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은혜의 동보원(東寶圓)
김 홍 은
가치란 무엇인가. 모든 사물은 때와 장소에 따라 유용(有用), 무용(無用)을 지니고 있어 그 가치가 결정된다고 하겠다. 이것이 바로 가치의 의미가 아닐까 한다. 사람은 누구나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아름다움은 정신에서 이루어지지만 가치란 저마다의 생각과 이용에 따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런가하면 가치의 중요성도 서로가 달리 판단되어 이를 따지는 것도 어렵다. 그러므로 가치의 평가도 용도에 의해 달라지겠다. 어찌되었던 개인의 노력에 의해 무엇인가를 이루어 놓았다는 어떤 성과는 매우 값지다고 여겨진다.
지난여름 이다. 어느 한 사람이 살아오면서 20여 년간 노력한 아름다운 인생흔적의 가치성을 새롭게 느껴 보았던 시간이 있었다. .
청주에서 40여리의 거리에 위치해 있는 가덕면 인차리의 한 골목길엔 동보원이라는 자그마한 간판이 세워져 있다. 이는 필연 동쪽에 있는 보물 동산이라는 뜻일 게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한쪽 편으로는 조상들이 살아온 숨결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안으로 조금 더 들어서니 푸른 잔디밭 주변으로는, 수 백 년 묵은 크고 작은 진귀한 분재들이 고풍스런 자태로 가득하다.
동양의 유일한 명품들로 분재공원을 이루고 있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을 이루게 한다. 작은 화분에서 절묘하게 자라가고 있는 끈질긴 생명력을 바라보고 있으면 신비롭기가 그지없다.
뿌리는 모두 솟아있고, 줄기는 목질이 다 드러난 채, 마지막 생의 환희를 용트림으로 화답하고 있다. 죽은 듯, 감춰진 한 가닥 남은 수피로 생명줄을 끌어안고, 수 백 년을 살아온 향나무의 멋스러움 앞에 서있으니 절로 감탄이 나온다. 숭고한 자연의 생명 앞에서 무슨 할 말이 또 있겠는가. 삶에 지쳐있는 몸과 마음을, 사색과 평화의 시간으로 조용히 안겨다 주고 있어 발길이 옮겨지질 않는다. 이들의 아름다운 자연 옆에 서서 자신을 돌아보니 투정을 부리며 살아온 지난날들이 부끄럽기만 하다.
이뿐인가. 몇 백 년이 되었는지 알길 없는 소나무는 층암절벽의 바위틈에 뿌리를 박고 살아온 것처럼, 그 세월을 고스란히 알몸으로 알려주며 가지마다 풍진세상의 서글픈 삶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려주고 있다. 어떻게 하면 이리도 자연스런 고풍미를 담고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바라보면 볼수록 조형예술의 극치미를 다시금 느끼게 한다. 이는 그 무엇도 흉내 낼 수 없는 분재만이 지닐 수 있는 조형적 특수한 형태미가 아니던가.
한눈에 들어오는 분재들이 겨울이면 상록을 자랑할 소나무, 향나무가 우뚝하고, 이른 봄에는 매서운 서릿바람을 이겨내고 고목의 작은 가지에다 꽃을 피울 매화나무, 살구나무, 벚나무가 반기고 있다. 오월이오면 연두빛 속잎으 돋아나 풍치미를 줄 소사나무, 느티나무, 느릅나무, 팽나무, 왕팽나무, 황벽나무, 물푸레나무도 이채롭다. 초여름이면 가지마다 곱게 꽃을 피울 괴불나무, 삼색병꽃나무, 으름덩굴, 능소화, 등나무도 마음을 이끈다. 가을에는 앙증맞게 아름다운 열매로 자랑할 고욤나무, 감나무, 굴참나무, 피란칸사스 등, 수백종의 명품들이 그 모형도 제각각이다.
다 죽은 듯 하면서도 살아있는 고목형이 있는가 하면, 어떤 나무는, 큰 용이 똬리를 틀고 누워 있는 듯 하다가도, 금세 꾸불텅꾸불텅 하늘로 나라갈 것 갔기도 하다. 어느 나무는 깎아지른 듯, 수 백 년 묵은 줄기가 수직으로 버텨 서서 잔가지를 치렁치렁 늘어트리고 있는 모양은 늠름한 장군의 모습 같다. 얼기설기 얽힌 뿌리의 속살을 들어 내놓고 자랑이라도 하는 듯 뽐내고 있는 형태는 발랄한 처녀같아 괜스레 얄밉다.
저마다 미의 교태를 부리고 있는 나무들은 보면 볼수록 사랑스럽기가 그지없다. 어찌 이들의 모습을 보고 주인인들 발길을 쉽게 옮길 수가 있었을까. 그러기에 주인은 분재를 보살피느라 20여 년간을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고, 지천명이 넘도록 비행기를 여적 한 번도 타 보지를 못했다고 한다.
정자 앞에는 맑은 물이 졸졸 흐르고, 그 옆에는 “동방예의지국의 민속적 유품과 빼어난 돌, 그리고 진귀한 수목들을 한자리에 모아 이 보배로운 것을 여러 사람들과 함께 감상하고 즐기자는 뜻이 이에 있다.(僞本 同樂 輿人 展場 珍木 秀石 貴品 民俗). 2005년 7월7일 해고(海高) 이상록 씀”이란 글씨가 넓은 오석(烏石)에 새겨져 있다. 해고 선생은 동보원 원장의 부친으로, 글을 손수 짓고 쓴 친필이라서 그런지 더 정스럽게 다가온다.
사방을 둘러보니 수없이 쌓여있는 맷돌, 연자매돌, 다듬잇돌, 석등, 돌다리, 염색돌그릇, 문인석 등, 갖가지 민속공예품을 비롯해서 전통가구와 농기구에 이르기까지 가득가득 하다. 진열되어 있는 물건들이 분재와 잘 어울리게 되어 동보원이 더욱 고풍스럽게까지 여겨 진다.
마루위에 앉아 차를 마시며 바라다 보이는 배롱나무의 붉은 꽃들도 분재원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원장은 모처럼만에 그의 속마음을 조용히 털어 놓기라도 하는 듯하다. 평소에 어머님이 좋아하시던 배롱나무가 어느날 우련히 두 가지가 말라죽더란다. 웬일인가 했더니 그해 어머니가 슬프게도 세상을 뜨셨단다. 부모님께 기쁨을 선사하고 싶어 정성을 다해 정원을 가꿔드리는게 꿈이었다며 꽃을 바라보면서 울먹이는 음성으로 말끝을 흐린다.
부모님에 대한 효성스런 자식의 착한마음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감동되어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 배롱나무 곁에는 ‘평생을 헌신과 사랑으로 가족을 보살피신 어머님의 따뜻한 숨결을 그리워합니다.’는 사모곡의 글귀가 애절하게 하늘높이 세워져 있어 가슴을 아리게도 했다.
동보원은 하나하나의 손길들이 부모님께 기쁨을 안겨드리려는 효성스런 마음이 배어져 있어서 그런지, 그 어느 곳 보다도 더욱 값지고 아름다워 모두가 탐이 난다.
첫댓글 동보원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면서도 가서 본것 같이 눈에 선하네요. 감상 잘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