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염원인 남북통일. 60년대식 대북 삐라 살포. 경제활성화의 산실 남북관계 부분차단. 부동산가격 천당과 지옥 행.
환율과 원부자재 값 급등. 주가지수.펀드 반토막 역 주행. 부자의 감세. 강부자 종부세 환원. 무리하게 투자한 사람들은
혼비백산이다. 그나마 추운 겨울날씨에 국제원유 값은 떨어져 천만다행이다. 투기에 광풍을 일으킨 후유증이고 세계 경기가
침체된 결과이다. 설상가상으로 국정책임자들의 신뢰불능은 찬물에 기름을 껴 얹는다. 하루 앞을 내다볼 수없는 험난한
여정만이 우리 앞에 남아있다.
'50대는 50% 세일' 이라는 우스개 말도 있다. 아무 것도 소유한 게 없어도 많은 것들에 감사하다. '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감사하다'. 몇 년 전, 음성꽃동네 봉사활동을 다녀왔던 부인에게서 들은 말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가진 것없어도 왠지 마음이 평안해지고 부자 같다.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하기 전, 집 마당 평상에 누워 높고 넓은 맑은 하늘을 쳐다보며 먼 훗날을 생각했다.
30여 년 전인 그 때가 약관(弱冠) 20세였던가!. 서울생활에 닥쳐올 기대 반, 불안 반에,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결혼하면
자식은 남겠지.' 하고 미래를 점쳐 봤다. 실패해도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미리 배수진을 친 그 때의 꿈?이 지금의 현실로
내게 다가왔다.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했던 딸과 아들을 얻었다. 덤으로 남는 것이 하나 더 있다. 팔자소관에도 없는
글을 쓰고 있는 사실이다. 글쓰기재산이 하나 더 늘어 초과 달성했다. 3년 전, 김갑술 해남신문 전 대표이사는
재경향우들의 동정기사를 부탁한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김 대표이사와는 코흘리개 어린 시절 해남읍 읍내리에서
같이 살았던 기억 밖에 없는데, 나에게 그런 큰일 날일을. 더 큰 일 날일은, 나에게는 글쓰기.읽기는 먼 나라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고향사람 만나기 좋아하고 동창회 향우회 등 친목모임에만 활발했는데 '글을 쓰라'고 하니,
둔탁한 무엇인가에 머리를 맞는 기분이었다. ' 네가 왕성하게 활동했던 그것이 좋다'.는 말에, 기가막히다.
선후배.친구 만나기를 좋아하고. 술, 노래, 축구를 좋아하는 내가 과연 글을 쓸 수있을까?. 순박하고 선량한 해남사람들에게
먹칠이나 하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엄습했다. '각 분야에서 열심히 사는 향우들을,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진솔되게 쓰겠다'는 말로 오늘에 이르렀다. 개인사정으로 최근에 주춤하였지만 어느새 200여 편의 글이 기사화되었다.
부족한 글쓰기 실력을 감추려고 하니 부연설명이 길어졌다. 독자들에게 감사 드리고 죄송하다.
아 참! 재산이 하나 더 늘었다. 신문기사를 쓰기위해서 3년 전부터 책보기를 시작했다. 독서를 하지 않으면 독자들에게
무식함이 금방 탄로날까 봐 책을 읽는다. 인생에 가장 중요한 독서도 덤으로 얻었다. 서울생활 30여 년 동안
예기치 않은 남는 장사를 많이 한 것 같다.
거의 무일푼인 상태로 상경해, 고생도 많이 해 봤고 풍족한 시간도 많이 가져 봤던 나에게는 이제 다시 시작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산전수전 겪을 건 거의 다 겪어 봤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15년 전인 39세. 이뤄 났던 큰 재산을
순간의 잘못된 선택에 다 날려보내고, 몸 기댈 곳도 없는 무일푼에 십여 억 원의 빚만 남아있었다. 그 많았던 빚을 처절하게
청산하고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이제는, 원점에서 재출발한다. 주위에서 '아파트값이 얼마나 올랐다'고하는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우선은 살아야만 했다. 고마운 지인.고객들을 평생 잊지 못한다. '배 째라'하고 빈손으로 애경사에
방문했던 쓰디쓴 과거사가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래도 다시 재기할 수 있는 30대에 망했으니 다행이다'라고 위안하며,
쓰디 쓴 웃음을 다시 한 번 지어본다.
올해 유난히 몸 고장이 많았다. 혈기 왕성한 젊은40대, 전국을 무대 삼아 천방지축으로 먹고 마시고 돌아다녔던 부산물이다.
종합병원에 100일은 더 출근하고 숙식한 것 같다. 고향행사 진행도중 '돌발성 난청'사고. 엎친 데 덮친 질병발병. 몇 군데를
수술하고 방사선 투여, 이제는 치료.관리다. 하찮게 생각했던 천일염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소금 맛이 꿀맛이다.
노년에 건강하게 살기위해 보링을 미리 했다고 자위하면서, '건강을 잃어버리면 다 잃는다'는 말을 지인들에게 전파하며
건강전도사로 거듭 태어났다.
한순간에 벼랑에 떨어졌어도 15년 동안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손 맞잡고 절벽 위에 다시 올라선 서울 댁 권영순.
늦깎이 방송통신대학 경영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다. 십여 년, 맡은 분야에 한 우물을 파고 종합재무설계사(AFPK) 전문가로
변신했다. 경영대학원(MBA) 금융.보험 석사과정에 합격통보를 받았다. 하마터면 포기할뻔했던 국제공인재무설계사(CFP)
자격시험에 도전한다.
10년 동안 국내.외를 오가며 공연무대를 포기하지 않은 딸. 청소년 걸스힙합 춤꾼들과 함께 강원도 양구 군부대 공연이다.
군제대하고 집안청소.빨래를 도맡아 하는 신세대 멋쟁이아들. 무역회사에서 아르바이트하며 학업에 정진한다.
아무 것도 가진 것없지만, 지금이 행복하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원점에서 불평없이 다시 시작하는
화목한 가족들이 있어 무척행복하고 즐겁다. 매서운 추운 겨울이 닥쳐와도 겁날 것은 없다.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속없다'는 소리로 들릴지 몰라도. 팔불출, 구불출 이라고 해도, 일할 시간이 아직은 20년이 남아있다.
사업에 실패했고 병들었던 비극은 내리고, 이제 경륜의 인생 3막을 올린다.
30여 년간 한 번도 빠지지 않았던 명절 때의 귀향. 모교행사인 해남중.고등학교 체육대회. 아쉬움이 남았던 불과 얼마전의
일이다. 년 말 아버지기일(忌日)에는 팔순의 어머니와 친구.선후배를 뵈 로 해남에 잠깐 다녀 올련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사랑하는 안태(安胎)고향 해남. 갈 곳이 있어 또한 무지 행복하다. 치료하고 관리할 수 있는 인동초의 몸이 나에게 남아있어
마음만은 확실한 부자다. 아직은 재활 중인 몸 상태로 인해 향우회.동문회모임에 적극참여.취재 하지 못함을 이해 바랄 뿐이다.
'인생은 60부터'라고 한다. 사업을 처음 시작했던 30대열정으로 재출발한다. 내년에는 55년 생 55살이다. 5라는 숫자가 네 번.
5555 행운의 숫자해다. 새해 1월 17일(예정) KBS아침마당 가족노래자랑 출연으로 힘차게 출발한다. 개인의 행복을 넘어
모든 사람들에게, 근심 걱정없는 내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르짖었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자취를 감쳤지만, 정신 못 차린 몇몇 사람은 아직도 경제는 뒷전이고 과거사만 들먹인다.
필자는 설운도의 '잃어버린 30년'이라는 노래제목을 인용, '도대체 무었을 잃어버렸나?' 라고 기고 한 적이 있다.
온 국민의 비극 IMF(국제통화기금)사태. 11년 전이 다시는 오지 않기를 거듭 바란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경선경쟁자였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국무장관에 내정했다. 말로만 통합을 외치는 우리와는 다르게, 모두가 함께
승자가 되는 포용하는 세상이다. 어려울수록 국내정치.사회.경제 모든 분야를 함께 헤쳐 나가야 한다.
애향.친목모임인 향우회 동창회도 마찬가지다.
첫댓글 선배님의 장문의 글을 읽고 피터 드러커의 말로 대신해 봅니다. 뛰어난 사람일수록 잘못이 많다. 그 만큼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한번도 잘못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 그것도 큰 잘못을 저질러 본적이 없는 사람을 윗자리에 앉게 해서는 안된다. 잘못을 저질러 본 적이 없는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다. 그 때문에 어떻게 잘못을 발견하며 어떻게 조기에 고칠 수 있는가를 알지 못한다.
새해에는 건강하시고 사업도 더욱 활발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