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가 갑질을 하는 대상이 있다. 밤낮없이 내게 혹사당하고 중노동에 시달리는 선풍기가 그것이다. 퇴근한 뒤 자취방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녀석의 노역은 시작된다. 그리고 밤새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바람을 일으켜 내 땀을 식히고 체온을 낮춰주는 일을 반복한다. 물론 타이머를 설정해 녀석이 휴식을 취할 시간을 주기는 한다. 그러나 뜨거운 밤마다 녀석의 촉수가 내 몸 구석구석을 더듬어주지 않는 한 얇은 잠이 금세 박살 나 버리므로 노동력 착취임을 번연히 알면서도 잠시 허락하던 휴식마저 빼앗아 버리곤 한다. 그러나, 선풍기여! 이 한 철 노역이 끝나면 나머지 계절 동안 안락한 휴식을 보장할 터이니 더위가 누그러질 때까지는 고달프더라도 나를 위해 성심껏 날개를 돌려다오.
첫댓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