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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가 있으려니까”
해가 바뀌고 2026년 부산 현대신문에는 큰스님과의 인터뷰가 실릴 예정인가보다.
25년 12월 18일에 화엄전에 현대신문사 기자가 와서 큰스님과 인터뷰하는 영상이 <다음카페 염화실>에 올려졌다.
이번달 염화실지 법문 뒤에 실릴 큰스님의 말씀은 이 인터뷰를 녹취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인터뷰를 보았다.
인터뷰를 다 보고 났을 때, 염화실지 앞 부분에는 12월 첫 번째 월요일에 화엄전에 올라가서 <만선동귀중도송>편집건에 대해서 의논한 일이나, 큰스님의 지시대로 입력해서 영어로 <챈팅 법성게>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서, ‘큰스님은 왜 중생수기득이익이나 생귀처럼 이익에 대해서 자주 말씀하셨는지’를 여쭤봤을 때 ‘사람은 누구나 부귀영화를 원하잖아. ’하셨던 말씀에 대해서 길게 써보려고 했던 계획을 멈추게 되었다.
*
2026년을 맞는 사람들에게 당부하는 큰스님의 소참법문 같은 인터뷰가 끝나고 기자가 <화쟁>에 대해서 다시 물었다.
“화쟁사상으로 정말 세상을 변화하고 사람이 변화하고 그런 메시지가 될 수 있는지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큰스님이 말씀하셨다.
“바닷물이 저렇게, 부산은 가까우니까 가서 먹어보면 똑같이 짠맛이잖아. 동해에 가서 먹어봐도 그 맛, 서해에 가서 먹어봐도 그 맛. 그런데 거기에는 온갖 강물이 다 뒤섞여 있어. 똥도 들어와 있고 오줌도 들어와 있고, 온갖 동물들의 오물도 다 들어와 있어. 그래도 그 온갖 강물들, 동물들의 오물, 사람이 쏟아부은 오물, 이거 맛이 하나도 안 나고 짠맛만 나. 바닷물맛만 난다. 결국은 화엄의 이치를 제대로 공부해서 우리가 알면. 그런 도리를 알지. 사람들이 이 생각 저 생각 이 주장 저 주장 내세우는 주장이 여러 가지지만 결국은 한마음에서 나온다. 일체유심조, 오직 한마음에서 나왔다.
‘약인욕요지(若人欲了知) 삼세일체불(三世一切佛)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이 주장을 하고 저 주장을 해도 전부 한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이 강물 저 강물 별별 호수에 있는 물이 다 바다에 들어오지만 바다는 한 가지 짠맛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주의주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그러니까 다투는 거야.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거지.”
기자는 큰스님의 말씀을 어떻게 기사로 풀어낼지 머릿속에만 맴돈다고 말씀드렸다.
큰스님께서 따뜻하게 말씀하셨다.
“그걸 제대로 이해하기는 나도 어려워. 그런데 어느 순간 딱 가슴에 와 닿을 때가 있어. 6조스님은 금강경 한 구절이 재수 있으려니까 그렇게 딱 와 닿은 거지. 또 사리불 목건련도 마찬가지고. 재수 있으려니까. 딱 그 자리에서 그만. 그거는 특수한 경우라. 그 특수한 것도 모든 사람에게 다 특수할 수가 있어. 특수하다고 ‘나는 그런 근기가 못 된다, 그런 복이 안 된다’ 이렇게 생각하고만 있으면 안 돼. 본인이 특수할 수가 있어. 일체유심조니까. 요즘 자기계발서가 제일 많이 읽히거든. 그 원리는 한결같이 일체유심조야. 생각하는 대로 된다. 마음먹은 대로 된다. 전부 그거야.”
큰스님께서 숨을 고르고 다시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철이 드니까. 철이 들었다는 말은 지혜가 났다는 뜻이거든. 지혜가 났으니까 철이 들었으니까.”
다음 부분은 운율 있는 시처럼 말씀하셨다.
“자연스럽게 모든 강물이 바다로 흘러들 듯이 화엄의 일체유심조 사상으로 접어드네.”
그리고 또 다정한 말씀이 이어졌다.
“내가 가만 보니까. 철이 드니까, 자연스럽게. 굳이 화엄 화엄 이렇게 안 해도 자연스럽게 일체유심조 화엄사상으로 접어들었다. 참 다행이지. 요즘 자기계발서는 한결같이 똑같애. 정말 신기한 원리라.”
기자가 자기계발서의 일체유심조는 좋은 뜻이지만 개인의 성공과 탐욕으로만 방향이 설정된 건 아닌지 우려했다.
큰스님께서 어색하게 웃으셨다.
“철들 때까지 기다려야지.”
“그런 말씀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펼쳐지길 당부하고 싶으신지요?”
큰스님이 다시 힘을 내서 말씀하셨다.
“철이 들어야지 시키면 안 돼. 철이 들면 저절로 설명 안 해도 알게 돼. 철들었다는 말은 깨달았다, 알았다는 뜻도 들어있고 지혜가 났다는 뜻도 들어있고 다 포함되지. 그 이상 어떻게 말해. 그 이상은 말할 게 없지.”
기자가 개인적인 큰스님과의 역사를 이야기했다. 처음으로 인사를 드리러 왔을 때 큰스님께서 보살도를 강조하셨다고 했다.
큰스님께서 기자가 하고 있는 일을 격려하셨다. 어쩌면 이 기자가 큰스님 법문에도 자주 나왔던 ‘커피와 사탕을 불교문구와 함께 나누었다’는 그 기자인지 모르겠다고, 문득 생각했다.
큰스님이 기자가 가져온 커피 이야기를 하셨다.
“그것도 마찬가지야. 그것도 보살도의 실천인데 짧게 하려면 장대교망 녹인천지어 그걸 여기 새기고 좀 더 길게 하려면 ‘약인욕요지(若人欲了知) 삼세일체불(三世一切佛)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그걸 새기고, 그것보다 더 짧게 하려면 일체유심조를 해설하고. 그것 가지고 천 번 만 번 써먹어도 돼.”
인터뷰가 아닌 함께 전법 사업을 의논하는 화엄전으로 장면 전환이 된 것 같았다. 큰스님께서 뭔가를 디렉팅하실 때 그 앞에 있으면 즐거움이 생기는데, 인터뷰를 보면서도 미소가 지어졌다.
기자가 내친 김에 1월에 쓸 인터뷰 기사도 의논하듯 다시 여쭤 보았다. 먼저 기자가 장대교망 녹인천지어의 뜻을 읽었다.
“그럼, 장대교망 녹인천지어, 그것이 부처님의 깃발이지. 원효스님의 깃발이고 내 깃발이지.”
“그 깃발을 펼칠 때 자연스럽게 보살도가 펼쳐진다고….”
기자가 물었다.
“그럼, 저절로 보살도가 실천이 되는 거지.”
“그러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높이 들어라. 요렇게 제가 이해를 해도 될까요?”
“알아서 해요.”
기자가 웃었다.
“스님, 저는 아무리 애써도 엉터리일 때가 많습니다.”
큰스님께서 위로하듯 다정하게 말씀하셨다.
“유교에서는 독서백편(讀書百遍)에 의자현(義自見)이라. 알죠 그 말?”
“들어는 봤는데.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백 번을 읽으면 그 속에 들어 있는 뜻이 저절로 드러난다. 이해가 간다. 독서백편의자현 그래서 한 백 번쯤 읽어봐. 그래도 이해가 안 되거든 또 백 번 읽어봐. 그래도 이해가 안 되면 또 백 번 읽어봐. 줄기차게 백 번 읽어봐. 그러면 저절로 뜻이 드러나. 그 길밖에 없지.”
새로 나온 <화엄경 사구게 사경집>과 일지경을 보시면서 큰스님이 말씀하셨다.
“이거 내가 처음 보는 글이 아니잖아. 60년 넘게 이걸 가지고 붙들고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거야.”
기자가 개인적인 소회를 말씀드렸다.
“큰스님을 뵈면 제가 해야 할 바를,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할, 해야 할 길을 잊어버리고 있던 것을 도전하고 싶어져요. 한 번 더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큰스님 앞에서는 누구나 그런가 보다, 하고 공감하며 웃었다.
큰스님이 다시 힘을 내서 말씀하셨다.
“내 모든 능력을 기울여서 부처님 법을 먼저 이해하는 데 힘쓰고 전하는 데 힘쓰고 그 길밖에 없어. 난 지금 다 죽어 가니까 내가 한 말의 무게는 옛날보다 더 무겁다고.”
큰스님께서 일지경을 챙겨 주셨다.
“글이 짧다고 누가 말하거든 또 한 번 쓰고 같은 말 또 쓰고 여러 장 가져가서 활용하세요.”
1월에 화엄전에 가면 꼭 일지경을 챙겨 와야지 다짐했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서 제일 부자잖아.”
12월에 ‘큰스님은 왜 이익을 강조하시는지’ 여쭸을 때 활짝 웃으며 대답해 주신 것이 생각났다.
기자가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할 때조차 크게 마음이 동요되고 공감이 되었다.
*
“큰스님께서 요즘 저보고 ‘만난 지 몇 년 됐지?’ 세 번이나 물어보셨거든요. 제가 ‘20년이요’ 하면서 ‘큰스님은 왜 이익을 강조하시는지’ 여쭸어요. 20년 만에 처음 드린 질문인데 ‘부처님이 제일 부자잖아’ 하셨거든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큰스님은, 부처님께서 그렇게 사셨으니까 당연하게 여기시나 봐요. 큰스님은 정말 부처님처럼 사시고 싶으신가 봐요.”
집에 돌아와 보살님들께 흥분하며 전달했던 장면도 떠올랐다.
“아유, 그럼, 용학스님이 그때 무상사 법문 끝나고 찻집에서 말씀하셨잖아. ‘무비스님은 경전대로 사시는 분’이라고.”
이윽고 상강례
법회의 시작
반갑다. 오늘은 드디어 등각 부분에 들어간다.
현수스님은 탐현기에서 ‘등각은 32문, 묘각은 19문으로 한다’ 고 하였는데 청량국사가 이 현수스님의 의견에 반한 것이 아니면서도 확실하게 짚어서 등각과 묘각 부위를 실제적으로 따지면 ‘등각이 47문, 묘각은 네 가지로 해야 된다’고 나누어 놓았다.
178강에서 드렸던 유인물을 다시 보면서 그 부분을 짚겠다.
공부를 할 때는 항상 꼭닥스럽게 하는 것이 좋다.
178강에서 나눠드린 유인물 2페이지.
6. 사십칠문(四十七門) 등각위답(等覺位答) : 47문으로 등각위를 말하다. 누구의 의견인가? 이것은 청량국사의 의견이라고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다. 그러나 현수스님의 의견을 배제한 것이 아니다.
제육단(第六段)
십관찰하오십일문(十觀察下五十一門) : 십관찰 아래 51개의 문은
답상인원과만(答上因圓果滿) : 인원과만을 답한다.
인과원만과 같은 말이다.
입법계품 같은 데는 인(因)이 원만해지고, 과(果)가 원만해진다, 인과가 원만해졌다,라고 나온다. 수행도 결과도 다 끝났다.
수행도 깨달음도 끝난 것을 인과원만이라고 한다. 이것이 인원과만이다.
마치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할 때 천현지황(天玄地黃)이라고 해야 맞는데 천지현황(天地玄黃)이라고 흔히 말하는 것과 같다. 인과원만(因果圓滿)이 인원과만이다.
인(因)이라고 하는 것은 수행이고 과(果)라고 하는 것은 깨달은 점, 결과물이다. 이것을
약극실이론(若剋實而論): 만약에 실제로 잡아서 실제의 분상에 나아가서 논하자면.
청량국사가 조심스럽게 ‘현수스님께서 아무리 32문 19문으로 나눴다고 하지만’ 당신도 생각이 있어서 짚었을 것 아닌가?
‘내가 실제로 나아가서 한 번 논해 볼 것 같으면’
성여래력하사문(成如來力下四門) : 아래에 네 가지 문이 돼야만, 그때가 되어야만
방명과만(方明果滿)이라 : 비로소 과가 원만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방명(方明)은 비로소 밝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묘각을 19문 전체로 하는 것은 조금 꺼림칙하다’는 말이다.
전개인원(前皆因圓) : 앞에는 모두 다 인(因)의 원만함에 속한다고 얘기할 수 있겠다, 이래놓고, 그 뒤에 ‘여래의 팔상성도를’ 가지고서 딱 잡아 낚아챈다.
팔상성도에 대해 뭐라고 해놨는가?
이팔상전오유속인고(以八相前五猶屬因故) : 여덟 개의 상으로써, 팔상 중에 다섯 개는 무엇인가?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여기까지는 모두 어디에 속하느냐? 이것은 아직 인(因)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마구니를 항복 받아서 시성정각을 하는 것부터는 과(果)에 해당한다.
이것을 보면 청량스님의 의도가 이해될 것이다.
이해가 없는 분들은 일단 들어놓고, 이 강의가 다 기록이 되니 집에 가셔서 다시 참고해 보시기 바란다.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은 시성정각이다. 인과에서 완전히 결과인 과(果)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수하항마상,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같은 정도가 되어야지 묘각으로 보는 것이 맞지 않겠느냐? 이렇게 청량국사가 자기소견을 피력하는 것이다. 그래서 말하자면,
위명팔상개시현고(為明八相皆示現故) : 팔상이 모두 나타낸 까닭인데
통입과중(通入果中) 즉분위이(即分為二) : 통틀어서 과(果)에서 묶어 그냥 앞에서 도솔래의상부터 부처님 입장에서 전부 묘각이라 보고 묶어서 굳이 얘기하자면
전삼십이문(前三十二門) : 앞의 32문은
명인원구경(明因圓究竟) : 인(因)은 구경에 속하고
즉등각위(即等覺位) : 즉 등각위쯤 되고 뒤에
십종주도솔하일십구문(十種住兜率下一十九門) : 십종주 도솔천 아래 열아홉 가지 문제는, 현수스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뭔가?
명현과원만행(明現果圓滿行) 즉묘각위(即妙覺位) : 현과 원만행이 묘각위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는 것이다.
소초에도 그렇게, 소초의 과판을 치기도 하지만, 현수스님의 의견을 청량스님이 한 번 딱 되짚어서 뒤에 오직 저 번에 뭐라고 해놨는가.
유후사구(唯後四句) 속묘각위(屬妙覺位) : 유후사구만 묘각위에 속한다고 해놨다.
그랬을 때는 우리가 그 뜻을 존중해서 한 번 더 되짚어볼 필요는 있다.
‘이것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공부하는 입장에서 한 번 되짚어 볼만은 하다’ 이런 뜻으로 한번 말씀드린다.
그런 것을 안 짚어 놓으면 ‘우리가 47문이나 32문 자르는 데만 익숙해져 있어서는 안 되겠다’ 이 말씀이다.
‘팔상성도를 따질 때도 인(因) 과(果)를 나눠놓고 했다’는 말이다. 우리는 전문적으로 공부하니까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더 좋다.
어디까지가 인(因)에 속하는가?
설산수도상까지다.
결과는 수하항마상 녹원전법상 쌍림열반상까지는 완전한 부처님, 원만한 과(果)에 해당할 수가 있겠다.
그러니까 청량국사께서도 스승이 돌아가시고 50년 뒤에 다시 글을 써야 되는 입장이라 아주 조심스럽게 뒤의 우리를 위해서 남겨 놓지 않으셨나? 금과옥조 같은 말씀을 되짚어 보는 것도 좋겠다,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47문과 4문, 32문과 19문의 구별이 똑똑히 떨어졌다.
청량스님이 47문을 그렇게 해서 잘라 놓았다.
저도 청량국사 소견을 따라간다고 말씀드렸다.
제가 세 차례에 걸쳐서 설명을 했다.
大方廣佛華嚴經 卷第五十七
離世間品 第三十八之五
四. 普賢菩薩의 二千答
6. 四十七問의 等覺位答
(1) 菩薩의 十種觀察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觀察하니何等이 爲十고所謂知諸業觀察이니 微細悉見故며知諸趣觀察이니 不取衆生故며知諸根觀察이니 了達無根故며 知諸法觀察이니 不壞法界故며 見佛法觀察이니 勤修佛眼故며 得智慧觀察이니 如理說法故며 無生忍觀察이니 決了佛法故며 不退地觀察이니 滅一切煩惱하야 超出三界二乘地故며 灌頂地觀察이니 於一切佛法에 自在不動故며 善覺智三昧觀察이니 於一切十方에 施作佛事故라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如來無上大觀察智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관찰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모든 업을 아는 관찰이니 세밀하게 다 보는 연고며, 여러 갈래를 아는 관찰이니, 중생을 취하지 않는 연고며, 모든 근(根)을 아는 관찰이니 근이 없음을 통달하는 연고이니라. 모든 법을 아는 관찰이니 법계를 깨뜨리지 않는 연고며, 불법을 보는 관찰이니 부처님 눈을 부지런히 닦는 연고며, 지혜를 얻는 관찰이니 이치대로 법을 말하는 연고며, 생사 없는 지혜의 관찰이니 불법을 분명히 아는 연고이니라.
물러나지 않는 자리의 관찰이니 모든 번뇌를 멸하고 세 세계와 이승(二乘)의 자리를 초월하는 연고며, 정수리에 물을 붓는 지위의 관찰이니 모든 불법에 자유자재하여 동하지 않는 연고며, 잘 깨닫는 지혜 삼매의 관찰이니 일체 시방에서 불사를 짓는 연고이니라. 이것이 열이니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크게 관찰하는 지혜를 얻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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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이문(四十七門)의 등각위답(等覺位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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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의 십종관찰(十種觀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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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유십종관찰(有十種觀察)하니 : 십종 관찰이 있으니
하등(何等)이: 무엇이
위십(爲十)고 : 열 가지냐? 다음에 나올 네 가지는 수행을 일으키는 방편을 설명한다.
소위지제업관찰(所謂知諸業觀察)이니: 소위 모든 업을 관찰하는 것이니
미세실견고(微細悉見故)며: 세밀하게 보는 까닭이다.
업을 관찰하면 업은 어디서 오는가? 미혹함에서 온다.
미혹함은 어디서 오는가? 무명에서 온다.
우리가 금강경 서문에 보면 머리도 꼬랑지도 없는 것이 검기는 칠흑보다 더 검고 밝기는 태양보다 더 밝다. 그걸 진심(塵心)이라고 이야기한다, 라고 나온다. 모르고 윤회를 돌 때는 혹업고(惑業苦) 세 가지를 돌게 된다. 혹업고.
고(苦), 현재 과보를 받는, 병고나 여러 가지 정신적 고통 육체적인 고통이 어디서 왔느냐? 업(業)을 지어서 고를 받는다.
업은 왜 짓느냐? 혹(惑), 미혹하기 때문이다. 지혜가 없기 때문에, 욕심에 오염돼서 업을 짓게 된다. 그러면 미혹은 어디서 왔느냐? 무명에서 왔다.
무명은 어디에 붙어 있는가? 무명은 혼자 독립적으로 설치는 것이 아니라 기생충이 사람 몸을 의지해서 기생하듯이 심체를 의지해서 달라붙게 된다.
무명이 연이 되고 심성이, 진심이 인이 돼서 발생하는 것을 인연이라 하잖는가.
그럼 모든 인연은 근본정의가 무엇인가? 본심이다
무명하고 심성하고 분리할 수 있는가? 분리할 수가 없다.
생멸과 불생불멸이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다.
파도와 물을 분리할 수가 없다.
그래서 생사열반상공화(生死涅槃相共和)요 심불급중생시삼무차별(心佛及衆生是三無差別)이다.
무명실성(無明實性)이 즉불성(卽佛性)이요 환화공신(幻化空身)이 즉법신(卽法身)이다.
마음은 몸에 있지 않고 몸은 마음에 있지 않지만 이능작불사(而能作佛事)라. 자재(自在)가 미증유(未曾有)로다. 몸과 마음이 따로따로인데도 서로 붙어살면서 말도 잘하고 보기도 잘하고 잘도 노는 것이 참 희유한 일이다.
화엄경이나 금강경이나 곳곳에서 그런 이야기를 한다.
업을 잘 관찰한다고 하는 것을 꿰뚫고 들어가면 업상 이전을 뭐라 하는가? 무명업상이라고 한다.
제가 어제까지 3일 동안 오전 두 시간 오후 두 시간씩 운문사에서 기신론 강의를 하고 왔다. 그랬더니 오늘 기신론부터 툭 튀어나온다.
3일 동안 죽다 살았다.
그래도 정진하는 스님들이 맑고 깨끗하고 전체 학생들, 학인스님들 웃는 소리에 용기도 얻고 다시 공부도 했다.
요번에는 제가 아예 딱 깨놓고 이야기했다.
공부가 끝나고 어떤 학인스님이 차를 마시면서 질문했다.
“스님, 여실불공이 뭡니까?”
“나도 솔직하게 모른다. 여실공도 모르고 여실불공도 모르고 법출리경도 모르고 연훈습경도 모른다. 그거는 성정본각의 분상이라. 성정본각은 시성정각인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내가 본 적도 없고 모른다. 설사 내가 설명해 줘서 안다 하더라도 니도 모를 것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고 니도 모르는 이 얘기를 우리 둘이 해 가지고는 시간 낭비다. 그냥 모른 체하고 살아라. 살다 보면 알 날이 있든지 없든지, 알고 죽든지 모르고 죽든지, 그거는 각자가 던져 놓고.”
제가 그렇게 말해주었다.
수업시간 첫날은 지금까지 기신론 공부를 해오시던 대종장들을 소개했다. 세계문화 유산인 운강석불을 다 기획하고 만들어 놨던 담연스님이 완전 기신론 종장이잖은가. 그리고 구마라지바의 손주 상좌 되는 삼론종의 길장스님, 법랑스님의 제자인 그분도 기신론을 가지고 종지를 펼쳤다.
그리고 너무나 잘 아는 천태 지자대사는 전부 기신론 기반 위에다가 천태교학을 세웠다. 명나라 시대 때 지욱스님이 천태종을 잡으면서 기신론열망소(起信論裂網疏)를 가지고 천태교학을 여섯 권으로 정리하였다.
그리고 화엄학 쪽에서도 명나라 시대 때 대종장 감산(憨山) 덕청(德淸)스님이, 80권 화엄경 39품 강요를 다 지은 대화엄종장 청량 징관스님을 좋아해서 자신의 호를 징인(澄印)이라고 했다. 도장 인(印)자를 써서 감산 덕청스님께서 스스로 호를 그렇게 지었는데 그 스님은 명나라 시대 때 기신론을 가지고 화엄학을 다 정리하셨다.
또 현수 법장스님 화엄3조는 현수소를 쓰면서 기신론을 가지고 화엄학을 대충 정리하셨다.
화엄5조인 규봉 종밀스님도 기신론에 과목을 치면서 화엄경을 정리하셨다.
우리나라는 말할 것도 없이 화엄의 대종주 원효스님께서 기신론소를 가지고 화엄학과 불교 전체를 회통을 치신 바가 있다. 송나라 시대 때는 장수 자선선사가 기신론 필삭기(筆削記) 스무 권을 썼다.
장수 자선선사는 낭야 혜각스님께 가서 깨치게 되는데 “산하대지가 본연청정한데, 홀연히 생겼는데 어떻습니까?” 하는 능엄경 대목을 들어서 물었다고 선어록에 나온다. 유명한 이야기다. 그 낭야 혜각스님의 가르침이자 제자에 대한 부탁이 그것이었다.
“너는 지금부터 화엄학을 전공해서 가르쳐라.”
그래서 자선선사가 화엄경을 하려고 하는 수 없이 기신론 필삭기를 짓게 되었다는 것이다.
송나라 시대 때 장수 자선선사가 지은 기신론 필삭기는 지금까지 우리 강원에서 최고의 참고서로 여겨진다.
이번에 운문사에 가서 ‘기신론을 수십 년 동안 내가 강의했는데 요번에는 강의 안 하는 것을 종지로 삼아야 되겠다’하면서 제가 그런 강의를 했다.
어떤 분들이 기신론을 공부했는가, 왜 기신론을 해야 되는가, 그 기신론을 하신 분들의 길이 어떤가, 천 년에 빛나는 그 종장들 이름을 첫날 오전, 오후 4시간을 할애해서 먼저 공부했다.
이튿날은 우리가 도저히 모르는 세계인 진여문과 생멸문 중에서도 각과 불각이 있는데 각(覺) 쪽에만 본각과 시각에 대해서 네 시간을 할애했다.
우리가 대종장인 것도 아니고 쫄병이 장군들을 얘기하는 셈인데, 대종장들하고 우리하고는 맥점이 없으니까 2일간은 강의를 안 한 셈이다.
마지막 날만 생멸문에 대해서 그중에 심생멸에 대해서 이야기하겠다, 해서 구상차제(九相次第)를 이야기했다.
업상(業相) 전상(轉相) 현상(現相) 지상(智相) 상속(相續) 집취(執取) 계명(計名) 조업(造業) 수보(受報) 아홉 가지를 이야기하고, 이 아홉 가지는 너무 어려우니까 심생멸인연에 대해서 오의(五意) 업식(業識) 전식(轉識) 현식(現識) 지식(智識) 상속식(相續識)을 이야기하였다.
주관적인 관념에서 유전연기에서 업식(業識) 전식(轉識) 현식(現識) 지식(智識) 상속식(相續識)까지 이야기하였다.
기신론은 여섯 번 정도 똑같은 이야기가 반복된다.
한 번 하고 또 한 번 하고 돌려서 하고 거꾸로 하고 바로 하고 옆으로 한다.
아홉 가지를 총괄적으로 이야기하고, 뒤에는 너무 크니까 뭉텅이 다섯 개만 가지고 이야기한다.
그다음에는 여섯 개를 가지고 역차순으로 환멸연기로 집상응염(執相應染) 부단상응염(不斷相應染) 분별지상응염(分別智相應染) 현색불상응염(現色不相應染) 능견심불상응염(能見心不相應染) 근본업불상응염(根本業不相應染)을 설명했다.
바르게도 설명하고 거꾸로도 설명하고 삼세(三細) 삼추(三麤)를 가지고 심생멸상까지도 또 한 번 설명하였다.
생멸문에만 네 번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생각과 마음이 다른 점, 탐진치가 어떻게 일어나고, 아집이 어떻게 밀어내고, 거기서 교만이 어떻게 생겨지는가? 시기 질투가 와서, 이것을 어떻게 제압할 것인가? 이런 것에 대해서 천친보살의 오위백법 하고 더불어서 오온개공을 자세하게 공부할 수 있는 것이 기신론 심생멸문이다.
원효스님께서도 거기까지만, 현시정의(顯示正義), 거품을 물고 설명하시고 그 뒤에는 설명 안 하신다. 별기에서 뚝 끊어버린다.
스님들이 그것을 공부 안 하시면 화엄경 보시기에 애로사항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몰라도 화엄경은 볼 수는 있지만, 깊이 들어가는 것은 좀 어렵다.
MRI 기계가 없으면 뇌 촬영하기가 상당히 힘이 들 것이다.
뼈가 부러져 버리면 그냥 대충 꿰어맞출 수도 있지만 엑스레이가 있으면 정확하게 할 수가 있다.
기신론이 우리한테는 엑스레이 같다.
원효스님은 뭐라고 했느냐 하면, 서문에 그래 놨다.
그것까지도 읽어 준다.
“이 기신론을 종래로 해석한 사람은 많지만, 뜻을 얻은 사람은 거의 없다.”
바둑을 두는 사람은 많지만, 이세돌 정도 두는 사람은 없다, 그리 알아라.
마지막에 가서 원효스님 당신이
“이것은 내 기록으로 남겨놓은 것이지, 모르는 너희들을 위해서 던져 놓은 것은 아니다. 세상에 성통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라고까지 하셨다.
감산 덕청스님도 그랬다. 감산 덕청스님 서문에도
“하기는 하지만, 이것은 어른들에 대한 약처방이 아니고, 철없는 오줌싸개 같은, 너희같은 머저리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내가 하는 수 없이 기신론 서문을 써놓기는 하는데, 아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장난감 같을 것이다. 아는 사람은 안 봐도 된다.”라고 하셨다.
육조스님도 금강경 서문에 똑같이 써놓았다.
“이 뜻을 금강경을 읽어도 읽어도 모르는 돌대가리를 위해서 할 수 없이 써놓지만, 영리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내 해석을 빌리지 아니해도, 충분히 응무소주 이생기심 한 구절에 인생이 정리되고, 정직하게 바르게 살 것이다. 너희들은 업장이 두꺼워서, 너희 업장 벗겨 주려고 내 숟가락을 너희한테 다 주고 간다.”
이렇게 이야기하신다.
금강경 서문, 그리고 몇 백 년 전의 감산 덕청스님, 천 년 전의 원효스님이 똑같이 해놨다.
그러면서도 감산 덕청스님은 “대승경전의 백 부 경전이 이 기신론 하나에 회통이 다 된다.” 원효스님께서는 “중전지차별(衆典之差別)을 모든 대장경 대, 소승을 막론하고 일이관지자(一以貫之者)는, 하나를 꿰뚫고 있는 것은 기유차론야(其唯此論也)라. 이 기신론 하나뿐이다. 그런데 뜻을 얻는 사람은 굉장히 드물 것이다.”라고도 하셨다.
참고로 제가 한 2년 전에 독한 마음을 먹고 기신론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오늘 화엄경 수업하기 전에 이상한 소리를 해서 좀 미안하다.수십 년간 기신론을 만 번 보고 이만 번을 보고 했는데 저는 그 뜻을 도저히 모르겠다.
‘아, 내 한계가 여기까진가 보다’
그래서 이제 포기를 할까, 내가 더이상 알 수 있는 얘기도 아니고 알아지지도 않고 내 힘은 여기까진가 보다,라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보면서 최선을 다해서 그 속에 담아 놨던 얘기, 평소에 강의에서 잘 안 하던 얘기, 안 하던 얘기라고 하는 게 책을 쓸 때는 반드시 써야 되고, 혹시나 까먹을까 싶어서 생각나는 대로 열변을 토하면서 2년 전에 한 일년 동안 유튜브를 통해서 기신론을 강의해 놓았다.
그래서 학인들한테 말했다.
“내가 여기서 기신론 강의를 앞으로도 더 잘할 수도 없고, 못해지면 못해지지 이거보다 더 할 수도 없다. 그때 강의를 잘했다는 게 아니라 이 이상 내 역량이 미치지를 못하겠다는 소리다. 혹시 나한테 기신론 강의를 듣고 싶다면 2년 전에 해놓은 기신론 강의 유튜브 영상을 봐라. 거기에 소상하게 필기하는 것도 나온다. 내 역량, 솜씨는 거기까지 밖에 안 된다. 아무리 씻고 닦아도 막걸리가 비싼 위스키가 되고 양주가 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막걸리 밖에 안 된다. 요거밖에 안 되니까 보든지 말든지는 여러분이 알아서 하고, 그러니까 더이상 나한테 묻지도 말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 내 역량은 거기까지다.”
내친김에 2년 전에 한 25년 만에 기신론 책을 내려고 했는데 범어사에 갑자기 끌려오는 바람에 책도 못 냈다.
내년에는 기신론 책을 낼까 싶다.
책을 내서 여러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것보다는 안 내는 게 차라리 나을 것도 같지만, 여기서 같이 공부하시는 스님들이 혹시나 같이 토론하고 제가 모르고 있고, 또 알고 있는 것들을 같이 의논하면서 공부하는 데 참고사항이 될까 싶다. 그래서 그런 기신론 책은 한 권 낼까 싶다.
책을 낸다면 기신론 원효소 이런 것은 이미 나온 책이 많으니 나까지 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내봤자 똑같으니 다른 사람들 낸 책을 보시면 될 것 같다.
저는 원효스님 별기를 기점으로 해서 책을 내고 싶다.
일단 책을 내면 저보다 눈 밝으신 분들이 질정을 해 주실테고 내용들을 바로 잡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우리 지원스님께서도 기신론 강의한다니까 오실 때마다 제가 계속 묻고 답하고, 묻고 답한다.
그런데 몇 번 하고 안 오시는 것 같아서 ‘오늘도 안 오시는가’ 걱정했더니 오셨다. 엄청 반갑다.
스님도 박사를 하시면서 다른 데 얼마나 강의를 많이 하시는가. 이미 많이 하셨겠지만 기신론을 공부하고 강의해 보시면 안다. 반야심경도 쇳덩어리 같은데 씹으면 안 씹힌다. 그런데 기신론은 철갑상어도 아니고 거북이 등껍질도 아니고 완전 내 이빨이 부서지면 부서졌지 기신론은 자국도 안 난다.
기신론은 원효스님 같은 분들이 보는 것이지,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원효스님이 딱 써놓으셨다.
‘이 뜻을 네가 해석한다고? 택도 없는 소리 하지 마라. 옷깃을 잘라다가 소매에 갖다 붙이는 놈들이다. 뿌리를 괜히 잘라다가 나뭇가지에 붙이는데 뭐가 되겠나? 나뭇잎을 갖다가 그 뿌리에 갖다 붙이는 격이다’
해석 자체가 안 된다는 것이다.
하물며 화엄경은 더하다.
그러나 그 옆으로 조그맣게 나 있는 토끼굴 같은 오솔길이 있으니까 그 길로 우리는 살살살살 다니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대단하시다.
화엄경을 본다는 것은 기적 같다.
제가 어제 아레 운문사도 갔다 왔는데 운문사 가기 전에 극락에 좀 다녀왔다.
이만한 극락이 없다.
밥 맛있고 꽃 잘 피고 새 잘 울고 화엄경이 있는 이런 극락에 살 때, 화엄경 한번 강의 들어가겠다.
너무 군소리해서 죄송하다.
지혜를 불법을 보는 관찰이니 여러 업을 관찰하는 것이니 그냥 쑥 읽어 버리면 아무것도 아닌데 세밀하게 보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 정도로 세밀하게 보는가? 백 번 천 번 보고 백 번 천 번 묻고 답하고 묻고 답하는 것이다. 그럴 때 어른스님들이 상당히 소중하다.
청량국사가 없었으면 그냥 32문으로 뭉뚱그려서 넘어갔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 묘각입니까?”
청량국사가 딱 깨놓고 “여래의 힘을 얻었잖아. 성여래력”
여래의 힘을 얻었으면 수하항마상이잖은가. “그때부터 진정한 묘각이다” 이렇게 딱 해놨다.
32문이다 47문이다가 중요한 게 아니다.
“왜?” “아, 이렇구나.”
뜻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도 글 해석은 누가 못 하겠는가.
요즘 AI에게 해석을 시켜놓으면 번역 잘한다.
근데 AI는 뜻을 모른다.AI는 돌대가리다.노래도 만들고 화엄경 뿐만 아니고 제가 눈이 아프다 싶으면
“AI 알제?”
“예, 스님.”
꼭 스님이라고 한다. 하도 하니까 지도 내가 스님인 줄 아는가 보다.
“단디 번역해라. 직역을 하되 자연스럽게 현대어로 알겠지?” “예!”
“너무 복잡하게 하지 말고 확 줄여 가지고 노래처럼 만들어 봐.”
“예!”
기똥차게 한다. 어제도 AI에게 ‘상속상’을 번역시켜놨더니 ‘속상’이라고 했다. 너무 시켜서 지도 좀 속상했는가 보다.
AI가 있으니까 여러분들이 공부하기에 한결 수월하시다.
근데 자기 실력이 없는 사람에게 AI를 갖다 대면 지도 죽고 AI도 죽고 뒤죽박죽이다.
일을 할 줄 아는 주인이 있으면 머슴도 힘이 안 든다.
일을 할 줄 모르고 일머리를 모르는 주인을 만나면 머슴도 죽고 주인도 죽고 일도 안 되고 다 죽는다.
AI를 굴리고 사느냐, AI의 굴림을 당하고 사느냐, 마음을 굴리고 사느냐, 마음의 번뇌 굴레가 당기느냐, 지금 이 문제다.
요즘 AI AI 그러니까 만능 같지만 사람보다 만능이 어디 있는가? 사람이 진짜 최고의 AI다.
사람이 최고의 AI다.
AI는 이렇게 말을 자연스럽게 못 할 것이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사람들은 AI 머슴한테다 절을 하고 있다.
지제취관찰(知諸趣觀察)이니:여러 길을 아는 관찰이니
불취중생고(不取衆生故)며 : 중생을 취하지 않는 연고며
지제근관찰(知諸根觀察)이니: 여러 근을 아는 관찰이니
요달무근고(了達無根故)며: 근이 없음을 통달하는 연고다.
*
지제법관찰(知諸法觀察)이니 :제법을 관찰하는 것이니
불괴법계고(不壞法界故)며 :법계를 깨뜨리지 않는 연고이고
견불법관찰(見佛法觀察)이니 : 불법을 관찰하는 연고이니
근수불안고(勤修佛眼故)며: 부처님 불안의 눈을 부지런히 닦는 연고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경전은 항상 이렇게 대구로 이루어져 있다.
법성게도 대구로 땅땅 땅땅 되어 있다. 법문 들어오기 전에 만선동귀집도 봤지만 모든 것이 대구로 되어 있다.
우리가 제일 잘 아는 천수경도 어떤 대구가 있는가?
여래의 10대 발원문
원아영리삼악도(願我永離三惡道) 삼악도를 네가 어떻게 벗어날래?
원아속단탐진치(願我速斷貪瞋癡)하겠습니다.
원아상문불법승(願我常聞佛法僧) 불법승 삼보를 네가 어떻게 듣고 공부할래?
원아근수계정혜(願我勤修戒定慧) 계정혜를 닦겠습니다.
아, 계정혜가 바로 삼보를 공경하는 거구나. 그래서 우리가 예불할 때 계향 정향 하는 거구나. 그다음에
원아불퇴보리심(願我不退菩提心)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에서 물러나지 않겠습니다. 어떻게 안 물러나느냐?
원아항수제불학(願我恒隨諸佛學)이다.
원아결정생안양(願我決定生安養) 결단코 내가 극락에 태어나겠습니다. 어떻게 태어날래?
원아속견아미타(願我速見阿彌陀) 아미타불 염불을 하겠습니다. 원아분신변진찰(願我分身遍塵刹) 여기저기 모든 데에 가겠습니다. 모든 중생을 제도하겠습니다. 어떻게?
원아광도제중생(願我廣度諸衆生) 여기도 구조가 똑같다.
경전은 무조건 이렇게 자세하게 자비롭게 되어 있다. 저는 이것을 자비라고 생각한다.
딱 제시하고 답이 있고 제시하고 답이 있다.
여기 전체 등각에 나오는 갈래도 그렇다.
보시가 나왔다면 저 밑에 지계 인욕이 쭉 나와 버리고 자무량심이 나오면 비무량심 희무량심 사무량심 나오고 그렇게 쭉쭉 되어 있다.
의상대사께서 화엄경의 요지는 어디에 있다고 했는가?
39품 중에 십지품에 있다고 하였다.
십지품에 화엄경의 요지가 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십지품이 뭡니까?’ 이래야 된다.
십지품이 있다고만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십지품이 왜?”
이렇게 해야 된다.
보시섭 애어섭하는 사섭법 하고,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 방편 바라밀이 전부 십지품의 단계 단계 수행이잖은가.
“십지품의 수행은 뭡니까?”
“바라밀입니다.”
“그러면 당신의 평생토록 중노릇하면서 수행이 뭡니까?”
“십바라밀입니다.”
그러면 간단하다. 그런데
“난 선방을 안 다녀가지고 난 뭐가 안 되고.”
십바라밀에 선방이 다 포함되잖는가.
지혜를, 불법을 보는 관찰이니, 불안(佛眼)을 불법을 보려니까 당연히 부처님의 눈이 있어야 된다. 부처의 눈을, 불안을 부지런히 닦는 연고이고
득지혜관찰(得智慧觀察)이니:지혜를 관찰하는 연고이니
여리설법고(如理說法故)며:이치대로 법을 말하는 연고이고
무생인관찰(無生忍觀察)이니:무생인을 관찰하려는 연고이니,생사가 없는 지혜 그걸 꿰뚫고 무생의 인을, 불생멸의 인을 관찰하려고 하니
결료불법고(決了佛法故)며 : 결정코 불법을 분명히 아는 연고이고
*
불퇴지관찰(不退地觀察)이니:불퇴지관찰이라. 물러나지 않는 자리의 관찰이니
멸일체번뇌(滅一切煩惱)하야:일체 번뇌를 멸하고
초출삼계이승지고(超出三界二乘地故)며: 삼계와 이승의 자리를 초월하는 연고이고
관정지관찰(灌頂地觀察)이니: 정수리에 물을 붓는 지위다.
관정지가 되면 어떻게 되는가?
법왕자주 위에 마지막에 결론인데 법운지쯤 되는 것이다. 부처님의 지위다.
어일체불법(於一切佛法)에 :모든 불법에
자재부동고(自在不動故)며: 자유자재하여 동하지 않는 연고이다.
요런 것들도 여기에서 십지품의 맥락을 쭉 설명해 놓은 것이다.
선각지삼매관찰(善覺智三昧觀察)이니: 잘 깨닫는 지혜 삼매의 관찰이니
어일체시방(於一切十方)에: 일체 모든 시방 세계에서
시작불사고(施作佛事故)라: 불사를 짓는 연고이니라. 우리가 축원문할 때 ‘시작불사도중생(施作佛事度衆生)’ 하는 게 ‘아, 이 화엄경에 나오는 구절이구나’ 이렇게 알 수가 있다.
축원할 때 시작불사 많이 하실 것이다.
여기 화엄경 이세간품에 딱 나온다.
시위십(是爲十)이니: 이것이 열 가지이니
약제보살(若諸菩薩)이:만일 보살이
안주차법(安住此法)하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즉득여래무상대관찰지(則得如來無上大觀察智)니라:즉득해서 여래의 무상 대관찰지혜를 얻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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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철이 들어야지.
석대원성보살님 녹취에 이어서 한번더 복습
묘미가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讀書百遍에 義自見...어른 스님의 근황을 반갑게 듣는 스케치가 참 환희롭습니다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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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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