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놀라워 하는 반응에 훈우는 손을 내렸다. 그리고선 자신 역시 그 탄성을 내지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피카츄. 그것은 피카츄였다. 평소에 좋아 마지 않았던 그 피카츄. 포켓몬스터에 주인공 급 되는 포켓몬. 전체적으로 노란 털에 등엔 갈색 갈기털이 있고...... 그래... 기술로썬 10만 볼트에서 100만볼트까지 내질를 수 있는 전기포켓몬.
"어떻게?......"
훈우가 놀랍다는 듯 다가섰다.
그러자 피카츄는 날카롭게 털을 세우며 노려봤고, 그 모습에 아이들은 조금은 주춤했다.
"나와봐."
답답하단 듯 청민이 앞을 나섰다. 아니 그보단 앞에 모습을 드러선 환상을 놓칠 수 없다는 절박함 같았다.
"잠깐! 청민아 뭔가 이상하지 않아?!"
"시끄러!"
그렇게 훈우를 뿌리친 청민은 피카츄를 향해 돌진했다. 하지만 고 조그만 것이 어찌나 재빠른지 청민이 미쳐 다가가기도 전에 잽싸게 다른 곳으로 달아나 버렸다.
이상한 낌세를 눈치챈 훈우가 청민을 말렸으나 소용없는 모양이다. 청민은 이미 다가온 환상에 듬뿍 빠져버린 듯 했으니.... 훈우는 당황하면서 주변의 아이들을 둘러 보았다. 하지만 조용하다 생각했던 주변 역시 어느 세 엉망이 되어 있었다. 피카츄 뿐만 아니라 이곳 저곳에서 포켓몬들이 나타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꼬부기, 아보크, 야도란, 피존투, 이상해 씨, 류주라... 등등... 아이들은 자신들의 눈앞에 나타난 다른 포켓몬들에게 황홀해 하며 그것들을 잡으려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어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왕이면 훈우도 한 마리나 잡아 볼까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던 순간.
[쿵!]
"이게 무슨 소리지?"
아직 냉정함을 잃지 않은 훈우가 제일 먼저 소리를 들었다.
[쿵쿵...]
땅을 울리는 소리는 점점 그 움직임이 빠르고 커져만 왔다.
"이건.. 설마?...."
설마가 사람 잡는 다는 말은 괜히 생긴 것이 아니었다.
훈우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프리즘 파이터에 나오는 괴물의
왕.
루시퍼였다.
게다가 그 뿐 만이 아니었다. 속속들이 나타난 것은 프리즘 파이터에 등장하는 강력한 괴물들과 갸라도스나 에레브 같은 험악하고 강력한 몬스터 들이었다.
그들이 한번 움직일 때 마다 하천물은 심하게 요동쳤고 가을의 꽃잎들은 제 목숨보다 일찍 사그라 들었다.
"이건.. 말도 안돼.."
저물어 가는 태양을 완전히 가려버리는 그 등치에 훈우는 바지에 오줌을 지릴 수 밖에 없었다.
"세상에? 저건 루시퍼잖아?"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는 훈우의 등뒤로 어느 세 다가온 한 아이가 외쳤다.
"세상에!. 이 못된 악당아! 내가 너를 정의를 대신해 징벌 하겠다. "
이렇게 진부한 말을 내 뱉은 아이는 루시퍼를 향해 프리즘 파이터 기술을 쓰기 시작했다.
"프리즘 빔! 프리즘 킥!"
놀라울 정도의 실력이었다. 여느 때의 그 아이라면 상상도 못해 봤을 그런 기술들이 능히 그 몸에서 쏟아져 나왔다.
"말도 안돼.... 뭔가가 잘못 되어가고 있어..."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이 황당한 일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워 하는 가운데, 그 와중에서도 많은 아이들이 루시퍼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평소에는 뜀틀도 제대로 넘지 못하던 아이조차 놀라울 정도의 운동신경을 보이면서 싸워 나가고 있었다. 마치 평소에 그들이 꿈꿔왔던 자신의 강한 모습을 표현해 내는 것처럼 말이다.
솔직히 그건 인간으로써는 상상을 초월한 움직임이었다. 프리즘 파이터. 그런 만화에서나 나올 듯한 움직임들. 하지만 그것들은 실상 훈우의 눈앞에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주인공이 강하면 그에 비례하여 적 역시 강해지는 법. 루시퍼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솔직히 지금까지 공격을 거의 하지 않과 있던 루시퍼가 그 거대한 팔을 한번 휘둘렀다 .그러자 칼날이 수도 없이 붙어 있는 루시퍼의 팔에 치여 한아이가 산산조각 났다. 처음에 루시퍼에게 덤벼들던 바로 그 아이였다.
"으아아아악!"
훈우는 이제 다리 뿐만 아니라 이까지 따각따각 캐스터네츠마냥 소리 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 반해 다른 아이들은 그러한 장면에도 전연 상관 없다는 듯 계속 덤벼대고 있었다.
"비켜!"
앙칼진 목소리가 훈우의 뒤편에서 들려왔다. 훈우는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그것이 누구의 목소리 인지........
"피카츄!! 100만볼트!"
어떻게 잡았는지는 모르지만 아까 보인 피카츄를 당당히 길들여 놓은 청민이었다. 피카츄의 기술 중에 가장 강하다는 100만 볼트.... 그것이 작렬하자 만화에서 보았던 것보다 그 위력을 확실하게 실감할 수 있었다. 어느 세 쏙 들어가 버린 태양 못지 않은 빛이 하늘을 갈랐다. 그 어떤 천둥보다 우렁차고 거대했을 것이다.
"으으으으......"
루시퍼는 괴이한 울음을 지으면서 괴로워했다. 100만 볼트의 위력이란 것이 그렇게 만만치는 않을 테니깐 말이다. 하지만 그 전기 충격에 희생된 것은 루시퍼만이 아니었다. 빛을 향한 날파리 같던 아이들 역시 몇몇인가 희생이 되 시꺼먼 숯덩어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만화라면 분명 제대로 다치지도 않고선 일어났겠지만 현실에선 100만 볼트를 받고선 살아날 인간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으아아악!"
훈우는 비명을 금치 못했다. 무엇보다 루시퍼의 날뜀에 타버린 아이들의 시신이 형체도 없이 사라짐에 경악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는 훈우의 귀 너머로 강렬한 마찰음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방금 전 전기를 뿜었던 피카츄가 제 2차 공격을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청민아?!! 안돼!!!!!"
훈우는 급히 청민을 말리려 했으나 사람이 전기보다 빠를 리는 없었다. 청민은 제 2차 공격을 보냈고 저마다 각자만의 개성을 드러내며 싸우던 아이들이 또다시 희생되고야 말았다. 한낮 종이뭉치처럼 타버리는데 그 냄세가 훈우의 코 깊숙이까지 스며들었다. 평생을 숨쉬며 정화한다 해도 결코 지워지지 못할만큼 강력한 냄세였다.
"이럴 순 없어... 이래선 안돼! 안됀다고! 분명 만화같은 세상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지만 이런 걸 바란 것은 아니었어!"
하지만 이미 전쟁터가 되어버린 곳에서 그런 훈우의 혼잣말을 관심있게 들어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윽고 그러한 상황은 계속 되었고 어디서 구했는지 아이들은 더 많은 포켓몬과 기술을 구사하며 루시퍼와 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군이 늘어난 만큼 적군또한 늘어났고 이 기괴한 현상들의 색체는 더욱 짙어져만 갔다.
이제 죽는 것은 다반사였고 죽이는 것도 다반사였다. 하지만 특이한 것이라 하면 절대 아이들이 죽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니 어떻게 말을 해야할까 분명히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차려 둘러보면 그들은 어디선가 또다시 나타나 싸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훈우만이 제정신인 모양이었다.
"좋았어! 프리즘 익스플로션!!"
청민이 드디어 동경해 마지 않았던 기술을 쓰려고 마음 먹은 순간이었다. 뛰어오른 청민을 향해 라플레시아의 졸음 공격이 쏟아졌고 그 덕분에 청민은 잠에 빠져 떨어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루시퍼의 거대한 손 공격. 정통으로 맞았다간 분명히 죽을 그런 펀치였다.
청민의 몸에 더럽고 큰 손이 닿기 바로 직전. 훈우가 청민의 사이로 뛰어들었다. 그리고선 청민을 바닥에 떨어 뜨리고 대신 자신이 공격을 막았다.
"훈우?!!"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청민은 무척이나 당황한 모양이다. 더군다나 그 상대가 훈우였던 지라 그 충격은 더했다.
"괜찮아?"
청민은 위험천만하게도 아무런 경계도 하지 않은체 훈우에게 뛰어갔다. 언제나 자신의 편이 되어주고 어른스럽게 자신을 이끌어 주던 훈우가 쓰러짐에 정신이 확깨이는 기분이었다.
청민이 훈우를 쥐었을 때 훈우는 이미 숨이 끊어져가고 있었다. 그것은 언젠가 학교 앞에서 팔던 병아리가 마지막 숨소리와 비슷했다.
"말도 안돼! 훈우야! 정신차려봐!"
그러나 무언가 말을 놀릴려고 애를 쓰던 훈우는 차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체 쓰러지고 말았고 .........................
멍하니 있었던 죄로 청민은 루시퍼의 갈고리손에 찢겨나가야만 했다.
갈기갈기 떨어지는 것이 붉은 장미꽃잎 같았다. 그렇게 잘려나간 청민의 뒤로 여지껏 맹렬히 싸우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것은 이미 아름다운 꿈의 만화가 아니었다. 단순히 정의라는 것을 지향하는 살인 잔치.
정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망각한 저주스러운 환상이었다.
"으아아악!"
떨어져 부딪힌 엉덩이가 무척이나 아팠다. 오늘 청민은 악몽을 꿨던 모양이다.
"꿈?.... 꿈?!"
악몽에서 벗어난 것이 그리도 기쁜지 연신 자신의 손을 둘러보며 스스로의 몸을 더듬어보았다.
"꿈이었구나!!!!! 하하하하! 그럼 그렇지! 이제 다신 만화주인공이 되고싶다 하지 않을거야!"
"청민아? 일어났니? 어서 준비해라. 학교 가야지.!"
"네 엄마!"
'그래.. 모든 것이 그대로야... 난 오늘도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학교 준비를 하고선 학교에갔다가 친구들과 놀고.... 그리고 만화가 할 시간이 되면 동네 전파상에 가서 쪼그리고 앉아 즐겁게 환상을 꿈꾸는거지... 그래!.... 변했던건 아무것도 없는거야!"
허겁지겁 옷을 갈아입었다. 실은 다름이 아니라 훈우가 무척 걱정 되었기 때문이다. 어찌 된일인지 꿈에서 훈우만은 되살아나지 않았었다. 다른 모든 아이들이 어디선가 슬그머니 나온다 해도 자신과 훈우만은 끝까지 재 등장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찝찝한 기분을 감추지 못했던 것이다.
'어서 훈우에게 가봐야지...'
"엄마!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프리즘 파이터가 똑똑히 그려진 가방을 매고선 청민은 집문을 열었다.
그냥가기엔 쫌 뭐해서 부엌쪽을 바라보니 양복을 입고 있는 아빠와 엄마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노란색 앞치마를 두르고선 요리를 하고 있는 엄마의 뒷모습이 평소와 똑같아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그래~ 잘다녀오너라~"
"청민아 잘 갔다 오거라~"
청민의 엄마와 아빠가 버릇이 되어버린 말을 외쳤다.
"네~ 엄마아빠 갔다 오겠습니다~"
평범한 가정의 아침인사가 끝나고 그렇게 청민이 나간 집의 문이 닫혔다.
아파트 계단을 뛰어내려가는 소리가 점차 멀어지고............
"정말 씩씩한 아이죠?"
"누가 아니래?"
흐뭇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청민 엄마의 목소리와 아버지의 목소리가 집안을 울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모습은 집안에서 보이지를 않는다.
다만...........................
노란 앞치마를 두른 *메타몽과 양복을 입은 루시퍼만이 집안에서 웃어대고 있을 뿐이다.
환상은 어디까지나 환상이기에 아름 다운 것이다.
환상이 현실이 된다면 그건 더 이상 아름답지 않을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인간은 현실에 맞게 진화해 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