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아, 강을 건너지 마라
님아 강을 건너지 말랬어도
기어이 건너려다 빠져 죽으니
어찌하랴 님을 어찌하랴
- 여옥의 노래
멀고 아득한 것들을 불러서 눈앞으로 끌어오는 목관악기 같은 언어를 나는 소망하였다. 써야 할 것과 쓸 수 있는 것 사이에서 나는 오랫동안 겉돌고 헤매었다. 그 격절과 차단을 나는 쉽사리 건너갈 수 없었다. 이제, 말로써 호명하거나 소환할 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을 터이고, 나의 가용어(可用語) 사전은 날마다 얇아져간다.
(……)
제목으로 정한 공무도하(公無渡河)는 옛 고조선 나루터에서 벌어진 익사사건이다. 봉두난발의 백수광부는 걸어서 강을 건너려다 물에 빠져 죽었고 나루터 사공의 아내 여옥(麗玉)이 그 미치광이의 죽음을 울면서 노래했다. 이제 옛노래의 선율은 들리지 않고 울음만이 전해오는데, 백수광부는 강을 건너서 어디로 가려던 것이었을까. 백수광부의 사체는 하류로 떠내려갔고, 그의 혼백은 기어이 강을 건너갔을 테지만, 나의 글은 강의 저편으로 건너가지 못하고 강의 이쪽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운 그 옛노래는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그 사내의 뒷모습을 떠오르게 했는데, 들리지 않는 옛노래의 선율이 나의 연필을 이끌어주기 바란다. - ‘연재를 시작하며’

감상평을 쓰면서 ‘출판사 리뷰’를 그대로 옮겨오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제목과 본문 내용의 단절에서 가져오는 나의 조급함에서 비롯됐다. 본문 내용을 끌어다 고조선 시대, 여옥의 노래 일부를 임의로 빗대로 해석낼 수도 있으나, 그것보다도 작가가 연재를 시작하면서, 제목을 붙이게 된 연유를 먼저 듣는 것이 작품의 의도를 빨리 파악할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이런 만행(?)을 저질렀다.
역시, 베스트셀러는 조금 더 기다려서 사는 게 맞다, 라는 개인적인 생각에 확신을 갖게 해준 작품이다.
얼마 전, '하늘&바다'님도 베스트 셀러를 사서 실망했던 작품 몇 권을 나열했는데 그 중 『공무도하』가 포함되어 있었던 댓글이 생각난다. 하지만 참고하기에는 이미 늦은 일! 주문해서 손 안에 들어있던 시기였으니. 더군다나 호기심이 고양이 여러 마리도 죽인다하지 않은가.
나의 만행은 감상평을 쓰면서 더욱 잔인해질 거 같다.
한마디로 이 소설은 긴 사회면 기사를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평가때문이다.
오랜 기자 생활을 한 탓인지 관록있는 기사문체에 픽션을 덧붙였다고나 할까. 객관적인 묘사를 좋아하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점점이 별처럼 흩어지듯 펼쳐지는 사건들이 한줄로 꿰기에는 접착력이 약하다는 생각. 그 사건들은 지난 몇 년 사이에 사회면에서 읽은 기사내용이거나 변형된 것들이다.
사건의 중심에는 신문기자인 문정수와 그의 여인 노목희가 등장한다.
당신의 이름이, 짐승들을 먹이고 거두는 목희(牧姬)라서 평화로움을 느꼈습니다. (91쪽)
타이웨이 교수가 목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위 말에서 짐작하듯이 목희는 짐승들까지 포용할 수 있는 포옹력을 가진 따뜻한 여자다. 그녀가 문정수에게 자주 하는 말. 냅둬, 그냥 냅둬!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숨자 그것을 건드리지 말고 내버려두라는 말. 이 말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으면서 새삼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문정수의 안식처라 할 수 있던 노목희는 타이웨이 교수와 함께 세상 밖으로, 그러니깐 배를 타고 "저쪽" 강으로 가려는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겠다.
조그마한 인문학 출판사에 근무하는 노목희는 그 동안 김훈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느 여주인공들과 다른 캐릭터다. 김훈은 소설 속 여자를 수동적으로 등장시키거나 남자의 그림자 역할밖에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많은 독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스트들은 그를 비난하곤 했다. 긍정적이고 따뜻하기까지 한, 그리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그녀로 인해 예전부터 품어 온 불만이 다소 해결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반면,여전히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철학적이라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
짧은 대사를 주고 받지만 직업과 상관없이 의미가 깊은 말들을 툭툭 던진다. 모든 등장인물들 속에 김훈의 사고가 작용했다는 뜻일 것이고 그것은 직업의 적성에 맞게 대사를 고르기 보다는 여과기를 통과한, 예쁜 면만을 부각시켰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등장인물이 많지만 언뜻 보기에는 한인물로 보이기도 한다. 이런 의도가 김훈의 스타일일까.
문체 또한 나는 걸렸다. 너무 능숙하고 철학적이기에 눈에 거슬렸다고 하는 편이 옳다. 그만의 독특한 문체를 나는 이렇게 표현한다. 밀물과 썰물의 반복이라고. 어떤 구체어 하나를 관념어로 비유하다가 또 다른 관념어를 낳는다.
아래는 자정이 넘은 시간 목희와 정수가 라면을 끓여먹으면서 나누는 대화다. 일부를 인용해본다.
- 국물이 달구나.
- 달걀을 풀어야 해. 파만 넣으면 단맛이 뒤가 날카로워.
- 달걀이 들어가면 날카로운 게 포근해져. 둥글어지지.
- 그래? 거참…… 그렇겠구나. 그렇겠어. 맛이 둘글다.
- 파는 달걀과 잘 어울려. 뜨거운 국물 속에서 달걀이 파맛을 끌어당겨서 달래는 것 같아.
(215쪽)
피곤한 몸을 이끌고 들어온 기자인 문정수와 라면을 끓여먹으면서 나누는 대화치고는 꽤 철학적이고 예쁘다. 다섯개의 대화만 듣더라도 우리네 인생이 녹아드는 것만 같다. 이런 대화가 다른 인물들에게도 각자 대사 몇 개에 녹여내니, 그 사람이 그 사람같다는 생각. 더군다나 베트남 이민 여성, 후에까지도 지식인 같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그리고 한 가지 구체어(달걀)에 밀물(포근하다)과 썰물(둥글다)처럼 두 관념어가 들어가는데 그 간극이 유사하면서도 꽤 대조적이라는 말이다. 이런 방식의 밀고 당기는 문장들이 그의 소설 문장이라 할 수 있는데, 계속 읽다보면 능숙한 문장가가 문장을 가지고 노는 듯한 느낌이 들곤해서 갑자기 기분이 나빠진다. 좋은 내용도 자주 반복되면 지루하듯이. 나만 이런 느낌이 드는지 모를 일이지만. (김훈 소설 매니아들은 분명 내게 분노를 느낄 것이다. 너는 저 만큼이라고 쓰니? 라고.)
나는 그의 문체에 찬사를 보냈고 그야말로 '쇼킹'했던 『칼의 노래』이후,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 뒤『남한산성』에서도. 감정를 절제한 객관적인 묘사로 일관한 소설 보다 더. 하지만 이렇게 책을 사고 보니, 어떤 중독성이 나를 조정하는 것이 아닐까. 모를 일이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제목과 본문 내용과의 간극. 그의 문체 만큼이나 난해하다.
나는 이 책 제목에 먼저 반했다. 고조선 백수 광부의 애틋한 사랑 노래를 신화를 풀어내지나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역사 소설을 주로 썼던 그였기에 충분히 그럴 거라고 짐작한 것이 당연할 수도.
그럼 작가의 말처럼 강을 건너 간 혼백이 간 곳은 이상 세계라면 이상 세계의 맞은 편, 배가 정착해 있는 세계는 현실, 즉 법과 권력이라는 무기로 다른 사람을 짓밟는 약육강식의 세계라고 할 수 l있다. 작가가 이를 염두해 두고 사회면 기사 중, 인간의 비루하고 치사하고 던적스러운 면들을 부각시키는 사건 몇을 참고한다. 박옥출, 장철수, 문정수, 나목희……. 해망, 창양…….
하지만 빈약한 상상력으로 어거지로 에피소드를 연결시킨, 다소 작위적인 면이 강하지 않았나, 최종적으로 그런 생각을 해본다.
감상평하면 긍정적이 면을 부각시켜 써내려가야 하는데,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던지, 부정적인 부분을 크게 부각시켜버렸다. 하지만 실망하지 마시길. 내가 아닌 다른 독자들은, YES24를 비롯해 각종 언론매체에는 칭찬 일색이니, 이런 사람도 몇 있어줘야 균형이 맞지 않겠는가.
"인간은 비루하고, 인간은 치사하고, 인간은 던적스럽다. 이것이 인간의 당면문제다." 라는 작중인물 장철수의 말이 작가의 말임을 새기며, 신간서적인 이 책 대신 민음사 세계전집 중 30% 이상 세일하는 고전 문학을 두 권을 고를 걸, 이라는 아쉬움을 남기면서 "아쉬운" 글쓰기를 마무리한다. 책사모 회원 중, 보다 좋은 긍정적인 서평을 기대해본다.
저자 : 김훈 (金薰)
1948년 5월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바 있는 언론인 김광주의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돈암초등학교와 휘문중·고를 졸업하고 고려대에 입학하였으나 정외과와 영문과를 중퇴했다. 1973년부터 1989년 말까지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시사저널」 사회부장, 편집국장, 심의위원 이사, 국민일보 부국장 및 출판국장, 한국일보 편집위원, 한겨레신문 사회부 부국장급으로 재직하였으며 2004년 이래로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첫댓글 ㅎㅎㅎㅎ 맞아요. 베스트셀러나 유명한 작가의 신작은, 좀 기다렸다가 세간의 평가를 들어본 후에 사는 게 후회가 없단 말..남한산성은 비교적 괜찮았는데, 공무도하를 위시리스트에 넣었다가 최근에 지웠어요..주변에서 반응이 별루더라구요..글을 잘 쓰는 작가들이 늘 항상 성공적인 작품만 내놓는 것은 아닌가 봐요..사람인지라..^^
지금부터 싱클레어님과 교환했던 주디스 허먼의 '트라우마'읽으려고 합니다. 기대 가득. 그리고 전에 부탁한 책 제목과 함께 읽어야할 책도 꼭, 적어주세요. 늘 일등으로 책서평 읽어주시고 댓글
아주시니, 감사

좋은글 고맙습니다
^^
좋은 음악 고맙습니다

전 이책을 방학하기 전에 제목에 이끌려 사게 되었어요

'김훈'이라는 작가는 워낙 말이 필요없는 이름이지만 가끔 작가를 보고 읽어볼까

하고 유혹받기도 하지만 거의 작가와는 상관없이 제목과 평들로 책을 사는 편인데....이 책 또한 오로지 '공무도하'라는 제목에 끌려 사게된거죠..그러나,,, 책이 왜케 진도가 안나가던지 ...
저의 
미를 유발시키지 못하더군요 끝까지 읽을동안 스트레스 받았던 책.,, 뭔가 인물들에 연광성을 찾으려고 아니,,, 제목에 대한 기대만큼 소설또한 저에게 무언가를 안겨주길 끝까지 기다렸다고 할까요



암튼 전 이책 정말 
로였는데...
나르님도 저와 같은 이유로 구매하게 됐구만. 에고고.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한번 뜬 인기 작가는 출판사에서 적극적인 홍보를 해주니깐 쉽게 베스트셀러에 진입하는 경우가 있더라구요.
그러니 베스트셀러는 경계할 필요가 있는 듯.
진즉, 읽었으면 서평이나 써주지는 그러면 참고했을텐데~에고.
그때 하늘바다님이 댓글
았을때도 '맞아, 이책 정말 
이였어.'라고 생각하면서도 또 다른 사람이 읽으면 다른 의견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나쁜녀석님도 읽는동안 그닥 좋진 않았나 보군요...
아`
글고 전 베스트셀러 
로 안믿는편이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