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의 탐색
임병식
버스를 타거나 승강장에서 차를 기다릴 때면 사람들의 모습을 무심히 바라보곤 한다. 그렇다고 유심히 관찰하는 것은 아니다. 남녀노소인지, 학생인지 직장인인지, 그 정도만 가늠할 뿐이다.
얼굴을 스쳐 지나가듯 바라보다 시선을 거두는데, 가끔은 귀에서 눈길이 멈춘다. 다른 부위보다 조금 더 오래 바라보게 된다.
사람의 얼굴은 누구나 비슷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두 눈과 두 귀, 하나의 코와 하나의 입. 생김새는 달라도 기본적인 형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어느 날 한 사람의 귀를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인간도 결국 동물의 한 종이구나.'
귀는 얼굴의 가장자리에 바깥을 향해 돌출되어 있다. 사람의 귀를 보고 있노라면 짐승의 귀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듣기 위한 기관이라는 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다가 생각은 또 다른 곳으로 이어졌다.
'얼굴 가운데 사람이 자신의 의지로 가장 다스리기 어려운 곳은 어디일까.'
눈빛은 어느 정도 감출 수 있다. 입도 싫은 마음을 감춘 채 미소를 지을 수 있고, 표정 역시 얼마든지 꾸밀 수 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기술을 익혀 간다.
그러나 귀는 조금 다르다. 얼굴의 다른 부위보다 의식적인 통제가 훨씬 어렵다. 부끄러움이나 당혹감, 흥분이나 긴장은 귀의 붉어짐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얼굴은 속일 수 있어도 귀까지 속이기는 쉽지 않다.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며 점점 표정을 관리하는 데 익숙해진다. 미워도 웃고, 싫어도 반가운 척하며, 때로는 속마음과 정반대의 표정을 짓기도 한다. 그래서 드러난 얼굴만으로는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귀만은 끝내 정직한 편에 속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조물주는 인간에게 마지막까지 감추기 어려운 작은 신호 하나를 남겨 둔 것은 아닐까. 가식에만 기대어 살지 말고, 마음과 삶이 너무 멀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뜻 말이다.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얼굴을 꾸미는 데 더 익숙해진다. 그러나 귀는 아직도 꾸미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어쩌면 그 정직함 때문에 우리는 끝내 완전한 거짓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사람을 만나면 얼굴을 스쳐 지나 마지막으로 귀를 바라보게 된다. 그 작은 기관 속에, 인간이 끝내 버리지 못한 진실이 아직 남아 있는 듯해서이다.
(2026)
첫댓글 귀를 통해 무심한 일상의 풍경 속에서 '인간의 본질과 진실'을 길어 올린, 무척 깊고 여운이 남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는 평범한 일상에서 시작해 '인간도 동물의 한 종'이라는 본원적인 자각을 거쳐, 마침내 '귀의 정직함'이라는 주제로 나아가는 시선의 흐름이 매우 자연스럽고 흡입력이 있습니다. 누구나 매일 보는 '귀'라는 신체 부위를 새롭게 발견하시니 경이롭습니다. 눈빛, 입, 미소처럼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며 끊임없이 '꾸며내는 얼굴'과, 의지대로 다스릴 수 없어 부끄러움과 당혹감으로 붉어지고 마는 '정직한 귀'의 대비가 매우 선명합니다. 가식이 필수가 되어버린 현대 사회에서 귀를 '속일 수 없는 마지막 보루'로 해석한 지점이 무척 대단하십니다. "조물주는 인간에게 마지막까지 감추기 어려운 작은 신호 하나를 남겨 둔 것은 아닐까"라는 구절에는 인간이 끝내 완전한 거짓으로 타락하지 않기를 바라는 청석님의 따뜻하고도 준엄한 시선이 담겨 있습니다. 자신의 귀와 타인의 귀를 가만히 돌아보게 만드는 깊은 성찰의 여운을 줍니다. 꾸며낸 얼굴 뒤에 숨은 인간의 마지막 진실을 '귀'라는 정직한 거울을 통해 짚어낸 秀作이지 싶습니다^^.
가슴 따뜻한 댓글 과맙습니다.
사람의 인체중에서는 가식이 없기로는 귀가 유일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진실을 감추고 표정관리를 하고 사는 현대에 귀의 기능은 그나마 한사람의
양심의 바로미터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과학적으로는 그 이유가 분명하지만 조물주가 인간의 마지막 솔직함의 상징으로 귀의 혈색 변화를 마련해 두신 것 아닐까하는 비상한 관찰에 놀랍니다 심장 박동이나 혈압, 체온의 변화도 의지로 조절할 수 없는 자율신경이긴 하나 귓불이 붉어지는 현상에 대한 선생님의 해석이 이채롭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의 의지로 어쩌지 못하는 것이 귀의 미세한 변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