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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지식의 시장화와 그 대안
I. 서론
o 시장의 논리가 공적 영역마저도 점차 무너뜨리는 신자유주의의 흐름 속에서 대학도 커다란 변화를 겪고 있음.
- 전통적으로 공공적 지식을 생산하고 전파하던 대학에서의 지식생산의 메카니즘이 사적 자본의 논리에 종속되는 경향이 강화됨. 이를 두고 학자들은 "지식의 자본화", "지식의 사유화", 혹은 "academic capitalism"이라고 부르고 있음.
- 사적 자본과 국가의 경쟁력 논리가 현재 연구자원을 배분하는 일차적인 기준으로 됨.
- 정부나 대학당국에서는 이러한 흐름을 ‘산학협동’이라는 용어를 써가면서 정책적으로 부추기고 있음.
- 제도적으로는 ‘지적재산권’과 ‘특허권’을 강화하여 이러한 사유화를 더욱 확고히 하고 있음.
o 그러나 우리는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과연 ‘대학’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대학에서의 ‘지식생산’이란 어떠한 것이어야 하고 누구를 위한 것이어야 하는가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음.
II. 대학의 변화와 과학지식의 시장화․자본화
1. 대학 연구활동의 변화
o 서구의 경우, 교육 기능(지식의 보존과 전달)이 중심이던 대학에 연구 기능이 첨가된 것은 20세기 초반의 일이었음. 이를 흔히 “제1차 대학혁명”이라고 부름. 그런데 대체로 1950년대까지는 대학에서의 연구활동은 시장과 무관하게 순수한 학술적 활동으로 국한되었음. 그러나 1950년대 이후 조금씩 대학 연구자들이 시장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다가 1980년대에 들어와서는 각국이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산업정책의 주요수단으로 대학을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소위 ‘산학협동연구’가 활성화됨. 이처럼 1980년대에 들어와 신자유주의와 글로발화가 진전됨에 따라 경쟁력 담론이 우세하게 되면서 대학이 기업과의 밀접한 연계를 통해 경제발전의 중요한 한 축을 구성하도록 강요받고 거기에 부응하게 되는 것을 “제2차 대학혁명”이라고 부름(Etzkowitz, Webster & Healey, 1998).
** 20세기 과학정책의 변화: academic science -> military science -> public science -> industry science
o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대체로 1980년대 후반부터 대학과 산업체간의 협력이 눈에 띠게 강조되기 시작하였음. 이러한 대학 연구활동의 변화는 대학에 지원되는 연구비의 성격을 통해서도 알 수 있음. 다음의 <표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대학 연구비 중에서 기업이 부담하는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음. 물론 정부나 공공부분에서 지원하는 연구비도 사실상 상용화로 연결될 수 있는 산업지향형 연구개발에 치중되어 있음.
1989 | 1991 | 1995 | |
연구개발비(%*) | 2,292억원(8.5) | 2,886억원(6.9) | 7,709억원(8.2) |
산업체 부담(%**) | 159억원(6.9) | 358억원(12.4) | 1,730억원(22.5) |
<표 1> 우리나라 대학 연구비와 산업체 부담
자료: 이장재(1997)
* 국가연구개발투자에서 대학연구비가 차지하는 비율
** 대학연구비에서 산업체가 부담하는 비율
o 참고로 다음의 <표 2>는 작성방식의 차이로 인해 우리나라와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주요 외국의 경우에도 대학 연구비에 대한 산업체의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음.
<표 2> Business Enterprise Finance in Academia
1980 1981 1982 1983 1984 1985 1986 1987 1988 | |
호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영국 미국 | 7 9 14 26 27 27 33 42 45 82 52 147 159 176 201 170 9 25 23 5 8 20 16 16 26 64 67 78 88 117 125 137 158 51 57 77 126 119 305 344 372 413 486 561 698 763 816 |
(1985 prices) $m
자료: Etzkowitz, Webster & Healey(1998).
2. 과학지식의 시장화․자본화
o 이러한 대학 연구활동의 변화에 따라 과학지식의 자본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음. 발견과 응용 사이의 시차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으며, 대학에서 생산되는 지식에 대한 기업들의 의존도도 더욱 강화되고 있음. 아울러 예전에는 몇몇 소수의 연구중심 대학과 또한 소수의 응용과학 분야에만 적용되던 과학지식의 자본화가 이제는 훨씬 더 넓은 범위에서 진행되고 있음.
o 서구에서 이러한 과학지식의 자본화는 흔히 다음과 같은 세 단계를 거쳐 진행되었음.
- 제1단계: 지적 재산권의 확보
- 제2단계: 집단적 연구(group research)의 발전(연구팀이 준기업처럼 움직임).
- 제3단계: 대학과 기업의 접목 확립. 예) spinoff firms(contract and consulting firms, technology asset firms, product-oriented firms) -> science park
+ 우리나라의 경우, 포항공대의 산업과학연구소(RIST), 서울대 기초과학협력컨소시움(BASREC)과 연구공원, 고려대의 Techno-Complex, 연세대의 연세공학연구센터 등이 대표적인 예들임.
=> 이러한 세 단계를 거치면서 이제 대학은 “기업가적 대학"(entrepreneurial university)”으로 변모하고 있음.
3. 과학지식의 시장화․자본화가 초래하는 문제점
o 과학공동체의 규범 변질
- 일찍이 Robert Merton은 과학자공동체의 규범구조(communism, universalism, disinterestedness, organized skepticism)를 제시한 바 있었는데, 과학지식의 자본화는 이러한 규범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음. 과학지식의 시장화․자본화는 과학공동체와 기업사회와의 밀접한 상호작용을 낳는데, 결국 이는 기업의 이윤추구와 가치관에 과학활동이 종속되도록 함으로써 과학활동의 동기와 과학자사회의 인간관계, 평가 및 보상 관행 면에서 큰 변화를 초래하기 때문. 예) 최근 도입된 대학교수 업적평가시스템.
- 과학자는 진리추구라기보다는 명성과 경제적 보상을 얻기 위해 점점 가열된 경쟁구조 속에서 활동하게 되며, 그 결과 과학공동체의 규범이었던 지식의 공유와 개방적 토론, 동료의 평가에 대한 신뢰보다는 경쟁과학자들간에 비밀주의와 불신이 팽배하게 됨으로서 과학발전 자체에도 질곡이 되는 측면이 있음.
- 연구에 대한 의사결정 역시 매우 배타적으로 이루어져 과학은 점점 폐쇄적이고 분절적인 지식이 될 뿐 아니라 종종 도구주의적 사고가 과학활동을 지배하게 됨. 결국 과학자는 거대한 기업과학시스템의 한 부품으로 기능하게 됨.
o 과학지식의 상품화에 따른 공익/사익간의 갈등
- 과학지식에 대한 ‘지적 재산권’이나 ‘특허권’의 승인은 과학자가 자신의 연구결과를 사유재산으로 여기고 상품화하는 일에 집착하도록 만들고 있으며, 이에 성공한 과학자가 명망을 얻고 과학자 사이에 추종할만한 모델로 부각됨.
- 그러나 대체로 과학적 발견은 그 이전의 수많은 과학자들의 발견이나 동료들의 팀웍에 의존하고 있음에 비추어 볼 때, 특정 개인에게 특허 부여를 통해 물질적 보상을 독점하도록 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됨.
- 특히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된 대학 혹은 연구기관의 과학연구 성과가 특허를 통해 고스란히 과학자 개인이나 기업의 경제적 이익으로 전환된다는 것은 공적 자원의 사유화를 의미함.
o 대학의 자율성 상실
- 대학에 대한 연구비 지원의 대가로 기업은 대학을 자신을 위한 두뇌탱크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대학의 연구통제권에 대해서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됨.
- 특히 1980년대 이후 가속화된 신자유주의 물결과 맞물려 대학연구의 지향과 연구주제의 선정이 ‘경쟁력’에 맞추어져 지역사회와의 괴리 및 대학의 기업의존 체질의 심화현상이 나타남.
- 대학의 독립성 상실로 대학이 지닌 고유한 사회적 가치, 즉 다원적 아이디어, 비판적이고 독창적인 사고, 다양한 사회적, 경제적, 산업적, 과학적 대안들의 제시능력 등이 위기에 처하게 됨.
o 과학지식의 생산과정에 있어서 시장적 가치의 지배
- 이윤추구를 위한 상업적 연구가 그보다 응용가능성은 적지만 학문적으로는 보다 유망한 연구를 몰아낼 수 있음.
- 연구주제나 연구의 우선순위가 시장원리에 의해 정해지기 때문에 기초연구, 또는 시민이나 지역사회에서 제기되는 사회적 필요의 충족을 지향하는 대안적 연구프로그램들이 사전에 배제되는 경향이 나타남.
III. 대안의 모색: 과학지식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사회적 제도로서의 '과학상점'
o 지금까지 살펴본 과학지식의 시장화․자본화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도도한 흐름이기 때문에 이를 쉽사리 저지할 수는 없지만, 이에 대한 대안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님. 유럽과 미국 지역에서 확산되고 있는 '과학상점'(science shop)은 일종의 사회운동으로서 과학지식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사회적 제도로서 기능하고 있음.
1. 과학상점의 의미와 현황
o 1970년대 중반 네덜란드 위트레히트 대학에서 처음 만들어진 이래 네덜란드에 소재하고 있는 모든 대학들에 과학상점이 개설되어 있고(13개 대학에 35개), 현재 유럽의 많은 나라들과 미국, 카나다, 이스라엘, 그리고 한국(전북대)에 확산되고 있음(http://www.bio.uu.nl/living-knowledge/ 참고).
- 1970년대 중반 과학기술이 베트남전쟁에서 악용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과학기술을 좀 더 민주적으로 발전시키고, 일반시민대중에게 개방해야 한다는 진보적 사회운동의 분위기 속에서 과학상점이 탄생(“인간과 사회를 위한 화학”).
- ‘상점’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동네 구멍가게처럼 지역주민들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
- 미국은 시민사회 주도로 Community Based Research(CBR)이라는 이름으로 과학지식의 공공성 회복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고 있고, 최근에는 이들을 서로 연계하는 Community Research Network(CRN)을 추진하고 있음.
o 과학상점의 일차적 목적은 대학 내의 실험실이나 연구소가 지역주민들의 수요와 요구에 부응하여 사용자 친화적인 연구개발활동을 함으로써 과학기술활동이 사회와 유리되지 않도록 지역사회 내에서 과학기술과 일반 시민들을 연결시키는 것.
- 지역에서 주로 재정능력이 낮은 시민단체나 사회단체, 노동조합 등으로부터 과학과 관련된 사항에 대한 도움을 요청받으면 학생(주로 대학원생)과 전문연구자가 문제해결을 위한 과학기술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학 내의 비영리 연구공간임. 암스테르담 대학의 경우 전체 연구예산의 15% 정도를 과학상점과 관련된 연구활동에 지원함.
- 과학상점활동은 이공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고, 인문사회과학분야도 해당됨.
- 과학상점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는 도움을 요청하는 집단이 연구수행능력은 물론 연구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재정능력이 없어야 하고, 아무런 상업적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아야 하며, 구체적인 문제해결을 위해 연구결과를 활용해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시켜야 함.
+ 네덜란드의 경우, 매년 약 2000여건 정도의 의뢰가 들어오는데 전체 의뢰의 53%는 비영리 사회단체, 22%가 개인적인 것, 노동조합 10% 등.
- 네덜란드 과학상점이 주로 다루는 문제는 환경, 건강, 산업안전과 보건, 교육과 육아, 건축, 작업장문제, 그리고 문화/역사 등의 인문사회과학적 문제임.
예1) 이전에 가스저장소가 있었던 지역에 주택단지를 개발하려고 할 경우 그 지역의 토양이 인체에 어떠한 악영향을 미치는가?
예2) 집집마다 가솔린 냄새가 심하게 나는데, 해결방안을 연구해달라는 지역주민들의 요청을 받아 학생자원봉사자들과 석박사과정 학생들이 팀을 이루어 연구조사 실시. 한 오래된 주유소의 지하탱크에서 가솔린이 새나와 하수관을 타고 흘러든 것을 확인. 토질개선작업 시작.
2. 과학상점의 의의
o 과학상점은 ‘산학협동’ 이라는 이름 하에 강화되고 있는 대학지식의 자본화, 사유화 경향에 대한 하나의 반명제로서 대학의 지식생산이 대학을 둘러싼 지역사회로부터 유리되지 않고, 지역주민들을 위한 방향으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
- 대학의 지식을 사회로 이전. 특히 사회적 약자들이 대학의 전문적 지식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함 -> 지역사회에서 대학의 사회적 역할을 수행.
- 특히 우리나라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대학의 경우, 대학의 지역사회 서비스기능의 회복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음(cf. RRC).
- 사회적 문제를 대학연구와 교육과정에 끌어들임(학부생과 대학원생, 그리고 교수 등의 전문연구자들이 실생활과 유리되지 않은 연구를 수행). => 결국 지역사회가 연구자들의 연구주제 선정 및 연구과정에 참여(Participatory Action Research).
- ‘일반시민들의 지식’(lay knowledge)과 ‘전문가 지식’(expert knowledge)의 결합을 통한 보다 효율적인 문제해결.
3. 과학상점의 전망
o 전세계적인 신자유주의 파고 속에서 과학상점의 미래가 그다지 밝은 것만은 아님.
- 네덜란드의 경우, 과학상점들에 대한 재정지원이 줄어들고 있음. 어떤 과학상점은 거대 기업의 연구비를 받아 기업을 위한 연구를 수행해 사실상 과학상점으로서의 자기역할을 부정하는 경우도 있었음.
o 그러나 오히려 반면에 대학의 지식생산이 지나치게 기업의 이윤추구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는 지금의 추세에 대한 반발로 과학상점에 대한 주목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음.
- 미국의 CBR. 원래 1970년대 후반에 미 과학재단(NSF)는 “시민을 위한 과학”(Science for the citizen)이라는 연구비지원 프로그램을 만들어 예산지원을 함. 과학상점과 비슷한 지역기반 연구센터들이 만들어짐(예. 미시간대학교의 공공서비스과학센터). 1980년대 초반 레이건 정부의 등장으로 예산지원 중단.
o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그간 과학기술정책이 지나치게 산업경쟁력 향상 위주로 흘러왔기 때문에 대학의 대 사회서비스보다는 대 기업서비스가 강조되었는 바, 이는 대학(특히 국공립대학)의 사회적 존립이유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제기를 야기시킴 -> 향후 대학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모색이 증대될 것.
- 대전지역에서의 과학상점 움직임.
IV. 맺음말
o 앞에서 살펴본 과학상점은 과학지식의 시장화․자본화에 대항하는 하나의 사회적 제도로서 커다란 의미를 지니지만, 당연하게도 그것만으로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님.
o 과학상점의 제도화와 더불어, 과학지식의 공공성 제고를 위해서는 일단 다음과 같은 과학공동체 안팎의 노력들이 요구된다고 판단됨.
- 과학지식 생산의 주역인 과학자들의 사회의식과 윤리의식 고양을 위한 대학에서의 STS(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교육강화.
- 과학의 사회적 책임성을 깊이 인식하는 과학자단체의 활성화. 예) Union of Concerned Scientists, American Engineers for Social Responsibility, Physicians for Social Responsibility, Scientists for Global Responsibility 등등.
- 과학의 민주화와 공익성 강화를 촉구하는 시민단체의 활성화. 예) Green Peace, The Loka Institute 등등.
<참고문헌>
이영희. 2000. 『과학기술의 사회학: 과학기술과 현대사회에 대한 성찰』. 서울: 한
울아카데미.
이장재. 1997. 『대학연구의 현황과 미래: 연구조직을 중심으로』. 서울: 과학기술정
책관리연구소.
Henry Etzkowitz, Andrew Webster, and Peter Healey. eds. 1998. Capitalizing
Knowledge: New Intersections of Industry and Academia. New York: state
Univ. of New York Press.
Sheila Slaughter and Larry L. Leslie. 1997. Academic Capitalism: Politics,
Policies, and the Entrepreneurial University. Baltimore: The Johns Hopkins
Univ. Press.
Helga Nowotny, Peter Scott, and Michael Gibbons. 2001. Re-Thinking Science:
Knowledge and the Public in an Age of Uncertainty. Cambridge: Polity Press.
Alan Irwin. 1995. Citizen Science: A Study of People, Expertise and Sustain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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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hard E. Sclove. 1995. Democracy and Technology. New York: The Guilford Press.
▶ 원문 : http://www.korea.ac.kr/~isr/data/leeyoungh.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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