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우니타스 회지 1983년 8월호 - 응답하라 1983

[김규호]

나와 우니타스와의 1983년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연히 경희도 기억이 없다. 경희가 기억나는 것은 세월이 한참 지나고 아마도 노원역 전철 안에서 인 듯 하다. 아마 그 때 나는 결혼을 하고 직장 생활을 할 때 일 것이다.

고백하건데 83년에도 난 대학에 적을 두고 있었다. 왜 우니타스와 기억이 없는지 잘 모르겠다. 그건 도피처럼 떠난 군입대 때문이였을까? 내가 떠난 이후에 후배들이 무척 힘들었다는 얘기는 들은 것 같다.(전두환 정권의 야학 폐쇄) 1980년 겨울 눈내리는 날 강남터미널에서 진해로 가는 고속버스를 탔었다. 바로 해병대 자원입대였지. 전날 우니회원들과 밤을 지새고 강남터미널로 함께 갔었다. 눈물 나는 그런 배웅은 아니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난 아마도 감청색의 떠블 바바리 옷깃을 세우고 눈을 맞으며 버스를 올랐다. 머리도 깍지 않았다. 장발이였을 것이다. 그냥 여행을 떠나듯 그렇게 젊은 날을 뒤로 했다. 배웅을 했던 대부분은 떠나는 나에게 특별한 관심을 표하지 않았다. 전날부터 밤세워 마신 술때문에 빨리 어디론가 해장을 하고 싶었을게다. 딱 한사람만 눈에 눈물이 고인 것을 봤다. 난 모른체 했지만... 그가(?) 나 때문에 눈물이 고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돌아오는 시점에는 자신을 포함해서 많은 것들이 변할 것이란 청춘의 아쉬움에 고인 눈물이었을테니 말이다. 

소설쓰는 것 아니다. 그날은 1980년 12월 5일이었다. 질척거리는 눈도 내렸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1982년 12월 5일에 재대했다. 만 24개월이었다. 당시 육군은 34개월. 해병대는 30개월. 대학 3년동안 교련 혜택으로 6개월 단축. 그래서 24개월 군대 생활을 했다. 정말 짧고 굵게 했다. 백령도에서 해병대 하사로 겨울에는 천렵하고, 여름에는 송사리 키우고 가을에는 독도법 경연대회 준비한다고 산을 누비면서 산딸기 따먹으면서 군대 생활했다. 드디어 제대했다.

그리고 이 1983년을 맞이했다. 무척 추웠던 2월 초순에 혼자서 설악산으로 떠났다. 처음에 들렸던 백담 산장에는 혼자 온 나와 휴가 나와 여행 온 군인 친구 둘과 졸업 여행 온 여대생 3명과 보디가디 1명이 머물렀다. 아침에 얼음을 깨고 세수를 했지만 아무런 감각도 없었다. 그렇게 진부령을 넘어서 간성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동해시로 바뀐 삼척까지 신작로를 따라서 내려 왔었다. 지방버스를 타면서 수시로 내려서 걷곤 했었지. 그리고 추억이 깃든 설악동을 둘러보고 나오는 버스 안에서 우니회원을 만났다. 그 회원의 동정은 아직 모르겠다. 소식이 들릴 만도 한데 어디서 뭐하는지... 버스 안에서 설악산을 나오는 곳까지만 얘기 나누었던 것 같다. 그 동네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설악동을 나와서 나는 남쪽행 버스를 타기 위해서 내렸으니까. 아마도 그녀는 숙소 아니면 둘러보기 위해서 속초로 향했을 것이다. 이 일은 군을 제대하고 2개월 후에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 군입대를 하고 혹독한 겨울에 6개월간 훈련을 마치고 백령도로 발령이 났고, 인천파견대에서(좁은 공간) 감옥같은 대기 기간이 있었다. 배편이 마땅치 않아서 대기 기간이 길어지니 모두들 스트레스가 심했다. 어느 날이던가 외출 허가증 획득을 위한 신임 하사관들과 병들간에 족구 시합을 했다. 물론 나는 대표로 뛰었다. 운동에 자신감도 있었고 정말 백령도로 들어가기 전에 보고 싶은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졌다. 그래서 병들은 점심 시간 전에 외출을 나갔고, 나는 머리를 쥐어 짜고 있었는데 오후에 나보고 나갔다 오란다. 사실 꼭 봐야 할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6시 이전에 귀대해야 한다. 기껏해야 2-3시간의 시간만 주어졌다. 일단 나가서 전화했다. 그리고 이대 앞 여왕봉 다방에서 그녀를 만났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아서 가까이 있는 너를 불렀다.'라고 말했다. 만나서 수다를 떨었을 것이다. 그녀가 바로 설악산에서 우연히 만난 그녀이다. 절대 이것은 단편 소설이 아니다. 그냥 기억을 되살렸을 뿐이다.

그리고 울고 넘는 박달재를 넘어서 대전으로 향했다. 내 친구 배기호를 만나기 위해서. 무려 12시간 이상을 버스를 갈아타고 대전에 도착해서 어쨌든 배기호를 만났다. 당시 핸드폰도 없었는데 만났다. 그렇게 1983년도 시작했다. 내 나이 26살 때 일이다.

[경희]

사진도 같이 있으니 영화같아요^^
영화처럼 돌아 볼 수 있는 정서를 글로 잘 표현하시니 더 멋져보이구요~~

[김규호]

어느 겨울 한가할 때 사진들을 스캔해 놓았더니 요긴하게 써먹네 아래 사진을 보니 [FUJI 82.5]라고 되어 있다. 섬의 봄은 언덕에 자라난 보리밭으로 운치 있었지.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푸른 빛이 마치 파도가 밀려오는 느낌을 주곤 했다. 수평선 너머에 희미하게 산의 모습이 보이네. 거기가 북쪽 땅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