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계절 중 봄이 가장 좋다. 온 우주 만물이 춤을 추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 친구들과 2박3일 일정으로 용인 한화리조트 베잔송에 모였다. 작년 여행 때는 인공관절 수술 후유증으로 내 얼굴이 묵은지 같았다.
올해는 여행 오기 전 살도 찌우고, 얼굴에 팩도하고, 찍어 바르고 열심히 노력해서 나도 친구들처럼 살짝 절인 겉절이가 되고 싶었다. 친구들을 만나보니 얼굴에 무슨 짓을 한 것 같지는 않은데, 그 나이에 생절이 같이 싱싱하다. 나의 피나는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 내 친구들은 우아하게 참 예쁘게도 익어간다.
옛날 같으면 70대 후반이면 종합병원에 생존해 있는 것만도 대단하고 장수했다고 할 나이다. 요즘은 자기 나이에서 17년을 뺀 나이가 우리의 정상 나이란다. 모두 60세쯤 되어 보인다는 표현이 정확할 만큼 아줌마같이 건강한 모습이다. 이렇게 만날 수 있어 감사하다. 우선 왕갈비탕으로 점심을 먹고 숙소에 짐을 풀었다.
미세먼지가 심각해서 실내에 있는 오산 버드파크에서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입장료가 경로우대없이 2만 3천원이다. 좀 비싸다고 중얼거렸더니 쿠팡으로 사면 어린이 가격이 허용되어 1만5천500원이다. 쿠팡으로 입장권을 끊고 기념품 가게에서 4천원을 주고 동물과 새먹이를 사서 입장했다. 그 속에는 파충류 포유류 양서류 조류 등 다양하다. 비단 잉어 수족관도 있는데 좀 지저분한게 옥에 티다.
새들에게 모이를 주는 체험을 했다. 앵무새에게 모이를 주니 어깨, 모자, 손에 날아들고 손바닥 먹이를 쪼아 먹는다. 앵무새가 사람 흉내를 내는 말을 한다기에 내가 "사랑해요" 해도 답이 없다. 오로지 "안녕하세요" "아빠" 라는 말만 하는 걸 보니 따라하는 말이 한정된 것 같았다. 십자매에게 모이를 주니 우루루 날아와서 모이를 쪼아 먹는 게 귀엽고 신선하다. 동물들에게도 야채를 주니 받아먹는 게 신기해 새로운 구경거리가 됐다.
거북이는 몇 백 년을 산다는데 목을 길게 뺀 거북이의 모습은 처음 본다. 뱀은 사람의 심장을 멈추게 하는 재주가 있다. 가다가 엄청 큰 징그러운 뱀을 보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시골에 살다보니 뱀과 조우할 기회가 잦다.
평일이라 입장한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아 여직원이 우리가 보기 좋은지 말을 걸어온다. 어릴 적 동창생 친구들과 왔다니 부럽다고 한다. 특별히 우리에게 꼼꼼하게 해설하면서 체험장을 구경을 잘 할 수 있었다. 빠짐없이 한 바퀴를 돌고나니 목이 마르다. 휴식공간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우리가 젊었다면 가슴 떨릴만한 훤칠한 중년의 멋진 남자가 왔다. 우리를 안내했던 여직원이 버드파크의 대표님이라고 소개한다.
멋진 바리톤 음성으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비싼 커피를 2층 카페에서 마시고 가라고 한다. 웃으면서 "한잔에 3만원쯤 하겠지만 제가 대접한다"는 멋진 멘트를 남기고 그곳을 떠난다. 목도 마르고 후텁지근한 실내 공기에 지치려고 하던 차에 단비였다. 복숭아 주스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컵에 한 가득 씩 준다. 목마를 때 마시는 차 한 잔은 마성의 맛 자체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보리밥 집이 향수를 불러 먹자고 들어갔다. 음식 값이 얼마나 비싸졌는지 실감한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했던 향수의 보리밥이 아니고, 비빔밥도 아닌 그런 맛이었다. 보리밥을 먹자고 한 내가 괜히 미안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생겼다. 학교 다닐 때 내 짝꿍이 계산을 하는데 현금이면 머플러를 선물로 주겠단다. 짝꿍은 나보고 고르라고 해서 골랐다. 살다 살다 보리밥 값을 현금 냈다고 머플러를 선물로 받는 것은 난생 처음이다. 진정한 시골에서 먹던 보리밥 맛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모여서 옛이야기로 수다를 떤다. 술 한 잔 마시고 고스톱 치고 노래방 가는 사람들 보다 훨씬 재미있고 행복하다.
둘째 날이 밝았다. 아침은 누룽지, 각종 밑반찬, 과일, 우유와 유기농 씨리얼로 먹었다. 미세먼지가 최악이라는 보도에 선뜻 나서기가 망설여진다. 작년 봄에도 미세먼지로 관광하기가 불편했다. 꽃피는 봄만 되면 미세먼지란 놈이 우리의 여행을 방해한다.
점심을 먹고 관광을 가기로 했다. 내가 가져간 신선한 두릅, 머위잎, 돌미나리와 김장김치, 등갈비 찜을 해서 먹었다. 유명한 맛 집에서 먹는 것 보다 훨씬 좋았다.
오후에는 용인 농촌 테마 파크로 갔다. 공짜라면 뭐도 먹는 다는데, 일단 경로우대로 입장료가 무료라는 게 마음에 들었다. 곳곳에 있는 원두막과 들마루는 예약제로 대여하는 것 같았다. 초가 원두막들이 서정적인 풍경으로 정겹다.
그런데 여기에도 노래하고 춤추며 타인들에게 소음피해를 주는 팀들이 있다. 화려한 튤립, 온갖 신비로운 꽃들이 천국을 만들어 놓았는데 말이다. 그래도 화려하고 풍요로운 삶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휴식공간이었다.
금강산도 식후경. 눈이 모자라도록 드넓은 들꽃 단지 속에서 마음의 여유를 즐기고 돌아오는 길, 큰 사이즈의 도미노 피자 한판을 샀다. 피자를 좋아하는 나는 폭풍 흡입으로 저녁도 생략할 만큼 맛있게 먹었다. 이어진 우리들의 수다는 시간여행으로 밤이 깊도록 이어진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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