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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자 되신 예수님 네 번째 말씀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10명의 나병환자를 동시에 고치신 사건입니다. 복음서에 나타난 대부분 예수님 치유의 역사는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적으로 만나 주시고 병에서 놓임 받는 사건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열 명이나 되는 환자를 한꺼번에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의 치유의 능력은 10명이 됐든 20명 50명이 됐든 온 인류를 고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본문 말씀을 깊이 묵상하다 보면 19절 끝부분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19절.... “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나라”...... 우리 예수님이 선포하신 “네 믿음”이란 10명의 공동체 속에 오직 한사람 사마리아 사람에게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영적으로 깊은 의미가 있는 것은 사마리아인은 육적인 나병에서 고침을 받았다면 그 즉시 영혼도 구원받은 진정한 복음의 역사를 체험한 사람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경험한 것이지만 병 고침을 받고자 소문 듣고 교회 나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와 은혜를 체험하고 병 고침을 받으면 그 뒤로 병 나았다는 이유만으로 다시 교회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병은 고침 받았지만 영혼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사마리아 사람처럼 치료자 되신 주님의 손길로 인하여 영,육이 고침 받았다는 체험적인 믿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먼저 본문말씀 줄거리를 요약합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를 지나 예루살렘으로 가시다가 어떤 촌에 들리셨습니다. 그곳에 열 명의 나병(癩病)환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나병환자를 개역성경에는 문둥병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지금은 한센씨 병이라고 부릅니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지금도 여수 애양원이나 소록도에는 격리된 곳에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느 날 10명의 나병환자들이 예수님 소식을 들고 예수님 앞에 나온 겁니다. 이들은 공동체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상인이라면 함께 있으면 안 되는 사이입니다.
예수님 앞에 나온 10명중 9명은 유대인이요 다른 1명은 사마리아인입니다. 서로 원수처럼 지내는 관계입니다. 유대인은 사마리아인을 상종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함께 공동체 생활하면서 서로 위로하고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10명의 나병환자들은 예수님 앞에 가까이 오지 못하고 멀리 서서 큰소리만 질렀습니다. 13절.....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런데 치료자 되신 예수님 저들을 보시고 14절..... “제사장들에게 가서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으니라 ” 10명의 나병에 걸린 사람이 예수님말씀대로 제사장에게 가는데 가는 도중에 모두 깨끗해진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 9명은 고침 받고 그냥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오직 한사람 사마리아 사람만 예수님앞에 나와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제 예수님 사마리아 사람을 보시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이상이 본문 말씀의 줄거리입니다.
먼저 10명의 나병환자들이 치료자 이신 예수님 보고 어떻게 했습니까?
12b-13절을 봅니다...... “멀리서서(12b)...... 소리를 높여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13절)” 10명의 나병환자들이 예수님이 계신 곳 가까이 와서 불쌍히 여겨 달라고 외칠 수 있는데 멀리서서 라고 했어요
구약성경 레위기 13장을 보면 나병에 걸리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시대에는 고칠 수 없는 중한 병이었습니다. 한번 전염되면 곧 펴지니까 나병이 발병하면 그 즉시 사랑하는 가족들과 떨어져 살아야 했습니다. 행여 정상인들이 가까이 오면 “나는 나병에 걸렸으니 나를 떠나주세요!”라고 외쳐야 했습니다. 한마디로 절망의 나날을 보내며 일생을 마쳐야하는 불행한 사람들이였습니다. 이런 증세가 있기에 예수님 가까이 갈수가 없어요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저들의 외침 속에서는 가슴 아픔 고통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나병이란 중병 때문에 가족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보고 싶은 가족을 볼 수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저주 받은 병으로 취급되어 버렸습니다.
내 인생은 정말 나병으로 과연 저주받은 인생인가? 치료의 방법이 없으니 꿈도 희망도 다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14절 희망이 보였습니다........ “보시고” 치료자이신 우리예수님 멀리 계시지만 저들의 울부짖는 모습을 “보시고”~~~~ 저들의 가슴 아픔 외침을 멀리서 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예수님 말씀하십니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구약시대 간혹 기적적으로 나병이 낳았을 때 그것을 확인해 주는 사람이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애매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치료자 되신 예수님께서 제사장들에게 가서 보이라 하셨을 때, 나병환자들이 "선생님, 그냥 손을 얹고 기도하시든지, 몸을 만져주시든지 이 자리에서 고쳐주신 다음에 제사장에게 가도록 해주십시오.
그런데 병 고침도 받지 않았는데 어찌 제사장에게 가라는 말씀입니까?" 이유를 달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에게 가지 않고 불순종 할 수 있어요 열 명중의 하나라도 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됩니까? 안타깝지만 치유의 이적은 일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고분고분 순종 했기에 14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0명의 나병환자들이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순종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기적을 경험하고 싶다면 무엇보다 순종이 전제 되어야 합니다.
이제 15절을 보면 영적으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
여기 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나병에서 고침 받은 사마리아사람인데 이 사람만이 하나님께 영광 돌렸습니다. 이런 모습은 영적으로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인들이 주님 앞에 똑같이 체험했다 하여도 그에 따른 반응이 다르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렇습니다...... 삶의 자리에서든지..... 예배이든지 기도회든 부흥회든 찬양이든 똑같이 은혜를 받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응답이 다 다릅니다. 어떤 성도님은 오늘 주신 말씀이 너무 은혜를 받았어요 다른 분에게 물어보면 아니요! 몰라요!
어떤 분은 병고침을 받는것도 그래요 저렇게 애절하게 매달리니 주님 은혜를 안 받을 수 없지요 당연히 고침 받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나을 때가 되니까 나았겠지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 또 어떤 사람은 그냥 쉽게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이처럼 여러 가지 반응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에서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사람은 주님을 찾아와 큰 소리로 영광을 돌렸지만, 치료 받은 아홉 명의 나병환자는 어디에 있는지 알수가 없어요
치료자 되신 우리 예수님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17절 하반절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예수님 물으시지 않습니까?.....
이 말씀속에는 우리 예수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아홉명의 나병환자를 찾으시며 그들이 없기에 섭섭함을 가지고 있다는 뉘앙스가 풍깁니다.
그렇다면 치료자이신 우리예수님이 찾으신 고침 받은 아홉 명은 어디로 갔을까요? 저도 말씀을 준비하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먼저..... 이들은 정말 자신의 병이 나았는지 며칠 기다려 보자. 재발이 안 되어야 나은 것 아니겠는가? 정확히 확인한 다음에 찾아가 감사를 해도 늦지 않지 않을거야 생각하다가 오지 못한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일 때 다 치료됐다는 말을 듣고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 자기 일을 하다 쉬면서 “ 네가 예수로 통해 병 고침 받았으니 꼭 성공해서 선물 들고 가자!~~ 그러다가 기회를 놓쳐 버릴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나았지만 이 몸을 가지고 예수님께 갈 수 없겠는가 하여 집에 가서 목욕하고 새 옷 입고 예수님께 찾아가서 인사를 드리자 생각 할 수 있습니다.
네 번쩨,,,,,자신의 온 몸이 깨끗해졌습니다. 그래서 펄쩍 펄쩍 뛰면서 집으로 가는 길에 옛날친구들이 반겨 맞아 줍니다. 그래 친구들과 함께 술 한잔 그러다가 지금으로 말하면 노래방에 갔다가 감사의 기회를 잃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이 부분에서 해석하기를 “ 그 아홉 사람은 과거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리려고 멀리 떠나 버렸다고 했습니다. .....그 아홉이 어디 있느냐 성도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이제 우리가 닮고 싶은 1명의 나병환자 사마리아인을 보겠습니다.
15-16절입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은혜 입은 한사람 사마리아인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렇습니다. 받은 은혜가 있으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은 신앙생활 중에 당연한 행위입니다.
치료자 되신 예수님도 나병에서 고침 받은 사마리아 사람을 칭찬 하시듯 18절 말씀에 이방인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말씀하십니다.
성도여러분!!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돌리는 것일까요?.... 아주 간단합니다. 즉각적으로 치료자 되신 예수님 앞에 돌아오면 됩니다. 옷이 더러워도 괜찮습니다......... 몸에서 냄새가 나도 괜찮습니다........손가락질 받을만한 추한 모습을 가졌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예물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다만 은혜를 깨닫고 체험하는 그 순간에 그대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내 모습 이대로 돌아와 엎드려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 돌리는 것, 그것을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거룩 거룩하다 보면 너무 격식을 갖추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신앙이 좀 복잡 해 집니다.
사회생활 중에서도 사람과 사람 사이를 볼 때도 정말로 고마움을 느낀다면 그렇게 많은 격식을 갖추지 않습니다. 그냥 마음 가는대로 있는 그대로 표현해야 합니다. 사실 감사합니다. 이 말을 미루어 생각해서 하다보면 왠지 어색 할 수도 있습니다. 그저 바로, 그 즉시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체험이 참 많습니다......병원에서 수술하고 입원해 고생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은혜로 치료받고 깨달을것이 많기에 '병원에서 퇴원하면 먼저 교회가서 하나님께 감사기도 드리고 영광을 돌려야지 마음먹습니다. 퇴원하여 교회로 갈려고 하는데 가족들이 아직은 아니예요 나중에 가면 되요 그래서 집으로 그냥 가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기회를 놓쳐 하루 지나고 한 주일 한 달 그냥 그대로 지나고 맙니다. 그리고 좀 지나면 그냥 잊어 버려요. 이처럼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싶지만 피치 못한 상황 때문에 못합니다.... 나병에서 고침 받은 사마리아사람 왜! 집에 곧장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가끔 신실한 연예인이 상을 받으면 인터뷰 하는데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며 감격의 눈물을 흘린 연예인들을 봅니다. 무엇을 감출 필요가 없지요 어찌보면 최고의 전도입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은 내 할 일 다 해 놓고 맨 마지막에 인사치례 하는 정도라면 소용없는 일입니다.
다음주일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올해도 반년을 살아온 것에 감사가 있습니다. 받은바 은혜를 미루지 말고 감사 하십시오 그리고 살아갈 반년의 삶도 감사로 준비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지난주 금요일 QT 데살로니가2장 13절 말씀 은혜를 받았습니다.
13절.......“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
주님 앞에 끊임없이 하는 감사에 대해 예 진실로 그렇습니다. “아멘”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환경이든 끊임없는 감사생활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먼저입니다.
이제 우리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키워드 이 말씀 앞에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하겠습니다.
19절 다 같이 읽습니다.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이 말씀 현장 분위기는 어떠 했을까요? 예수님과 나병에서 고침 받은 사마리아 한 사람 뿐입니다. 1대 1입니다. 병고침 받은 아홉 명의 유대인들도 치료자 되신 예수님을 통해 복음의 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이 자리에는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오직 사마리인 1명 만 듣는 복음의 선물이 무엇입니까?....... 치료자 되신 예수님의 선포적 말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몸과 영혼을 함께 치유 받은 엄청된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에게 “네 믿음이 구원을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 예수님의 복된 소식을 아멘으로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