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 02일 “오늘의 말씀 묵상 편지”
‘그 후에 구름이 회중의 장막을 덮고’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하나님의 말씀은 출 40 : 33 – 34입니다.
“그가 또 성막과 제단 주위에 돌아가며 뜰을 세우고 뜰 문의 막을 다니라. 모세가 이같이 일을 끝마쳤더라. 그 후에 구 름이 회중의 장막을 덮고 주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더라. 모세가 회중의 장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그 위에 있었고 주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였음이더라.
(And he raised up the court all around the tabernacle and the altar, and hung up the screen of the court gate. So Moses finished the work. Then the cloud covered the tabernacle of meeting, and the glory of the LORD filled the tabernacle)”
임마누엘!!
모세가 이제 성막과 계단 주위에 뜰을 세우고 뜰의 문의 막(幕)을 다는 것으로 모세의 사역이 끝나니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그 놀라운 일은 다름이 아닌 구름이 회중의 장막을 덮고 주(主)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그 결과가 매우 중요합니다. 농사하는 사람은 농사의 결과가 풍년이어야만 합니다. 만약에 뙤악볕과 비바람이 치는 날에도 줄기차게 일하는 것도 풍성한 수확을 위한 수고일 것입니다. 그런 기대에도 불구하고 가을에 얻는 것이 빈손뿐이라면 얼마나 허망하겠습니까?
저는 이 허망한 마음을 몸으로 배운 사람입니다.
2010년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농토 40헥타를 임대하여 밭농사를 야심차게 시작하였습니다.
감자, 수박, 토마토, 참외, 콩, 오이 등을 심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시행착오로 가을에 거둔 것은 문자 그대로 빈손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파종시기를 넘겨 늦게 심은 것과 해충들의 출현이었습니다.
그 지역의 봄은 5월 초입니다. 준비된 농기구와 씨앗으로 늦어도 5월 중순에는 파종을 완료하여야만 하는데 농자금 후원이 늦었고, 씨앗 준비와 농기구 준비도 모두 정상적이지 못하여 6월 중순에야 파종을 하였으니 실패의 첫째 이유가 되었고, 두 번째 결정적인 이유는 7월 중순부터 약 보름 기간에 흰나방이 출현하더니만 그 다음 쌔까만 애벌레들이 온 들판을 지배하여 풀들을 먹어 치우는데 경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길거리에도 밭에도 이 벌레떼들이 점령해 이 밭 저 밭d로 옴겨다니며 먹어 치우던군요.
이 일들이 전 세계인들에게도 무척 충격적이었던 모양입니다. 전 세계 여러 뉴스 매체들이 이 사실을 전하기도 하였습니다. 100만에 있는 일이라고 ...
그때 저는 출애굽기에 기록된 메뚜기 재앙이 얼마나 무서운 재앙인지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은 감자밭에서 약 10톤의 감자를 수확하여 집없는 사람들이 함께 사는 공동체에 겨울 양식으로 선물할 수 있어 무척 감사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잊지 못할 것은 수박 농사를 하였는데 이 벌레떼들이 속은 파먹지 못하고 수박 겉을 파먹으니 수박에 여러 모양의 그림이 그려져 판매할 수 없어 이 수박 또한 그 공동체에 주었습니다, 그 다음 그 공동체에서 저의 별명을 ‘수박(러시아어, 아르부스)로 불려지기도 하였습니다.
지금도 미안하고 안타까운 것은 그때 감자 수확을 위하여 수고하신 분들에게 임금(賃金)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한 것이 10년이 지난 아직도 미안함으로 남습니다. 불과 500달러만 있어도 깨끗하게 지불하였을 텐데 말입니다.
그때 농사한 이유는 자립 선교를 위함이었습니다. 하바롭스크에 있던 극동방송의 자립과 아가파오 교회(러시아 하바롭스크 주 종교국에 등록한 저희 교회의 이름)의 자립 선교를 위한 몸부림이었습니다.
그때 저의 심정은 허망함 그 자체였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저에게도 아마도 그 동안 숨어있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와 밤낮으로 울며 금식하며 탄식도 하며 지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모세와 함께 성막을 건축하는 브살렐과 오홀리압도 성막의 사역을 마칠 때 회중의 장막과 성전에 구름이 회중의 장막에가득하고 주님의 성막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함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는 것 그 자체가 얼마나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현장임을 확인하였을 것입니다.
이렇게 구름이 회중의 장막과 성막에 가득하였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구름‘은 히브리어 'anan(아난)'. ’구름(cloud)‘, ’흐린‘, ’구름이 낀(cloudy)을 의미합니다.
아난('anan)의 유일한 번역이 '구름'입니다. 이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약 80회 가량 나타나는데, 그 중 4분의 3가량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한 '구름'기둥과 성막 위를 덮어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구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창 13, 14, 16, 33, 40; 민 9:12; 민 9:14; 민 9:16 등). 민 9:15-22에서 아난('anan)은 11회 사용됩니다.
성막 시대 이후 '구름'은 성전 안에 혹은 위에 있었습니다(참조: 왕상 8:10-11; 대하 5:13-14).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와 만나실 때 구름 가운데 임하셨습니다(출 19:9; 출 19:16; 출 24:15-16; 출 24:18; 신 4:11; 신 5:22; 시 97:2).
'구름'은 심판 시에 하나님의 종말론적 임재에 동반할 것입니다(겔 30:3; 겔 32:7; 욜 2:2; 그리고 습 1:15; 참조: 단 7:13).
“구름 기둥”을 제외한 '구름'에 대한 대부분의 언급들은 수증기로 된 일반적인 구름을 가리키지만 나훔 1:3은 티끌 '구름'을 언급하고 레 16:13과 겔 8:11은 타오르는 향에서 발생하는 연기 '구름'(“향연”)을 언급합니다(참조: 또한 사 4:5과 겔 1:4).
여러 회 아난('anan)은 구름의 특성과 기능에 의한 어떤 것을 설명하는데 사용됩니다. 욥 7:9은 '구름'이 사라져 버리는 방식을 언급하여 사람이 죽어서 사라져 버리는 것을 설명한합니다(“구름이 사라져 없어짐 같이 음부로 내려가는 자는 다시 올라오지 못할 것이오니”, 참조: 호 13:3). 이사야도 '구름'이 사라지는 방식을 언급하는데 이는 죄의 없앰(도말함)을 말하고 있습니다(44:22). 호세아는 오래가지 않는 선(“인애”)을 급히 사라지는 아침 '구름'에 빗대어 설명합니다(6:4).
하나님께서 욥에게 응답하실 때 바다를 옷 입히는 '구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38:9). 예레미야에 의하면(4:13) 심판이 '구름'(티끌 구름) 같이 일어날 것입니다. 에스겔은 '구름'이 던지는 그림자를 언급하며 이것을 그 땅을 침공하는 군사 떼에 비유하고 있습니다(38:9, 16, “구름 같이 땅을 덮으리라”).
히브리인들은 비가 실제로 하늘의 창문을 통해 퍼부어지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구름에서부터 내려온다는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을 주목하면 흥미롭습니다(사 5:6; 왕상 18:44, 등).
성막과 회중의 장막에 구름이 가득하였는 표현은 성막에도 회중이 사는 장막에도 구름이 가득한 모습은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하였음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에게도 하시는 일마다 하나님의 임재가 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감사합니다.
서울에서
이 우복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