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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양대란(兩大亂:임진,병자)이 끝나고 인조 때부터 180년간 칠곡도호부가 가산 정상아래 들어서면서 내성(內城), 중성(中城), 외성(外城)이 차례로 만들어 인근 백성들을 보호하고자 만들었다.
내성은 관아를 중심으로 십오리 가량을 돌을 쪼아 견고하게 쌓았는데 인조 때 10만 명을 동원해 약 7개월 만에 쌓은 곳이다
오늘은 진남문에서 시작하는 외성은 국립공원 출입금지 구간 치키봉ㅡ진남문 구간이라 생략하고 내성인 동문에서 시작하기로 한다.
진남문위로 올라오면 국립공원 가산 분소가 있으며 그곳 공영주차장에 다 같이 주차하고 서로 인사하고 임도길 따라 천천히 오른다.
얼마 전에는 그렇게 덥더니 가을은 가을인 듯 바람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으나 보이지 않는 바람이 온몸을 스치고 지나니 잠시 흐르던 몇 방울의 땀방울을 가져가버린다
동문에서
보름 전에 회사에서 풀베기 작업했던 곳이다
산행날짜 맞춘다고 부지런히 작업해서 산행 하루 전에 작업 끝내고 손님을 모시고 걷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보름동안 산성 주변을 다니며 글이 있나 찾아봤으나 동문(東門) 바깥문에 공산면(公山面)이란 글귀와 한글로 라호태와 송성열이란 글귀만 찾을 수 있었다.
공산면에 사는 두 분이 성문을 쌓았다는건지 알 길은 없다
이곳 동문에서 시작해서 동포루(東捕樓)-가산정상-북포루(北捕樓)-북문(北問)-팔공지맥길-황학지맥 분기점 서포루(西捕樓)-서문(西門)-도선굴-가암(架岩)-중문-남포루(南捕樓)-전망바위-이경재 관찰사, 별장비석(別將碑石)-산성마을터-동문까지 6km
하늘 좋은 날
1구간 동문에서 가산 정상까지 탁 트인 조망이 일품인곳
우리나라 산성은 대략 2천3백 개
무엇을 그토록 지키고자 이렇게 산 정상을 감싸며 만들었는지
좀 더 낮은 산도 있건만 왜 이 높은 곳이여만 했는지
보리밥이라도 배불리 먹여줬는지
돌 들고 나르다 다치면 치료는 해줬는지
이것저것 생각해보다 보면 결국
옛날에 태어났다면 이곳에서 성을 쌓다가 골로 갔을지 모를 일이다.
특별한 바위나 돌이 아니라면 사람들은 큰 의미는 부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럿이 모이면 마치 용(龍)의 비늘처럼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린다.
그리고 어느 석공의 부드러운 손길로 돌을 만지면 부처가 되고 목공의 손을 거친 나무도 부처가 될 수 있다.
가산산성에는 모난돌을 네모지게 다듬어 쌓아 만들었으며 그 길 위에 반듯하거나 곧은 곳은 한 곳도 없는 돌고도는 휘어진 길만 있을 뿐이다.
동포루(東捕樓) 가는 길에
노송님께서 무릎 꿇고 깽이님께 "내 사랑받아주오"라고 했으나 "딴 데 가서 알아보세요" 라며 본척만척하시는 깽님
동포루에서 본 가산 정상과 유선대
동포루 이곳은 2중으로 만든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멀리 논산 산꾼 깽이님이 보이고
잠시 바람 속에 어울려 쉬다가
이곳에서 성위파와 성아래파로 나누어서 진행
예전에 성위로 나무가 많이 있을 때 성아래로 다니던 희미한 옛길이 있었으나 지금은 흔적만 있을 뿐이다.
이번에 작업을 하면서 찾은 옛길 속으로 들어가 본다.
희미한 옛길이지만 성벽아래로 진행하며
산성
조선은 양대(兩大) 전쟁이었던 임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생과 사를 가르는 절망적인 순간에 크고 작은 돌을 모아 절벽 위로 벽을 쌓고자 하는 절실함으로
돌 하나 하나 쌓아 올렸던 위대한 유산으로 남아있다.
위기의 순간에 절박했던 마음으로
지키고자 했던 마음
살고자 했던 희망을 가지고
아찔한 절벽 위,능선위에 높이 쌓았다.
배고프던 시절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부드럽고 걷기 좋은 성위보다 제초 작업은 했으나 다소 거친 성아래로 걷는 게 불편했지만
성을 쌓던 백성들의 힘든 하루 일과를 엿볼 수 있어
한편으로는 이 길이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가운데 10톤 정도의 입석이 보이고
돌을 쌓고 그 뒤로 흙을 날라서 보충하고 그렇게 벽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입석바위 아니면 제단(祭檀)바위
커다라 바위아래 또 다른 넓은 바위가 깔려있는데
누군가 애써 올려놓은듯하며 앞쪽에도 널찍한 바위가 반쯤 땅에 묻힌 체 밥상처럼 놓여있다.
거친야생에 있으면서도 뽀얀 모습인데 아무도 찾지 않은 그믐날 새벽에 산아래 계곡에서 씻고 온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바위로 보인다
풀 작업때 성주할배 모습
암문을 빠져나오시는 선제 지부장님
본드님
동포루에서 가산 정상 가기 전의 바람이 머무는 곳으로 올라가며
고려 4대 광종이 도덕암에 계시던 혜거대사를 국사(國師)로 모시기 위해 찾았다는 도덕산이나 왕건과 견훤이 싸웠던 동수대전의 왕산이 지척에 있고...
동수대전 이야기는 길어지니 생략
지나온 동포루와 팔공산 주능선길
정상에서 본 북포루와 용바위, 유선대
넓은 세상 두고 하필이면 산능선 절벽 끝자락에 돌을 올렸는지
평지에서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보다 잠시 뒤로 물러서야 했던 건 아닌지
가산 정상에서
오신분들:노송님,매화고문님,성주할배님,맥가이버님,설국님,선제지부장님,본드님,깽이님
북포루 가는 길에
내성은 관아와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돌로써
백성을 지키고자 했고
용바위 전망대 찾아가시는 분들
산에가면 누구나 배낭을 메는데
각자의 배낭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지만
본인 나이 숫자 많큼 같이 걸으며 나이를 먹은것이다.
바람이 머물다가는 북포루(北捕樓)에서
며칠전 풀 작업하다 성주 할배께서 이곳에서 평양기생 불러놓고 술이라도 한잔했으면 좋겠다 말씀하셨는데 굵은 전나무아래 한상 떡 벌어지게 받아놓고 평양기생과 놀아보는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을듯 하다
설국님과 선제 지부장님
성 아래로 옛길이 있으며 차츰 잊혀가는 길이다.
가산정상에서 서포루 2구간은 전나무가 여러 그루 자라는데 가을에 엄청 아름다울 곳이다.
보름동안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경사지고 험한곳에 서서 묵묵하게 풀 작업해주셨던 재미나고 개구쟁이 같았던 성주할배
이글을 빌어 감사 드린다
가산산성은 양복바지 주름잡듯 곧은 직선은 없으며
휘어지고 굽은 길이 이어지는데 초보자도 쉽게 걸을 수 있는 아름다운 길이다.
가야 할 곳으로 이국적인 풍경의 전나무가 곳곳에 서있어 분위기가 좋은 곳이다
한때는 성위로 한아름의 전나무가 많이 있었지만 성터 주변 정리하며 베어진 곳
그냥 살던 곳에 살게 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어느 공무원이 책상에 앉아 볼펜으로 살릴 것 죽일 것 표시해서 대부분 죽일 것으로 표시했던 것 같다.
그나마 살아남은 전나무들이 곳곳에 서있다
지난 7월 여름에 타키총무님이 선답해 주셨으며 그때 길안내를 해줘서 잘 걸었던 길이 지금 이렇게 회원님들을 모시고 다시 한번 더 걸을 수 있기에 타키총무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중문 갈림길에서 다시 성 아래로 걸어가며
성벽 아래로 진행할 곳이 많이 없지만 오래된 성이기에 비, 바람에 노출되어 무너진 곳이 많은데 대부분 북쪽과 서쪽의 경사진 지역이다.
성벽 아래로 진행할 때는 미리 선답 후 가보시길 권한다
성벽 위와 성벽아래
성벽 아래에도 희미한 옛길이 있기에 그렇게 불편함은 없다.
맥가이버님과 깽이님이 보이고
급경사 지역의 성벽길
급경사 지역
북문 위의 선제 지부장님
북문에서
매화 누님도 이제서야 전사의 포스가 느껴집니다
피부색도 야생에 적응되어 검게 그을러있고
몸도 가벼워 보입니다
그동안 산이건 물이건 해안이건 수없이 걸어보니 대한민국을 대표할곳 후회없이 걸어본다면 KOREA 3대 코스가 만들어진다.
첫째 한국의 동과 서를 나누는 동고서저의 백두대간 740km
그리고 한국을 대표하는 5대강인 낙동강,한강,금강,섬진강,영산강 1775km길따라 여러 도시를 만나보고
마지막으로 산이 바다를 만나고 물이 바다에 합류하는 대한민국을 감싸는 해안길이다
저승갈때 가더라도 이 세가지는 꼭 해보고 저승사자를 만나라 하고싶다.
결코 쉽지 않겠지만 시작하면 금방 끝날길이다.
잠시 팔공지맥길을 지나
성벽길을 걸으며 일부러 위험한곳을 찾아 성벽 끝자락으로 갈 일은 없겠지만
산에서 만큼 한순간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다.
서포루(西捕樓)에서
서포루 겸 지맥길 분기점에서
잠시 쉬다가
3구간 가암바위까지 이어지는데 가암의 바위아래 도선굴 부근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서포루에서 서문까지는 대부분 무너진 곳이며
일부 멀쩡한 곳도 있는데 뒤에 버티고 있는 돌에 살포기 살대고 기대선 모습이 우리네 삶과 닮은듯하다.
나에게 편안한 뒷 돌
오랜세월 버티고 선 모습은 "서있어 보니 남의 눈치 보지 말고 살라"하는듯
서문에서
이곳은 가팔환초길에 꼭 지나야 할 길이며
서문에서 가암바위로 가는 길에
무너진 곳이 많고 경사진 곳이다.
풀 작업 때 어르신분들이 무척 고생했던 곳이며
특히 성주 할배께서 고생 많으셨다
하늘 좋은 날
가암바위가 지척이고
가암 정상으로 올라가기 전에 도선굴을 찾아간다
가암바위 아래로 내려서서
대부분 사람들은 가암 정상으로 곧바로 진행하기에
가암바위아래 뭐가 있는지 잘 모른다.
저 역시 가암에 수십 번을 올랐으나 바위아래는 생각지 못했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이번 풀작업 하기 전까지..
맥가이버님이 오시고
도선굴
바위 가운데 큰 구멍으로 신라 고승 도선대사가 쇠로 만든 소와 말의 형상을 묻어 지기(地氣)를 눌러 놨지만 관찰사 이명웅이 성을 쌓을 때 이를 없애 버렸다고 한다
지기를 눌러놓지 않았다면 대구에 인물이 많이 나왔을지 아니면 도선대사 덕분에 역적이 나오지 않았는지 알길 없다
한분 한분 들어가시고
굴속은 꽤 넓은데 음기(陰氣)가 아주 강하다.
하늘에 구멍이 뚫려있고
굴속에서 본 바깥풍경
인증 담고
도선굴을 나와
해서체로 쓴 반암(盤巖)이란 글이 쓰여있고
전서체로 쓴 가암(架岩)과 갑진년에 썼다는 갑진서(甲辰書)란 글이 있다.
60 갑자로 볼 때 60년에 한 번 돌아오는 갑진년이 언제인지 정확한 년대는 알길 없다
다만 갑진년이라 하니 그런 줄 알고
휴일이라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고 가암이라 쓴 곳에 자리 잡아 잠시 쉬었다 가기로 한다
갑진년:조선 초기부터 본다면 1424년 1484년,1544년.1604년,1664년,1724년,1784년,1844년,1904년,1964년,2024년 이중에 하나 일테지만 수백년 넘었을 정도로 오래되지 않았을걸로 보인다.
가암을 떠나며
4구간 남포루(南捕樓)까지 성벽 위로 커다란 나무가 아름다운 곳
중문(中門)으로 가는 길에
자세한 후기글은 깽이님이 써주실 것이라
저는 대충
중문 다녀오시는 분들
4구간 남포루 가는 길은 나무가 많아 아름다운 길이다
깽이님 불러 세워서
봄이나 가을에 찾으면 너무 아름다울 곳을 지나며
암문을 지나
여리재 갈림길에서
남포루 지나 전망바위에 올라
내성 수문(水門)이 있던 자리인데 가산 홍수 때 수문은 떠내려가고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다
내려가면 끝인데 잠시 산성마을 영세 불망비 찾아서
내성 산성마을 터 옆에 자리하는 비석 군으로
조선시대 정 3품, 종 2품 벼슬을 하셨던 별장(別將) 세분과 관찰사 지금의 도지사를 하셨던 이경재 영세불망비를 보고 나온다
하루 동안 돌(石)의 믿음이란 주제로 걸었던 옛 산성길
빨리 가야 할 사람은 말(馬)을 타고
보여야 할 위세 등등한 사람은 멋진 가마를 타고
여유를 가지고 걷는이는 세상 다 가진 것처럼 편안하고
영조 때 신경준의 산수고에 대부분의 땅은 주인이 있지만 길이란 걷는 사람의 것이라 했으니
부지런히 걸어보는 주인공이 되시기 바라며
다음 이벤트는 사량도로 갑니다.
먼 길 찾아 주신 분들께 감사인사 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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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가산산성에 대해 자료를 찾아보니 흥미롭고 대단합니다
첫째,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조선의 국방정책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보여주는 현장입니다.
둘째, 단순한 성곽이 아니라 칠곡도호부와 군영·창고·사찰·마을까지 들어간 산악형 군사·행정도시였습니다.
셋째, 내성·중성·외성을 갖춘 대규모 삼중 산성으로서 조선 후기 산성 축성기술과 방어전략을 보여주는 대표적 유적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이곳을 동래-한양 간 교통축에 자리한 '영남 제일 관방'으로 평가합니다.
넷째 17세기 조선이 국토방위를 위해 선택한 군사적 요충지가 20세기 6·25전쟁에서도 다시 대구 방어의 전략적 지형으로 등장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가산산성은 단순히 '조선시대 성곽'으로 끝나는 문화재가 아닙니다.
임진왜란 → 병자호란 → 조선 후기 국방체제 → 칠곡도호부 → 대한제국기 폐성 → 일제강점기 → 6·25 다부동 전투 → 현대 문화유산 복원
이라는 약 400년의 한국 국방사를 한 장소에서 읽을 수 있는 곳입니다.
다음 쉬는날 바로 단녀 와야 겠습니다...
이발까지 예쁘게 해 주셨네요...
여유있는 발걸음에 가을바람이 추가되어 더 즐거위 보입니다...
한번 가보시면 홀딱 반하실것 같습니다.
그길을 걸으며 누군가의 고생이 있었구나란걸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배병만 기대해 보겠습니다..
매화 고문님에게 토날 내연6봉 가자고 했다가 가산산성에 빼껴 버렸습이다...ㅠㅠ
그러셨군요
내연산 외솔베기와 능선어딘가에 정자가 기울어져 있어 몇달전에 수리했는데 확인 하셨나 모르겠습니다.
10 월에도 내연산에 기울어진 또 다른 정자 수리하러 3번째 갑니다.
@배병만 혼산 땐 정자에 관심을 안둡니다 ㅎ
수리 오실때 냄새 풍겨 주세요..혹 쉬는날 아다리 되면 잘하고 계시는지...ㅎ
매화누님 포스가 압권입니다.
젊은오빠 노송님도 여전하시고~
부럽습니당^^
누님 보고싶으니 다음 이벤트산행때 한번 내려 오십시요.
이발 한 가산산성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날씨도 한 몫 했구요.
꾸준한 관리가 된다면 앞으로 전국 명소로 거듭날 것 같습니다.
성벽 밑에 까지 이발을 해 주셨는데 칠곡군에서 정말 감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지난 7월에 지부장님과 타키님과 함께 걸었기에 이번 풀 직업하면서 모든 구간을 기억 할수 있었습니다.
두분께 감사인사 전하며 이번 걸음에 찾아 주셨어 더 즐거운 걸음이 되었습니다.
10월 이벤트에도 오시기 부탁드립니다.
참! 산책하기 좋은 산성이 되었습니다. 7월초에 다녀오셨을 때에는 정글같은 풀을 헤치고 걸음하셨는데... ㅎㅎ 나름 뿌듯 하셨을 것 같습니다. 방장님~
오늘도 힘찬 하루 보내십시오!^^
정글같던 성벽위가 깨끗해졌죠
많은분들께 아름다운 산성길이란걸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글 감사합니다
방장님의 눈과 마음으로 감사히 한번 더 걸음해 봅니다.
가산산성 천천히 사람들과 어울리며 소풍나온 듯 다녀온 걸음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이 모두 모두 좋았던 하루 나들이
덕분에 가산산성의 아름다움을 봤습니다.
^^ 후기 잘 다듬어 보겠습니다.
앞으로도 이벤트 산행 기획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너무 좋습니다.
조상이 만든 산성길 마음에 드셨다니 기분 좋구요
깽이님의 눈으로 본 그길은 어떻게 표현될지 기대해보겠습니다.
글 감사합니다
풀베이 작업하는데도 며칠은 소요됐을 것 같네요
완전 고속도로 인데요
보름간 작업했구요
어르신들과 주말에도 작업을해서 산행날짜전에 끝내수 있었습니다.
조만간 가봐야 겠습니다
운동코스로 가끔씩 갑니다
시원하이 보기좋아요~~♡
가보시면 파란하늘아래 용의 비늘길이 마음에 드실것 입니다.
글 감사합니다
고생하신 흔적이 고스란이
남아 있고요. 야생화 두녀석을 보니 산성에 어느 정도 풀이 자라 있었음을 짐작도 가고요. 동문에서의 풍경은 환상적으로 감동
구름. 하늘.바람. 역사. 사람. ~~~~~~
야생화 두녀석 지나는 사람들의 보실핌으로 잘 살아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걷는날 날씨와 조망이 참 좋았기에 발걸음도 즐거웠구요
다음달에 뵙겠습니다
여러번 돌아본 길이지만 산성위만 다녔지 산성 아래는 가본적이 없네요.
풀이 자라기전에 가봐야할텐데 언제나 가볼지...
좋은 그림 미리 잘보고 갑니다.
예전에는 산성아래로 다녀던 흔적이 짙게 남아있는데 산성위는 조망이 좋고 산성아래는 돌을 쌓고 나르던 사람들의 흔적을 느낄수 있었기에 둘다 걸서보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번주 억새종주 잘 다녀오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