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중앙일보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2006. 8. 29 852호에 실린 기사를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회사 살려보자 ‘오기’로 버텼죠”
엔지니어들 월급 적게 받고도 끝까지 싸워 … “M&A 때 투기자본은 절대 안 돼”
외환위기 이후 ‘대마불패’ 라는 말이 사라졌다. 아무리 대기업이라도 경영이 부실하면 언제든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세상이 됐다. 그런데 국내외적으로 엄청난 시련을 겪어 왔음에도 끝까지 버텨낸 회사가 있다. 하이닉스 반도체다. 경영부실로 결국 워크아웃을 경험하는 중에 미국과 유럽연합(EU)은 하이닉스 반도체가 불공정 무역행위를 했다며 자국 수입을 규제하는 등 끊임없이 딴죽을 걸어 왔다. 제2의 경영위기에 직면했다고 일부에서는 우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하이닉스는 지난해 1조8000억 원의 흑자를 올렸다고 한다. 그것도 12분기 연속 흑자다. 하이닉스는 어떻게 그 어려움들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 서울 대치종에 있는 하이닉스 반도체 본사를 찾아가 2002년부터 하이닉스를 이끌어 온 우의제 사장을 만났다.
2002년 당시 하이닉스는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이닉스 사장에 취임하실 당시 주위에서 무척 말렸다고 들었습니다.
“모두들 하이닉스를 비관적으로 봤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오려는 사람들도 없었지요. 제가 간다 하니 주위에서 만류하는 분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2001년 하이닉스 사외이사 시절부터 이곳의 장단점에 대해 꼼꼼히 뜯어봤습니다.”
우 사장은 ‘자금 문제’만 빼면 나머지는 괜찮다는 평가를 내렸다. 아무리 회사의 경영 문제가 심각해도 시장에서는 하이닉스 물건을 찾는 구매자들이 존재했던 것이다.
‘저희 제품은 언제나 시장에서 통했습니다. 이는 반도체 기업으로서 기술력과 생산능력이 우수하다는 의미였습니다. 이번 위기만 잘 넘기면 화사는 성장궤도를 달릴 수 있다는 것이 제 판단이었습니다. 그래서 하이닉스 사장직을 맡겠다고 결정했습니다.”
“사장에 취임하니 정말 그렇던가요?”
“예, 제 생각이 옳았기에 지금 하이닉스가 이렇게 우량기업으로 돌아온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어려운 시간을 보내기는 했습니다. 그 당시는 이따금 제가 이중인격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밤에 잠을 못 이를 정도로 속이 타고 있으면서도 직원들 앞에서는 ‘다 잘 될 거야’ 라고 말하며 밝은 표정을 짓곤 했기 때문입니다.”
2002년 하이닉스의 자금난은 심각했다. 2개월 치 자금만 가지고 회사를 운영했던 일도 있다. 부도 위기와 싸우면서 아슬아슬하게 지내온 것이다. 일부러 전기료를 천천히 낸 적도 있다. “당시 저희 한 달 전기료가 300억 원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자금 압박이 심해질 때면 저는 밤에 혼자 회사에 나와 제 방 책상 주위를 그저 빙빙 돌며 힘들어 했던 일도 있습니다.”
돈 5분의 1 들여 새 장비 개발지금은 격세지감이 크게 느껴질 것 같은데요. 어떻게 다시 일어설 수 있었나요. 경영 전략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얼마 전에 저희 거래은행 중 하나인 씨티은행 주요 임원들이 회사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같은 질문을 하시더군요. 하이닉스 회생의 일등공신을 직원들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들의 소중한 회생과 노력으로 회사가 일어선 것이지요. 저는 그때 분명히 말할 수 있었습니다. ‘누가 이기나 보자. 내가 이대로 무너질 줄 아느냐’는 오기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우 사장은 S&P와의 일화도 설명해 줬다. S&P 관계자들은 우 사장에게 더 적은 임금을 받으며 더 많이 일해야 했던 열악한 근로상황에서 왜 하이닉스의 엔지니어들은 회사에 남아 끝까지 싸웠느냐고 물었다. 역시 대답은 비슷했다. 직원들이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 사장은 특히 늦은 밤까지 수고하는 생산현장 근로자들의 공로를 자주 언급했다. 유동성 위기 당시 적절한 투자를 하지 못해 생산에 그림자가 짙어지기 시작했다. 장비가 낙후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 직원들이 이때 핵폭탄 터진 것 정도의 역할을 해냈습니다. 보통 한 세대를 건너 뛰는 반도체 생산 장비를 갖추려면 1조5000억 원 정도가 들어갑니다. 저희는 그런 돈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새 장비는 필요했지요. 그래서 기존 장비를 개조해 보기로 했습니다. 자존심 강한 연구원들과 엔지니어, 오퍼레이터들은 기존의 구식 장비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기술 개발에 함께 달려들었습니다. 그리고 성공했습니다, 비용은 3000억 원만 들어갔고 이것이 저희의 터닝 포인트가 됐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런 노력이 결실을 보아 회사의 임직원 스스로의 자존심을 세워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이닉스는 세계 메모리 반도체 회사 중 유일하게 노동조합이 있는 회사다. 우 사장은 노조에 대한 다른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저희 회사 노조는 회사가 어려울 당시 구미, 청주, 이천에 이르는 릴레이 마라톤을 하며 경영정상화를 다짐했고, 임금 자진 동결 등 적극적인 협조로 회사 경영을 뒷받침해 주었습니다. 노사가 동반자가 될 때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지난 수년간 하이닉스 노조는 임단협을 회사에 백지 위임하고 있다. 회사는 경영 실적을 공시하고 있고 매출이 호전될 때 마다 성과급을 지급해 왔다. 우 사장은 원칙에 입각한 단순하고 투명한 경영이 회사를 살찌우게 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CEO 한 사람의 판단에 따른 이사결정보다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합리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노조는 회사에 임단협 백지위임노사관계가 그렇게 좋다니 참 다행입니다. 그런데 미국. EU에서 높은 상계관세를 부과했음에도 꾸준히 수출을 해 오셨습니다. 비결이 뭔지 궁금합니다.
“미국은 44.29%, EU는 32.9%의 상계관세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어려웠을 때 채권은행들이 대출금의 만기 조종 및 출자 전환을 해준 일이 있습니다. 이를 놓고 미국과 EU에서는 불공정 무역행위라고 규정한 것이지요. 지금도 납득하기 힘들지만 결국 패소했습니다. 이제 이를 돌릴 방법은 없지요. 하지만 의외의 곳에서 원군이 나타났습니다. 가장 긴장했던 곳은 저희가 아닌 바로 글로벌 컴퓨터 제조업체들이었던 것입니다.”
주요 컴퓨터 제조업체는 유회적으로 이를 수입했다. 하이닉스는 반도체를 중국. 멕시코, 인도 등지에 수출했고 이들은 이를 그곳에 있는 공장에서 우선적으로 제작하도록 한 것이다. 애물단지 취급 받던 미국 현지 공장도 이번 일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미국 오리건에 위치한 공장은 생산성도 떨어지고 그렇다고 접기도 애매했습니다. 그런데 미국 직접 수출이 막히자 그곳이 보물 같은 존재가 된 것입니다.”
우 사장은 하이닉스 반도체의 품질이 그만큼 우수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하이닉스가 반도체 분야에서 핵심요인인 기술경쟁력과 원가경쟁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회사가 그토록 어려웠지만 세계시장에서 인정받는 제품을 내놓고 있을 정도로 실력 있는 회사였습니다.”
우 사장은 앞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원천기술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D램이나 플래시 반도체 모두 원천 기술을 상당부분 다른 곳에서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생산량에선 이 분야 선두지만 원천기술이 약하기 때문에 불안한 상황입니다. 쉽게 고소당할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성장 동력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산업 원동력이 될 원천기술 개발에 모두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좀 어려운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하이닉스의 M&A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아직은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지 않습니다. 관련 기관이야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겠지만 아직 저희가 아는 것은 없는 상황입니다. 다만 서둘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차분히 일을 하다 보면, 투지자본이 아닌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경영해 나갈 수 있는 전략적 파트너가 나타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