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신화 '물만골 공동체' -국제신문
땅 매입·영화 유치 등 의혹 잇따라
'주민 참여·자치' 대의까지 흐려져
대표사퇴·비대위 결성 등 위기상황
무허가촌 철거투쟁 과정에서 주민들이 부지를 공동매입하면서 생태 공동체로 거듭나 전국적으로 화제가 됐던 부산 연제구 연산동 '물만골 공동체'. 무지막지한 재개발 정책에 맞선 주민들이 치열한 투쟁과정을 거쳐 이 지역 땅을 조금씩 사들여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이뤄낸 곳이다.
이 곳은 지역 주민들 스스로에 의한 '지속가능한 발전의 현장'으로 우리나라뿐아니라 국제적인 관심의 대상이 됐다.
이런 물만골 공동체가 최근 '주민 참여, 주민 자치'라는 공동체의 기본축까지 흔들리는 위기에 처해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공동체 내 문제가 하나둘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6월 말. 공동으로 부지를 매입했던 때와 달리 지난해 12월 10여 명의 주민이 물만골 인근 산 176의 12 일대 3300여 평을 매입했다는 소문이 나면서다. 임시 마을회의가 소집됐지만 제대로 진상규명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몇 가지 석연찮은 점이 더 발견됐다.
몇몇 주민이 '두사부일체'의 영화사가 물만골을 배경으로 제작할 영화 '1번가의 기적'을 유치했고, 공동체와 협의 없이 문화관광부 산하 공공미술추진위원회 주최의 소외지역 생활환경개선 프로젝트 공모에도 참여한 것이다. 이후 두 차례 마을회의가 더 열렸다. 주민들은 알 권리와 '주민자치와 참여'라는 공동체의 대의를 저버린 일이라고 주장했다.
익명의 한 주민은 "몇몇이 끼리끼리 하려면 공동체를 왜 만들었나. 땅 한 평을 사더라도 같이 의논해서 사야 하고 모든 걸 투명하게 해야지, 일부에서 독단적으로 처리하면 안 된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반면 다른 주민은 "땅 매입, 영화 유치, 프로젝트 공모 등 3가지 사항을 추진한 사람들이 그동안 공동체를 위해 헌신한 게 많은데 이번 일로 매도할 수는 없다"고 맞섰다.
그동안 세 차례의 마을회의에서 주민들은 이렇다 할 결론을 내지 못하자 주민 12명으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지난 7월 21일 비대위는 공동체 운영의 감시 기능을 강화한 집단지도체제 구성을 제안하는 한편 앞서 제기된 3가지 의혹에 대해 주민투표 등으로 시시비비를 가리겠다고 결정했다.
그동안 물만골을 이끌어왔던 A 씨는 "대표로서 책임을 느껴 물러났다. 하지만 일부 주민들이 제기하는 부지 매입은 이후 4차 매입을 위한 포석으로 시간이 급박해 평소 친분 있는 몇 분과 상의해 땅을 샀고 영화 유치와 공공미술 프로젝트 공모 건도 3차례에 걸쳐 주민회의를 여는 등 절차를 거쳤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일부 주민들은 "공동체 운영상 불투명한 부분이 있으면 안 된다. 이번 일은 그동안 불합리한 공동체 운영의 문제점이 불거진 시작일 뿐이고 몇몇 주민이 외부에 알려진 공동체의 좋은 이미지를 통해 자신의 이득을 채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 주민은 "공동체 창설 초기 주민들이 회비를 걷고 마을신문도 제작했으며 한 달에 한 번씩 마을회의 대의원 월례회의 등을 정기적으로 개최했는데 2003년께부터 유명무실해졌고 결국 몇몇 사람 위주로 마을의 큰 사안들이 결정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물만골 공동체와 관련, 지난 5월 논문을 발표했던 부산대 윤일성(사회학과) 교수는 "물만골 공동체 내부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게 안타깝다. 생태 환경 주민자치 측면에서 물만골은 중요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 만큼 이번 위기를 잘 극복, 주민 스스로 공동체를 잘 엮어나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물만골 공동체는=한국전쟁 당시 군사기지로 도로를 개설하는 과정에서 형성되기 시작한 마을로, 1964년 부산 동구 초량동 부두지구 철거민 1200가구 중 일부가 집단이주했다. 그러나 1969년 군부대, 1991년엔 당시 동래구청의 강제철거 시도로 마을 단위의 처절한 철거저지 투쟁이 벌어졌다. '전체 주민의 참여로 가꾸는 지역이 중심이 된다'는 정신으로 뭉친 물만골 공동체는 특히 2000년대 초반 부지 공동매입으로 자력 정착했다. 2002년엔 환경부로 부터 생태마을로 지정되는 등 철거민 운동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