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치 가문과 피렌체 / 석계 윤행원
꽃의 도시 피렌체는 르네상스 시대를 가장 먼저 꽃피우고 발전시켰던 도시다. 예술과 학문의 도시 피렌체의 찬란한 역사는 세계역사와 문화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거리를 걷다 보면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물이 잘 보존되어 도시 전체가 정교한 예술품으로 꽉 찬 느낌이다. 웅장한 건물과 천재들이 지어 놓은 도시 곳곳의 신비와 황홀은 마치 박물관에 온 것 같은 기분이다. 거리곳곳에 있는 모든 것이 신기하다. 이 도시는 메디치 가문이 이루어 놓은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오래전부터 메디치 가문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관계된 글도 많이 읽었다. 메디치가를 알면 알수록 세상을 사는 이치를 배우게 되는 흥미로운 가문(家門)이기도 하다. 이번 이탈리아 여행에서 피렌체에 갔을 때 속으로 크게 흥분했고 스스로 도취(陶醉)했다. 찬란한 역사 현장에서의 공간과 시간의 짜릿한 즐거움은 나를 무척 행복하게 했다.
한적한 시골마을 무겔로(mugello) 지방의 조그만 농장주였던 메디치 가문은 피렌체에서 은행업을 하면서 크게 성장한다. 그 후 모직물에서 많은 돈을 번다. 가문을 일으킨 조반니 데 메디치, 그의 아들 코스모 데 메디치는 은행가로서 정치가로서 변화가 극심했던 당시의 이탈리아 정치상황에서 탁월한 수완을 발휘한다. 메디치 가문을 크게 일으킨 그의 손자 로렌초 데 메디치는 문화, 예술, 학문을 적극적으로 후원하여 르네상스가 발흥(勃興)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그는 세상을 보는 눈이 밝았고 사람의 마음을 읽는 지혜가 있었고 탁월한 통찰력으로 가문을 융성 발전시키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수많은 예술가와 인문학자와 과학자를 후원했다. 암흑의 중세시대를 접고 찬란한 르네상스 시대를 활짝 여는데 앞장을 선 예술과 문화에 대한 정성과 열정이 대단했다.
메디치 가문은 1397~1743년 346년간 유럽최고의 귀족 가문이었다. 두 명의 교황과 프랑스 왕비 두 명을 배출한 명문가다. 그리고 미켈란젤로, 마키아벨리, 갈릴레오 갈릴레이,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보토첼리, 티치아노, 브루넬레스키, 도나텔로 ...등등 수많은 천재들을 정성껏 후원하고 배출했다. 이들의 탁월한 재능은 이탈리아 뿐만 아니라 인류문명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겼다
영광과 온갖 좌절을 겪은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생존자인 안나 마리아 데 메디치는 몰락한 가문의 재산을 현명하게 정리했다. 가문이 수 백 년 동안 모아온 소장 예술품과 수집품 모두를 국가에 헌납하고는 “단 한 점도 피렌체 밖으로 옮기지 말 것” 이란 유언을 남기고 가문(家門)을 닫는다. 그러나 메디치 가문은 영원히 살아 숨 쉬고 있다. 가문의 혈통은 끓어졌지만 메디치 가문의 영광은 지금도 살아 있다.
그 덕으로 피렌체는 아름다운 조각과 예술품들로 가득해지고 전 세계 사람들의 관광 발길을 유인한다. 메디치 가문이 남긴 막대한 문화유산은 피렌체의 관광산업을 엄청 발전시켰고 오늘날의 피렌체 시(市)는 많은 관광수입으로 건전한 재정을 유지하고 있다.
메디치 가문의 문화예술에 대한 후원규모는 지금 돈으로 약 일조원에 육박할 정도였다고 한다. 돈은 시대를 변화시키는 계기를 만들었고 중요한 자극제였다. 메디치 가문의 돈이 르네상스라는 근대정신을 시작할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하고 사람의 마음에 창조와 희망 그리고 열정의 바람을 일으켰다.
가문을 유지하는 동안 메디치가 는 숱한 곡절을 겪으면서 여러 위기를 만나지만 불사조(不死鳥)처럼 살아났다. 문화, 예술 그리고 종교와 여러 분야에 걸쳐 넓게 자리 잡은 그들의 영향력을 반대파들도 무시할 수 없었다.
메디치가는 인간의 행복과 번영을 소중히 여기고 예술을 사랑하고 깊고 넓은 학문을 추구했다. 한 번 맺은 신의(信義)는 손해를 무릅쓰기라도 지켰고 사람의 내면을 풍성하게 하면서 미래를 위하여 참을 줄을 알았고 겸손을 미덕(美德)으로 삼았다. 언제나 검소하고 소탈하게 살려고 노력한 끝에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오죽하면 우리나라 박근혜 대통령이 재벌들에게 “메디치 가문처럼 문화예술 후원자가 돼 달라”는 부탁까지 했을까. 우리도 이제 어느 정도 경제적인 여유도 생겼으니 문화와 예술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예산을 배정하고 진흥(振興)시켜야 한다. 우리나라 유수한 재벌들도 예술과 학문 분야에 아낌없이 돈을 쓰고 후원을 해서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고 문화선진국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이번 이탈리아 여행은 체력(體力)과의 싸움이었다. 함께 한 노장 문학인(老.壯 文學人)들은 많이도 걸었다. 밀라노에서 출발하여 베로나, 베니스, 산 지미나노, 피렌체, 몬테카티니, 오르비에토, 아씨시, 로마, 바티칸, 티볼리, 폼페이, 소렌토, 나폴리, 피사를 거쳤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밤 10시까지 하루일정이 빡빡했다. 가는 곳마다 볼거리가 넘쳐났다. 어느 날은 가득 찬 일정에 옵션(카프리)까지 겹쳐 그날은 밤 9시쯤에야 저녁을 먹게 된다. 비록 사서 고생을 했지만 일행들은 강인한 정신과 체력으로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그리고 로마에서 가진 한국수필가협회 해외문학심포지엄도 예상외로 알뜰하고 성대하게 마쳤다.
이다음 이탈리아를 또다시 갈 일이 생긴다면 나는 오직 피렌체 한 곳에서 며칠간 머물 것이다. 거리 곳곳을 살피면서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보물이 가득한 우치피 미술관에도 하루 종일 천천히 돌아다닐 것이다. 옛날 로마병사의 힘찬 말발굽 소리를 들으면서 어느 길모퉁이에서 우두커니 혼자 서 있기도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