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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이
박종철씨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을 발표 하겠다는 소문과 함께
정국은 또다시 반정부 시위대로 폭발 일보 직전의 상황에 있었지만
정부는 언론과 그리고 민심을 묶을 수 있는 한계 까지 묶어 두고 방관 하고 있었다.
민간 혁명은 꾸준히 진행 되었지만 펜과 민심은 그들을 이끌 아무런 힘도 없었다.
언론은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서 남한으로 왔다는 김만철씨 가족의 이야기로
수십일 동안을 T.V 화면과 신문의 1면을 활여하였지만 시위대의 크고 작은 사건은
그렇게 크게 다루지 않았다. 심지어 최초로 에이즈 환자가 죽었다는
그렇게 비중이 크지 않는 사건조차 식약청과 보건당국의 인터뷰로 언론 매체를 이용해
국민의 시각을 교묘히 돌린곤 했다. 이렇듯 조직폭력 까지 동원 하여 야당을 탄압 하면서
또 그 야당을 경호 회사가 보호 한다는 것 자체가 이 정부의 모순이며 흑자로
돌아선 경제와는 전혀 대조적인 대한민국의 현실 이였다.
용팔이 사건을 계기로 어쩌면 경호 회사를 ‘빨리 만들어야 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전화를 목포에 있는 쌍식이 형님에게 해 봤다.
항상 그렇듯 그는 그 자리에 있었다.
"형님, 저 우상이 입니다. "
"전화 한번 올 줄 알았다. 뭔일 이여?"
"그냥 뵙고 싶어서요. 상의 드릴 것도 있고…"
"그라믄 또 내려와… 늙은 놈 오라니 가라니 허지 말고…"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랬다 복잡한 서울 보다는 내려가서 자세히 이야기해야 하는지 몰랐다.
어차피 그림에 관한 이야기와 그리고 경호 회사를 차리면 모든 걸 그에게 맡겨야하기 때문 이였다.
"형님…낼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특별히 부탁 하실 것 없으세요?"
"그라믄 올 때 롤라 스케이트 하나 사가꼬 와라.
거 왜 신발 밑창에 바꾸가 4개씩 붙어 있는 신발 있잖여. 싸이즈는 250 으로…
막둥이가 그거 사달라고 며칠 전부터 울어 싼께….
목포는 아직 그런 신발은 보급이 안되는 갑드만… 것도 성가시믄 말고…."
"예. 하나 사가지고 가죠."
"그라고 올라믄… 늦게 온나. 낮에 와 봤자 같이 놀아 줄라믄 내가 성가셔서 허는 소리여.
오믄 바로 입가심 하러 가브러야제 니 델고 시간 보낼랑께 것도 할짓 아니드라이…"
"예. 형님 술 시간에 맞추어서 가겠습니다."
"그래 주믄 내가 고맙고… 그래 낼 봐."
쌍식이 형님은 뭘 부탁을 해도 항상 당당 했다.
그 나이에 막내의 롤러스케이트를 챙겨 주는 세심함은 나를 위해 배려 할 때와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는 평소 그의 성격 탓이기도 했다.
롤러스케이트야 한 중사 에게 부탁 하면 될 일 이였고
오늘은 일본에서 돌아온 피로감에 일찍 집에 들어가 쉬어야 했다.
수지와 함께 생활 하면서 처음으로 외박을 해야 하는 장황한 설명이 필요한지도 몰랐다.
어쨌든 오늘은 일찍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지만
여전히 머리는 혼란스러웠고 마음만 바빴다.
나는 한 중사 에게 현금으로 300만원을
목포 내려 갈 때 가져 갈수 있게 준비 하게 해 두고 집으로 향했다.
지방으로 출장을 간다는 말에 수지는 이것저것을 잘 챙겨 주었다.
평소에 지방을 다닐 때와 다르게 속옷이며, 양말 그리고 갈아입을 수 있는
간단한 티셔츠 까지 3일 동안의 작은 소품을 챙겨 주었다.
집을 나설 때 '홍어 좋아해?' 하는 물음에 코와 입을 막고 손을 흔드는 흉내를 내는 걸로
그녀는 '사오지 마세요!' 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예전과 다르게 아파트 통로까지 따라 나와 볼에 입맞춤 하는걸 잊지 않았다.
일본을 다녀온 이후의 새로워진 수지의 습관 이였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어색할 뿐이었다.
이제 사무실에 들려 한중사가 준비한 롤러스케이트와 몽유도원도의 정리된 보고서를
한부 챙겨 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쌍식이 형님이 말했던 적당한 시간에 도착 해야만 '바로 입가심 하러 가브러야제' 하는
타이밍에 맞출 수가 있었다.
한중사의 일에는 실수가 없었다. 사무실에 도착 하자
가벼운 목인사와 그리고 커피 한잔을 방으로 가져 왔고
목포에 가져갈 롤러스케이트를 잘 포장해 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간단한 조언을 잊지 않았다.
"사장님. 우리 요원들은 기차를 탈 때 돈을 내지 않습니다.
서울역 가시면 100호실에 가셔서 표를 한 장 달라고 하면 언제든지 표를 줍니다. 참고 하십시오."
"난 그렇게 까진 하기 싫은데… "
"편할 데로 하십시오. 다만 기차표가 없다거나 또는 예매를 하지 못해 기차를 타지 못할 경우는
이용 하시면 됩니다. 아니면 저한테 전화를 주셔도 됩니다."
"편리 하긴 하네.… 근데… 서울역에도 100호실이 있나?"
"예 있습니다. 서울, 인천, 부산의 여객 터미널과 역사 에는 있습니다.
100 호실 직원들은 대공 간첩 사건을 담당하기 때문에
사람이 많은 곳의 동향은 항상 파악해야 합니다. 그래서 설치되어 있습니다."
"목포 같은 작은 도시에도 그런 게 있나?"
"없습니다. 급하시면 역 주변에 반드시 헌병대가 있습니다. 그곳으로 가시면 됩니다."
공무원 수준의, 국가에서 운영 하는 모든 기관의 상부 기관이 안기부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실감 하는 한중사의 조언 이였다.
그러나 나는 그런 걸로 권력의 힘을 테스트 해보고 싶지는 않았고 시도 해 보지도 않았다.
다만 급할 때 이용 할 수 있다는 정도의 상식으로 알고 있을 뿐 이였다.
"그리고 한 중사… 경호 회사 때문에 그러는데…
지금 이 팀장은 어디 까지 일을 진행 시키고 있는 거지?"
"이미 법인체는 나와 있습니다. 사무실도 임대 계약이 끝나있고
20명이 상시 묵을 수 있는 숙소만 아직 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건 사장님께서 인원이 확보 되면 그때 정해야 한다고 하셔서…"
"회사 이름은?"
"'충무 경호 서비스 주식회사'입니다.
약칭으로 충무팀 으로 부르시면 되고 충무는 아시는 것처럼
나라를 지키는 충무공 이순신에서 따온 이름 입니다."
"누가 지은 이름인데?"
"이건 상부에서 지시가 내려온 이름이라 저희가 정한 건 아닙니다.
이외 에도 세종 팀과 호국 팀이 있지만 그런 것 까지는 제가 알 수가 없습니다."
"이 팀은 선거가 끝나면 자동 해체 되는 건가?"
"그렇지 않습니다. 법인체가 유지 되고 사회의 질서를 위해 상시 가동 합니다.
특별히 자체 적으로 경호의 대상이 생길 경우는 어떤 상대든 경호 업무를 담당 하고
그건 법인체 에서 자체 회계 처리를 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국가든 아니면 사회 유명 인사든 누구를 상대로
정상적인 영업을 해도 무방하다는 이야기 인가?"
"그렇습니다. 그러나 국가가 지정한 업무에 대해서는 우선순위를 부여해야 하는 조항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불행한 사태가 발생해도 그건 국가가 책임을 지지 않는
완벽한 사기 업(私企業)이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국가에서 누구를 경호해야 하는 경우도
일정한 틀 속에서 계약을 하고 책임을 져야 합니다.
다만 사적인 영업에 의한 업무는 국가에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완전 사기업이 되는 겁니다."
"잘하면… 앞으로 상당히 괜찮은 유망 업종이 될 수도 있겠는데?"
"그건 알 수 없지만, 사실 경호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리고 아마 저희 충무팀 이 최초의 민간 경호 서비스를 제공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언제 까지 인원을 뽑아 두면 되지?"
"이 팀장님 말씀으로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하셨습니다.
대통령 선거 있기 6개월 전에 팀이 완성 되어야 하니까 그렇게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좀 급한데…알았어요... 그 일로 목포에 내려가니까… "
"잘 다녀오시고, 가끔 연락 주십시오."
그녀는 나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완전 자동화된 사무 기구와 같았다.
어떤 형태로든 기록하고 내가 가야할 길을 쉽게 정리 해 주는 가이드 같은 존재 였다.
요원을 뽑는 지침서를 한 장 챙겨 주었지만 나는 그걸 그 자리에서 펼쳐 보이지 않고
그냥 품속에 갈무리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목포로 가기 위해 서울역으로 향했다.
여전히 서울역 광장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고 안경을 두껍게 쓴 대학생들의 가방 검사는
이곳 에서도 어쩔 수 없는 모양 이였다.
초봄의 아직 얇지 않는 차림의 대학생들의 소지품 검사와 신분증 검사는
이 시대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 되어 버렸다.
사람들은 그런 모습에 분개 하거나 검사 하는 경관들을 탓하지도 않았다.
이제 서서히 그런 생활에 동화 되어 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런 시대의 종말이 빨리 오기를 기대 하는 많은 민주화 투쟁의 재야인사들 에게
희망을 걸고는 있지만 여전히 이은상의 '고지가 바로 저긴데' 하는 독려만 있을 뿐
한 치 앞도 전진 하지 못하고 정체 되어 있기는 마찬가지 였다.
표가 없거나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하는 그런 시기는 아니 여서
표를 사자마자 바로 기차에 오를 수 있었다.
좌석에 앉아서도 옆자리에 아무도 앉지 않는 행운 까지 얻었다.
나는 품에서 한 중사가 준 요원을 뽑을 때 참고 하라는 지침서를 빼서 읽어 보았다.
내용은 생각 보다 간단했다. 그러나 다소 까다로운 부분도 없지는 않았다.
이런 것은 쌍식이 형님이 알아서 할 일이다. 내가 그들을 뽑을 수는 없으니까.
나는 그 지침서를 다시 품에 넣고 덜컹 거리는 소음과 함께 깊지 않은 수면을 재촉 하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목포에 도착 한건 6시가 조금 넘는 시간 이였다.
쌍식이 형님이 좋아 하는 '입가심하기 좋은 시간' 이였다.
역에서 멀지 않는 쌍식이 형님 가게로 곧장 발걸음을 재촉했다.
역시 그대로 였다.
손님 없는 가게에 쌍식이 형님은 여전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형님 저 왔습니다."
일어서지도 않고 앉아서 웃음으로 날 반겨 주었다.
"아따…시간 지데로 맞찼다. 롤라 스케이트 사 왔냐?"
"예. 형님… 형님 부탁인데요.…"
"그것이 있으믄 오늘 저녁은 늦게 들어가도 그렇게 많이 딱끼지는 안하겄다.
아따 막내 땜시 즈 에미하고 나하고 뽂여서 못살것다.
니가 전화 안와도 딴놈 한티 부탁 할라 그랬는디 니가 온다 그란께 부탁 한것이여.
여그다 놔두고 가블자이."
나는 한중사가 잘 포장해준 그 선물을 형님께 드렸다.
"오늘은 뭣을 먹어브까? 또 빤스 불러가꼬 사시미나 한사라 하끄나? "
"그리고 나서 또 맥주 한상자 쪼개시게요?"
"그거사 술 묵어 봄서 생각해 볼 일이고…"
"오늘은 할 이야기가 많은데… "
"우상아이… 내가 언젠가 이야기 안 하데?
술 쳐 먹음서 하는 소리는 잘못 하믄 그것이 공수표 되븐 수가 있응께…
오늘은 첫날이고 걍 술이나 한잔 허자…
니가 일이 급해서 낼이나 간다 그라믄 걍 어디 요리집 가가꼬 밥이나 묵음서 이야기 허믄 되고…
어짤래? 니 편한데로 해브러라"
"형님 그러면 그냥 빤스 형님 부르세요. 술이나 한자 하죠 뭐"
맘은 급했지만 내 기분대로 해서는 안 되겠다 싶어 양보를 했다.
어차피 3일 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왔으니까 첫날은 내가 양보를 한다 해도 시간은 충분 했다.
"빤스가… 가끔 우상이 니 소식을 물어 보고 한께…
니 오믄 같이 술 한 잔 하자고 내가 그래놔서…
안 불러 주믄 또 많이 섭섭해 할것 같은께 부른다.
그 새끼가 인자 나한테도 엥길라 그래싸서 그것도 성가시다…"
그러면서 전화를 했다.
여전히 두사람은 큰소리로 웃으며 통화를 했고 전화를 끊고 나서
나에게 걸어오면서 한마디 했다.
"썩을 놈이 엊그제만 해도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는 학생들 땜시 바쁘다고 지랄을 허드만
오늘도 바쁘냐고 물어본께 손님 없다고 나한티 자러 오라 그라네…
허기사… 빤스 집에서 자기도 많이 잤다…
온다고 그랑께 먼저 뒷개 선창에 먼저 가블자… "
자리를 털고 일어났고 나는 또 형님이 잡는 택시의 뒷자리에 타고
언젠가 한번 와 봤던 그 횟집으로 갔다.
쌍식이 형님을 본 종업원들은 일제히 인사를 했고
우리는 안쪽의 안방 같은 곳 으로 안내 했다.
따라 들어온 종업원은 능숙한 솜씨로 하얀 종이를 탁자위에 펼쳐 두고
주문도 받지 않고 나가 버렸다.
"왜 오늘은 주문을 안 받네요?"
"내가 오믄 맨날 이집 주인을 찿아 싼께…
주인 있으믄 즈그들이 주문을 안받아서 글췌.
쪼금 있으믄 외팔이가 올것이다.
그라고 뭐 특별히 부탁 할거 있으믄 간단히 지금 또 이야기 해라…
나중에 빤스라도 오믄 정신 사납다."
"제가… 형님 좋은 일자리 소개 시켜 드리려고요… 신발 장사 그만 두고… 서울로 모시려고…"
"그것이 뭔 소리여?"
큰소리로 웃으며 의외 라는듯 내 얼굴을 쳐다봤다.
그리고 당차게 일갈(一喝) 했다.
"내가 말이여… 삼서 누구한테 월급 이런거 받는 성길이 아니다.
아 신발이사 고무신 이든 운동화든 즈들이 필요해서 사러 온께 나사 돈받고 물건만 내 주믄 된디…
이 나이에 누구 밑에 있는 것도 내 성깔 하고는 안맞어."
"저하고 같이 하는 사업인데요?"
이야기가 좀 깊어 질듯 할 때 횟집의 주인이 우리의 방으로 들어 왔다.
"성님 뭐 드실라?"
"좋은거 뭐 있냐? 맛있는 걸로 줘 봐라. 손님도 오고 했응께."
"우럭 들어 왔는디… 그거 좀 떠가꼬 오까라? 아까 고등어 싱싱 한거 있었는디.
다 뒤져 브렀소… 쫌 일찍 왔으믄 뒤지기 전에 포라도 좀 떠 놓을것인디…
연락도 없이 와븐께 그것도 성님 목가치가 안되는갑소"
"고등어 그거 지금 포 뜨믄 안되냐?"
"안되제… 그것은 진짜로 싱싱할때 잡아 브러야제…
지금 잘못 먹으믄 '아다리' 되브요. 성길 죽이고 그냥 우럭이나 한사라 하쇼.
낙지 대가리 짤라가꼬 연포탕끼리고 다리는 안주로 그냥 내 오께.."
"그래라… 그라고 빤스 온다고 그랬응께… 오믄 이방에 있다고 이야기 해 줘라이"
"성기 형님… 말 안 해도 이방으로 올것이요… 그라믄 소주 3병 들여야 쓰것소이?"
"두말 하믄 뻐친께… 니 알아서 술도 올려라… 스끼다시 하고 술 먼저 주라."
사장이 주방 쪽으로 가고 나서 종업원이 큰 쟁반에 밑반찬을 상위에 가득 채웠다.
언제 봐도 풍성한 목포의 식단 이였다.
그 반찬을 보고 쌍식이 형님이 한마디 했다.
"와따… 갓김치가 무쟈게 좋게 익었다야…
나중에 갈 때 내가 한깡 사줄랑께 가꼬 가그라.
여수 돌갓이 아조 지데로 익어 브렀다. 내가 외팔이한테 한깡 주라 그래가꼬 줄텡께 갈 때 들고가…
집안에 어른들 있으믄 무쟈게 좋아 할 것이여.
이것이 저렇게 빨간색으로 익어 브러야 지맛이 난디…
외팔이 마누라가 이거는 지데로 담아 브렀네."
나는 전번에도 갓김치를 먹어 보긴 했지만 지금의 색과는 좀 차이가 있어 보였다.
아마 지금이 가장 알맞게 익었다는 쌍식이 형님의 조언 같았다.
귀찮기는 하지만 쌍식이 형님이 준다면 못 가져 갈 것도 없었다.
종업원은 예외 없이 보해 라고 써진 소주 3병과 잔 셋을 가지고 와서 탁자 위에 배치를 해두고 갔다.
종업원 에게 쌍식이 형님이 특별히 이야기 했다.
"아야 아그야… 소주 시병 다 따브러라. 지꺼 지 퍼묵게 다 따브러."
종업원은 그런걸 알고 있다는 듯 가볍게 웃고 탁자에 있는 세 개의 소주병을 모두 열어 주고 갔다.
"자 또 내가 한잔 따라 주께."
나는 손을 허공에 저으며 사양 했다.
그리고 내 앞에 있던 소주병을 들어 두 손으로 쌍식이 형님의 잔에 술을 채웠다.
그리고 내 잔을 들어서 쌍식이 형님이 따라준 소주를 한잔 받았다.
"간만에 왔응께 먼저 한잔 하고…
뭐 그렇게 특별한 일이 아니믄 술 마심서 살살 이야기를 해봐라…
나는 전번 멩키로 또 심각한 이야기 인줄 알았다. 일단 한잔 하자."
잔을 가볍게 공중에 부딪치고 빈속에 소주 한잔을 모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상위에 있는 여러 음식 중에 하나로 가볍게 안주를 대신 했다.
"인자 안주 나오믄 그걸로 천천히 먹기로 허고…
아까 그 이야기부터 해봐라. 내가 니하고 같이 일할 것이 뭐가 있는지 모르것다만…
걍 대충 이야기 해봐. 내가 본께 빤스가 와도 그렇게 비밀스러운 이야기도 아닌 것 같은께…"
"꼭 형님이 해 주셔야 할일 같아서 일부러 부탁드리러 왔습니다."
그리고 나는 한 중사 주었던 요원을 뽑는 기준이 되는 지침서를 형님께 보여 주었다.
한참을 보고 난후 그 종이를 쳐다보며 물었다.
"이것이 뭐여? 뭔 사람을 뽑는 모양인디…"
"예. 사실은 V.I.P 들을 경호 할 경호원을 뽑으려고 합니다.
그 경호원의 책임자로 형님을 모시고 갈려고요."
그러나 의외로 그의 답변은 빨리 나왔다.
"아야... 우상아이… 요새 같이 군발이들 끝발 좋은 세상에,
그런놈들 천지로 있을건디 뭐 할라고 건달들 델다가 쓸라고 그라냐?
그라고 내가 이 짓을 안해 본것이 아니고 여그 이미자나 남진이 오믄
우리가 옆에서 보디가드를 허기는 한다.
양아치 새끼들 낑기믄 괜히 목포 이미지 더러 진다고 기획사 같은디서 부탁을 하믄
내가 아그들 몇 놈 델꼬 가 가꼬 근처에 접근도 못하게 해블제…
그라믄 몇 푼 받아서 아그들 술값 하라고 주고 한적도 있고…
그란디 그것이 돈이 안되제… 공연 끝나믄 시마이 쳐쁜께.
그란께 건달들은 순전히 일회용 돈 몇 푼에 부려 먹고 나가리 되븐다.
그것도 나한티는 자존심 상해 가꼬 못하것드라. 그란디 그짓을 니 하고 같이 하자고? "
내가 살며시 웃었다.
이왕에 그런 경험이 있었다면 나로서는 더욱 더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본격적인 경호 사업에 대해 설명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님. 그렇게 작은 형태의 경호원이 아니고, 기업형의 사업체로 그걸 만들 생각이거든요.
올해가 선거하는 해 아닙니까? 김대중이나 김영삼 같이 거물급들만 경호 하실 겁니다.
그리고 선거가 끝나도 형님이 계속 그 사업체를 유지 하셔서 사업으로 키워 나가시면 되고요.
이미 회사도 설립 되었고 그리고 건물 임대도 끝났습니다.
형님이 요원들만 선발해서 바로 입성 하시면 됩니다.
말이야 내가 사장 이지만 모든 건 형님께서 알아서 하시면 되고 수입도 형님이 알아서 하시면 됩니다."
"아 긍께 내말은 이런 것도 사업 이라고 판을 벌려도 되는것이냐 이말이여.
쉽게 야그 해서 언놈이 경호원 까지 불러서 지 몸뗑이 사리고 뎅기겄냐 이말이여.
시셋말로 장사가 되겄냐 그말이여?"
"아이고… 형님… 외국에서는 많이들 선호 하고 있고…
그리고 제가 계속 손님을 물어다 주면 되잖아요.
당장 올 선거 때까지 6개월만 굴려도 형님 신발 가게 몇 개는 생길 건데요.
그리고 지금은 정주영 같은 갑부나 돈 많이 버는 연예인들은 경호가 필요 하거든요.
지금은 기획사 에서 그때그때 조달을 하지만 우리 같이 전문적인 경호 회사가 있다고
그러면 그런 손님은 전부 우리의 손님이 되는 겁니다."
"그래?..."
그리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술을 따라서 한잔 목에 털어 넣었다.
안주가 나오면 술을 마시자던 쌍식이 형님도 조금은 심각 했던 모양이다.
"나도 잔머리 통빡에 뭔 소리 인지는 알것다.
잘은 몰라도 이것도 안기부 에서 좀 힘을 써 주겄다 그말 같은디… 니… 말다…
엊그제 용팔이 사건 알제? 나를 시피 보고 그런 꾸정물에 쳐 넣을것 같으믄 없던걸로 해라이."
내가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아닙니다. 형님. 그놈들은 잔돈푼 받고 실력 행사한 건달들 이지만…
저희는 그런 불법은 절대 안합니다.
국가에서 의뢰를 해도 당당하게 계약서를 쓰고 정상적인 회계 처리를 하면서
세금도 내고 해야 하는 회사입니다.
당장은 아니지만 언론에 홍보도 하고 해서 누구든지
신변에 위험을 느낀 고객은 우리를 찾을 수 있게 할 겁니다.
우리는 때로는 경찰들 하고도 싸워야 하고 군인들이 총을 들고 몰려 와도
우리가 보호해야 할 고객의 신변을 끝까지 지켜 주는 정당한 업체 인데…
그걸 용팔이 사건하고 비교 하시면 곤란 합니다."
"뭐? 경찰이나 군바리 하고도 붙어?"
"그럼요. 그래야 제대로 된 정상적인 경호죠."
"아따… 나는 뭔 소린가 걍 정신이 없다."
"거기 요원들 뽑는 조건에 전과가 없어야 하고, 군필자 중 대학 졸업자라고 되어 있잖아요."
"무식한 놈들은 요원도 될 수 없다 그 말 아니냐?"
"그래요. 그리고 고객의 안면을 가릴수 있도록 키가 185센티 이상 이어야 한다고 규정도 있고요.
무조건 쌈만 잘 한다고 해서 우리 요원이 될수는 없습니다.
물론 무술 유단자는 기본이고요."
"당장은 뭐라고 말 못 하것다. 이것은 부탁이 아니고… 무슨 고문을 허는것 같다이."
"너무 부담 가지진 마세요. 제가 형님 능력을 아니까…
내일 또 차분히 의논 하면 됩니다."
"그래 오늘은 거 까지만 하자이… 정신없다."
대화가 적당할 때 횟감이 들어 왔다.
예전에 먹었던 그 맛있는 속풀이 연포탕이 함께 나왔고
항상 그렇듯 입구가 시끄러우면서 빤스라는 여인숙 주인이 들어 왔다.
"아야 쌍식아… 니가 진짜 괜찮은 친구다…
안 그래도 술이 고파 가꼬 죽겄는디 딱 맞게 전화가 와블드라…"
그리고 나에게 와서 악수를 청했다.
"아이고 기자 양반… 그래도 잊어 먹을만 하믄 한번씩 꼭 문안 인사를 오네… 잘왔어.
안그래도 술이 먹고 잡었는디… 오늘은 전번에 신세 진것도 있고 한께
오늘은 내가 한번 써블것이여. 아야 쌍식아 이것이 내술이냐?"
항상 그렇듯이 자기술,자기잔을 찿아서 자기가 알아서 잔을 채웠다.
그리고 건배 제의를 했다.
"저 오살놈은 나이를 쳐 묵으나 어릴때나 나만 보믄 저렇게 정신을 못 차린가 몰라.
아그야 정신 차리고 천천히 마셔라.
니 하는것 본께 또 취해가꼬 헛소리좀 하것다.
그래 한잔 허자… 썩을놈…."
두 사람이 어려서 부터 친했다는 건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자연스럽고 보기 좋은 모습 이였다.
빤스라는 여인숙 사장은 항상 그렇듯 술을 단숨에 들이켜고 회를 상추에 싸서 입에 넣었다.
혼자 먹기 미안 했던지 쌍식이 형님을 보고 한마디 한다.
"쌍식아 한볼테기 해라. 어이 기자 양반… 연포탕 식기전에 묵어브러…"
"잡놈이… 남 생각은 디게 해쌌네…"
"아니여… 이것이 순대를 좀 채워 놓고 술을 빨아야제….
인자 나이를 묵어 논께 빈속에 너무 부어 블어도 아침에 못 쓰겄드라.
쫌 있다가 매운탕 나오믄 곡기를 좀 채워야 쓰겄다."
킥킥 거리고 웃으며 쌍식이 형님도 회를 상추에 싸서 입으로 가져갔다.
나는 상추에 싸서 먹는 게 번거로워서 항상 그냥 회만 간장에 찍어서 안주를 대신 했고
가끔씩 떠먹어 보는 연포탕은 언제 먹어도 담백하고 좋았다.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