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만 바라볼찌라
옛 어른들을 생각해 보면 배워야 할 것이 참 많다. 예전 우리나라가
얼마나 힘든 시절을 보냈는가? 보릿고개를 넘어갈 때면 하루 한 끼
먹을 것도 없어 전전긍긍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그 어른들이 좋아
하며 자주 불렀던 찬양이 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찬송가 370장). 당시 어른들의 어려웠던 현실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가사다. 온통 근심 속에서 뒹굴던 어른들인데 ‘딴 근심 있으랴’
라니. 어떻게 그런 담대한 찬양을 부를 수 있었을까? 나는 이 찬양의
2절에서 그 힌트를 찾았다.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되었고”
어른들은 그 두려움의 웅덩이에 갇혀 있지 않고 그 두려움을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도구로 사용했다. 그러자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가?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 되었네” 이 분들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눈을 들어 보호자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께 나아가 기도로
탄원했을 때 보호자 되시는 하나님이 그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은혜를 경험했다. 그러자 기쁨의 노래가 나온 것이다. 사실 우리는
옛날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상고 있지만 훨씬 약해졌다. 두려움이
변하여 더 큰 두려움이 되고 전날의 한숨이 변하여 더 큰 한숨이 되는
것이 우리의 삶 아닌가? 주님의 이 음성이 우리 모두에게 들리길 바
란다. “내가 너를 보호해 주겠다. 그러니 너는 걱정 말고 담대히 나
아가라.”
‘오늘을 견뎌라’ / 이찬수 목사(분당우리교회)
우리는 우리 삶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인 것을
믿습니다. 악한 아비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신 말씀처럼 좋으신 하나님은 좋은 일이나 어려운 일이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눈으로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우리에게 귀를 기울이시며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주님만 바라보면서 내가 할 수 없다고
포기하는 순간 하나님이 일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