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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쉼터 스크랩 한국의 美_여름 맞이
ysoo 추천 0 조회 153 16.06.07 23:1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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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풍경_손병흥


온종일 눈부시게 빛나는 햇볕으로
더욱 짙고 푸르게 물들여진 신록 따라
한낮이면 마구 수은주도 달아올라
살얼음 육수 부어 먹는 물냉면
시원한 산 계곡 바다가 그리워져
화창한 날씨처럼 몹시 설레던 날


빨간 앵두 잘 익은 살구 속살 떠올리며
홀로 가슴 저리는 회상에 젖어드는 계절


밤이면 시끄럽게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

벼 심은 물 논 비추던 교교한 달빛들이
평상 위에 잠시 걸터앉아 쉬어가는 초여름



※ 단오절식은 건강을 지키려는 선조의 지혜를 엿볼 수 있습니다.

단옷날에 해먹는 수리취절편은 초여름 기침감기에 좋고, 조선시대 궁중내의원에서 단옷날마다 임금님께 진상했다는 제호탕은 더운 날 갈증해소에 그만입니다. 또 소화불량이나 더위에 허덕일 때 먹으면 새콤달콤한 맛이 입맛을 돋우어 주는 앵두화채는 예부터 단옷날 즐겨 만들어 먹곤 했습니다.



신윤복 ‘여름날의 정경’ (119.3×37.3cm, 1813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우리 선조는 자연 속에서 더위를 식히는 여름 나기를 즐겼다. 나무 그늘에서 담소를 나누며 장기를 두는 모습이 정겹다.


한국의 美_여름 맞이


여름, 그냥 두어라


해는 뜨겁고 할 일은 많다. 자칫 무리하다 심신이 지치면 때로 밤공기마저 고통스럽다.
그래서 우리는 선조에게 혹서(酷暑)를 대하는 자세를 배운다. 거기에는 우리에게 없는, 볕을 피해 한 걸음 쉬어가는 선비 정신이 있다.


봄은 스치고 여름은 진을 친다. 한 해 한 해 더욱 그렇다. 눈에 띄게 길어진 여름이 다가오니 걱정이 앞선다.

올해는 얼마나 더울 것이고 얼마나 오래갈 것인가. 그래서 더위와 싸우기 위해, 볕을 견디기 위해 각종 도구를 갖추며 만반의 준비를 한다. 그런데 약 오르는 건 그렇다고 덜 더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냉장고조차 없던 옛 선조에게 이 계절이 더 수월하게 느껴진 까닭이 궁금하다. 조선 시대의 많은 시서화를 들여다보고서 그 답을 찾았다. 그들에게 더위는 싸우고 견디는 존재가 아니라 곡식의 열매를 맺게 하는 하나의 계절일 뿐 제 소임을 다하면 자연스레 지나가는 존재일 뿐이다. 우리 선조가 여름이면 유난히 호들갑을 떠는 현대인의 모습을 본다면 이렇게 충고했을 것 같다.

“그냥, 가게 두시오”라고.


자연은 여물고 정신은 성숙하고

대학자들의 ‘그해 여름’


여름의 어원은 열매 맺는다는 뜻의 ‘녀름’이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맞이한 이 계절은 햇곡식 맞을 준비로 아주 분주한 시기인 것이다. 가장 지칠 계절에 가장 할 일이 많다니, 농민의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겠다.

그러나 도포를 입고 갓까지 쓴 채로 옷매무시를 항시 조심하는 의관 정제(衣冠整齊)가 몸에 밴 선비에게도 여름은 녹록지 않은 계절이었다.

덥다고 옷을 벗고 아무 데서나 등목을 할 수는 없는 노릇. 이럴 때 제격인 것이 이열치열의 피서법이었다.

양반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밭에 나가 김매기를 도왔다. 몸속에 땀을 내는 것이 오히려 위장 건강과 신진대사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이는 더위를 먹지 않는 훌륭한 방편이 되었다. 그렇다고 자신의 건강만을 위해 농사일을 도운 건 아니다. 김매기, 거름 주기, 물 대기 등 여름날 농사일은 끝이 없었고 일손은 턱없이 부족했다.

오죽하면 이때를 ‘발등에 오줌 눌 만큼 바쁘다’고 했을까.

인천 지역에서 전해지는 들노래에는 양반이 농부들을 격려하며 농사일을 함께하고 덕담도 주고받는 대목이 나온다. 물론 노동의 가치를 아는 의식 있는 선비들의 미담일 것이다.


반대로 조선의 풍속 화가 유숙의 ‘계심어비도’에는 평민은 수렵을 하고 양반은 멀리서 구경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이것이 더 보편화된 풍경일지언정, 더위에 지쳐 고생하는 농부를 위로하고 스스로의 건강도 챙기는 선비의 지혜는 생각할수록 멋있다.
명망 있는 선비의 여름 나기를 살펴보면 더욱 깊이 있고 적극적이다.

성리학자이자 영남학파의 대가인 남명 조식은 지리산에 올라 지식을 설파하며 더위를 잊었다. 그가 1558년의 여름날 제자들과 지리산 곳곳의 유적을 탐방하면서 역사 속 인물들의 지혜를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이 산행은 교육에만 그치지 않고, 과도한 세금으로 삶이 어려워진 백성의 현실을 취재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당시 퇴계와 함께 대학자로 추앙받던 조식은 학자의 수순인 관직을 마다하고 재야에 머물며 학문과 후학 양성에 정진했다.


산행으로 학문의 소명을 이어간 이가 또 있다. 글씨뿐 아니라 금석학과 문자학에 뛰어난 추사 김정희는 북한산에 올라 자신의 연구를 이어간다. 그가 산행을 통해 이룬 최대 업적은 바로 진흥왕 순수비의 고증을 완성한 것
이다. 1816년 7월 21일, 추사는 무더위를 뚫고 글귀가 새겨져 있다는 비석을 찾아 북한산 비봉 가파른 절벽에 오른다. 그리고 비석의 글씨를 탁본해 1년여간의 노력 끝에 그 비석이 진흥왕의 영토 확장을 입증하는 귀한 자료인 순수비임을 고증한다.

침식도, 더위도 잊은 채 해석에 열중한 김정희는 그해 여름 대학자로서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지금 국보 제3호를 가까이서 만날 수 있다.


신분을 막론하고 모두가 즐겨 했던 피서법으로는 삼계탕 같은 보양식을 먹거나 따뜻한 차를 마시는 것이 있다. 특히 따뜻한 차를 마심으로써 더위에 쉽게 조급해지고 짜증을 낼 수 있는 감정을 다스리는 것은 지금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방법이다. 아침에 눈뜨면 몇 걸음 걷기도 전에 에어컨을 켜고 밤새도록 선풍기를 틀고 자는 우리에게 조급함을 다스리는 선비 정신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만히 앉아 차를 따르고 있으면 이제 한 해의 반을 왔을 뿐이라고, 조바심을 거두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윤인걸 ‘폭포를 바라보는 선비’(18.9×13.3cm, 조선 시대, 국립중앙박물관소장). 폭포가 쏟아지는 거대한 절벽
이 솟아 있고, 반대편에는 휘어져 뻗어 나온 소나무에서 덩굴풀이 흘러내린다. 우리 선조는 폭포 그림을 보
며 방 안에서도 자연이 주는 시원함을 즐겼다.



더울수록 이웃과 하나 되는 세시 풍속


덥고 습한 여름은 세균이 들끓는 계절이다. 그래서 병을 옮기는 귀신을 막기 위한 전통이 유난히 많았으며, 이는 주로 이웃과 함께했다.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모두 조심해야 하는 탓도 있지만, 불쾌지수 높은 시기에 유난히 많은 농사일을 해내려면 이웃과의 결속이 절실했기 때문일 터.

이 시기 가장 대표적인 명절이 바로 단오다.

지금은 단오가 유명무실해졌지만 과거 농가의 부녀자에게는 ‘단오장’ 이라는 고운 단장을 공들여 할 만큼 중요했다. 여인들은 창포 뿌리를 비녀 삼아 머리에 꽂는 것으로 액운을 막고, 창포 삶은 물로는 머리를 감아 윤기를 냈다. 창포의 독특한 향이 귀신을 쫓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젊은 아낙은 뿌리 한 끝을 붉게 염색해 나름 액세서리처럼 멋을 부리기도 했다. 또 단옷날 새벽 상추잎에 맺힌 이슬을 분에 개어 얼굴에 발랐다. 이렇게 꾸미고 마을 어귀로 나가 그네를 탔는데, 영락없이 춘향이가 이몽룡을 만난 바로 그날의 풍경이다.


단오 후에는 유두(流頭)를 지냈다.

음력 6월 15일에 지내는 유두는 정확히 말하면 동류두목욕(東流頭沐浴: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다)의 준말이다. 신라 때부터 전해 내려온 이 풍속은 더위에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미리 몸을 청결하게 준비하는 것으로,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 이유는 해가 뜨는 동쪽이 가장 원기가 왕성한 곳이라는 전통적 믿음 때문이다. 굳이 머리 감는 날을 따로 정해놓은 것에서 선조의 지혜가 엿보인다.

뜨거운 볕 아래서 하루 종일 김매기를 하다 보면 병이 나기 쉬우니 목욕도 할 겸 하루 휴가를 갖고 체력을 보충하는 날인 셈이다. 조선후기 유학자 김석구의 ‘유두’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술병을 차고서 들로 나왔으니 오늘은 유두가절이라
소나무 그늘 아래 저물도록 누웠나니 맑은 바람 가을처럼 서늘하여라"


휴가에 술이 빠질 수 있나. 시에서 보듯 유두에는 농사일을 하루 쉬고 이웃과 술을 돌려 마시며 서로의 건강을 빌었다. 땅의 신에게 갓 수확한 농산물로 제사를 지낸 뒤 그 음식을 나눠 먹었는데, 특별한 음식으로 ‘유두국수’가 있었다. 햇밀로 면을 만들어 닭국물에 말아 먹는 유두국수는 여름철 건강을 위해 반드시 먹어야 하는 별미였다.


이웃과 함께하는 풍속은 또 있다. 글을 쓰며 생각해보니 몇 년 전 여름, 시골 할아버지 댁을 방문했을 때 냇가에 나간 기억이 난다. 이때 마을 이웃이 하나 둘 음식을 싸들고 나와 어느새 자리가 커졌다.

서로 사는 이야기에 빠져 더운 줄도 모르고 시간을 보냈고 어느새 해가 저물었다. 한참 후에야 이게 우리 선조가 더위를 즐기는 방식 중 하나인 천렵(川獵)이라는 것을 알았다. 천렵은 시원한 바람이 부는 냇가로 나가 이웃과 모여 음식을 나눠 먹는 풍속이다. 이 천렵은 농촌의 일상을 월 단위로 노래한 ‘농가월령가’에도 나온다.


"앞내에 물이 주니 천렵을 하여보세
해 길고 잔풍하니 오늘 놀이 잘되겠다
벽계수 백사장을 굽이굽이 찾아가니
늦게 핀 연꽃에는 봄빛이 남았구나
그물을 둘러치고 은린옥천 후려내어
반석에 노구 걸고 솟구쳐 끓여내니
팔진미 오후청을 이 맛과 바꿀소냐"


이웃과 물가에 나가 낚시도 하고 꽃도 즐기며, 잡은 고기로 탕을 끓여 나눠 먹는 모습이다.

세상 최고의 진미와도 바꿀 수 없는 그 맛은 어땠을까. 도시에 한적한 물가가 없으니 참으로 아쉽다.


예술에 몰입해 심신을 다스리다
문학, 여름의 풍요를 노래하다


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정약용의 둘째 아들인 정학유가 지은 <농가월령가>에는 위에 언급한 천렵 외에도 여름의 문화를 묘사하는 대목이 등장한다. 특히 음력 5월부터 7월까지의 여름 모습은 농사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당시로 돌아가 직접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세세하다.


"오월이라 중하 되니 망종 하지 절기로다
남풍은 때맞추어 맥추를 재촉하니
보리밭 누른빛이 밤사이 나겠구나

문 앞에 터를 닦고 보리타작을 하오리라
드는 낫 베어다가 한 단 두 단 헤쳐놓고
도리깨 마주 서서 흥을 내어 두드리니
불고 쓴 듯하던 집안이 갑자기 흥성하다 (5월령)"


‘5월령’에는 보리타작, 고치 따기, 그네 뛰기 등의 생활상이 드러난다. 물론 양반인 정학유의 시선에서는 노동이 흥겹게만 보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새 곡식을 수확해 끼니 걱정 덜었으니 마음은 풍요로웠을 것이다.


"정자나무 그늘 밑에 좌차를 정한 후에 점심 그릇 열어놓고 보리단술 먼저 먹세
반찬이야 있고 없고 주린 창자 메인 후에 청풍에 취포하니 잠시간 낙이로다
농부야 근심 마라 수고하는 값이 있네
오조 이삭 청태콩이 어느 사이 익었구나
일로 보아 짐작하면 양식 걱정 오랠소냐
해진 후 도라올제 노래 끝에 웃음이라 (6월령)"


‘6월령’에서도 유두의 풍습을 볼 수 있다. 노래에는 당시의 감성이 세세히 담겨 있다.
힘든 농사일이지만, 속속 결실을 맺으니 기뻐하며 뙤약볕 아래서의 노동은 보람으로 넘기자고 권유한다. 여름에 하는 활동 묘사에 치중한 것이 ‘농가월령가’라면 윤선도의 ‘어부사시사’에는 여름의 풍성한 정취와 흥이 표현돼 있다. 윤선도가 지은 40수의 이 연시조는 자연 속에서 한가롭게 지내는 삶을 그린다.

어부의 노 젓는 소리가 후렴으로 쓰였지만, 실제로는 어부의 치열한 삶보다 강호 속에서 속세를 잊고 여유롭게 거니는 모습을 담고 있다.


"궂은 비 멎어가고 시냇물 맑아온다
배 띄워라 배 띄워라
낚싯대를 들어 매니 깊은 흥이 절로 난다
안개 낀 산수절경 그 누가 그려낼꼬"


사시 중 하사의 첫 구문이다. 문학 작품이지만 미술 못지않게 시각적이다. 물안개 낀 이른 새벽, 장마 걷힌 뒤 깨끗해진 물가로 낚시를 나가는 어부는 주변 풍경을 보며 감탄해 마지않는다. 혼자 조용히 음미하는 첩첩산중 투명한 물가는 여름날 아침이 주는 선물 같았을 것이다.


"연잎에 밥 싸두고 반찬일랑 장만 마라
닻 올려라 닻 올려라
삿갓은 써 있노라 녹사의는 가져오냐
무심한 갈매기는 내 쫓는가 제 쫓는가"


금세 날씨가 바뀌어 비가 오는가 보다. 화자는 낚시를 잠시 멈추고 반찬도 없는 지극히 소박한 밥상을 마주했다. 녹사의(우의)를 걸쳐 입고 갈매기가 나는 모습을 바라본다. 시가 말하는 풍경을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면 한여름 속의 어느 날인데도 왠지 선선한 바람이 부는 것 같다.



겸재 정선,박연폭포


심사정 ‘노련도’(16.2×12.4cm, 서울대박물관 소장). 진흙 속에서도 깨끗한 꽃을 피우기 때문에 청렴한 선비정신을 상징하기도 한 연꽃. 백로와 짝을 이뤄 그린 연꽃을 보고 있으면 더운 바람도 이기는 연못의 시원함이 그대로 전해진다.



그림으로 마음을 다스리다


여름 풍경을 담은 그림은 그리는 이도, 감상하는 이도 더위를 잊게 한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새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어느 순간 배 옆구리를 치는 물소리와 소나무 숲을 오가는 바람 소리가 귀에 닿는다. 이윽고 그 풍경 안으로 빨려 들어 사방이 적막한 자연의 한가운데에 서게 된다.


특히 겸재 정선이 그린 박연폭포는 흡인력에서 압권이다.

세로 119cm, 가로 52cm 크기의 이 그림은 겸재의 3대 명작 중 하나다. 그림 속 폭포수는 조용하고 희뿌연 여름
숲 속을 망설임 없이 내리친다. 그 아래 하나의 점처럼 작아진 인간을 들여다보면 자연이 주는 엄청난 압도감에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다.


여름날의 화훼도 중에는 연꽃 그림이 특히 많다. 7월에 활짝 피는 연꽃은 진흙 속에서도 더럽혀짐 없이 깨끗하게 피어나기 때문에 청렴한 선비 정신을 상징해 그림 소재로 다뤄졌고, 나아가 불교의 철학을 상징하는 꽃이 됐다. 속세를 초월하는 청아함이 느껴져 꽃 중의 군자라고도 한다.

연꽃만큼 많은 복을 상징하는 꽃도 드물다.

연꽃 한 줄기를 그리면 공직자의 청렴 결백을 염원하는 것이고, 제비가 연꽃 위를 나는 것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자는 기원이 담겨 있다고 한다. 풍요를 상징하는 연꽃 그림 중에는 김홍도가 그린 ‘하화청정’이 가장 대표적이다. 고추잠자리와 짝을 이뤄 그린 연꽃을 보고 있으면 더운 바람이 다 지나간 연못의 시원함이 그대로 전해진다.


우리 옛 속담에 ‘여름불도 쬐다 나면 섭섭하다’는 말이 있다.

필요 없는 것도 없으면 서운하다는 뜻으로 많이 쓰이지만, 여기에는 여름 불볕더위를 친구 삼아 자연스레 받아들인 선조의 정서가 담겨 있다. 농사일을 할 때는 솔개그늘 하나에도 숨을 돌리던 선조에게 무더위란 호들갑 떨 필요 없이 그저 흘려보내면 될 일이었다.

실천하기 어려운 이 덤덤함을 얻기까지 선조는 정신을 얼마나 거듭 무장해왔을까.

그 지혜는 알수록 깊다.



조선 시대 냉장고


지금도 지명으로 존재하는 서빙고는 조선 시대 최대의 얼음 창고였다. 겨울에 한강물이 네 치(약 12cm) 이상 얼었을 때 떠다가 동빙고와 서빙고에 보관했다. 얼음을 뜰 때는 미끄러지지 않도록 칡으로 꼰 새끼줄을 얼음 위에 깔아놓았다고 한다. 돌과 흙으로 지은 얼음 창고는 아치형 천장 구조와 단열재 등을 사용한 과학적 원리로 한여름에도 얼음이 녹지 않게 지었다.

이렇게 얼린 동빙고의 얼음은 주로 제사용으로 쓰고, 서빙고의 얼음은 임금과 고위 관직자들에게 바쳐졌다. 그러나 <경국대전>에는 여름의 끝 달에는 병자와 죄수에게도 나눠 줘야 한다는 기록이 있다.

얼음을 뜨고 옮기고 유지하는 모든 과정이 너무 어려웠기에 귀하디 귀한 것으로 여겨지던 얼음을 죄인에게까지 나눠 준 것을 보면 여름철 민심을 잃지 않기 위해 백성의 건강을 두루 지켜야 했던 임금의 책임감이 사뭇 컸음을 알 수 있다.


에디터 김선미 자료협조 국립중앙박물관, 서울대박물관 참고도서 <하루하루가 잔치로세>, <키질하던 어머
니는 어디 계실까>(김영조(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지음)( 인물과 사상사 펴냄)





여름, 몸과 마음을 다스리다


청아한 푸른빛, 시원한 여름으로 물들이다


우리 선조는 특별히 자연의 빛을 사랑했다.

그중에서도 여름이면, 쪽풀(藍草)로 염색한 푸르기도 하고 파랗기도 한, 오묘한 색감의 쪽빛으로 물들인 물건을 곁에 두고 그 빛의 청량감을 즐기며 여름을 시원하게 보냈다. 쪽빛 하늘과 바다가 그러하듯 그들이 추구한 아름다움의 가치 저변에는 항상 자연을 닮고 싶어 하는 마음이 서려 있다.




여름 세시 풍속 단오, 건강을 염원하다


단오는 자연에 순응해 삶을 영위한 우리 선조의 지혜롭고 아름다운 세시 풍속으로 바쁘고 힘든 농사일에서 잠시 틈을 내어 무더운 여름을 맞기 전에 자세를 새롭게 하는 날이었다.

이날에는 나쁜 기운을 쫓아내고 남은 한 해 동안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다. 또 다가오는 여름을 건강하고 시원하게 보내라는 의미로 이웃끼리 부채를 주고받고, 부스럼이 생기지 말라고 창포물에 머리를 감으며, 무더운 여름 장마철에 생기기 쉬운 각종 질병을 예방했다.

이 밖에도 그네 뛰기와 씨름 등으로 체력을 단련해 한여름을 건강하게 나기 위한 준비도 했다.



에디터 조민진

포토그래퍼 김재이 어시스턴트 박주희, 김민기 스타일리스트 양은숙 어시스턴트 한송이, 김소혜 소품협찬 부채, 모시천(금단제,), 놋대야(중요무형문화재 제89호 침선장 이수자 이옥호 作, ), 빗ㆍ나무바가지ㆍ염색천(목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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