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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방콕 검도대회에 가고 싶다. – 방콕 검도대회에 부처
12월이 되면 우리 아이들은 모두가 방콕에 가고 싶어한다. 방콕에서 태국에 처음 검도를 소개한 사람인 나카네라는 분의 이름을 따서 검도대회를 개최하기 때문이다. 이 기회에 아이들은 수도인 방콕에도 가보고 싶어하고 오다가다가 역사의 현장을 들르기도 하기에 2박 4일의 비록 왕복 1700km가 넘는 먼 길이지만 서로 가려고 한다. 검도를 연습하는 우리 아이들을 다 데리고 가면 좋겠지만 재정 형편상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선수를 선발해야 하는 과정이 있다. 때로는 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섭섭해하기도 하고 가고 싶어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하지만 이것 또한 과정이리라. 이번에도 스텝의 딸인 마나가 자신은 방콕에 아직까지 가보지 못했는데 자기도 방콕에 가고 싶다고 하도 울어서 하는 수 없이 데려가기로 했다. 하지만 시합에는 나가지 않는 것으로 하고 같이 가서 일정을 소화하기로 하고 같이 떠나게 되었다.
12월 9일에 방콕에서 16회 나카네컵 검도대회가 열린다고 참여하라고 연락이 왔다. 누구를 데리고 갈까 고민하며 아이들을 살펴보았다. 대학생인 라와 고등학생인 쏨차이에게 누구를 데리고 갔으면 좋겠느냐고 하였더니 아이들의 생각도 대부분은 일치하였다. 이번에는 12명의 지원자들의 비용을 면제하여 주겠다고 하였으니 12명을 데리고 가기로 하였다. 전체는 4그룹으로 나뉘었다. 첫번째는 13세 이하로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한 그룹이고, 둘째는 중, 고등부 남자 그룹이고, 셋째는 중학생 이상 대학생과 어른까지의 여자 그룹, 넷째는 남자 성인 그룹으로 대학생을 포함하여 남자 일반부였다. 그리고 5명을 묶어 단체전을 치룬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남자 성인들이 없기에 우리가 참가할 수 있는 부분은 초등부와 고등부와 여자부 세 그룹이다. 그레이스 홈 아이들이 한창이던 시절에는 세 그룹에서 우승을 한때도 있었고 대학생이 있던 시절에는 네 그룹의 챔피언을 꿈꾸는 시절도 있었다. 아쉽게도 남자 성인부에서 준우승을 하여 세 그룹에서 챔피언을 배출하기도 하였다.
올해는 방콕에 가는 길에 아유타야 왕국(1350-1767)에 위치한 케톨릭 성당에 들르기로 하였다. 태국의 개신교 역사가 190년이라면 태국의 케톨릭은 349년의 역사를 지녔다. 몇해 전에는 아유타야 지역의 옛문화를 둘러보느라 성당을 들르지 못하였는데 이번에는 금요일 아침 8시에 출발하여 그곳을 들르기로 하였다. 옛 아유타야 왕국의 수도였던 아유타야 지역에 도착한 것은 오후 5시30분이 다되었다. 지는 해 넘어로 멀리서 땅거미가 밀려오고 있었지만 이미 250년전에 쇠락한 도시의 그림자 속에서도 불탑들은 고도의 위엄을 간직하고 있었다. 어둠이 내리는 성요셉성당(St. Joseph Church)으로 들어갔다. 성당에 간다고 하니 수위 아저씨가 반긴다. 케톨릭은 현지 문화에 적응하느라 사원이라는 의미의 왓을 사용하였다. 개신교는 교회라는 의미의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 비하여 케톨릭은 좀 더 현지화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 와보는 성당에는 처음으로 케톨릭을 태국에 전파한 신부들의 흉상이며 사진과 역사를 전시하고 있었고 케톨릭 성당을 잘 장식하여 놓았다. 내년이면 350주년이라며 많은 플랭카드를 전시하여 놓았고 한편 공원에는 예수님의 일생과 신자들의 삶을 흉상으로 만들어 놓아 찾아오는 신도들로 하여금 묵상하며 걷도록 조성하여 놓았다. 시간이 있다면 그 길을 따라 천천히 묵상하며 걷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밀려오는 땅거미에 마음이 분주하여 휙 휘돌아 나오며 사진을 찍고는 아이들과 함께 서둘러 그곳을 떠나야만 했다. 거의 두시간을 달려 숙소인 박 선생님의 센터에 도착하였다. 그 부근에서 거의 한 시간을 헤멨다. 내가 가지고 있는 핸드폰의GPS가 이상한 곳으로 자꾸만 안내하였다. 몇번을 허탕을 치다가 거의 40분을 소비하고 드디어 찾았다.
저녁 식사후에는 아이들하고 모여서 하루의 일과를 나누고 내일의 일과를 나눈 후에 잠을 청했다. 치앙마이에는 비가 오지 않았는데 방콕에는 비가 와서 선풍기를 틀지 않아도 될만큼 선선하였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같이 있다보니 어떤 사람은 춤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덥다고 하여 선풍기를 틀고 잠을 잤다.
새벽에 일어나니 밤사이에 비가 내렸다. 아이들은 정신없이 잠을 자고 있었다. 선풍기를 틀어놔 서인지 추워서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 선풍기를 껐다. 그리고 하루 일을 생각하며 지혜를 구했다. 오늘 오전 아홉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밖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7시가 되어 아이들을 깨우고 만나를 통해 같이 묵상하며 나눴다. 우리가 오면 매번 아침 식사를 하던 쌀국수집이 문을 닫았다. 주인 아저씨가 허리가 아파서 요즘 가게를 열지 못한다고 하였다. 하는 수 없이 다른 집으로 가서 아침을 먹었다. 짐을 정리하고 쉬다가 9시가 되어 방콕 지역을 경험하기로 하였다. 가까이에 커다란 절이 있어서 그곳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그 사원의 이름은 일명 백만불 사원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우는 왓프라 탐마까이로 한시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기록에 위하면 그 사원의 신도수가 30만명을 넘어서고 있다고 할 정도로 규모를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사원이다. 게다가 현대적 마켙팅 전략을 써서 시주를 많이 한 사람이 주지 곁에 앉는 전략을 써서 시주를 많이 한 사람순으로 자리도 배치한다고 하였다. 여러가지 문제가 있는 사원이기는 하였지만 커다란 사원이고 몇 년전 방문하였을 때 그 입구에 커다랗게 써놓은 입간판의 문구가 나를 사로 잡았다.”Change the World” “Go Into the World” 교회가 해야할 것을 이들이 써놓고 교육하고 있었고 규모 면에서는 헤아리기가 어려웠다. 마침 비가 세차게 내려서 차 안에서 나갈 수가 없었다. 전체 지역을 차로 둘러본 후에 우리는 가까이에 있는 Fashion Island로 가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방콕에 처음 와본 아이들도 있어서 방콕의 도심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였다. 도심은 많은 차로 붐볐고 차고에서 건물로 들어가기 까지는 기다려야 할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아이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몰을 돌아보도록 하였다. 나는 주변에서 책을 보며 기다리고 있었고… 하지만 아이들도 몇 시간을 기다리다 지처 책방에 가서 책을 읽고 있었다. 시간이 되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숙소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고는 아이들과 잠시 몸을 푸는 운동을 하였다. 그리고 일찍 자야하는데 늦게까지 게임을 하다가 늦게 잠이 들었다.
드디어 오늘은 검도대회가 열리는 날이다. 8시까지 시합장에 가려면 이곳에서 7시에는 출발하여야 한다. 일어나보니 6시 20분이다. 아이들을 깨웠다. 오늘은 주일인데 씻고 준비한 아침을 먹고 간단하게 예배를 드리고 출발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침구를 정리하여 이층으로 올리고 청소를 한 후에 이미 준비한 빵이며 잼을 발라 아침을 먹었다. 7시에 출발, 차 안에서 오늘의 만나를 통하여 예배를 드렸다.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로 하여금 안믿는자들 가운데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알게해 주옵소서하며 검도대회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많은 선수들이 와 있었다. 참가한 선수들만 200여명이 넘었다. 검도 관련 당사자들이 많이 왔고 차지할 수 있는 좌석은 이미 먼저 온 팀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등록을 하러 가니 라오스에서 온 위치안이 우리를 반겼다. 위치안은 그레이스 홈에서 자란 청년인데 우리가 라오스에 단기선교사로 보낸 아이였다. 그곳에서 바리스타로 북까페를 열고 지도자도 교육하고 또 검도도 가르치기 시작하여 지난 10월에 우리가 방문하여 같이 검도하면서 방콕 대회에 참가하도록 권유하였던 것이다. 두명의 청년과 함께 대학일반부에 참가하였다.
예식이 끝나고 9시반부터 초등부 경기가 시작되었다. 초등부에 참가한 선수는 대략 40명 정도였으나 우리는 12세인 럭디를 비롯하여 11세인 사무엘, 여자로 10세인 마타가 참가하였다. 경기는 네코트에서 나눠서 벌어지기에 아이들을 체크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D코트에서 열린 마타는 여자인데다가 처음 출전이었고 경험도 적어 너무 쉽게 두 경기를 내줬다. C코트에서 벌어진 사무엘은 키가 작아 한번도 이기지 못하고 패하고 말았다. A코트에서 벌어진 럭디는 두번을 연속해서 이기고 세번째도 승리하였다. 8강에 진출하였지만 키큰 아이를 만나 지고 말았다. 13세 미만의 초등부의 경기는 그렇게 아쉽게 끝이 났다. 이전에는 우리 아이들이 초등부 챔피언을 차지한 적이 많았다. 이전에는 우리 아이들이 초등부를 재패한 적이 많았다. 벤자민과 잎이라고 하던 하르타이가 실력이 출중하여 연이어 트로피를 가져오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이들이 검도를 배운지가 얼마되지 않아 일본 사범들의 아이들을 대적하기가 쉽지는 않고 게다가 심판들마저 일본 사람들이니 더욱 어려워졌다.
이어서 남자들 중, 고등부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남자 중, 고둥부는 2010년부터 우리 그레이스 홈 출신의 치앙마이 란나 검도클럽팀의 청소년들이 챔피언을 차지한 이래 8년 동안 우리 팀이 챔피언의 자리를 유지해오고 있었다. 비록 이름은 달랐지만 첫해인 2010년에는 위치안, 다음해에는 깨띠삭, 그 다음해에는 찰랏, 2013년에는 죤, 2014년에는 워라멧, 2015년에는 꼽, 그리고 2016년에는 중3인 쏨차이가 챔피언이 되었고 연이어 챔피언이 되었던 것이다. 올해 우리는 남자 중고등부에 모두 네명이 참가하였는데 중학교 1학년인 마튜와 바오로, 2학년인 모세,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인 쏨차이였다. 쏨차이는 두번 연속 챔피언의 명예를 차지하였다. 솜차이는 이번에도 유력한 우승후보였다. 나머지 아이들은 중학생이라 너무도 어려 고등학생들과 대결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경험을 쌓기로 하고 나온 것이다. 마튜는 시합을 하자마자 자신있게 두 게임을 이겼다. 세번째 만난 상대는 키가 30센치는 큰 선수였는데 물러서지 않고 대결하였지만 아쉽게도 1대0으로 지고 말았다. 마튜의 당당함으로 스피릿상을 받게 되었다. 뒤이어 바오로가 경기에 나섰는데 . 첫경기는 무난하게 이겼다. 받아치기가 일품이어서 관중들의 갈채를 많이 받았다. 하지만 두번째 경기에서는 지고 말았다. 모세는 첫판부터 자신감이 없었다. 두번을 내리졌다. 아쉬웠다. 의욕도 없고 하려는 투지도 없고… 화가 났다. 뒤이어 쏨차이의 경기가 A코트에서 시작되었다. 처음 상대는 잘하는 아이여서 긴장했는지 쏨차이도 칼이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첫시합을 어렵게 2:1로 이겼다. 시간이 가자 점점 평상심을 찾아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원상을 회복하여 결승에서도 이기고 쏨차이는 3년 연속 챔피언의 자리를 지켰다.
이어진 경기는 여자 일반부였다. 검도 선수층이 두텁지 않아 여자 일반부는 중학생이상 대학생과 일반부를 구별하지 않고 같이 묶는다. 중학생들은 참가하는데 의의를 두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검도대회에는 40명 정도의 여자 선수들이 주변의 여러나라에서 참여하였다. 즉 홍콩, 말레이지아, 베트남, 미얀마, 호주, 네팔, 피지 등지에서 왔다. 우리는 이번에 5명의 선수를 출전시켰다. 대학생인 라를 포함하여 고3인 남딴과 고2인 남완과 몬과 룻이 그들이었다. 하지만 검도 3단이나 오랫동안 국가대표로 활동해온 선수들을 만나는 것은 버거운 일이지만 그래도 경험을 쌓으라고 참여하도록 하였다. 처음 시함을 한 것은 룻이었는데 룻은 강한 상대를 만나 한번도 이기지 못하였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열심을 다했다. 자신감을 가지고 달려든 아이는 몬이었다. 오랫동안 검도를 했던 몬은 키도 크고 자신감도 있어서 첫판을 자신있게 이겼다. 둘째판도 자신감을 내보이며 경기에 임했고 또 이겼다. 세번째 판에서는 우승자를 만났다. 내가 보기에는 아쉽게도 주지 않아도 될 점수를 심판들이 주었다. 1대0으로 끝이 났다. 아쉽다. 몬의 열정에 감동을 받은 심판들도 미안했던지 나중에 스피릿상을 몬에게 주었다. 드디어 라가 경기에 임했다. 라는 이미 16세에 국가대표에 선발될 정도로 자타가 공인하는 검객이다. 라는 늘 큰소리를 자신있게 내질렀다. 시합을 시작하자마자 간단하게 2점을 먼저 내고 경기를 마쳤다. 세번까지 그렇게 이기고 준결승에서 베트남 선수를 만났다. 보기에는 쉬운 상대 같았으나 선수가 몸집이 크고 라도 지쳐 있어서 그런지 라의 칼이 잘 돌지를 않는다. 결국 1대0으로 안타깝게 지고 말았다. 베트남 선수도 결국 홍콩 선수에게 2:0으로 지고 말았으나 라의 아쉬움은 컸다. 1등이 홍콩, 2등이 베트남, 3등이 라였다. 그나마 위안을 삼는 것은 그래도 태국인으로서는 1등이나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많지 안으니 심판들은 선수들이 정확하게 치지도 않았는데 빨리 끝내려고 점수를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이 일본 심판들이다 보니 어린 아이들에게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이윽고 남자 일반부 경기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라오스에서 온 위치안과 두명의 선수가 어떻게 하는지 관심을 가지고 관전하였다. 첫번째로 나선 형제는 미얀마에서 온 선수를 만나 첫번째 판을 이기고 두번째 판에서는 고배를 마셨다. 두번째로 나선 피터는 첫게임을 이기고 두번째도 이기고 세번째 게임도 이겼다. 네번째 게임에서는 아슬아슬하게 졌다. 시합을 끝내고 나오는 형제를 위로하였더니 검도에 대해 자신감이 붙어 있었다. 이제 라오스에 가면 열심히 연습하겠다고 하였다. 세번째로 나선 위치안도 첫게임은 이겼으나 참으로 오랜만에 하는 시합이라 만만치 않았다. 지고 말았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이들이 와서 더 넓은 검도의 세계를 경험한 것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고등부 챔피언과 여자부 3위를 하자 모두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태국 검도협회 임원들에게 라오스에 새로운 검도협회가 생겼으니 필요한 죽도며 도구들을 지원하여 주도록 요청하였더니 자신들도 너무 감사하다며 기꺼이 돕겠다고 하였다. 예로부터 라오스와 태국은 형제의 나라요, 같은 민족으로서 호형호제하며 지내는 나라이다. 검도도 이제는 그렇게 지냈으면 하는 마음이다.
모든 행사가 다 끝나고 시상식이 열렸다. 초등부에서는 3등안에는 없었지만 럭디가 스피릿상을 받았고 중등부에 참여한 마튜가 또한 스피릿상을 받았고, 고등부 챔피언이 쏨차이가 트로피를 다시 받았다. 여자부에서는 몬이 열심히 하여 챔피언에게 지기는 했지만 스피릿상을 받았고 라가 3위에 입상하여 트로피를 받았다.
모두의 시상식이 끝나고 연습을 한다고 옷을 갈아 입었지만 우리는 갈 길이 멀었다. 나는 나카네 사범을 찾아가 아이들하고 인사를 한 후 같이 사진을 찍었다. 한해 한해 건강이 악화되는 것이 보인다. 우리는 짐을 챙겨 봉고로 갔다. 벌써 5시가 다 되었다. 집에 가면 새벽 네시가 넘으려나?? 아이들은 과자를 먹으며 영화를 보고 또 보았다. 가다가 쉬고 가다가 쉬고, 새벽 다섯시가 다되어 치앙마이 집에 도착하였다. 내일 아침에는 푹자자. 마침 제헌절이라 학교에도 안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