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自我)
出海時之一次祈(출해시지일차기)-바다에 나갈 때는 한 번 기도 하고
戰爭出時二次祈(전쟁출시이차기)-전쟁터에 나갈 때는 두 번 기도하라
結婚時點三次祈(결혼시점삼차기)-결혼을 할 때는 세 번 기도 하고
卒婚決心四次祈(졸혼결심사차기)-졸혼(卒婚)을 할 때는 네 번 기도 하라
中國哲人楊子曰(중국철인양자왈)-중국 철학자 양자가 말하기를
我胯一毛要拔出(아과일모요발출)-내 사타구니의 털을 하나 뽑으면
天下人生活得好(천하인생활득호)-천하 사람들이 잘 살게 된다 해도
我不决心其拔毛(아불결심기발모)-나는 털을 뽑지 않을 것이다
原因我是天比重(원인아시천비중)-이유는 나에게는 천하보다 중요한
二無固有有自我(이무고유유자아)-자아(自我)가 있기 때문이다
농월(弄月)
인도의 임서기(林棲期)가 늦게 상륙한 한국의 졸혼(卒婚)
2000년전 인도의 카스트(caste) 제도 중에 브라만(Brahmin) 법전이 규정한
생애(生涯)를 경과(經過)해야 할 네 가지 단계의 주기(住期)가 있다고 한다.
※주기(住期)-집에 머무르는 기간
①범행기(梵行期출생→25세)-스승 밑에서 베다경전을 학습하는 기간
②가주기(家住期25세→50세)-결혼하여 집에서 자녀를 낳고 가장으로서의
위치에 있는기간
③임서기(林棲期50세→75세)-집을 나와 숲속에 은둔(隱遁)하며 혼자 수행하며
사는 기간
④유행기(遊行期75세→이상)-숲속 은둔(隱遁)생활에서 나와 걸식하면서 세상을
떠돌아 다니다가 죽는 기간(자연사(自然死)
※임서기(林棲期)-“서(棲)”는 새가 나무에 둥지를 튼다는 글자로 임서기(林棲期)는 새처럼 숲속에서 혼자 살아가는 뜻임
베다경전의 기록에서는 임서기(林棲期)에서 홀로 사색(思索)이 끝난 75세가 되면
숲에서 나와 세상의 방랑(放浪)을 시작한다.
한 벌 옷과 지팡이 하나만 가지고 걸식(乞食)하며 세상을 떠돈다.
몸에 지닌 재산이라고는 손가락에 낀 금반지 하나뿐이라고 한다.
방랑 중에 죽었을 때 다행히 누군가 사람의 눈에 뜨면 금반지를 팔아 장작을 사서
화장(火葬)을 하기 위한 비용이다.
숲속이나 들에서 죽으면 짐승의 먹이로서 없어지는 것이다.
2,0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인도의 카스트(caste) 제도는 1947년 법적으론 금지되어
현재에는 특수한 브라만계급만을 제외하고 가주기(家住期)만 실천되고 있다고 하지만
이 “사주기(四住期)”는 인도인의 정체성(正體性)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인구 13억 8천만 인도 사회에 지금도 여전히 ③임서기(林棲期)와 ④유행기(遊行期)는 강하게 살아 있다고 한다.
석가모니도 마하트마 간디도 카스트만은 건드리질 못했다고 한다.
왜 인도인들에게 ③임서기(林棲期)와 ④유행기(遊行期)가 생겼을까 ?
냉정히 생각해 본다.
인생은 50세가 넘어가면 육체적인 에너지가 현격하게 쇠퇴하는 시기이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하고 수명이 길어져 “인생은 60~70부터”라고 하지만 새벽에
발기가 현저히 줄어들고 종족을 번식할 생물학적 에너지는 거의 다 썼다고 본다.
그러므로 집에 있을 필요가 없다.
부인과 자식에게 짐만 되는 것이다.
특히 부인의 잔소리를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동물의 왕국에서 보면 늙은 수사자가 젊은 수사자의 도전을 받고 무리에서 퇴출되는 이치와 같다.
임서기(林棲期)는 스스로 알아서 실행하는 자진 퇴출이라 할 수 있다.
임서기(林棲期)는 남자가 혼자 있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시간이다.
가장(家長)은 그동안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으려면 혼자 있어야 한다.
이것이 인간이 가야 할 궁극(窮極)의 길이요,
구원(救援)의 길이라고 인도인들은 생각하였던 것 같다.
부부(夫婦)란 무엇인가?
문화의 변천으로 “부부의 의미”도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지만
가정윤리의 실천덕목인 오륜(五倫)의 하나인 “부부유별(夫婦有別)”은
성(性)도 다르고 생각도 다른 여자와 남자가 부부로 맺어진 관계에서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서로 침범하지 못할 인륜의 분별이 있어야 한다는 근본은 우리사회의
깊은 곳에 여전히 흐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부부유별(夫婦有別)”이라는 엄격한 도덕적 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는 “아내는 남편에 예속(隸屬)”이라는 통념(通念)은 부인할 수 없었다.
이제 우리사회에서 나이를 불문하고 “이혼(離婚)” 단어는 어색하지 않다.
결혼과 이혼에 관한 가치관(價値觀)의 변화라 할 수 있다.
70세 이상 되는 “황혼이혼(黃昏離婚)”도 심심찮게 신문방송에 나온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이유다.
결혼생활 내용도 다양하다.
결혼은 해도 아이를 갖지 않는다.
잠은 각자 따로 자면서 합방(合房)은 날자를 정한다.
재산도 각자 통장을 관리한다.
50세 이상 되는 부부가 생각 밖으로 각자 방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나는 평생을 아내와 한 침대에서 잔다”고 하면
농월은 특별한 사람이다 라고 친구들은 말한다.
우리사회에 “졸혼(卒婚)”이라는 단어가 등장한지는 오래 되지 않았다.
필자가 알기로는 “졸혼(卒婚)”은 일본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杉山由美子)가
2004년 쓴 책 “소쓰콘(そつこん卒婚졸혼)을 권함”을 통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됐다고 한다.
스기야마(杉山由美子)는 졸혼(卒婚)을 이렇게 정의했다.
“기존 결혼 형태를 졸업(卒業)하고 자기에게 맞는 새 라이프스타일로 사는 것.”
졸혼(卒婚)은 결혼(結婚)·이혼(離婚)과 달리 법적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부부가 사실상 이혼(離婚)을 하고서는 따로 사는 것을 “졸혼(卒婚)했다”고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에 “졸혼(卒婚)” 단어가 계속 관심을 받는 이유는 늘어난 수명 때문이다.
기대수명이 갈수록 늘어나면서 결혼도 학교처럼 “끝(終)”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번밖에 없고 길지 않는 인생 무엇에 구속받고 억매이며 살기 싫다는 생각이다.
신문 방송에는 배우 백일섭씨가 “졸혼(卒婚)”의 원조(元祖)라는 말이 있다.
그 뒤에 영화배우 고 신성일씨--
(필자의 친구 한 사람은 졸혼 원조는 신성일이라 한다.
신성일이 엉앵란과 별거(別居)할 때는 “졸혼”용어도 없었다고 한다.)
얼마전(2019.04.24) 신문에 소설가 이외수(李外秀72)씨가 “졸혼(卒婚)”했다고 밝히는 신문기사가 있었다.
결혼 44년 만에 졸혼(卒婚)을 하고 서로 딴 집에서 살기로 했다는 것이다.
개개인의 고유한 영혼(靈魂)의 주파수가 영혼이 다른 두 사람이 결혼(結婚)으로
합선(合線)됨으로서 혼선(混線)으로 빚어졌다.
그리고 결혼을 “프레임(frame)에 갇힌 원앙”이라 하였다.
요즘 경제문제로 결혼을 못하고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한다.
필자도 털털 빈손으로 결혼하여 자식 셋을 낳고
그 자식이 또 자식을 낳고 살고 있다.
앞에 말한 인도의 임서기(林棲期)나 한국에 유행하는 졸혼(卒婚)을 볼 때
반드시 경제문제로 결혼을 안 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자아(自我)를 중요하게 여기는 때이다.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