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_ 아가서가 말해주는 사랑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 모두에게 “사랑하는 자가 어디 있는지” 묻고 다니던 술람미는 결국 다시 사랑하는 이를 만난다. 솔로몬은 자신에 대하여 무관심했던 여인을 다시 만났지만, 그녀의 어떤 허물도 책망하지 않았고 오직 다시 만난 것만을 기뻐했다. 이들의 재회는 잃어버렸던 사랑의 노래를 다시 찾게 해 주었다. 아가서의 마지막 장인 8장 5절에 나오는 “그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고?”라는 말은 예루살렘 여자들이 술람미 여인과 솔로몬이 함께 오는 것을 보고 하는 말이다. 여기 “의지하고”라는 말은 다른 번역에서 “팔을 끼고(arm in arm. GNB)”라고 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과 결혼하기 위하여 그녀의 집이 있는 거친 들로 가서 그녀와 팔을 끼고 다정하게 예루살렘으로 오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드디어 그들의 사랑이 결실을 보아 아름답고 신성한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얼굴이 검고 보잘것없는 평범한 한 시골 여자인 술람미 여인이 왕의 사랑과 은총을 받아 왕비가 되고, 높은 신분의 왕족이 되어 왕궁으로 가게 된 이 이야기는 얼마나 놀라운 러브 스토리인가! 이 스토리는 바로 우리 자신들의 이야기이다. 이것은 주님을 영접하고, 그분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후사가 되어 놀라운 하늘의 상급을 받고, 하늘의 왕족이 되는 우리의 이야기인 것이다.
1) 인 같이 품고 도장 같이 새기는 사랑
아가서 8:6 – “너는 나를 인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 같이 잔혹하며, 불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아가서는 그들의 사랑을 “인”과 “도장”으로 비유했다. 인(seal)이란, 고대 시대에 사용되던 것으로, 여러 가지 중요한 문서들이나 자신의 소유에 봉인하는 일에 쓰이는 것이었다. 고대 사람들은 “인”을 도장 처럼 사용했는데 도장에는 주인의 이름이 새기어져 있었다. 인이 쳐지면 그것은 그 인을 친 사람의 소유라는 것이 인정되었고, 또 인을 친 사람의 권위가 인정되었다. 그들의 사랑은 “인 같이 마음에 품”어져야 하는 극진하고 간절한 것이었다. 인 같이 마음에 품으라는 영적인 의미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과 정신에 새겨져서 우리의 성품과 생각이 예수님처럼 되는 것을 뜻한다. 마음은 머리와 정신에 있으므로, 마음에 품는다는 것은 우리 마음과 정신에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과 계명이 기록되는 것을 의미한다. 요한 계시록 7장과 14장에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에 대해 기록되어 있는데, 요한은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144,000인이 섰는데 그 이마에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을 보았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반사하고 있었고, 이마에 하늘의 인을 가지고 있었으며, 거룩하신 분의 빛과 영광이 충만하였다. 이마에 인을 받기 위해서는, 이마에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기 위해서는 모든 죄악을 벗어 버리고 승리하며 모든 죄로부터 정결해지고 어린 양과 같은 성품을 가져야 한다.
도장은 새기는 것이다. 도장을 팔에 둔다는 의미는, 도장을 새기듯, 도장을 찍듯 마음과 팔에 나를 잊어버리지 말고 새기라는 뜻이다. 도장을 새기는 일에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것처럼 인을 받는 일에도 과정이 필요하다. 고대에 양초에 도장을 찍어 형상이나 문자를 새겨내려면 그 도장을 양초에 한동안 단단히 눌러 놓았던 것처럼,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에게 형성되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는 것에는 과정과 시간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하시며 그분의 형상이 드러날 때까지 우리를 누르시는 경험을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녀들을 도장같이 사랑으로 인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순복하고, 주님께서 꼴 지워 주시는 대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어떤 중국 선교사의 시에 “저를 도장처럼 영원히 당신의 마음에 품어주시고, 도장처럼 지울 수 없게 당신의 팔에 두소서. 제사장들이 그들의 가슴과 어깨에 이스라엘 백성을 품고 짊어졌듯이, 당신의 마음속에서 저를 항상 기억하시고 당신의 팔로 저를 부축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오늘 이후로 모든 것은 당신의 능력과 당신의 사랑에 달려 있습니다”라는 기도가 나온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인같이 도장 같이 품고 새기는 그분의 신부가 되어야 하리라.
2) 영원한 사랑
8:7 - “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하나님은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사랑한 것보다 더 뜨겁고 조건 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노라(렘 31:3)” 참된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기 때문에 온 재산을 주고도 그 사랑을 살 수 없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귀한 생명을 주셨다. 그래서 바울은 이 사랑을 기억하며 우리에게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시지 아니하시겠느냐(롬 8:32)”고 반문하는 것이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 생명까지도 주는 사랑인데,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이와 같은 사랑이다. 우리는 당신의 아들로 우리의 속죄 제물이 되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신비를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 구속의 비밀과 우리 구주의 사랑은 현세와 내세에 있어서 우리의 최고의 상상력을 동원해서 생각해야 할 주제가 될 것이다. 우리의 상상력을 다 동원할지라도 우주의 왕이셨던 분께서 이 땅에 오시기까지 몸을 낮추신 그 사랑을 전혀 설명할 수 없고 다만 그 윤곽만을 희미하게 볼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그저 그 사랑의 높이와 넓이와 깊이를 다 알 수 없어서 십자가 앞에서 눈물만을 흘릴 뿐이다. 이 사랑이야말로 이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파괴하거나 빼앗아 갈 수 없는 사랑이다. 죽음보다 강하고, 불같이 일어나고, 많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많은 물이라도 엄몰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사랑, 얼마나 놀라운 사랑인가!
3) 아가서의 해피엔딩
아가서는 해피엔딩(happy ending)으로 마친다. 아가서는 서로 사랑하게 되고, 서로 함께하고자 하는 열망으로부터 시작하여 마지막은 결혼을 위하여 함께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마친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이 땅에서도 그 사랑의 교제를 통하여 행복하게 살 수 있지만, 이 땅의 모든 수고를 마치고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본향에 가서 주님과 함께 살게 될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때가 정말 우리의 해피엔딩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집에 우리가 거할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말씀하셨다. 성경에는 구원받은 자들의 유업을 하늘 본향이라고 말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구원받은 그분의 백성을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생명나무는 달마다 과실을 맺고 나뭇잎은 만국을 섬기기 위하여 있다. 거기에는 수정같이 맑고 끊임없이 흐르는 시내가 있으며 시냇물 옆에는 흔들리는 나무들이 주님의 속량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길들 위에 그 그림자를 던질 것이다. 이 생명강 옆에 있는 평화로운 평지 위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나그네요 유리자였던 하나님의 백성은 영원한 쉼을 발견할 것이다. 그곳은 지상의 나그네들이 거할 본향이다. 우리를 괴롭히고 이해할 수 없게 만들었던 모든 것들의 신비가 그곳에서는 명백히 드러날 것이다. 은혜의 오묘한 섭리가 우리 앞에 공개될 때에, 우리의 유한한 지력으로 혼란과 깨어진 약속밖에 보지 못하였던 것에서 가장 완전하고 아름다운 조화를 보게 될 것이다. 아가서에서 사랑하는 연인이 마침내 팔짱을 끼고 왕궁으로 가듯이, 우리는 머지않아 주님과 함께 하늘 도성으로 갈 것이다. 우리는 귀향 중에 있다. 하나님의 도성에는 슬픔의 통곡도, 깨어진 희망과 사라진 소망에 의한 비탄과 한숨의 소리도 다시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찬송과 감사의 찬양은 우주에 영원히 메아리칠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전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