았으니 마치 여호와의 성전 안뜰과 주랑에 놓은 것 같더라
성전의 두 기둥, 야긴과 보아스 7:13~22
13 솔로몬왕이 사람을 보내어 히람을 두로에서 데려오니
14 그는 납달리 지파 과부의 아들이요 그의 아버지는 두로 사람이니 놋쇠 대장장이라 이 히람은 모든 놋 일에 지혜와 총명과 재능을 구비한 자이더니 솔로몬왕에게 와서 그 모든 공사를 하니라
15 그가 놋 기둥 둘을 만들었으니 그 높이는 각각 십팔 규빗이라 각각 십이 규빗 되는 줄을 두를 만하며
16 또 놋을 녹여 부어서 기둥머리를 만들어 기둥 꼭대기에 두었으니 한쪽 머리의 높이도 다섯 규빗이요 다른 쪽 머리의 높이도 다섯 규빗이며
17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를 위하여 바둑판 모양으로 얽은 그물과 사슬 모양으로 땋은 것을 만들었으니 이 머리에 일곱이요 저 머리에 일곱이라
18 기둥을 이렇게 만들었고 또 두 줄 석류를 한 그물 위에 둘러 만들어서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에 두르게 하였고 다른 기둥머리에도 그렇게 하였으며
19 주랑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의 네 규빗은 백합화 모양으로 만들었으며
20 이 두 기둥머리에 있는 그물 곁 곧 그 머리의 공같이 둥근 곳으로 돌아가며 각기 석류 이백 개가 줄을 지었더라
21 이 두 기둥을 성전의 주랑 앞에 세우되 오른쪽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야긴이라 하고 왼쪽의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보아스라 하였으며
22 그 두 기둥 꼭대기에는 백합화 형상이 있더라 두 기둥의 공사가 끝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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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솔로몬은 왕궁을 13년 동안 건축해 준공합니다. 그는 레바논 나무와 귀하고 다듬은 돌로 자신의 왕궁과, 바로의 딸을 위한 집을 짓습니다. 또 놋 일에 재능 있는 두로 사람 히람을 불러 모든 공사를 맡깁니다. 솔로몬은 성전의 주랑 앞에 놋 기둥 둘을 만들어 세우고 야긴과 보아스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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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향목 궁전을 지은 솔로몬 7:1~12
솔로몬은 자신의 궁전을 건축합니다. 궁전 건축 이야기(7:1~12)는 성전 건축 이야기(6:1~38; 7:13~51)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성전도 아름답게 지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궁전도 화려하게 지었음을 보여 줍니다. 궁전은 무려 13년에 걸쳐 완공했는데, 모든 기둥과 들보와 천장과 마루까지 모두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용해 최고급으로 지었습니다. 그래서 별칭이 부와 영화를 상징하는 ‘백향목 궁’입니다. 3층 건물인 궁전의 규모도 상당히 큽니다(4절). 솔로몬은 아내인 바로의 딸을 위해서도 비슷한 궁을 지어 줍니다. 귀한 돌과 백향목으로 호화롭게 지은 궁전은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주신 부와 영광을 만방에 드러냅니다.
● 더 깊은 묵상
솔로몬이 지은 궁전의 규모와 호화로움은 어느 정도였나요?
하나님이 내게 부와 영광을 주신다면, 이를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고 싶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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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의 두 기둥, 야긴과 보아스 7:13~22
다시 성전 건축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솔로몬이 두로에서 ‘히람’을 데려옵니다. 납달리 지파 출신인 어머니를 소개한 것은 히람이 이스라엘 사람임을 말하려는 의도입니다. 히람은 놋으로 제조하는 일에 지혜와 총명과 재능을 구비한 인물입니다. 그는 성막 기구를 만든 브살렐을 연상시킵니다(출 31:2~5). 거대한 두 놋 기둥은 야긴(‘그가 세우리라.’라는 뜻)과 보아스(‘그에게 힘이 있다.’라는 뜻)라고 불립니다. 야긴과 보아스를 붙여서 부르면 ‘그가 힘으로 세울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권능과 힘으로 이스라엘을 든든히 세우실 것입니다. 두 기둥은 광야의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상징화한 것으로, 하나님이 구원하시고 보호하시고 세워 주신 이스라엘임을 기억하게 하는 도구입니다.
● 더 깊은 묵상
두 놋 기둥 야긴과 보아스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보호하심을 기억하게 하는 도구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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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둥, 하나님 말씀
QT는 하나님과 내가 함께 시간을 보내도록 고안된 하나의 룰(rule)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질서와 법칙을 정해 놓은 것이지요. ‘룰’이란 단어는 ‘격자 구조물’을 뜻하는 헬라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포도나무 넝쿨이 타고 올라가 안정적으로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해 주는 지지대가 바로 이것입니다. 포도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격자 구조물, 룰이 필요합니다. 포도나무가 이 룰을 거부하면 제멋대로 자라다가 결국 쓰러지고, 애써 맺은 열매도 썩거나 망가져 버립니다. 룰은 포도나무 넝쿨이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하는 것을 도와줍니다. 올바른 방향, 즉 뿌리로부터 생명이 흘러 들어가는 방향을 유지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말씀 묵상을 룰로 받아들인 사람은 ‘내게 가장 좋은 길은 하나님이 아신다’는 믿음으로, 말씀을 통해 꾸준히 하나님을 만납니다. 기준 없는 세상에서 하나님 말씀을 굳건한 기둥으로 삼고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놀라운 혜택이고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만이 나를 개혁하실 수 있고, 내 삶을 재정비해 가장 올바르게 세우십니다. 하나님의 생명력만이 내 삶을 온전하게 하시고 인격을 완성하시며, 나와 우리 가정을 보호하십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만이, 부족하고 약한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기둥입니다.
나단이 찾아온 날 / 윤치연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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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열왕기상 7장 21절
솔로몬의 성전 건축은 단순히 인간의 능력으로 이루어낸 업적이 아닌, 하나님의 위대함과 영광을 드러내는 사건이었습니다. 견고하고 아름다운 성전과 왕궁은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며,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냅니다. 이 일의 처음과 끝(완성)은 솔로몬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중요한 일을 먼저 하라.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진짜 중요한 일에 비하면 다른 모든 일은 사소할 뿐이다. - 스튜어트 브리스코
오늘의 기도
하나님, 제가 계획한 일 같으나 실제로 그 모든 일을 준비하고 시작한 이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임을 기억하며, 하나님 계획을 이루는 일에 마음을 쏟게 하소서. 혼자 아등바등하지 않도록 함께 일을 이루어 갈 하나님의 사람을 붙여 주소서.
오늘의 찬송 (새 435 나의 영원하신 기업)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약속하신 대로 부와 영화를 누릴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입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주님께서 부어 주시는 풍성한 은혜와 결실에 감사를 올려 드리고, 늘 겸손함을 잃지 않으면서 더 많이 노력하고, 더 감사를 올려 드릴 수 있도록 하자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함께 더불어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항상 주변을 생각하고 배려하며 나아갈 수 있도록 하자
온전하신 주님만을 믿고 의지하며 나아가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담대히 나아가는 매일매일이 되도록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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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전체 솔로몬의 왕궁은 다섯 채로 이루어진 복합 단지였습니다. 각 건물은 ‘레바논 나무로 된 궁’(2-5절), ‘주랑’(6절), ‘보좌의 주랑’(7절), ‘솔로몬의 거처’(8a절), 솔로몬의 아내인 ‘바로의 딸을 위한 집’(8b절)이었습니다. ‘레바논 나무로 된 궁’은 무기고와 물품 보관소로 사용되었고(10:17,21; 사 22:8),
‘보좌의 주랑’은 왕이 재판을 비롯한 주된 업무를 수행하는 장소였습니다. 왕궁은 이처럼 규모가 크고 웅장했을 뿐만 아니라 레바논의 백향목과 크고 귀한 돌 등 고급 건축 자재가 아낌없이 사용되었습니다. 솔로몬 왕궁은 솔로몬 시대에 이룬 이스라엘의 번영과 영광의 상징이면서, 솔로몬을 통해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여주는 증거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영광스럽습니다. 그 나라가 궁극적으로 완성될 날이면 외부도 완벽하고 찬란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날이 오기까지 교회는 진리를 따르다 당하는 고난의 영광,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경건의 영광, 자신을 내주며 이웃을 살리는 사랑의 영광을 나타내야 합니다.
1절 왕궁을 완공하는 데 13년이 걸렸습니다. 성전을 지은 시간까지 합하면 20년이 넘습니다. 솔로몬의 위대한 업적일 수 있지만, 건축 사업에 드는 노동력과 비용은 엄청났을 것입니다. 솔로몬이 백성을 헤아리지 않았다면 건축 사업 때문에 백성은 고된 노역과 무거운 세금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열왕기 기자는 침묵하고 있지만, 영광스러운 업적 뒤에 고달픈 백성의 신음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참조. 12:4). 어떠한 일을 하든지, 그 일을 하는 사람을 살피는 눈이 필요합니다.
12절 솔로몬의 왕궁은 하나님의 성전과 하나의 복합 단지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왕의 주된 역할이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종으로서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제아무리 높은 자리에 앉았더라도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 말씀의 통치를 받는다면, 우리 삶이 하나님이 계신 하늘 성전과 복합 단지를 이룰 것입니다.
기도
공동체-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하나님 보시기에 영광스럽게 살게 하소서.
‘이 두 기둥을 성전의 주랑 앞에 세우되 오른쪽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야긴이라 하고 왼쪽의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보아스라 하였으며’ -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두 기둥 즉, ‘그가 세우실 것이다’라는 의미의 야긴과 ‘그에게 능력이 있다’라는 뜻의 보아스에 대한 설명입니다. ‘야긴’이라는 의미는 애매모호하지만, ‘보아스’라는 뜻이 보다 분명해 이를 묶어 ‘여호와가 그 능력 안에서 세우실 것이다’라고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성전과 이스라엘을 굳건히 세워 나가실 것을 염원하는, 성전 봉헌자의 신앙고백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성전을 바치고 있는 거대한 놋기둥을 보며, 출입할 때마다 대견스러웠을 것입니다. 택하신 나라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든든히 지탱해 가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성전 기둥을 볼 때 감격하기보다는 굳은 각오를 해야 했을 것입니다. 먼저 자신들이 성전기둥처럼 빚어져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하나님이 세울 수 있고, 그래서 그 능력이 담길 수 있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는 다짐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단지 기둥의 의미만 말로 되풀이 하고, 소망만 했을 뿐입니다. 그 결과 약 380년 후 두 기둥은 땅바닥에 거대한 먼지를 일으키며 쓰러집니다. 그 영광스런 모습은 훼파되어 흉측한 몰골이 되고, 성전의 두 기둥은 바벨론으로 실려 간 것입니다. 놋으로 만든 물건이기 때문입니다. 놋 그 이상의 의미 곧 야긴과 보아스는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먼저 세워질 기둥이 되어야 하고, 그 후 세워질 것을 기대해야 했습니다. 곧 능력을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빚어지고 그리고 나선 하나님의 능력을 소원해야 마땅하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를 쓰시지 않으실까? 우리 교회는 왜 성장하지 못할까?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언제나 임할까? 그런 말 전에 하나님이 세우실 만 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받을 만한 사람으로 먼저 준비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영적 무장해야 합니다. 우리 몸과 마음을 다듬어야 할 것입니다. 잔가지는 쳐 내고 오직 집중할 데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의 ‘야긴’은 믿음입니다. 우리의 ‘보아스’는 순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신뢰하고 그분의 말씀을 청종하고 따르면 하나님의 영광이 임할 것입니다. 그것은 큰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그런 거창한 가시적인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일이 되면 족합니다. 마치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주듯이 말입니다. 그 일은 위대한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능력과 성품이 드러나는 것도 아니라 주님의 영광과 성품이 드러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진정 ‘야긴’과 ‘보아스’의 의미로, 여호와께서 그 능력 안에서 세우시는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성전 기둥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더 이상 ‘야긴’과 ‘보아스’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 이름은 우리 가슴에 있기 때문입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8절 성전 건축 이야기(6장; 7장 13~51절) 중간에 솔로몬의 왕궁 건축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굳이 솔로몬의 왕궁 건립을 이곳에 배열한 것은, 성전과 왕궁을 나란히 읽도록 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임재로 이스라엘은 흥왕을, 그분의 부재로 몰락을 경험할 것입니다. 솔로몬 왕궁은 13년이라는 오랜 시간에 걸쳐 완공되었을 정도로 규모가 크고 웅장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성전을 떠나시는 순간, 왕궁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울 것입니다. 아무리 튼튼한 도성도 하나님이 지켜 주시지 않으면, 하나님을 거역하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볕에도 그림자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7,8절 솔로몬의 왕궁 내에는 여러 기둥을 줄지어 만든 주랑이 자리합니다. 이 주랑은 왕이 백성을 위해 사무를 관장하고 판결을 내리는 용도로 쓰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이와 동일한 모습으로 “바로의 딸을 위해” 집을 짓습니다. 20년에 걸쳐 이루어진 성전과 왕궁 공사, 백성의 노역, 그리고 애굽과의 동맹을 통해 나라의 안전을 유지하려는 속셈을 읽을 수 있는 바로의 딸의 존재 등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솔로몬의 마음에 잔뜩 낀 욕심의 구름이 어른거리는 것 같습니다. 욕심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말씀 앞에서 내 욕심을 정당화하지 말고 내 욕심을 해석하고 읽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9~12절 솔로몬은 귀한 돌들을 다듬어 왕궁의 기초를 놓고 아름답게 장식합니다. 집의 기초에서 처마까지, 안마당에서 큰 뜰에 이르기까지 정교히 조각한 돌과 백향목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왕궁을 짓는 데 사용된 석재나 건축 방식이 성전과 같은 것은 솔로몬 왕궁이 하나님의 성전에 부속됨을 암시합니다. 왕궁에서 다스리는 왕도 하나님께 통치권을 위임받은 대리자일 뿐입니다. 따라서 왕은 이름을 드러내거나 자신이 한 일을 과시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하나님의 참된 통치를 이 땅에 구현해야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하늘의 영광을 이 땅의 왕에게 내려주실 것입니다. 이것은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소명이자 소망이어야 합니다.
기도
공동체-날마다 마음을 다듬고 아름답게 가꾸어 주의 거처가 되는 저와 교회가 되게 하소서.
다시 성전 건축으로 돌아와서 ‘돌과 나무로 만들고 금으로 입힌 건축물’들에 이어 ‘놋(13~47절)’ 과 ‘금(48~50절)’으로 만들어진 것들에 대해 서술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성전 앞의 두 청동 기둥인 야긴과 보아스를 만들기 위해 유대인 혈통의 ‘히람’을 두로에서 데리고 오게 합니다.
하지만, 인생 가운데 진정한 힘은 그 부와 거처하는 장소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만드시고, 온 우주를 통치하시지만, 보이지 않는 영으로 우리와 소통하시고 비둘기 같은 성령으로 우리 마음 가운데 거하시길 기뻐하십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능력이 있고 의미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매 순간 깨닫게 됩니다. 우리 가운데 성령의 열매가 매 순간 맺히고,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마음이 전달되어, 참으로 우리를 통해 이루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그리스도 예수, 그 반석 위에 온전히 세워져 나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가장 큰 힘과 열정을 쏟아야 합니다.
✔ 무엇을 명확히 하는 삶이어야 합니까?
➲ 누구를 위한 헌신인지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1절).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하는 데는 칠 년인 데 비해(6:38) ‘자기의 왕궁’은 그 두 배에 가까운 십삼 년이나 걸렸습니다. 즉 자기를 위하여 십삼 년동안 궁전을 지었다는 의미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전 건축에 이어 왕궁을 건축하는 일에도 많은 백성이 노역에 동원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백성의 불만이 쌓였을 것이고, 이것은 솔로몬 사후에 국가가 분열(12:1~20)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생이 나락으로 추락하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내 자신의 이름과 명예 그리고 내 자신의 즐거움에 더 집중하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 속에서도 결과적으로 이름을 얻고 부를 얻고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잘못이 아니라 축복이며,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선물이지만, 문제는 그 자체를 더 추구하는 순간 문제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선물을 주시는 분보다 선물에,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내 자신의 이름을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즐거움보다 내 자신의 안락을 더 우위에 놓는 삶을 살아가게 될 때, 삶이 깊은 나락으로 추락하고 만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나의 이 헌신이 진정 누구를 위한 헌신인지를 명확히 하여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에 온 열정을 쏟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4/15일 전도
➲ 누구를 통한 다스림인지 명확히 해야 합니다(2~8절).
솔로몬 왕궁을 ‘레바논 나무 궁’이라고 불렀는데, 그 이유는 레바논에서 수입한 백향목으로 건축했기 때문입니다(2~5절). 이곳은 무기고와 물품 보관소로 사용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둥을 세워 ‘주랑’을 세웠습니다(6절). 이어서 ‘보좌의 주랑’(7절)을 세웠는데, 이곳은 왕이 재판을 비롯한 주된 업무를 수행하는 장소였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왕이 거처할 왕궁은 주랑 뒤 다른 뜰에 있었고, ‘바로의 딸을 위하여’ 따로 크고 화려하게 지었습니다(8절).
솔로몬은 바로의 딸 외에도 정략결혼을 통해 여러 이방 공주를 아내로 맞았기에 이들의 궁들도 무수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오직 바로의 딸과 별궁만을 소개하는 것은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 애굽의 영향력과 당시 애굽 공주의 위세가 컸기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전과 왕궁의 규모를 비교해 볼 때, 솔로몬이 ‘자기의 왕궁’(1절)을 건축하는 일에 더 큰 관심을 쏟고 공을 들였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내 자신의 편의와 안락을 위해 무엇인가를 조성한다는 것이 나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좀 더 영적인 눈으로 살펴 장차 나에게 어떠한 결과로 이어질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신중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그 욕망은 결국 영적인 분별력을 잃어버리게 하고, 주님의 자리까지 빼앗는 결과까지 이르게 됩니다. 세상의 권력과 부귀영화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한 것에 목을 매는 사람처럼 살아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날마다 갈망하여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에 온 열정을 쏟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 누구를 향한 섬김인지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9~12절).
왕은 하나님께 위임 받은 통치권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백성들에게 대리해야만 합니다. 자기 이름을 드러내거나 자신이 한 일을 과시 해서는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하나님의 참된 통치를 이 땅에 구현하는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소명이자 소망입니다.
열왕기서의 기자는 성전에 비해 솔로몬의 궁전이 더 크고 더 오랜 기일이 소요된 공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록을 위해서는 불과 열두 절만을 할애하였습니다. 무엇인 중요한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에 참여할 때 영적 기쁨을 동시에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내 자신의 섬김과 헌신으로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은 도리어 내 자신을 하나님이 거하시는 아름다운 성전으로 만들어 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내 자신을 드리는 삶으로 하나님이 가꾸어 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내 자신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희생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에 참여하고 있는 영광스러운 일임을 고백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그 길이 하나님의 영광과 축복을 누리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이웃을 잘 섬기는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에 온 열정을 쏟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신의 은사를 사용해야 합니다(13~14절).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데 있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나 이방인이나 평민이나 노예나 할 것 없이 모두 각자의 재능을 발휘하여 헌신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 받는데 있어서는 민족이나 계급의 차이는 무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영광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부름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미약하나마 사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욱더 하나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세워져 가는 일에 나에게 은사와 재능이 마음껏 사용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무엇보다 교회를 섬기는 일에 있어서 자신이 가진 최고의 은사와 재능 또한 아낌없이 사용해야 합니다. 나아가 내 모든 인생이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데 쓰임을 받고 있다는 영적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갈 뿐만 아니라 더 멋지게 쓰임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 지혜와 총명을 구하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 하나님 나라를 위해 진리의 기둥을 세워가야 합니다(15~22절).
솔로몬이 두로에서 데려온 대장장이 히람은 성전의 현관에 어마어마하게 큰 두 기둥을 세웠습니다. 기둥의 머리를 만들어 꼭대기에 두었고 두 줄 석류를 한 그물 위에 둘러 만들어 그 머리 위에 두르고 석류 200개를 줄줄이 붙였습니다. 오른쪽 기둥을 야긴(그가 세우실 것이다)이라고 불렀고, 왼쪽 기둥을 보아스(그의 힘으로)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능력과 지혜에 의해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에 의해서 견고하게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내 자신의 삶 또한 나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힘에 의해서 받쳐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무리 모든 것을 갖추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내 자신과 함께하시지 않으면 그 견고함이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내 자신이 최선의 노력, 최상의 헌신을 드렸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세우시지 않고 능력을 베풀어 주시지 않으면 역시나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겨 드리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성전이 내 자신이 하나님을 더욱더 의지하고 신뢰하여 진리의 기둥으로 든든히 서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세상에 보이는 것들, 세상이 인정하는 것들에 매여 살아가기 쉬운 존재임을
다시 돌아보고 깨닫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 믿음으로만 바라볼 수 있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날마다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겸손과 순종으로 나아가는
주님의 제자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과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하 아버지께서 채워 공급하여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운과 핍박, 모든 자연재해로부터
고통받고 있는 많은 이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고
회복과 치유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의 하나님의 경외하고
우리가 아버지의 크신 뜻을 행하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