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은 주일마다 '바이블25'와 '당당뉴스'에 연재 중입니다.
고마운 축제
가을엔 편지를 써야 한다느니, 사랑을 해야 한다느니 하지만 역시 가을은 축제의 계절이다. 지난 3년 동안 코로나19로 무료함에 지친 사람들이 지역마다 동네마다 열리는 축제 현장에 몰리고 있다. 얼마 전에 방문한 평창에서도 백일홍 축제니, 메밀꽃 축제니 매번 비슷한 장날 풍경의 축제가 규모를 키워 열리고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전국에서 2일 이상, 초대와 상관없이 구경할 수 있는 축제는 944개에 이른다고 한다. 대체로 축제는 문화, 관광, 예술이란 색동옷을 입고 있다.
토요일 오후에 잠깐 들른 ‘모아락 마을 축제’는 어떤 통계에도 들 리 없을 것이다. 이만한 소규모 축제, 공동체 잔치는 하루에도 수천 개씩 열릴 테니까 말이다. 이젠 축제의 계절화, 잔치의 일상화를 넘어섰다. 모아락 축제에 참석한 것은 육개장을 먹으러 오라는 초대 덕분이었다. 작은 마을잔치지만 바자회와 놀이마당을 겸했기에 부지런한 지방의원들은 일찌감치 다녀가고, 방명록에 이름만 가지런히 머물고 있었다.
정작 저녁에 열리는 공연문화마당에 내빈으로 소개받은 사람은 달랑 혼자였다. 축사를 극구 사양했음은 물론이다. 아이들이 절반인 잔치에서 모모한 조직의 회장이랍시고 꼰대 노릇은 볼 성 사나운 일이다. 축제는 안양과 군포를 구분 짓는 안양천의 구군포교 아래 천변(川邊)에서 열렸다. 맞은편 안양은 재개발로 고층 아파트가 병풍처럼 솟아 있는데, 다리 건너 군포는 마치 달동네처럼 한갓지고, 조붓하다. 모아락은 ‘모든 아이들과 주민이 어울리는 즐거움’이란 의미란다. 한무리교회를 중심으로 이웃 지역아동센터 네 곳과 형겊원숭이운동 등 아이들 돌봄 기관들의 잔치였다.
한무리교회를 처음 가본 계기는 역시 십자가 덕분이었다. 2013년 <십자가 순례>를 편집하면서 이미 알고 있는 작가를 소개하고, 아직 모르는 작가를 발굴하는 중이었는데, 국내외를 막론하고 40명을 목표로 한 것이 마지막 두엇을 남겨두고 밑천이 달렸다. 그때 듣자마자 그날로 찾아가 만난 것이 ‘12자 십자가’이다.
“주 님 인 간 답 게 살 고 싶 읍 니 다”
교회는 1986년 민중교회로 출발하였다. 네 명의 목회자가 대를 이으면서도 처음 취지는 변함이 없다. 지금까지 해를 걸러 가며 빈번히 겪는 안양천 물난리 속에서 제 자리를 지켜왔다. 이젠 가난한 사람들도 다 떠나고, 이주민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왔다고 한다. ‘12자 십자가’는 당시 용접노동자의 솜씨로 추정된다. 한무리에 여전히 남은 사람들은 십자가의 존재조차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80년대 중반, 그 옛날에 문을 연 도시 변두리 민중교회들과 농촌 지역 교회들은 예외없이 탁아소 성격의 선교원을 운영하였고, 공부방과 도서관을 열었다. 1985년에 시작한 김포 문수산성교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금 정부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어린이집, 지역아동센터, 마을도서관의 모체인 셈이다. 한무리를 비롯한 아이들 돌봄 기관들은 처음 정신을 지켜온 듯 보인다. 종종 집회 현장에서 만난 낯익은 주인공들이 운영하는 모습이나, 이주민 자녀들을 포용하고 대접하는 따듯한 품을 보더라도 그렇다.
마음이 분주한 토요일 오후였지만, 해 질 무렵 마을잔치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킨 이유다. 바자회에서도 너그럽게 지갑을 열었다. 잔치 마지막 출연진은 올키즈스트라관악단이었는데 아이들은 어둠이 깃들자 악보를 볼 수 없을까 안달하였다. 아이들의 호들갑을 지켜보던 다른 문화권에서 온 엄마들은 얼마나 흐믓했을까, 싶다. 아직 붉은 기운이 부족한 충주 사과와 공주 햇밤으로 행운을 유혹하던 저물 무렵의 기억은 두고두고 남을 듯하다.
간밤에 숙제 치루듯 마치고 온 휴가 역시 축제와 함께 해서 좋았다. 전주 세계소리축제였는데, 무려 네 가지 공연에 흠뻑 빠져 지냈다. 세 시간 이상 동헌(東軒) 마루바닥에서 양반다리의 고통을 겪었지만 언제 또 들을 수 있으랴 싶어, 국창들의 판소리에 욕심을 낸 덕분이다. ‘수궁가’에 웃었고, ‘춘향가’에 들떴다. 평생 배움길에서 제자들과 이어달리기를 하는 나라 명창들의 기품은 가까이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게다가 전주천 곁 국립무형유산원을 찾아가 인간문화재들의 흔적을 찾은 것은 더 없는 호사였다.
사람 있고 축제가 있을 것이다. 기꺼이 즐거움을 나누려는 사람들이 있어서 세상은 더욱 인간다움을 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