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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적 사랑의 길
의식혁명 100번 읽기에 마음이 가기 시작했다
2021년 7월 4일 일요일..
의식혁명 묵상중!!!
의식혁명 18. 건강과 질병과정
전시대에 걸쳐
'일정한 질병이 특정한 감정 및 태도와 연결되어 있다'
는 것은 공통된 관찰결과였다.
예컨대
중세의 멜랑콜리라는 개념은
우울증을 간손상과 결부시켰다.
현대에는
많은 신체장애가
스트레스 감정과 명확히 결부되었다.
감정에 신체적 귀결이 따른다는 것은
널리 기록되어 있다.
'멜랑콜리'는 기원전 4세기에 만들어진 용어로 알 수 없는 우울함이나 슬픔, 애수, 침울함 등의 감정을 의미한다. 검은색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멜랑(melan)과 담즙을 의미하는 콜레(chole)의 합성어로 직설적인 의미는 '흑담즙병'이다.
정신분석 초기에
특정질환과 특수한 심리적 갈등을
동일시하려는 연구에서
정신신체 의학적 연구의 장이 태동했다.
우리는 심장질환과 A형 성격간의 관련에 대해
그리고 억압된 분노가
어떻게 고혈압과 뇌졸중으로 귀결되는지에 대해
익히 들어왔다.
추정에 따르면
장기를 통제하는 것과 연관되는 뇌의 여러영역에서
감정은 신경전달물질의 변동을 통해
호르몬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
최근 몇년간 AIDS확산에 대한 우려는
연구자들이 신체 면역계를 연구하도록 이끈
커다란 유인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스트레스로 경험되는 것은
흉선억제로 귀결되어
그 결과 신체방어는 손상되는 듯하다.
https://cafe.daum.net/panicbird/S3RO/198
그러나
스트레스라는 주제에 관한
다양한 연구법은 신념체계와 태도의 관계,
그리고
개인적 경험의 본성을 결정하는
지각이라는 결과적 맥락의 관계를
고찰하는데 실패한다.
스트레스의 기원은
자극에 특정하고
특징적 패턴으로 반응하는
유기체의 성향과 항시 관련된다.
비선형 동역학과 끌개 연구의 수학으로부터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
(이는 근육테스트와 침술을 통해 임상적으로 확증되었다)에 기대어
우리는 질병과정 자체의 기본적 본성에 대한
어떤 정식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어떤 관념이나 생각의 무리가
긴 시간을 두고 지속되는 경향이 있는 태도로
의식속에서 일어난다.
태도는
그 뒤에 상응하는 한 특수한 지극이며,
특정한 감정을 유발하기 위해 적당한 사건들이 꾸며진다.
모든 태도, 생각, 신념은
또한 신체의 모든 장기로 가는 에너지 경락이라고 불리는
다양한 경로와 연결되어 있다.
근육테스트를 통해
특정 경혈점은 특정한 태도와 연결된다는 것,
차례로 경락은
특정 근육과 장기로 가는 에너지 채널로 기능한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다.
특정한 경락들은
전통적으로 그것이 에너지를 불어넣는
장기를 따라 이름지어졌다.
예를들면 심경, 담경 등등
이 중추적인 내적 의사소통에
신비스러운 점은
전혀 없다.
그것은 단 몇초만에
누구든 만족할 수 있을 만큼
입증될 수 있다.
다들 알다시피
만일 우리가 특정한 부정적 생각을 마음에 품는다면
특정근육이 약화될 것이다.
그 다음에
그 생각을 긍정적 관념으로 대체하면
같은 근육이 당장 강해질 것이다.
마음과 몸의 연결은 즉각적이어서
몸의 반응은 꼬리를 무는 생각 및
그와 결합된 감정에 반응하여
시시각각 변동하고 변화한다.
우리는
비선형 동역학과 그것의 수학에서 도출되는
'초기 조건에의 민감한 의존법칙'에 관해
언급했다.
이것은
입력패턴에서의 사소한 변동이
최종적 출력에서 의미심장한 변화로 귀결되는 방식을
묘사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왜냐하면
장기간에 걸친 미세한 변동의 반복은
패턴의 점진적 변화를 낳거나
혹은 증분이 로그값으로 늘어날 때
새로운 고조파로의 도약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미소한 변동의 효과는
그것이 최종적으로 전체계에 작용할때까지
증폭된다.
그리고
새로운 에너지 패턴이 진화하는데
그것은 동일한 과정에 의해
그 다음에 그 이상의 변동으로 귀결될 수 있다.
물리학의 세계에서는
그 과정을 난류(tubulent flow)라고 한다.
그것은
특히 공기역학 분야에서
물리학과 수학을 결합하는
방대한 연구주제이다.
그런 난류가
의식의 끌개장안에서 발생될 때
그것은 새로운 수준의 평형이 구축될때까지
계속되는 감정적 혼란을 빚어낸다.
마음이
부정적 세계관에 지배될 때
직접적 결과는
다양한 신체 장기로 가는 에너지 흐름에서
미세한 변화가 반복되는 것이다.
전체적 생리의 미묘한 장은
전자전달, 신경호르몬 균형, 영양 상태 및
그 비슷한 것을 매개로 하여
그것의 모든 복잡한 기능이 다 영향을 받는다.
결국
극미한 변화의 축적은
전자 현미경법, 자기공명영상, x선,
혹은 생화학적 분석과 같은
측정기법을 통해 식별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변화를 탐지할 수 있을 무렵에는
질병과정은 이미 한참 진행되어 있다.
우리의 생각과 태도라는
보이지 않는 우주가
신체의 습관적 반응의 귀결로서 가시화되는 거라고 말할 수 있다.
끊임없이 마음속을 지나가는 수백만가지 생각을 감안하면
몸 상태가 유전적 환경적 요소들에 의해 수정되는 것처럼
지배적 사고패턴을 반영하는 쪽으로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자극의 지속과 반복은
초기 조건에의 민감한 의존법칙을 통해
관찰가능한 질병과정으로 귀결된다.
질병과정을 일으키는 자극은
너무도 미소하여 탐지 자체가 안될 수도 있다.
만일 이러한 질병발생 모형이 올바르다면
모든 병은
사고패턴과 습관적 반응을 바꿈으로써
돌이킬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전 역사에는
인류에게 알려진 온갖 질병으로부터의
자연발생적 회복이 기록되어 있다.
전통의학은
자연발생적 치유에 관해 기록하고 있으나
그런 현상을 조사할 개념적 도구에 대해서는
기록한 바 없다.
여담으로
철저하게 현대적인 외과의사라 하더라고
수술도중에 자신이 죽을거라고 확신하는 환자를
수술하는 것을 상당히 꺼리는 것을 보는 것은 흥미로운데,
왜냐하면 그런 환자에게는
종종 그런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
익명의
알콜중독자회에서는
대상자가 본질적 변화를 경험하기전까지
회복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성격의 본질적 변화는
AA 설립자 빌 W가 최초로 나타낸 기본적 변화로서
전 신념체계에 심원한 변형이 일어나고
의식의 갑작스러운 도약이
그 뒤를 따른다.
태도의 그런 변모를
최초로 정식으로 연구한 것은
미국의 정신과 의사 "해리 티보트'였다.
그는 AA 최초의 여성이었던
어느 가망성없는 알콜중독자를 치료했는데,
그녀는 기존이 어떤 치료법을 가지고도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성격의 심원한 변화를 겪었다.
그녀에 대한 관찰 결과를 담은
일련의 논문 중 첫번째에서,
티보트는 그녀가 화내는 자기연민에 빠진, 편협한,
에고 중심적인 인간에서
친절한, 부드러운, 용서하는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형되었다고 기록했다.
그녀의 사례가 중요한 것은
변형이라는 요소가
진행성이거나 가망없는 모든 질환에서 회복하는데
얼마나 핵심이 되는지를
명료히 입증해주기 때문이다.
The key to the understanding of conversion is the act of unconscious surrender
Pastoral Psychology volume 1, pages32–41(1950)Cite this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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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itations
The success of A. A. in the alleviation of alcoholism has provided psychiatrists with a rich source of clinical material for a study of the religious process. The paper which follows is a discussion of one aspect of that process, namely, the act of surrender. It was prepared for a psychiatric audience; it may have some pertinence for the pastoral group since it represents at least an effort at understanding the religious life. Fully aware of its deficiencies, I offer the paper in the hope that it may seem to contain a measure of truth and be of some value to pastors in their relationships with their parishioners.
가망없는 불치병으로부터의 회복에 관한 모든 연구사례는
병리적 과정으로 귀결된 끌개패턴이
더이상 지배하지 않게 된 의식의
그런 대대적 전환이 있다.
그런 중증 질환에서
회복하는데 필요한 단계를 정식화하는 것은
병에서 회복한 최초의 100인의 알콜중독자들이었는데,
그것은
AA와 뒤따라 생긴 모든 12단계를 따른 결과
수백만명이 회복한 사실은,
그러한 경험이 모든 질병과정에
보편적 적용가능성을 가질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칼 융이 로랜드에게 해준 충고
"믿음이 있든 없든
마음이 끌리는 영적 모임에 진심으로 투신하십시요.
그리고 내 경우에는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지세요"
는 진행성 질환에서 회복하기를 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진실일 수 있다.
자연적으로 회복하면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현저히 커지고
하나의 치유요소로서 사랑의 중요성에 대한 앎이
크게 높아지는 일이 자주있다.
수많은 베스트 셀러들은
'사랑하는 것은 건강하게 사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지만,
그러나 동료인간에 대한 사랑은
우리가 서로에 대한 비난, 두려움, 미움을
그칠때야만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근본적 변화는 혼란스러울 수 있다.
성장의 일시적 불편을 견뎌 낼 수 있는 용기가 요구되는데,
마음은 자부심으로 하여 변화에 저항하는 경향이 있다.
일체의 질병과정에서의 회복은
자신과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을 탐험하려는
자발성에 달려있다.
거기에는
신념체계가 흔들릴때의
내적 두려움을 견디는 능력이 포함된다.
사람들은 미움과 불평을 품으며 그러한 것에 달라붙는다. 그래서 인류를 고치려면 전주민을 원한, 공격 복수의 생활양식으로부터 떼어놓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200이하의 에너지 장과 결합되어 있는
생각과 행동에서의 주된 어려움은
그런 것이 역반응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관찰가능한 우주의 잘 알려진 법칙 하나는
물리력은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인 반작용력을 낳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공격은
정신적인 것이든 물리적인 것이든
반격으로 귀결된다.
악의는 말 그대로
우리를 병들게 한다.
마음에 품은 원한의 희생자는
항상 자기자신이다.
은밀한 적대적 생각조차
자신의 몸에 대한
생리적 공격으로 귀결된다.
한편
사랑과 마찬가지로
웃음은 치유한다.
왜냐하면
웃음은 작은 맥락을 더욱 크고
포괄적인 맥락에서 바라볼때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바라볼 때
관찰자는 피해자연하는 태도에서
떨어져 나온다.
모든 농담은
우리의 실상이 사건들의 세부너머에 있는
초월적인 것임을 일깨워준다.
예를들어 교수대 유머는 모순의 대립되는 측면들을 나란히 늘어놓는 데 바탕을 둔다. 기본적 불안이 가시고 나면 웃음이 터져나온다.
갑작스레 깨닫는 각성이
자주 동반되는 것 하나가
바로 웃음이다.
우주적 농담은 환상과 실상의 나란한 비교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유머없는 것은
건강과 행복에 해롭다.
전체주의 체제는
어떤 수준이든
눈에 띄게 유머가 결여되어 있다.
웃음은
수용과 자유를 가져오며,
전체주의적 지배에 대한
하나의 위협이다.
결국,
유머감각이 뛰어난 이들을 억압하기 어렵다.
사람이든, 제도든 또는 신념체계든 간에 유머없는 것을 조심하라.
왜냐하면
유머없는 것은
항시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충동을 동반하기 때문인데,
설령 그것이 선포한 목표가
번영이나 평화의 창조라 해도 그렇다.
평화는
그런식으로 창조되지 않는다.
평화는
그것을 방해하는 것이 제거되었을때의
자연스러운 형태다.
현실적 목표로서의 평화에 진심으로 전념하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극소수인데,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관계나 자신에게 어떤 손해가 끼치더라도
개인적 삶에서 정당한 쪽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독선적 위치성은
평화의 진짜 적이다.
해법을
강압의 수준에서 구할 때
평화로운 해결은 가능하지 않다.
매우 약한 끌개장과 결합되어 있는 제도는
그것에 내재된 부정직성으로 인해
비효율적이고 낭비적이고
거치적거리게 된다.
보건 산업을 예로 들어보자. 그것은 두려움과 규제에 짓눌려 있어 기능하기 힘들 정도이다. 보건산업자체는 통제하려는 시도가 어떻게 악화되어 관료주의적 난국의 출현에 이르게 되는지를 입증해준다. 복잡한 것은 비용이 많이 드는데, 보건 시스템은 그 구조의 바탕에 있는 태도만큼이나 허약하고 비효율적이다.
개인적 질환의 치유(혹은 보건 산업자체의 치유)는
동기를 제고하고
자기기만을 버리는
점진적 단계를 밞음으로써만
일어날 수 있으며
그런 단계를 거쳐야
새로운 선명한 시야가 얻어진다.
거기 악당은 없다.
결함은 시스템 자체의
그릇된 정렬에 있다.
건강 효율성, 번영이
실상과 조화로이 존재하는 자연스러운 상태라고 할때
그보다 못한 일체의 것은
관련된 시스템 외부에 있는 것에 비난을 투사하기 보다는
내부적 정밀조사를 요한다.
끌개패턴은
뉴턴의 물리법칙은 아니라고 해도
그 자체의 물리법칙을 따른다.
즉 용서하는 것은 용서받는 것이다.
반복해서 관찰한 것처럼
모든 것이
다른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는 우주에서
우연한 사건 같은 것은 없다.
그리고 우주를 벗어나 있는 것은 없다.
원인의 힘은
보이지 않고 결과의 나타남만 관찰할 수 있으므로
"우연한 사건이라는 환상'이 있는 것이다.
갑작스럽고 예기치 못한 사건은
두서없어 보이고
또한 관찰가능한 원인들과는
무관하게 보일 수 있지만
연구를 통해 그것의 실제 기원을 추적할 수 있다.
예를들면
갑작스러운 질환에는
항상 식별가능한
선행요소들이 있다.
사고당하기 쉬운 경향조차,
"사고"가 일어나기 전
다수의 소소한 예비단계들을 포함한다.
질병과정은
마음의 작용에서
뭔가가 어긋나 있다는 증거다.
마음은
변화를 초래하는 힘이
거하는 곳이다.
질환을 결과들의 A->B->C 세계내에 있는
물질적 과정으로만 다루는 것은
기능부전의 원인을 교정하지 않으며
그 기원을 치료하는 대신 덮어 놓는다.
태도를 바꾸는 것만으로
고질병을 신속히 치유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런 태도전환은
순식간에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실제에서는 내적 준비에 수년이 걸릴수도 있다.
그 모든 복합계내에서
'임계점은 계 전체를 바꾸는데 가장 적은 힘이 드는 지점'
이라는 점을 기억하라.
예를들면
체스판위에서 졸 하나를 옮겨 놓는 것만으로도
게임의 판도가 완전히 바뀐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념체계의 세부 하나하나가
좋든 나쁘든 귀결을 갖는다.
바로 이 때문에
고칠수 없거나 가망없는 상태같은 건
없는 것이다.
언젠가 어느곳에선가, 누군가가,
진술한 과정을 통해 그런 상태에서 회복되었다.
자신과 전 인류에게 연민을 품는 것,
그것은 진화의 고통스러운 투쟁을 통과하는 동안
회복만이 아니라 의식의 큰 발전을 돕는다.
연민을 품을때
비로소 우리는 치유될뿐 아니라 치유자가 되며, 그리고
그때 비로소 우리는
육체적이거나 영적인 일체의 문제에서
치유되기를 희망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무조건적 사랑의 수준에서
기능하는 법을 배우면
불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할까?
불행히도
육체의 원형질은 외부환경뿐 아니라
그 자체의 유전적 프로그래밍에 취약하다.
그러나
500이상의 의식수준의 관점에서 볼 때
죽음자체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삶은
육체속에 국소화되어 있는 결과인
지각의 한계에 가로막히지 않고
계속된다.
의식은
육체에 생명을 주고
육체너머 존재의 다른 영역에서 살아남는
중추적인 에너지다.
첫댓글 고맙습니다
자신과 전 인류에게 연민을 품는 것, 그것은 진화의 고통스러운 투쟁을 통과하는 동안 회복만이 아니라 의식의 큰 발전을돕는다. 연민을 품을때 비로소 우리는 치유될뿐 아니라 치유자가 되며, 그리고 그때 비로소 우리는 육체적이거나 영적인 일체의 문제에서 치유되기를 희망할 수 있다.
수많은 베스트셀러들은 사랑하는 것은 건강하게 사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지만, 그러나 동료인간에 대한 사랑은 우리가 서로에 대한 비난, 두려움, 미움을 그칠때야만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근본적 변화는 혼란스러울 수 있다. 성장의 일시적 불편을 견뎌 낼 수 있는 용기가 요구되는데, 마음은 자부심으로 하여 변화에 저항하는 경향이 있다
전시대에 걸쳐 일정한 질병이 특정한 감정 및 태도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공통된 관찰결과였다. 예컨대 중세의 멜랑콜리라는 개념은 우울증을 간손상과 결부시켰다. 현대에는 많은 신체장애가 스트레스 감정과 명확히 결부되었다. 감정에 신체적 귀결이 따른다는 것은 널리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