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적 인물’의 신비한 건강법
그렇지만 술 마시기 전에 숯가루 한 봉지를 탈탈 털어 먹는 나에게 꽂히
는 주위시선을 보면, 숯은 여전히 시커먼 숯가루일 뿐 전혀 신분상승이
이뤄지지 않은 채 나만 엽기적 인물로 비쳐지고 있는 것 같다.
‘좋다, 권하진 않으마. 그러나 머지 않은 장래에 너도 감복하고 매달
릴 날이 올 것이다.’
이렇게 오기를 부려보는 것은 나름대로 숯의 국제성에 대한 자료를 많이
모아두었기 때문이다.
2001년 겨울, 분쟁지역 전문 다큐멘터리 작가인 김영미(33)씨가 아프가
니스탄으로 떠날 때, 챙겨주지 않았는데도 활성탄 봉지를 한 보따리 가
지고 갔다. 그녀는 전기도 끊기고 불결한 물을 마셔야 했던 열악한 상
황 속에서 자신을 지켜준 것은 숯가루뿐이었다고 돌아와서 말했다.
“숯을 그렇게 요긴하게 썼니?”
“그럼요. 난다긴다하는 외신기자들이 보름을 못 넘겼는데, 전 40일이
나 버텼잖아요.”
더러운 물도 숯가루 한 봉지를 풀어놓고 두어 시간 기다렸다 마시면 아
무 문제가 없었다. 외신기자들은 그걸 모르고 물을 그냥 마셔 배탈에 복
통으로 고생하다 소득 없이 되돌아가더라는 것이다. 그녀는 이번 이라
크 전쟁 취재 때도 활성탄 가루를 잔뜩 챙겨갔고, 덕분에 다큐멘터리
‘긴급르포-일촉즉발의 이라크를 가다’를 제작해 주가를 올렸다.
김PD가 출발하기 전 쿠웨이트가 한국산 방독면 수만 개를 구입했다는 외
신보도가 있었는데, 그 방독면의 불쑥 튀어나온 입 부분 끄트머리에 활
성탄 필터가 삽입되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미국의 저명한 병리학전문의인 애거사 트래시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숯을 사용하고 있다. 숯은 독성을 제거하
고 위를 신속하게 진정시켜주며 몸에 상처가 났을 때도 효과적이다.”
트래시 박사는 예전에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속병을 어떻게 고쳤는지도 말
해 주었다.
“그들은 불타는 나무를 개천에 집어넣어서 숯을 만들고는 그것을 꼭꼭
씹어먹었다. 그러한 지혜는 대를 이어 내려온 것이다”
시드니에서 북쪽으로 두 시간 가량 달리면 시더베일 요양원이 나온다.
자그마한 곳이지만 호주 전역에서 사람들이 찾아오는데, 그곳에서 숯 목
욕을 하는 광경을 보았다. 활성탄을 풀어놓은 시커먼 욕탕…. 숯에 대
한 정보와 신뢰와 애정이 없다면 돈 주고 들어가라고 한들 누가 발을 들
이밀겠는가. 그들에게 숯 목욕을 하고 숯 팩으로 통증 있는 부위를 찜질
하고 또 숯을 먹는 것은 중요한 치유방법 중 하나였다. 그런데도 숯가
루 먹는 내가 엽기적인 인물이란 말인가.
숯먹인 송어 맛이 일품
“이상해요. 똑같은 평창 땅에서, 똑같은 금당계곡을 끼고 키우는 송어
지만, 이 집 송어만 특별나게 맛이 좋으니 말입니다.”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대화면 개수리에 민박집을 차려놓았다는 김교운씨
가 연방 이상하다면서 송어매운탕 국물을 떠 마신다.
“다른 집 송어에서는 민물 비린내가 나는데 이 집 송어는 외려 고소하잖
아요.”
김씨의 부인도 거들고 나선다.
정말이다.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 상안미리에 자리잡은 ‘안미송어장’
의 송어는 특별나다. 송어 살이 선분홍빛이고 그 살맛은 고소하다. 나중
에 매운탕을 끓이면 국물이 달다. 달면서도 천박하지 않고 기품과 풍미
가 있어 서울은 물론 수원 안성 등지에서도 단골손님들이 찾아온다.
이곳 금당계곡은 한여름에도 발 시린 냉천이 흘러 주변에 송어횟집이 많
은데, 왜 이 집 송어 맛만 유별난 걸까. 그 답은 뜻밖에도 숯에 있다.
“아니, 송어에게 숯을 먹인다구요?”
소백산 참나무 숯가루를 섞은 사료를 송어에게 먹이는 것만으로도 꽤 많
은 이득을 보았다고 주인 심언용씨는 자랑했다.
첫째 송어 맛이 좋아지니까 손님들이 더 많이 찾아오고, 둘째 양식장에
서 나오던 부유물의 비릿한 악취가 없어졌으며, 셋째로 이것이 제일 중
요한데, 숯가루를 쓴 이후 항생제를 예전의 절반 정도만 쓴다는 것이다.
나는 이 송어횟집을 취재하면서 송어 양식장뿐 아니라 이 나라의 모든 가
두리 양식장과 돼지 키우고 닭 키우는 사육장에 숯가루를 뿌렸으면 좋겠
다고 생각했다. 고기 맛 좋아지니까 손님 늘어나, 항생제를 조금 사용
해 국민 건강에 기여하는 보람도 커져, 게다가 숯가루 값이 항생제 값보
다 싸…. 머뭇거릴 일이 아니잖는가.
강원도 고성에 큰 산불이 나고 얼마 되지 않아 아주 흥미로운 뉴스가 세
간의 관심을 끌었다. 피해 본 분들에겐 죄송한 말씀이지만, 산불 덕에
어민들이 싱글벙글한다는 것이다.
동해안에 갑자기 물고기떼가 몰려와 ‘그물이 찢어질 정도’라는 것. 바
다에 어른거린 고성 산불의 그림자를 보고 물고기들이 몰려들었다는 분석
이 나왔다. 밤에 횃불 들고 나가 물고기를 잡아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아, 그럴 수도 있겠다’고 모두들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숯이 물고기떼를 몰고 왔다니…
그때 “턱도 없는 소리 하지 마라”며 ‘숯의 영양학’을 들고 나선 사람
이 있었다. 그 주인공은 무명의 영양학자 홍영선씨로, 홍씨는 ‘볶은 곡
식론’의 창시자이다. 하루 한끼 볶은 곡식과 약간의 떡, 또는 과일만
먹으면서도 괴력을 발휘하는 인물로, 필자가 3년째 관찰하고 있는 중이
다.
“불빛 때문이 아니고요…”
산불이 크게 났으니 얼마나 많은 나무들이 숯으로 변했겠는가. 재는 또
얼마나 많이 쌓였을 것인가. 비가 오니 그 잿물이 다 어디로 흘러갔겠는
가. 잿물 속에 칼슘, 칼륨, 철, 인, 아연 등 미네랄이 풍부하게 담겨
있었으니 본능적으로 그 냄새를 맡고 물고기들이 몰려들었다는 것이다.
“개나 고양이를 보소. 맘대로 풀어놓고 키우면 밤에 어디 가서 자는
가”
그렇다. 시골 살 때 보면 개가 꼭 재 뿌려둔 곳에 가서 배를 깔고 자는
모습에 늘 신기해하곤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까 숯의 미덕은 단순히 나
쁜 물질을 흡착하는 데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몸에 필요한 미량 원소
들을 공급해주는 데도 있는 것이다.
서울 양재동 삼호물산 빌딩 뒤 먹자골목에 자리잡은 조그만 초밥집 ‘구
룡포’는 초밥보다 어죽과 돌게장으로 더 유명하다. 게장이라고 하면 누
구나 꽃게장을 떠올리지만, 이 집 게장의 재료는 돌게다. 꽃게처럼 생겼
으나 몸집이 훨씬 작고 맛도 떨어져서 가격이 저렴한 편이다.
“꽃게장은 못 내놓지요. 초밥보다 더 비싼데….”
주방장 천무갑씨는 비록 돌게가 꽃게에 필적하기 어려운 조건이지만 게장
에 들어가는 재료와 섬세한 제조과정을 통해서 꽃게장을 능가하는, 게장
의 새로운 문화를 열었다고 자랑했다. 진간장, 생수, 청주를 2:2:1로
섞은 물에 오븐에 구운 대파 양파 마늘 생강을 넣는다. 특히 대파는 한
쪽 면이 까맣게 숯검댕처럼 탈 때까지 굽는다. 일부러 그러는 것이라고
한다.
“저 정도는 타야 숯의 역할을 하지요. 간장 우려낼 때 숯 넣는 것처
럼.”
아! 숯 문화가 우리 생활 속에 이토록 뿌리 깊게 박혀 있구나.
부산대학교 박건영 교수는 필자와 대학 학번이 같아 그냥 말을 놓고 지내
는 사회 친구인데, 박교수가 대학 신입생 시절인 1969년 미국 시사주간
지 ‘타임’이 메주에 아플라톡신이 득실거려 한국 사람들이 위암에 많
이 걸린다고 보도한 일이 있었다.
당시 농화학과 학생이던 박교수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그처럼 엉성하
고 남루할 리 없다’는 독한 마음을 품고 식품영양학 쪽으로 방향을 선
회, 대학원을 마친 후 한국 전통 장류의 독성물질을 연구주제로 삼고 미
국 네브래스카 주립대학과 하버드 대학을 거쳤다.
그리고 그 결과, ‘타임’의 보도가 있은 지 15년 만에 ‘메주에 아플라
톡신이 있다는 것은 웃기는 이야기’라고 발표했다. 지금까지도 ‘타
임’이나 국내외 학회에서 어떤 반론도 제기하지 않은 걸 보니, 그의 논
문은 훌륭하게 잘 짜여져 있었던 모양이다.
박교수는 메주의 아플라톡신이 맥을 못 추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 바로
숯이고, 특히 활성탄일 때 그 효과가 가장 좋다고 말했다. 우리 할머니
들이 아궁이 밑에서 긁어모았던 바로 그 숯가루, 그런 활성탄일 때 아플
라톡신 수치가 제로로 떨어지더라고 신기해했다.
숯은 내 인생의 동반자
주변 사람들이 그토록 우려했던 ‘비과학적’인 숯은 이처럼 과학적이고
또한 실용적이다. 게다가 값도 비싸지 않고 부작용도 없다. 나는 내 친
구인 검정숯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마음놓고 권유할 것이다. 나는 오늘
저녁 술자리에도 숯가루 봉지를 잊지 않고 챙겨간다.
언젠가는 모든 의사들이 처방전에 ‘활성탄’을 써넣을 날이 오리라. 그
리고 이 숯가루 덕분에 온갖 종류의 마이신과 항생제를 쓰지 않아도 될
날이 오리라. 그리고 필자가 강원도 산골에서 숯가마와 숯가루로 아토
피 피부를 가진 어린이들을 달래주는 모습도 머지 않아 보게 되리라. 숯
은 나의 확고한 신념이고 인생의 동반자다. (끝)
尹 東 赫
● 1951년 제주 출생
● 고려대 사학과 및 동대학 철학과 대학원 졸업
● 일간스포츠 체육부 및 연예부 기자, 문화방송 PD, 서울방송 PD
● 현 ‘푸른별 영상’ 대표
● ‘사할린 통신’‘평화, 멀지만 가야 할 길’‘한일음식문화교류사’
‘서울 달터공원 버섯이야기’‘검정숯 이야기’‘히가시 미쓰야마의
100엔짜리 하모니’ 등 다수 TV프로그램 연출
첫댓글 훔...그렇구나.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활용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