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반 구(舊)소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공산국가 진영은 여지없이 와해되었으며, 100년 동안 지속되었던 국제 공산주의 운동은 실패를 선언하였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만은 이례적으로 남게 되었고 또한 전 세계 인구의 1/5 을 통치하고 있다. 여기에는 피할 수 없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바로 “오늘날의 공산당이 진정한 공산당인가?”하는 문제이다.
우선 지금 중국에서는 공산당원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 이상 공산주의를 믿지 않는다. 50여 년간 ‘사회주의’를 유지해 온 현재의 중국 사회는 주식제도, 사유재산 제도, 독립자본과 해외 자본의 유치, 노동자와 농민에 대한 극심한 억압 정책을 펼쳐 나가고 있기에 이른바 공산주의의 이상(理想)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이와 동시에 중국 공산당은 중국에서 공산당의 절대적인 영도권을 수호하고 있다. 2004년 최근에 수정된 헌법 수정안에도 여전히 “중국의 각 민족은 계속 중국 공산당의 지도하에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과 ‘3개 대표’의 중요사상을 지도로, 인민민주(人民民主)독재를 견지하며 사회주의의 길을 계속 나아갈 것이다……”라고 하였다.
지금의 공산당은 마치 ‘표범은 죽어도 가죽은 남듯이’ 공산당이라는 ‘가죽’을 뒤집어쓰고 공산당 통치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중국 공산당이 계승한 공산당의 가죽과 조직 및 그것의 본질은 무엇인가?
중국 공산당의 사교 특성
공산당의 본질은 바로 인류사회를 해치는 사교(邪敎)집단이다. 물론 공산당은 자신을 종교로 인정하지 않겠지만 사실 그것은 종교의 모든 특성을 가지고 있다.(아래 표1 참조) 설립된 초기부터 공산당은 마르크스주의를 천하에서 유일한 절대적인 진리라고 믿었다. 그들은 마르크스를 정신적인 신(神)으로 여기고 공산주의의 ‘유토피아’로 당원들을 유도하여 평생 이것을 위해 노력하게 만든다.
종교의 기본형식
중국 공산당의 형식
1
교당(敎堂), 강단(講壇)
각급 당위원회, 강단은 공산당 회의부터 당이 통제하는 전체 언론매체
2
교의(敎義)
마르크스주의,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 장쩌민의 ‘3개대표’, 당장(黨章)
3
입교의식(入敎儀式)
선서, 공산당에 영원한 충성 맹세
4
신앙은 전일(專一)해야 한다
오직 공산당만 믿는다
5
성직자
당위원회 서기 및 각급 당무위원
6
신에 대한 숭배
모든 신을 말살하고 공산주의을 믿음
7
죽으면 ‘하늘에 오르거나, 지옥에 떨어진다.’
죽으면 ‘마르크스를 만나러 간다.’고 한다.
8
경서(經書)
공산당 지도자들의 이론저작
9
포교 및 전도(傳道)
각종 회의와 지도자의 담화
10
경문을 외거나 가부좌
정치학습, 당원의 조직생활
11
찬송가, 찬불가
공산당 찬양 노래
12
기부
당비를 바치고 국가예산을 끌어온다
13
징계(懲戒)
당의 기율로 ‘쌍규’, ‘출당’ 심지어 사형까지 하며 연좌제를 실시
표 1. 중국 공산당의 종교색채
공산당은 정교(正敎)와 명확한 구별이 있다. 정통적인 종교는 모두 신을 신앙하고 선(善)을 믿는 것으로, 사람들의 도덕을 승화시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공산당은 모든 신을 부정하며 전통적인 도덕을 반대한다.
공산당의 행위를 보면 그것이 확실히 사교임이 입증된다. 계급투쟁, 폭력혁명,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중심으로 한 공산당 교리(敎理)는 피비린내 나는 폭력과 학살을 통해 이른바 공산혁명을 가져왔다. 공산당 정권의 적색(赤色) 테러는 한 세기 동안 지속되어, 세계 절반의 진영에 재앙을 초래하였으며 수천만에서 일억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렇게 인간 지옥을 만든 공산주의 신앙이야말로 인류 최대의 대사교(大邪敎)이다. 공산당의 사교 특성에 대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6가지 결론을 얻었다.
(1) 교의(敎義)를 날조하고 견해가 다르면 제거
공산당은 마르크스주의를 교의로 받들면서 ‘파멸하지 않는 불멸의 진리’라고 표방한다. 공산당의 교의에는 인자하고 남을 용서하는 내용이 결핍되어 있으며 오만방자함으로 충만되어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생산과 과학이 그다지 발달하지 못했던 초기 자본주의 시대의 산물로, 인간과 사회,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하여 정확한 인식이 없었다. 이런 이단 사설(邪說)이 불행하게도 국제 공산주의 운동으로 발전하게 되었으며, 그 피해는 백 년 동안 지속되었다. 이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그것이 완전 착오적인 것임이 입증된 후에야 비로소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다.
레닌 이후 공산당 지도자들은 끊임없이 공산 사교의 교의(敎義)에 새로운 내용을 첨가하였다. 레닌의 폭력혁명 이론으로부터 마오쩌둥의 프롤레타리아독재 하의 연속혁명론에 이르기까지, 또 현재 장쩌민의 ‘3개 대표이론’ 에 이르기까지, 공산당의 역사는 이런 사악한 이론들로 충만되었다. 비록 이런 이론들이 실천과정에서 사람들에게 재난을 가져다 주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상호 모순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산당은 ‘일관되게 정확하다.’고 표방하면서 인민들에게 ‘학습’을 강요하였다.
공산 사교가 전도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바로 자신과 견해가 다른 사람『異己』을 제거하는 것이다. 공산 사교의 교의와 행동이 너무나 황당했기에 공산당은 오직 폭력으로 이런 사람들을 제거해야만 비로소 인민들을 강요하여 공산주의를 받아들이게 할 수 있었다. 중국 공산당은 정권을 탈취한 후 ‘토지개혁’을 통하여 지주계급을 제거하였고, ‘사회주의 개조’를 통하여 자본가를 제거하였으며, 숙반(肅反)을 통하여 민간 종교세력과 이전 정권의 인사들을 제거하였고, ‘반우파’를 통하여 지식인들의 입을 틀어 막았으며, ‘문화대혁명’을 통하여 중국 전통문화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버렸다.
그리하여 사람마다 모두 ‘공산주의 저작을 읽고’, ‘충성심을 표현하는 춤을 추며’ ‘아침에 지시받고 저녁에 보고하는’ 공산 사교의 진정한 천하통일을 달성하였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이후 지금의 중국에서도, 공산당은 진선인(眞善忍)을 믿는 파룬궁이 공산당과 인민을 이간질 시킨다고 여기면서 기어이 근절시키려 하였다. 결국 이로 인해 대박해를 시작하였으며 발동했으며 아직까지도 사태를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
(2) 교주 숭배와 유아독존
마르크스로부터 최근의 장쩌민까지 공산당 지도자의 사진은, 반드시 걸어 놓고 최고의 예의로 숭배하는 대상이 되었으며 지도자의 절대적 권위에 대한 도전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렇게 하여 마오쩌둥은 ‘붉은 태양’, ‘큰 구원의 별(大救星)’, ‘그의 한 마디 말은 다른 사람의 만 마디보다 낫다.’로 되었다. ‘보통 당원’을 자칭했던 덩샤오핑은 태상황(太上皇)처럼 중국 정치를 좌우지했다. 장쩌민의 ‘3개 대표이론’은 총 글자수가 40글자에 불과하지만 중국 공산당 4중 전회에서 “무엇이 사회주의이며, 어떻게 사회주의를 건설하는가? 어떻게 창의성 있는 정당을 건설해야 하는가? 어떻게 당의 문제를 해결하는가? 를 해답해 주었으며 이것은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에 대한 계승과 발전이다.”라고 표방하였다.
스탈린은 사람을 무자비하게 학살하였고 마오쩌둥은 문화대혁명을 발동했으며 덩샤오핑은 6.4 천안문 사건에서 학살 명령을 내렸고 장쩌민은 파룬궁을 박해하였다. 이것은 모두 교주의 독재에 의해 발생한 사악한 결과이다.
중국 공산당은 일면 『헌법』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모든 권력은 인민에게 있다. 인민이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기관은 전국인민대표대회이고 각급 인민대표대회이다.”, “어떤 조직과 개인도 모두 헌법과 법률을 초월하는 특권을 가질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당장(黨章)』에는 중국 공산당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업 지도 핵심이다.”
이것은 바로 당의 위치가 국가와 인민 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은 도처에서 중요 담화를 발표했으며 그 내용은 인민대표대회는 국가의 최고 권력기관인 “당의 영도를 견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중국 공산당의 ‘민주 집중제’원칙에 따르면 전당(全黨)은 중앙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말하자면 사실상 인민대표대회가 견지하고자 하는 것은 공산당 ‘일당 독재’이며 입법(立法)의 형식을 통해 공산당 ‘일당 독재’를 보장하는데 있다.
(3) 폭력 세뇌, 정신 통제, 엄밀한 조직, 가입허용 탈퇴불가
공산당 조직은 아주 엄밀하다. 새로운 당원을 받아들일 때는 2명 이상의 소개자가 있어야 하며, 입당(入黨) 시에는 영원히 당에 충성을 바칠 것을 맹세해야 한다. 또 당원은 일정한 당비를 내야 하며, 이밖에 조직생활에 참여해야 하고 단체 정치학습도 해야 한다. 공산당 조직은 각급 정부 부서에 모두 존재한다. 모든 향(鄕), 진(鎭), 촌(村), 장(莊)과 도시 요소요소에 이르기까지 어느 곳이나 공산당 기층조직이 있다. 당은 당원(黨員)과 당무(黨務)만 관리할 뿐만 아니라, 비당원도 그들의 통제 범위에 포함한다. 이것은 전체 정권이 ‘당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체현하기 위해서이다. 그 밖에 공산당이라는 교회의 ‘신부(神父)’ 즉 각급 당조직의 서기는, 대개 업무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자들로 사람을 괴롭히는 것을 전문으로 해 온 자들이다.
공산당 생활회에서 ‘비평과 자아비평’이란, 이런 형식은 당원에 대한 장기적인 정신통제의 수단으로 널리 사용되어 왔다. 공산당은 역사적으로 몇 차례에 걸쳐, ‘청당(淸黨)’, ‘정풍(整風)’, ‘반역자 잡기’, ‘AB단 학살’, ‘정당(整黨)’ 등의 방식으로 주기적인 폭력테러를 이용하여 당원의 ‘당성(黨性)’을 배양함으로써 그들에게 영원히 당과 일치할 것을 요구하였다.
공산당에 입당(入黨)하는 것은 자신을 제물로 받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국법(國法) 위에 당의 기율『黨紀』이라는 공산당의 가법(家法)이 있다. 당은 당원 개인을 제명할 수 있으나 제명당한 당원은 당을 이탈했다는 이유로 부득불 엄중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만약 탈당하려고 하면 반역이라는 죄명을 쓰게 된다. 더 심한 것은, 공산 사교가 천하를 통일했던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당이 죽음을 요구하면 살아남지 못했으며 당이 살 것을 요구하면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었다. 만약 자살을 시도한다면 ‘스스로 인민과 단절한’ 것으로 간주하여 가족들까지 엄중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당내의 정책 결정은 암암리에 진행되며, 당내 권력투쟁 상황은 절대적인 비밀이고, 당이 내린 공문(公文)은 국가기밀이다. 나쁜 일을 한 것이 외부에 폭로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기에 공산당은 종종 견해가 다른 사람들을 ‘국가기밀 누설죄’라는 명목으로 처벌한다
4) 폭력 고취, 당을 위한 희생 강요
마오쩌둥은 이렇게 말한다. “혁명은 손님을 청하여 밥을 먹는 것이 아니고, 문장을 짓는 것이 아니며, 그림을 그리고 꽃을 수놓는 것이 아니기에, 그렇게 품위가 있을 수 없고, 그렇게 차분하며 예의있고, 그렇게 온화하며 공손하게 양보할 수는 없다. 혁명은 폭동이고 한 계급이 다른 한 계급을 뒤엎는 폭력 행동이다.(마오쩌둥의 "후난농민운동시찰보고"(1927년 3월)에서)”
덩샤오핑은 천안문 사건 때 “20만 명을 죽여 20년 안정과 교환하자.”라고 말했다. 장쩌민은 “육체를 소멸하고, 명예를 더럽히며, 경제를 파산시켜라.”라고 말했다. 공산당은 폭력을 고취하여 역대 운동에서 무수한 사람을 죽였으며 인민들을 다음과 같이 교육하였다. “적에 대해서는 엄동설한과 마찬가지로 냉혹하고 무정(無情)해야 한다.” 중국의 국기인 홍기(紅旗)는 흔히 ‘열사들의 피로 물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붉은 색에 대한 이런 숭배는 실제로는 선혈(鮮血)에 대한 숭배이다.
공산당은 영웅모범인물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당을 위해 희생할 것을 요구한다. 옌안 시기 아편을 만들기 위하여 가마의 불을 지키다가 죽은 장스더(張思德)`는 마오쩌둥에 의해 “그의 죽음은 태산보다 중요하다.”고 평가되었다. 이성을 잃은 시기에 사람들은 “첫째로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둘째로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당을 위하여 희생하는 것은 얼마나 고귀한 것인가, 해와 달에게 새로운 하늘에서 빛낼 것을 명령한다.” 등의 ‘호언장담’하는 구호로 물질이 부족한 시대에 사람들의 광기를 만족시켰다.
70년대 말 베트남 공산당이 군대를 파견하여 중국 공산당이 수년간 키워온 사악한 크메르루주 정권을 전복시켰다. 중국 공산당은 이에 대노(大怒)하였지만 중국과 캄보디아가 인접한 국경이 없어서 직접 파병하여 크메르루주 정권을 지원할 방법이 없었다. 이리하여 중국 공산당은 ‘대(對) 베트남 자위(自衛)반격전’이라는 명분으로 베트남 공산당 정권에 작은 ‘교훈’을 남기기 위하여 중국과 베트남 국경에서 전쟁을 발동하였다. 전쟁 결과 수만 명의 중국병사가 공산당 간의 투쟁으로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 그들의 죽음은 실로 국가 영토나 주권과는 추호의 상관도 없었다. 몇 년 후에 중국 공산당은 이들에게 아주 값싼 대가를 지불했다. ‘피로 물든 풍채(風采)’라는 제목의 노래를 만들어 전쟁에서 무고하게 생명을 잃은 천진한 젊은이들을 ‘혁명영웅주의 정신’이라고 추모하였다. 그러나 공산당은 1981년에 154명의 중국 군인들의 희생을 통해 획득한 광시성(廣西省) 파카산(法卡山)을, 베트남과 국경문제를 토론하는 회의에서, 쉽사리 베트남에 넘겨주었다.
2003년 사스가 중국에 만연했을 때, 중국 공산당은 젊은 여 간호사들을 ‘전선(戰線)입당’시켜 병원에 가둔 채 사스 환자를 돌보게 하였다. 이것은 젊은이들을 생명의 위험이 있는 최전선에 밀어 넣고 공산당의 이른바 ‘첫째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둘째 죽음을 두려하지 않는다.’는 ‘빛나는 형상’을 수립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공산당 지도자 장쩌민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베이징에서 상하이로 대피했다.
(5) 신(神)을 부정하고 인간성 말살
공산당은 줄곧 무신론을 선전해 왔으며 종교는 인민을 마비시키는 ‘정신적 아편’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리하여 공산당이 통치하는 범위 내에서 모든 종교를 탄압하여 소멸시키거나 복종하게 만들었다. 그 후 다시 자신을 ‘신(神)’격화 시키는 운동을 시작하여 결국 공산 사교가 천하를 통일할 수 있게 되었다.
공산당은 종교를 파괴하는 동시에 전통문화도 파괴하였다. 전통, 도덕, 인간성 등을 봉건, 미신, 반동으로 규정하고 혁명이라는 미명하에 제거하였다. 문화대혁명 운동에서는 부부가 서로 고발하고, 학생이 선생을 때리며, 부자(父子)가 반목하고, 홍위병이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반역자를 폭행’하는 등 중화민족의 전통을 위반하는 추악하고 난잡한 현상이 대량으로 발생하였다. 그 원인은 바로 중국 공산당이 인간성을 말살시켰기 때문이다.
건국 이래 공산당은 소수 민족들에 대하여 공산당 지도에 따를 것을 강요하였다. 그 결과 풍부하고 다채로운 많은 민족의 문화가 상실되거나 변이(變異)되었다.
89년 6.4 천안문 사건 때 ‘인민의 자제(=인민해방군)’들이 저지른 ‘도시학살’ 행위는 국민들에게 중국의 정치 미래에 대해 완전히 실망하게 만들었으며 그 후로 중국의 전 국민은 ‘돈’만을 추구하게 되었다.
99년부터 지금까지, 파룬궁을 잔혹하게 박해하고 진선인(眞善忍)을 적대시 한 결과 사회도덕은 빠르게 아래로 미끄럼질 치게 되었다. 21세기에 들어선 중국 공산당은 토지, 금전, 물자 등에 대하여 다시금 대량 약탈에 나섰으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민중들이 노숙자로 전락했다. 상방(上訪)인원이 급격히 증가했고 사회모순도 격화되었다. 거듭되는 대규모 항의 사건은 군경(軍警)의 폭력과 무장병력에 의지해서야 비로소 진압되었다. 이 과정에서 ‘인민공화국’의 파쇼적 성격이 돌출되었으며, 사회는 더 이상 도덕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타락해 갔다.
예전에는 아무리 어려워도 가까운 친지들을 해치진 않았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친구나 가까운 사람을 사기 치는 것이 사회기풍으로 되었다. 이것을 ‘살숙(殺熟)’이라고 한다. 이전에 중국 사람들은 정절(貞節)을 중시했으나 지금은 ‘가난한 사람은 비웃어도 창녀를 비웃는 사람이 없는 사회’로 변했다. 이전에 의사와 교사는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유덕지사(有德之士)였으나 지금 병원에서는 환자를 못살게 굴고 학교에서는 학생을 가장 못살게 군다.
중국 민족의 인간성과 도덕이 파괴된 역사를 알려주는 민요가 있는데 그 가사는 다음과 같다. “50년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돕고 60년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괴롭히며 70년대 사람들은 서로서로 속이고 80년대 사람들은 자신만을 돌보며 90년대 사람들은 빈털터리가 될 때까지 철저히 벗겨 먹는다.”
(6) 무력으로 권력탈취, 경제 전횡, 정치경제적 야심
공산당의 성립 목적은 바로 무력(武力)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더 나아가 국유제와 독점적인 계획경제체제를 실시하는 것이다. 공산당의 야심은 너무나 커서 일반 사교(邪敎)에서 재물을 긁어모으는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공산당이 통제하는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보통 국가권력기구 위에 이보다 더 큰 권력을 가진 각급 당 조직이 있다. ‘공산당 부체’가 모든 국가기구를 장악하고 직접 각급 정부에서 경비를 빼낸다. 마치 흡혈귀처럼 공산당은 국가와 사회에서 생산된 수많은 돈과 재물을 약탈하였다.
공산당 사교의 해악(害惡)
만약 일본의 ‘옴 진리교 사린 독가스 살인사건’, ‘태양사원(Solar Temple)의 자살 승천’, 짐 존스(Jim Jones)의 ‘인민사원(People's Temple)의 900명 집단 자살’등에 관한 말을 꺼낸다면 사람들은 아주 두려워하거나 뼈에 사무치도록 미워한다. 그러나 공산당이란 사교가 사람을 해치는 수단은 그보다 천만 배를 능가한다. 그 원인은 공산당은 다른 사교가 따를 수 없는 독특한 방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1) 사교의 국교화
정상적인 나라에서는 특정 종교를 믿지 않으면 그 종교에 관한 책을 읽지 않거나 그 종교의 교리를 듣지 않아도 생활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중국대륙에서 살아가고자 한다면 공산당 사교의 교리를 배우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부득불 사교의 선전을 들어야 하는데, 이는 공산당이 정권을 장악하고 공산 사교를 국교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공산당의 정치 설교를 주입하는 교육은 초등학교나 유치원부터 시작된다. 그 후 상급학교에 진학하거나 진급할 때마다 매 번 정치시험을 치러야 한다. 이런 정치시험에 나오는 문제는 학생들의 독립적인 사고나 생각을 허용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공산당이 정한 표준이 있기에, 규정된 답을 적어야 시험을 통과할 수 있다. 가련한 중국인들은 시험을 치르기 위하여 할 수 없이 어릴 때부터 반복적으로 공산당의 설교를 들어야 하며 여러 차례에 걸쳐 자신에 대한 세뇌를 거듭하였다. 정부에서 높은 관직에 오르려면 중국 공산당원 여부를 불문하고 모두 당교(黨校)에 들어가 정치학습을 해야 한다. 당교를 졸업해야 진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공산당을 국교로 삼은 중국은 다른 의견을 가진 어떠한 단체도 용납하지 않았다. 이른바 ‘민주당파’는 정치적인 장식에 불과하고 ‘삼자(三自)’교회로 개조된 교회는 모두 공산당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였다. 먼저 공산당에 충성하고 그 다음에 신을 믿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공산당이란 사교의 사고방식이다.
(2) 극단적인 사회 통제
사교 국교화의 기초는 인민에 대한 공산당의 통제와 자유의 박탈이다. 이런 통제수단은 전례가 없는 것으로 이는 공산당이 인민의 사유재산을 박탈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본래 사유재산이란 자유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80년대 이전에 중국 도시민들은 오로지 공산당이 통제하는 기업에서 일하고 생활해야 했으며, 농민은 반드시 당이 장악하고 있는 ‘인민공사’의 토지에서 농사짓고 밥을 먹어야 했다. 그 누구도 공산당 통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공산당 조직은 중앙 정권으로부터 시골마을과 도시의 가도(街道) 최하층까지 존재하며 공산당은 이런 당위원회, 당지부 등 각급 당 조직을 통하여 사회를 완전히 장악할 수 있었다. 이런 엄밀한 통제로 인해 인민들은 자유를 철저히 상실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사의 자유(호구제), 언론의 자유(55만 명의 우파는 모두 언론의 자유 때문에 수난을 당했다), 회의(懷疑)의 자유『린자오(林昭), 장즈신(張志新)은 모두 당을 의심했다는 이유로 피살되었다.』, 정보 획득의 자유(금서를 보거나, 적국의 방송을 들어도 모두 죄가 되고 심지어 인터넷을 검색해도 감시를 받는다.)를 상실하게 되었다.
아마 어떤 사람은 지금 중국 공산당은 사유재산제도를 허용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공산당이 사회주의를 하다가 막다른 골목에 들어서 인민이 밥도 못 먹을 지경에 봉착하고 ‘국민경제가 붕괴할 지경에’까지 온 후에, 공산당이 자신의 멸망을 모면하기 위해 부득불 취한 조치에 불과하다. 개혁개방을 한 후에도 중국 공산당은 인민에 대한 통제를 조금도 풀어준 적이 없다. 지금도 파룬궁에 대한 잔혹한 박해가 5년이 넘도록 지속되고 있는데, 오직 공산주의 국가에서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만약 중국 공산당이 자신의 뜻대로 거대한 경제 강국이 되는 날이면 인민에 대한 통제는 한층 더 격화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3) 폭력 숭배와 생명 멸시
거의 대부분의 사교는 모두 폭력을 사용하여 신도들을 통제하고 외부 압력에 대항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공산당처럼 이렇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폭력수단을 사용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전 세계에서 사교가 인명피해를 일으킨 사건을 모두 합해도 공산당 사교가 사람을 죽인 인원과는 비교할 수도 없다. 공산당 사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사람이란 오로지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며 살인도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공산당은 사람을 박해하는 과정에서 추호의 거리낌이 없었으며, 그 누구라도 박해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그 중에는 공산당 지지자, 당원 및 심지어 당의 지도자까지 포함한다.
중국 공산당이 배후 조종한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주 시대는 공산 사교의 잔혹함과 생명에 대한 멸시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이다. 마오쩌둥 사상의 지도와 계발을 받은 폴 포트의 지도 하에, 캄보디아 공산당이 ‘사유재산제도 소멸’ 정책을 실행한 3년 8개월 동안 인구 800만의 작은 나라에서 무려 200만 명을 학살하였다. 그 중에는 20만 명의 화교(華僑)도 포함되어 있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공산당이 저지른 죄악을 잊지 않기 위하여 캄보디아에 크메르루주 ‘죄악관(罪惡館)’ 이라는 기념관을 지었다. 이곳은 원래 고등학교였으나, 크메르루주는 이곳을 사상범을 전문적으로 감금하는 S-21 감옥으로 개조하였다. 대부분의 지식인이 이곳으로 이송되어 잔혹한 형벌로 목숨을 잃었기에, 오늘날 이 S-21감옥을 크메르루주 죄악 기념관으로 개조한 것이다. 기념관 안에는 감옥에서 사용된 형구가 전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망자들이 죽기 직전에 찍은 흑백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쳐다만 봐도 끔찍한 혹형, 혀를 자르고 머리에 구멍을 내거나, 살아있는 영아를 죽이는 등의 장면이 있다. 이 모든 죄행은 전부 중국 공산당이 캄보디아 공산당의 ‘(고문) 전문가와 기술자’들에게 전수하여 저지른 폭행이다. 사형 직전 죄수의 사진을 찍는(후에 자료로 남겨두기 위함) 사진사도 중국 공산당에서 양성한 것이다.
S-21감옥에서는 캄보디아 지도자의 몸보신을 위하여 인간의 두개골을 파내는 기계를 발명하여 사람의 뇌를 꺼내 지도자에게 바쳤다. 사형을 집행하려는 사상범을 걸상에 묶어 놓고는 기계를 앞에 둔다. 피해자가 극도의 공포에 떨고 있을 때 고속으로 회전하는 드릴은 피해자의 머리 뒷부분에서 신속히 살아 있는 뇌수를 꺼냈다.
공산당의 사교 본질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요소가 공산당을 이토록 사악하고 잔혹하게 만들었는가? 공산당이라는 ‘유령’이 인간 세상에 올 때는 무서운 사명을 가지고 왔다. 『공산당 선언』의 제일 마지막 부분이자 가장 유명한 한 단락을 보자.
“공산주의자들은 자신의 견해와 의도를 감추는 것을 경멸받을 일로 여긴다.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목적이 현존하는 모든 사회 질서를 폭력적으로 타도함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선언한다. 지배 계급들로 하여금 공산주의 혁명 앞에서 벌벌 떨게 하라.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에서 잃을 것이라고는 쇠사슬뿐이요 얻을 것은 세계 전체다.”
이 공산당이라는 ‘유령’의 사명은 바로 폭력을 사용하여 공개적으로 현실의 인류사회에 도전하고, 낡은 세계를 파멸시키겠다는 것이다. ‘사유재산제도를 소멸’하고, ‘자본가의 개성, 독립성과 자유를 모두 소멸하며’, 착취를 소멸하고, ‘가정을 소멸’하며, 프롤레타리아가 세계를 통치하겠다는 것이다.
공개적으로 ‘때리고 부수고 약탈’하겠다고 성명한 공산당은, 비단 자신의 사악한 관점을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산당 선언』에서는 오히려 다음과 같이 당당히 선고한다. “공산주의 혁명은 바로 전통적인 소유제와 철저한 결별을 실행하는 것이다. 그렇다. 의심할 것도 없이 그것은 자신의 발전과정에서 전통적인 관념과 철저한 결별을 실행할 것이다.”
사회의 전통적 관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무신론의 자연법(自然法)을 바탕으로 생각해 본다면, 자연 법칙과 사회 법칙은 필연이며 우주 운동 법칙의 결과라고 한다. 유신론의 관점에서 해석할 때는 인류의 전통과 윤리도덕은 신(神)이 인간에게 전해 준 것이다. 어떻게 왔든지를 막론하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윤리도덕, 행위규범과 선악표준은 상대적인 불변성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관은 수천 년간 인간의 행위를 규범 해왔으며 사회생존을 유지하는 기반이 되었다.
만약 인간이 도덕규범을 잃고 선악(善惡)의 원칙을 상실한다면 짐승으로 타락 할 것이 아닌가? 『공산당 선언』에서 “전통 관념과 철저하게 결별하겠다.”라는 주장은 인류사회의 정상적인 사회기초를 위협하는 것으로 필연적으로 공산당이 인류를 파괴하는 사교로 되게 했다.
공산당의 강령(綱領)과도 같은 『공산당 선언』에서는 문장전면에 편집광적인 정서가 드러나며 인자하고 관용하는 마음은 전혀 찾을 수 없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유물론을 내놓으면서 사회의 발전법칙을 발견했다고 여겼다. 그들은 진정한 진리를 알았다는 듯이 모든 것을 의심하고 부정하기 시작했으며 공산주의의 허황한 환상을 사람들에게 강요하였다. 또 폭력을 고취하여 이미 존재하는 사회구조와 문화기초의 파괴를 요구하였다. 『공산당 선언』이 새로 생긴 공산당에게 주입한 사상은, 바로 하늘을 거스르고, 인간성과 반대되며, 교만하게 자신을 추켜올리며, 극도로 이기적이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고 싶은 일을 맘대로 하는 사악한 영(靈)이었던 것이다.
공산당 종말론 : 망당(亡黨)에 대한 두려움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당에게 사악한 영(靈)을 주입하였고, 레닌은 러시아공산당을 창건하고 2월 혁명으로 건립한 임시정부를 폭력으로 뒤엎었다. 이것은 러시아 부르조아 혁명을 말살하고 강탈한 정권으로서, 공산 사교가 인간 세상에서 설 자리를 만들어 준 것이다. 그러나 혁명의 성공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전 세계를 얻게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공산당 선언』 첫 단락에서 말한 것처럼 “낡은 유럽의 모든 세력이 힘을 합쳐 이 신성한 유령에 대하여 신성한 토벌을 하였다.” 공산당은 생긴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생존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으며 수시로 소멸될 위험에 처해 있었다.
10월 혁명 이후 러시아 공산당의 볼셰비키가 정권을 장악했음에도 인민에게 돌아온 것은 평화로운 생활이 아니었다. 먹을 것도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였다. 전방에서는 연속 패배하였고, 후방에서는 혁명으로 인한 경제난이 심각해져 사람들은 도처에서 저항하기 시작했으며, 이런 형세는 삽시간에 전국을 휩쓸었다. 농민들은 잇달아 도시에 식량을 공급하려 하지 않았다. 돈(Don) 강 유역의 코사크 족이 대거 폭동을 일으켜 소련 홍군(紅軍)과 결사적인 전투를 벌였다. 이 당시 전쟁에서 나타난 원시적인 야만성과 잔인한 수단은 숄로호프(Sholokhov)의 『고요한 돈 강』, 『돈 강 이야기 집』 등 문학 작품에서 볼 수 있다. 전(前) 백군(白軍) 장교들로 구성된 반발세력은 한때 러시아 공산당의 통치를 물리치기까지 계속되었다. 새로 건립된 정권이 전 국민의 저항을 받았다는 것은 공산 사교가 아주 사악하여 인심을 얻지 못했음을 설명한다.
중국 공산당이 중국에서 처한 운명도 이와 아주 흡사하였다. ‘마일사변(馬日事變)’, 4.12 학살, 중국 공산당에 대한 5차 ‘토벌’, 2만5천리 대장정과 같이 중국 공산당도 장기간 소멸 당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
공산당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낡은 세계를 쳐부수려고 태어났지만 그러나 그것이 가장 먼저 직면하게 된 것은 보다 현실적인 문제였다. 바로 어떻게 해야 소멸될 운명을 모면하고 살아남을 것인가? 이런 원인으로 인해 공산당은 줄곧 소멸되지 않기 위하여 두려움에 떨며 살아왔다. 생존이야말로 공산당 사교의 가장 큰 문제이자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지금 국제공산주의 진영이 완전히 해체된 시기에 중국 공산당의 생존 위기감은 더 심각해졌고 ‘망당(亡黨)’론은 89년 이후 갈수록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공산당 사교의 생존 법보(法寶)-잔혹한 투쟁
공산당은 줄곧 당원들에게 당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을 강조해 왔다. 조직성과 강철 같은 규율을 강조한 것이다. 당원이 중국 공산당에 입당하려면 반드시 충성을 표시하는 맹세를 해야 한다.
“나는 중국 공산당에 가입할 것을 지원함으로써 당의 강령을 옹호하고 당의 규정을 준수하며 당의 의무를 이행하고 당의 결정을 집행할 것이다. 아울러 당의 규율을 엄격히 지킬 것이며 당의 비밀을 지키고, 당에 충성하고 적극적으로 일하며 공산주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평생을 분투할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당과 인민을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를 하고 있으며 영원히 당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공산당 당장(黨章) 제1장 제6조)
공산당은 이렇게 몸을 바쳐 공산당이라는 교(敎)에 입문하는 정신을 ‘당성(黨性)’이라고 한다. 공산당원이라면 반드시 개인의 모든 의념과 원칙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당의 의지와 지도자의 의지에 절대 복종할 것을 요구한다. 공산당이 당신에게 선(善)하게 하라고 하면 선해야 하고 악(惡)하게 하라고 하면 악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당성이 강하지 못한 표현이라고 한다.
마오쩌둥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바로 투쟁의 철학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들은 당내에서 주기적인 투쟁 메카니즘으로 당성을 배양하고 유지한다. 그들은 끊임없이 당 내외(內外)에서 잔혹한 투쟁을 벌여 한편으로는 견해가 다른 사람들을 제거하고 적색테러 분위기를 조성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당원을 청산하고 가법(家法)과 교리(敎理)를 엄격히 다루면서 당원의 ‘당성’과 당 조직의 전투력을 강화한다. 이는 공산당이 능히 생존해 나갈 수 있는 하나의 법보(法寶)이다. 마오쩌둥은 중국 공산당 지도자 중에서 ‘당내 투쟁’이란 이 법보를 가장 애용한 대가다. 그 잔혹한 투쟁방식과 비열한 수단은 일찍이 소비에트 시기에 드러났다.
1930년 마오쩌둥은 장시(江西)소비에트 시기에 ‘AB단을 숙청하는’ 대규모 테러혁명을 일으켰다. 그 당시 수천 명에 달하는 홍군 관병들과 근거지에 있었던 당원, 단원 및 일반 민중들이 처참하게 살해되었다. 이 사변이 일어나게 된 주요 원인은 소비에트 지역에서 막 권위를 세웠던 마오쩌둥이, 리원린(李文林)을 비롯한 장시(江西) 서남 지역의 홍군과 당 조직의 도전에 맞서, 자신의 권위를 거역하는 어떠한 반대세력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AB단을 숙청’하는 형세를 조성하기 위해, 마오쩌둥은 자기 직속부대부터 먼저 칼을 들이 대어 큰 희생을 치르면서 11월 하순부터 12월 중순 사이에 ‘단기간에 군인들을 처단’하는 행동을 취했다. 그 주요 내용은 사(師), 단(團), 영(營), 연(連), 배(排)에서 반대세력을 숙청하는 조직을 만들어 군내 지주출신 당원과 불만 세력들을 숙청했던 것이다. 한달도 채 못 되는 사이에 홍군 4만 명 중에서 4천4백여 명의 ‘AB단’을 숙청하였으며 그중에는 총 단장(團長)만해도 몇 십 명에 이르렀다.(‘AB단’ 총 단장을 가리킴) 이 사람들은 모두 죽음을 면하지 못했다.
그 다음 마오쩌둥은 전체 소비에트 지역에서 견해가 다른 분자들을 처단하기 시작했다. 1930년 12월 마오쩌둥은 정치부 비서장 겸 숙청위원회 주석 리샤오쥬(李韶九)를 전선위원회 대표로 장시성 소비에트정부 소재지인 푸톈(富田)에 파견했다.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성위원회와 홍군(紅軍) 28군에 있는 주요 지도자 돤량비(段良弼)와 리바이팡(李白芳) 등을 체포했다. 체포된 후 그들은 각종 잔인한 형벌을 받아 ‘전신에 온전한 피부가 없었고’, ‘손이 잘리고, 온몸이 타버려 움직일 수도 없을 정도’로 되었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피해자들의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으며 그 참혹한 정도는 극에 달했다고 한다.
12월 8일 리바이팡(李白芳), 마밍(馬銘), 저미엔(周冕)의 아내들이 감금 중인 남편들을 면회 왔다가 역시 ‘AB단’으로 간주되어 체포되었다. 그녀들 역시 ‘온몸을 불로 지지고, 음부를 태우며, 작은 칼로 유방을 자르는’ 등의 고문에 시달려야 했다. 그런 참혹한 형벌을 견디지 못한 돤량비(段良弼)는 또 리원린(李文林), 진완방(金萬邦), 류디(劉敵) 저미엔(周冕), 마밍(馬銘) 등의 이름을 불어 그들이 “AB단의 지도자들이며 홍군학교에 많은 AB단이 있다.”고 허위 자백을 했다. 12월 7일에서 12일 밤까지 짧은 5일 동안 리샤오쥬 등은 푸톈에 주재하면서 반대세력을 엄격히 숙청하고, ‘AB단’에 속하는 120명과 이른바 범인 몇 십 명을 끌어내어 그중 40여 명을 처단했다. 리샤오쥬 등의 잔혹한 행적은 끝내 1930년 12월 12일 소비에트를 놀라게 한 ‘푸톈사변’을 불러 일으켰다. 가오화(高華)의 『마오쩌둥이 장시 소비에트에서 ‘AB단’을 숙청한 역사 고찰』 참조.
마오쩌둥은 투쟁학설과 실천을 통해 소비에트에서 옌안으로 점차 당내의 절대적인 지도자 자리를 도모하면서 확고히 해 왔다. 건국 이후에도 이런 당내투쟁은 계속되었다. 루산회의에서 갑작스런 공격으로 펑더화이를 무너뜨린 사건이 한 예이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중앙 지도자들은 이 사건에 대한 태도를 표명하고서야 순순히 넘어갈 수 있었다. 감히 자신의 생각을 표명하고 보류한 사람들은 모두 펑더화이 반당집단으로 내몰렸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들어서자, 중앙의 노간부들은 당시 한 차례 한 차례씩 탄압을 받게 되자 모두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감히 마오쩌둥에게 한 마디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공산당은 줄곧 당에 대한 충성을 강조해 왔고 조직성과 철의 규율을 강조해 왔으며 또 교주인 지도자에 대한 절대적 복종을 강조해 왔다. 당성은 이와 같이 끊임없는 정치투쟁 속에서 배양되고 단련된 것이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탄압으로 궁지에 몰렸던 전(前) 중공 지도자, 리리싼(李立三), 그는 68세의 나이임에도 매달 7번 이상 비판을 받아야 했다. 일찍이 ‘소비에트 수정주의’로 비판받던 그의 부인 리사(李莎)는 간첩으로 판결 받고 감옥에 들어가 감감 무소식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그는 절망 속에서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임종시 그가 마오쩌둥에게 쓴 편지는 죽음에 이르러서도 감히 포기할 수 없었던 한 공산당원의 ‘당성’을 진정으로 반영하고 있다.
“주석! 나는 지금 자살을 택하면서 당을 배신하는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나의 죄행을 변명할 어떠한 방법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단 하나, 나와 내 가족이 외국과 내통하여 나라를 팔아먹은 일은 절대로 없었습니다. 이 한 가지만은 중앙에서 철저히 조사하고 심사하여 사실에 부합된 결론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리리싼 1967년 6월 22일 ”
마오쩌둥의 투쟁철학은 결국 중국에 역대로 전례가 없는 큰 재앙을 초래하였지만 이런 ‘7~8년에 한번 씩’ 일으킨 정치운동과 당내투쟁은 또한 공산당이 능히 생존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보장해 주었다. 매 차례 운동에서 그 대상은 언제나 5% 정도의 소수였다. 그리고 95%의 다수는 모두 당의 정치노선에 순종하도록 하는데 바로 이런 것을 바탕으로 하여 당 조직의 응집력과 전투력을 강화시킨다. 그리고 사람의 양심을 포기하지 않는 견정(堅定)하지 못한 사람들을 도태시키고 대항세력을 공격한다.
이러한 메커니즘 속에서 당내에서는 언제나 투쟁정신이 제일 강하고 비열한 수단을 가장 잘 사용하는 사람들이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즉 공산당이란 사교(邪敎)의 교주는 모두 풍부한 투쟁경험과 당성(黨性)이 확고한 사나운 사람이어야 한다. 이토록 잔혹한 투쟁은 역시 사람들에게 피로 얼룩진 교훈과 폭력적인 세뇌를 시키면서 끊임없이 투쟁 속에서 공산당에게 에너지를 충전해 주었다. 투쟁정신이 강하면 강할수록 공산당이 멸망하지 않도록 보장하는 동시에 투쟁을 포기한 온화한 단체로 변질되지 않게 하였다.
공산당이 요구하는 당성이란 바로 공산당의 사교 본질이 만들어 낸 것이다. 공산당은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일체 전통원칙과 결렬(決裂)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세력을 방해하면 모두 적으로 여겼기 때문에, 공산당원들을 모두 냉정하고 의리도 없으며 믿음도 없는, 맹목적으로 당에 순종하는 도구로 배양할 것이 필요했다. 공산당의 이런 본질은 인류사회와 전통을 증오한 데서 유래한 것이며, 또한 자아에 대한 허망한 평가와 극단적 이기심 및 생명에 대한 멸시에서 유래한 것이다. 공산당은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폭력을 사용하여 전 세계를 파괴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으며 자신과 견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을 제거하였다.
이런 사교집단은 모든 양심적인 사람들의 반대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공산당은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사람의 양심과 선념(善念)을 제거해야만 사람들에게 자신의 사악한 논설(論說)을 받아 들이게 할 수 있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공산당은 자신의 생존을 보존하기 위하여 우선적으로 사람의 양심과 선념, 도덕을 파괴해야 했으며, 사람들로 하여금 공산당에 순종하는 노예와 도구로 만들고자 하였다. 공산당의 사유방식으로는 당의 생명, 당의 이익은 모든 것을 초월하고 심지어 전체 당원의 이익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 우위에 있다. 그러므로 당원이라면 언제나 당을 위해 희생하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중국 공산당의 역사를 볼 때, 천두슈(陳獨秀), 취추바이(瞿秋白)와 같이 어느 정도 전통지식과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나, 후야오방(胡耀邦),자오쯔양(趙紫陽)과 같이 그래도 마음속에 아직 인민의 이익을 생각하는 사람들, 그리고 주룽지(朱熔基)처럼 청백리(淸白吏)의 뜻을 품고 인민을 위해 실질적인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당에 대한 공헌이 아무리 많고, 개인적인 야심이 전혀 없다 할지라도 결국 숙청당하거나, 아니면 한직(閒職)으로 좌천되어 당의 이익과 규율에 의해 제약받게 된다.
수년 간의 투쟁 속에서 뼛 속까지 파고든 그들의 당성은 흔히 관건적인 시기에 타협하거나 속수무책으로 묵인하게 만든다. 그것은 그들이 무의식중에 당의 생존이야말로 가장 큰 이익이라고 여기면서, 차라리 자신을 희생하며 당내의 사악한 세력이 나쁜 짓을 하는 것을 눈뜨고 볼지언정, 감히 양심과 선념을 견지하면서 제지하여 당의 생존에 영향을 주지 않으려 한다. 이것이 바로 공산당 투쟁 메커니즘의 결과이다. 당은 착한 사람들조차도 자신들이 이용하는 도구로 만들었으며, 당성을 이용하여 최대한도로 사람의 양심을 소멸시켰다. 십여 차례의 중국 공산당 ‘정치노선 투쟁’에서 그들은 내부에서 정한 후계자를 포함한 십여 명의 당 지도자를 제거하였다. 당의 지도자로서 좋은 결말을 본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43년 동안 왕 노릇을 해온 마오쩌둥마저도 시신이 채 식기도 전에 부인과 조카가 모두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전당(全黨)은 이를 또한 마오쩌둥 사상의 위대한 승리라고 환호하였다.
공산당이 정권을 탈취한 이래 정치 운동은 끊이지 않았다. 당내로부터 당외(黨外)에 이르기까지, 마오쩌둥 시대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개혁개방 이후에도 다름이 없었다. 80년대에 들어와 사람들의 사상이 조금 자유로워지는 듯 하더니 바로 ‘자본가계급 자유화를 반대한다’라는 운동을 일으켜 ‘4가지 기본원칙’을 제기했다. 이는 공산당이 절대적인 영도권을 잡아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89년 평화적으로 민주를 주장하는 학생들은 피비린내 나는 6.4탄압을 겪어야 했다. 그것은 공산당이 민주화 운동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90년대에 이르러 중국에서는 진선인(眞善忍)을 믿는 파룬궁 수련자들이 나타났으나, 도리어 99년 이래 지금까지 공산당의 잔혹한 박해를 받고 있다. 왜냐하면 공산당은 인간성과 선념(善念)을 용납할 수 없기에 반드시 폭력으로 인간 내심의 양심을 무너뜨려야만 권력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인터넷은 세계를 하나로 연결해 놓았다. 그러나 유독 중국만은 엄청난 돈을 투입하여 사이트를 봉쇄하며 인터넷상의 자유 인사들을 체포하는데, 그것은 인민들이 자유로운 정보를 접하는 것을 공산당이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공산당 사교의 사악한 변화
본질적으로 천리(天理)를 부정하고 인간성을 억제시키는 사악한 공산당은 오만할 뿐만 아니라 지극히 이기적이어서 제멋대로 행사한다. 비록 실천 중에서 끊임없이 나라를 망치고 인민을 해치는 죄악을 저질러왔지만 영원히 자기의 죄악을 인정하지 않으며 인민들에게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기를 꺼린다. 또 다른 방면에서 본다면, 공산당은 구호와 명목을 바꾸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이 볼 때 이것은 모두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공산당은 당의 생존이라는 큰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본래 아무런 도의원칙(道義原則)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제도화되고 사회화된 사교의 발전방향은 철저히 타락하는 길 밖에 없다. 고도로 집중된 권력과 사회 여론 및 공산당을 감독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메커니즘의 한계로 인해 그 어떠한 힘도 공산당의 타락과 부패를 저지할 수 없다.
오늘날 중공은 이미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탐관오리의 당’, ‘부정부패 당’으로 타락했다. 중국 정부당국의 통계에 따르면 전 중국에서 2천만 명의 당정(黨政) 관리들이 지난 20여 년간의 재직 중에, 이미 8백만 명이 부패사건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 당정(黨政) 규율이나 법적인 처벌을 받았다. 그 외에 조사되지 않은 부패 관료들을 포함한다면 사실상 중국 당정 관리들의 부정부패는 이미 전체의 3분의 2를 넘으며 조사된 것은 아직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이다.
탐오(貪汚)와 부정부패로 돈을 벌거나 좋은 것을 취하는데, 이런 물질적인 이익이야말로 오늘날 중국 공산당을 한 덩어리로 똘똘 뭉치게 하는 최대의 응집력이 되었다. 탐관오리들은, 공산당이 없으면 부패할 기회도 없음을 잘 알고 있다. 만약 공산당이 쓰러진다면, 그들이 잃게 되는 것은 단지 권력과 관직뿐만이 아니라 숙청당할 위험에 직면할 수도 있다. 문학작품인 『천노(天怒)』에서 작가는 시위원회 사무실의 부주임인 하오샹서우(郝相壽)의 입을 빌어 공산당의 천기를 누설하였다. “부정부패는 우리 정권을 더욱 공고히 해 준다.”
중국 인민들은 아주 똑똑히 볼 수 있다. 바로 ‘부정부패를 청산하면 당이 망하고, 부정부패를 청산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것을. 그러나 공산당은 당이 망할 위험을 무릅쓰고 나라를 구하기 위해 부정부패를 청산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직 그것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이 위기에 처했을 때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부패분자 몇 명을 죽이고는 이를 통해 공산당의 생명을 몇 년간 연장시키는 것이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공산당 사교의 유일한 종지(宗旨)는 바로 권력을 유지하고 당의 멸망을 막는 것이다.
오늘날 중국의 윤리도덕은 아주 심하게 파괴되었다. 가짜가 범람하고, 도처에 창녀, 마약, 그리고 공무원과 폭력배들이 결탁한 폭력조직이 횡행하며, 도박, 비리, 부패 등 사회를 해치는 현상들이 범람하고 창궐한다. 공산당은 대부분 이런 현상들을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데, 심지어 많은 관리들은 직접 이들을 보호해 주는 대가로 불법자금을 받는다. 조직폭력배를 연구하는 난징(南京)대학의 차이샤오칭(蔡少卿)에 따르면, 중국에서 마피아의 성격을 띤 조직폭력배들은 적어도 100만 명에 이른다고 추정하였다. 매번 이런 조직폭력 집단들이 적발될 때마다 배후에는 항상 정부 관리들과 법관, 경찰 등 부패한 공산당원들이 연루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중국 공산당은 인민들에게 양심과 선념(善念)이 있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인민들에게 감히 신앙의 자유를 주지 못한다. 신앙을 추구하는 착한 사람들, 예를 들어 진선인(眞善忍)을 추구하는 파룬궁 수련자들 및 예수와 하느님을 믿는 지하 교회 구성원들에게 중국 공산당은 온갖 잔혹한 수단을 써서 탄압하는 것을 능사(能事)로 여긴다.
중국 공산당은 민주정치가 공산당 독재를 끝장낼까 두려워하기 때문에 인민들에게 정치적 자유를 감히 주지 못하며, 독립적인 사상을 가진 자유 인사들과 심지어 민간의 권위 있는 인사들까지도 툭하면 감옥에 보낸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오히려 중국인에게 다른 한 가지 자유를 주었다. 바로 당신이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고 당 간부를 반대하지 않으면 당신은 자신의 어떠한 욕망도 방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사악한 일이든지 또는 천리(天理)에 어긋나는 일이든지 상관이 없다. 따라서 중국 공산당은 걷잡을 수 없는 타락에 빠지게 되었으며 도덕이 크게 미끄럼질치는 현상이 나타났다.
‘천당으로 가는 길을 막아 버리고 지옥으로 가는 문을 연’ 이것이야말로 현재 중국 공산당 사교집단이 사회를 부패시킨 진정한 모습이다.
공산당 사교 통치에 대한 반성
(1)공산당이란 무엇인가
보기에는 간단한 것 같지만 이 문제는 생각만큼 그리 간단하지 않다. 비록 공산당이 ‘공(公)’이라는 외투를 걸치고 정당의 이름으로 출현하여, 확실히 많은 사람들을 미혹시켰으나 공산당은 통상적인 의미의 정당이 아니며 하나의 사악한 영(靈)의 부체이며 사람을 해치는 사교(邪敎)다. 공산당은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이다. 당 조직은, 세간에서 회자되는 사교(邪敎)이자 사교의 몸이다. 근본적으로 공산당을 주재(主宰)하고 있는 것은 바로 최초에 주입된 사악한 영(靈)이며, 그것이 당의 사교본질을 결정하고 있다.
공산당 지도자들은 비록 교주의 신분이지만, 그러나 그들은 단지 사악한 영(靈)과 당의 대변인이자 집사에 불과하다. 그들의 의지와 목적이 당과 일치하고 당에게 이용될 때 그들은 지도자로 선택된다. 그러나 그들이 당의 요구를 만족시켜 주지 못할 때면 그들은 무자비하게 처리된다. 당의 투쟁 메커니즘은 오직 가장 교활하고, 가장 사악하며, 가장 사나운 자라야만 비로소 공산당 교주의 자리에 온전하게 앉아있을 수 있게 만든다.
중국 공산당의 역사에서 십여 명의 당 지도자들이 모두 좋지 않은 결말을 본 것이 바로 이 문제를 증명하고 있다. 당의 최고 지도자는 사실상 출로(出路)가 제한되어 있다. 마치 전(前) 소련 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와 같이 문을 깨고 사교에서 나와 청사(靑史)에 이름을 남기든지 아니면 중국 공산당의 다른 총서기들처럼 당에 의해 희생양이 되는 길뿐이다.
군중은, 공산당이 노역을 시키고 압박하는 대상이다. 공산당이 통제하는 범위 내에서 인민 군중들은 공산당을 거절할 권리가 없으며 도리어 당의 지도를 강제로 접수하고 공산당을 지지하고 공양(供養)할 의무를 감당해야 한다. 그들은 또한 당의 강철 같은 위협 하에, 일상적으로 사교 식의 세뇌를 받아야한다. 공산당은 중국 전 국민들에게 사교를 믿고 공양하게 만들었는데 확실히 세상에서 보기 드물며, 심지어 전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말할 수 있다.
공산당원은, 공산당이란 사악한 영(靈)의 몸을 충실히 하는 집단이다. 이들 중에는 진실하고 선량한 사람도 많으며 심지어 사회적으로 걸출한 성취를 한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중국 공산당은 당내로 끌어들이며 그들의 명예와 능력을 당을 위해 복무하도록 한다. 또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벼슬하기 위해, 다른 사람보다 더 잘 되기 위해, 사리사욕을 위해, 적극적으로 공산당에 가입하여 악인을 도와 나쁜 일을 하는데, 마치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 같다. 또 어떤 사람들은 개인의 성취를 위해 공산당에 가입한다. 왜냐하면 공산당 통치하에서는 입당을 제외하고는 개인적인 발전의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생활 속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은, 집을 배정받기 위해서 심지어 진보적이라는 체면을 얻기 위해 공산당에 입당(入黨)한다.
때문에 중국 공산당의 몇 천만 당원 속에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모두 적지 않다. 그러나 입당 동기가 무엇이며 자발적인지 여부를 막론하고, 오직 공산당의 깃발 아래서 선서를 하기만 하면, 바로 자원적인 헌신을 의미하게 된다. 그 때로부터 매 주 정치학습과 조직생활은 끊임없는 세뇌과정이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은 자아의지가 희박해지거나, 공산당 사악한 영(靈)이 몸에 달라붙어 그것에게 통제 당한다. 이러한 사람들이 공산당 내에서 하는 기능은 마치 인체 내의 세포처럼 신체의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일하는 것이다.
더욱 비참한 것은 이때로부터 ‘당성’이라는 굴레가 머리를 더욱 단단히 조이는데, 그 속박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일단 인간성이 나타나기만 하면 숙청당하거나 박해를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탈당을 하고자 생각해도 공산당 사교는 들어오는 것은 허락하지만 나가는 것은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탈당한다고 하면 당장 배반이라고 선포한다. 때문에 사람들은 늘 공산당원들에게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이중인격을 보게 되는데, 정치적인 장소에서 ‘당성’의 일면과 일상생활에서 인간성의 일면을 보게 된다.
당 간부는 당원 중에서 권력을 잡고 있는 하나의 집단이다. 그들이 비록 개별적인 장소, 개별적인 시간과 개별적인 일에서는 능히 개인의 선악(善惡)을 나타내거나 혹은 개인적으로 결정할 수 있지만, 그러나 그들은 전체적으로는 다만 당의 의지에 따라 처사해야 하는데, 이른바 ‘전당은 중앙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상부(기관)의 지시를 받아 그것을 하부(기관)에 전달하여 시행하는 공산당의 중견 역량이지만, 그러나 그들이 일으키는 작용은 단지 당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사람들은 역대 운동 중에서 이용당하기도 하고, 또한 공격을 받기도 한다. 이것의 배후에 있는 표준은 바로 당신이 교주를 제대로 따랐는가와 또 오직 한 마음으로 충성하는가이다.
(2) 중국 인민들은 왜 깨닫지 못하는가?
중국 공산당은 50여 년 동안 중국을 통치하면서 많은 나쁜 일을 했으며 사악하기가 비할 바 없다. 그러나 왜 중국 인민들은 그것의 사교본질에 대해 오히려 인식이 부족한가? 중국인들이 우둔하기 때문인가? 아니다. 중국인은 세계적으로 가장 지혜로운 민족의 하나이며 , 또한 5천년의 유구한 전통문화를 갖고 있다. 그러나 중국인은 오히려 오늘까지도 공산당의 통치 하에서 살고 있으면서 감히 불만을 터뜨리지 못하는데, 관건적인 원인은 공산당이라는 이 사악한 영(靈)이 인민들의 사상을 속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자! 만약 중국 인민이 언론자유를 향유하고 있고, 공산당의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공개적으로 토론할 수 있다면 지혜가 있는 중국인들은 일찌감치 공산당의 죄악 본질을 간파했을 것이며 일찌감치 공산당 사교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한 것은 중국 공산당의 통치하에서 반세기 동안 중국 인민들은 언론과 사상의 자유를 잃었다는 것이다.
1957년 지식인 중에서 우파를 색출한 것은 바로 언론을 탄압하고, 사상을 속박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 자유가 없는 사회에서, 문화대혁명 시기에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원서(原書)들을 성심으로 연구했던 젊은이들 중 많은 사람들마저 ‘반당(反黨) 집단’의 누명을 쓰고 탄압 당했다. 그러니 공산당의 시시비비를 토론한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다.
공산당을 사교라고 하면 많은 중국인들은 감히 생각조차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일단 논의가 되고, 중국에서 생활해본 사람이라면 자신의 경험과 친구들의 경험에서 충분한 논거(論據)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중국 인민들은 사상의 자유를 속박 받는 외에도 또한 공산당의 설교와 당문화를 머리에 부어 넣어야 한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그저 당에 대한 공덕과 은덕을 노래하는 것만을 듣게 되며 머릿속에는 공산당의 그러한 것 외에 다른 것은 가련할 정도로 빈곤하다.
예를 들자면, 6.4 탄압 당시 천안문 광장 부근에서 총성(銃聲)이 울리자 많은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관목(灌木)더미 속으로 숨었다. 좀 있다가 제정신이 들자 자기가 숨어 있던 곳에서 나왔는데 약속이나 한 듯이 『인터내셔날가』를 소리 높여 부르면서 용감하게 걸어 나왔다. 그 중국인들은 확실히 용감하고, 순진하며, 존경할 만 했다. 그러나 왜 공산당의 학살에 직면하여 공산당의 『인터내셔날가』를 높이 불렀단 말인가? 원인은 아주 간단하다. 당문화의 교육을 받은 가련한 사람들은, 그저 공산당이 주입한 공산주의 외에는 몰랐기 때문이다. 즉, 인민들은 『인터내셔날가』와 공산당을 찬양하는 노래 외에 다른 가곡은 부를 수 있는 것이 없었던 것이다.
(3)출로는 어디에 있는가?
중국 공산당은 이미 철저하게 타락했다. 그러나 슬픈 것은 이 사교가 멸망하기 전에 아직도 자신의 운명을 중국 민족과 함께 묶어 놓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머지않아 관(棺) 속에 들어갈 중국 공산당은 그 역량이 분명히 쇠퇴일로에 있으며 인민들에 대한 사상 통제도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현대 통신과 인터넷의 발달로 중국 공산당은 이전과 같이 계속해서 정보를 독점하고, 언론을 봉쇄하기가 매우 어렵게 되었다. 탐관오리들의 인민에 대한 약탈과 압박은 갈수록 엄중해지고 있으며 중국 공산당에 환상을 품고 있던 대중들도 점차 각성하고 있으며 적지 않은 사람들이 민간에서 권리수호를 위한 투쟁의 길에 들어서고 있다.
파룬궁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박해는 사상통제를 공고히 하고자 하는 목적에 도달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중국 공산당의 원기를 크게 손상시켰으며, 중국 공산당의 잔혹한 폭력을 폭로하였다. 이런 거대한 형세 하에서 공산당에 대해 반성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고, 중화 민족의 사상통제를 제거할 수 있게 되었으며, 공산당이란 사악한 영(靈)의 통제에서 철저하게 해탈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중국 공산당의 사교통치에서 50여 년간 생활해 온 중국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폭력혁명이 아니라 영혼의 구원이다. 이것은 중국인들이 스스로 구해야만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자신을 구원하려면 먼저 공산당의 사교본질부터 인식해야 한다.
분명 어느 날엔가는, 인민들이 국가행정 체계 위에 군림하는 공산당 조직을 끌어내릴 것이며, 독립적인 사회체계를 유지하게 될 것이다.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 당 조직은 감소할 것이며, 정부기관의 업무 수준을 개선하고 효율을 높이게 될 것이다. 이런 날은 이미 멀지 않았다. 사실상 공산당을 정부에서 제거해야 한다는 이치는 이미 80년대에 ‘당과 정부가 분가(分家)’ 해야 한다는 당내 개혁파 인사들에 의해 인식되었으며 실천도 거쳤었다. 그러나 만약 의식형태 면에서 ‘공산당의 절대적 영도’를 부정할 수 없다면, 이런 사교 체계 내에서 개량하려는 노력은 사실 힘이 부족한 것이며 또한 진행하기 어려운 것이다.
당문화는 공산당 사교조직이 필요로 하는 존재 환경이다. 사상적으로 당문화와 공산 사교의 낙인을 제거하자면, 다시 말해서 사상적으로 당의 부체를 제거하자면 아마도 행정기구 중에서 당의 부체를 제거하는 것보다 곤란이 더 클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진정으로 공산당 사교를 제거하는 근본적인 방법이다. 이것은 오직 중국인들이 자구(自救)적인 노력을 기울여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사상적으로 근본부터 뜯어 고쳐야 하며, 인간성의 측면에서는 반본귀진(返本歸眞)해야만, 비로소 사회도덕의 재건을 실현시킬 수 있으며 공산당이 없는 양성(良性)사회로의 전환을 순조롭게 완성할 수 있다. 부체를 제거하는 묘방은 바로 사악한 영의 해악(害惡)을 인식하는 것이며 사상적으로 그것과 결렬(決裂)하고, 제거하며, 부체가 다시는 발붙일 곳이 없도록 해야 한다.
공산당은 ‘의식형태’에 대한 통제를 가장 중시하는데 왜냐하면 공산당이 바로 하나의 의식형태이기 때문이다. 중국 인민들이 모두가 마음속으로부터 공산당의 억지와 사설(邪說)을 부정하고, 자발적으로 당문화를 깨끗이 제거하고, 자신의 관념과 생활 속 여러 방면에서 공산당 사교의 영향을 깨끗이 제거한다면 공산당의 의식형태는 붕괴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공산당은 곧바로 인민들이 자구(自救)하는 중에서 해체될 것이다.
공산당이 통치하는 국가는 흔히 빈곤, 권력집중, 박해가 연계되어 있다. 이러한 국가는 이미 많지 않는데 중국, 북한, 베트남, 쿠바 등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이며 그 종말은 얼마 남지 않았다. 중국인의 지혜로 중화민족의 찬란한 역사를 비춰본다면, 공산당이란 사악한 영의 부체에서 벗어나야만 희망적인 사회가 될 것이다.
결 론
공산당은 이미 더 이상 공산주의를 믿지 않으며 그 영혼은 이미 죽었다. 그렇지만 망령은 아직도 남아 있다. 중국 공산당은 공산당의 가죽을 계승하였다. 그 속에는 아직도 스스로 잘난 체하며,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악한 본성이 남아 있다. 중국 공산당이라는 이 사교 속에는 하늘의 이치를 부정하고 인간성을 말살하는 공산당의 본질이 함께 유전되고 있으며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오늘날 중국 공산당이 중국을 통치하는데 사용하는 것은 바로 공산당이 다년간 누적한 투쟁수단, 엄밀한 조직제도와 ‘당부체’의 통치 형식이며 또한 국교화(國敎化)된 사교의 선전이다. 지금까지 앞에서 언급한 공산당의 6대 사교특징을 오늘날 중국 공산당은 모두 갖고 있는데, 그것들은 착한 일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나쁜 일만 하고 있다.
갈수록 멸망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이 공산당 사교는, 마침 부패와 타락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가장 두려운 것은 멸망을 달가워하지 않는 이 사교가 온 힘을 다해 중국사회를 부패와 타락의 심연(深淵)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첫댓글현재 중국 공산당의 잘잘못을 떠나 이러한 문건은 한 국가를 전복하고자 하는 명백한 반정부적인 문건이라 하겠습니다. 특히 공산당을 사교라고 하는 걸로 봐서는 기독교 계통에서 만들어서 중국을 붕괴시키려는 것이라 추측할수도 있는데요.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 쪽에서 만든 자료가 아닌가요?
이런 자료를 만들어서 중공이 망한다손 치더라도 중국 대륙의 찬란한 문명이 다시금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왜냐면, 조선말기에 일본의 도움으로 왕조를 붕괴시키고 공화정으로 나라를 바꾸려다 결국 일본을 필두로한 서양 제국주의세력에 나라를 빼앗겼듯이 결국 사냥개 노릇만 하고 나중에 팽당할거라는 생각이
그리고 미국알바 운운하는것이 참 기분이 나쁘군요.. 미국이라는 나라 한번도 가본적도 없는 나라이고 미국에 대해서 호의적인 생각도 가지고 있지않으니 송희곤님 개인적인 상상을 그런낭설로 발설하지마시지요.중국공산당 말살정책에 대해 티끌이라는 말로 표현했는데, 그게 정상적인 생각이시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나는 공산주의도 민주주의도 신봉하지않는다고(그렇다고 무정부주의자도 아님.) 자본주의나 공산주의 대립적인 개념이 아니라고 이미 얘기를 했는데도 여전히 딴소리를 하시는군요. 민주나 맑시즘 그따위 허접사상에 정신이 미쳐버리면 아무리 좋은 소리를 해도 귀에 들어오지를 않지요.
확실한 사실은 일반적으로 우리 한국인도 미국<=>중국의 대칭적 관계, 자유(자본)주의<=>사회(공산)주의의 대립관계라는 도식에 세뇌되어, 모 아니면 도, 흑 아니면 백 등 흑백논리로밖에 판단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중국에 대한 비판글이 있다면 영미세력이나 러시아, 프랑스, 네덜란드 등 각종 열강
의 이면도 있을 수 있고(아니 있을 것이고), 유대인이나 스위스 같은 금융이나 투기 등으로 부를 형성한 집단의 이면史도 있습니다. 이 글도 그러한 맥락에서 세계사에 숨겨진 이면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것입니다. 다만, "중국공산당은 邪敎집단"이라는 용어는 우매한 대중을 경직되게 反中親美, 反美親中으로 편가르
댁이 얼마만큼이나 유식한지 무식한지는 내 알바아니나 내무식을 깨우칠 정도의 지식을 갖고 있지는 않은것 같네요. 혹시 사회주의 진영에서 스스로를 공산국가라고 발표한적 있던가요? 본인들은 자신들을 공산국가라고 자처 하지 않는데 미국진영에서 공산국가라고 하면 공산국가가 되나요 ?
내 질문에 답변을 안하시네 ? 그나라들이 공산국가라는 최소한의 근거라도 들이 밀어야 되는건 아닌가요 ? 댁말고 어떤 유식한 분들은 이런말도 합디다. 공산당이 국가의 권력을 갖고 있어서 공산국가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기는 합디다.그런논리라면 미국은 민주(당)국가 였다가 공화(당)국가인가요 ?
혹시라도 개그성 답변을 할까 우려되어 미리 예시를 하였으니, 고견을 들려 주시겠읍니까 ? 제 댓글(전 무식해서 우리말을 쓰는 편이랍니다. 너그러히 이해하시길 바람니다)을 보고 싶지 않으시면 글을 안올리는 방법도 있거나 회원제로 하거나 기타 접근제한 조치를 취하시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첫댓글 현재 중국 공산당의 잘잘못을 떠나 이러한 문건은 한 국가를 전복하고자 하는 명백한 반정부적인 문건이라 하겠습니다. 특히 공산당을 사교라고 하는 걸로 봐서는 기독교 계통에서 만들어서 중국을 붕괴시키려는 것이라 추측할수도 있는데요.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 쪽에서 만든 자료가 아닌가요?
이런 자료를 만들어서 중공이 망한다손 치더라도 중국 대륙의 찬란한 문명이 다시금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왜냐면, 조선말기에 일본의 도움으로 왕조를 붕괴시키고 공화정으로 나라를 바꾸려다 결국 일본을 필두로한 서양 제국주의세력에 나라를 빼앗겼듯이 결국 사냥개 노릇만 하고 나중에 팽당할거라는 생각이
듧니다. 근본적으로 이런글을 왜 이곳에 올리시는지요? 공산당이 중국 대륙의 찬란한 문화/문명을 마구 짓밟았다는 것을 고발하는 것인지요? 그렇다면 그렇게 원인을 제공한 서양에 제국주의/자본주의에 대한 동일한 비판 내용을 올려주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어치피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나 동전의 양면이고, 사회주의가 100% 정확하게 실행되지 않았다면, 민주주의 역시 100% 실현되는 곳은 없습니다.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을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눈에 붙은 들보도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겠지요.
제가 공산주의에 경도된것도 자본주의에 미친것도 아니지만, 이런글을 보면, 이걸 올리는 사람은 꼭 미국 알바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썩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반정부적인 문건이라..마치 중국공산당의 열성당원같은 말투군요..중국공산당이 주체가되어 대조선의 역사와 문화를를 말살시키려했다는 것은사실이지요. 서양제국이라는 표현보다는유태인과 왜(倭)라는 말이 더 타당할것 같군요. 그리고 허접스러운 맑시즘이나 민주주의에 환상에서 헤어나시기를..
그리고 미국알바 운운하는것이 참 기분이 나쁘군요.. 미국이라는 나라 한번도 가본적도 없는 나라이고 미국에 대해서 호의적인 생각도 가지고 있지않으니 송희곤님 개인적인 상상을 그런낭설로 발설하지마시지요.중국공산당 말살정책에 대해 티끌이라는 말로 표현했는데, 그게 정상적인 생각이시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나는 공산주의도 민주주의도 신봉하지않는다고(그렇다고 무정부주의자도 아님.) 자본주의나 공산주의 대립적인 개념이 아니라고 이미 얘기를 했는데도 여전히 딴소리를 하시는군요. 민주나 맑시즘 그따위 허접사상에 정신이 미쳐버리면 아무리 좋은 소리를 해도 귀에 들어오지를 않지요.
유태인과, 왜, 또한 중국공산당은 여하간 대륙조선사를 말살하려고 한 장본인들입니다. 내가 인용한 글과 동영상은 감추어진 역사의 비밀을 공개한것이니 여기에 더이상의 딴지는 없었으면 합니다
딴지걸 가치조차도 없지 않나요? 그저 한번 웃어주면 되지요.대륙조선사를 말살하면 안되나요? 대륙조선을 믿는다면 주인이 자신의 역사를 말살하던 말던 그건 주인의 권한이지요. 그건 마치 남의집 제사상에 감놔라 배놔라 하는것과 같은 이치이지요.
김원태 다른 카페에서도 멍청한 소리로 비웃음을 당하고있더구만..
확실한 사실은 일반적으로 우리 한국인도 미국<=>중국의 대칭적 관계, 자유(자본)주의<=>사회(공산)주의의 대립관계라는 도식에 세뇌되어, 모 아니면 도, 흑 아니면 백 등 흑백논리로밖에 판단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중국에 대한 비판글이 있다면 영미세력이나 러시아, 프랑스, 네덜란드 등 각종 열강
의 이면도 있을 수 있고(아니 있을 것이고), 유대인이나 스위스 같은 금융이나 투기 등으로 부를 형성한 집단의 이면史도 있습니다. 이 글도 그러한 맥락에서 세계사에 숨겨진 이면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것입니다. 다만, "중국공산당은 邪敎집단"이라는 용어는 우매한 대중을 경직되게 反中親美, 反美親中으로 편가르
기로 흐르게 할 수 있으며, 우리는 이것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단 답글들은 특정인을 대상으로 한 답글이 아님을 밝혀둡니다.
김원태님 무식한 소리를하려면 그냥 가만히 있으시지요.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고했습니다
내가 무식한지는 모르나 공산국가가 존재한적이 없다는 것정도는 압니다. 이른바 사회주의진영은 스스로를 공산국가라고 자처한적이 결코 없지요. 자본주의진영이 스스로를 민주국가라고 자처하는 오만을 부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댁은 민주주의나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를 너무 모르는군요
댁은 그 이념들의 미묘한 차이를 모르기에 중국이든 구소련이든, 혹은 조선을 공산국가라고 단정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읍니다. 하긴 정치학을 전공하는 대학생들도 범하는 오류이니 오죽하겠나요 . 잘 웃었소. 무식한 사람은 발언 하면 안되나요 ?
댁이 얼마만큼이나 유식한지 무식한지는 내 알바아니나 내무식을 깨우칠 정도의 지식을 갖고 있지는 않은것 같네요. 혹시 사회주의 진영에서 스스로를 공산국가라고 발표한적 있던가요? 본인들은 자신들을 공산국가라고 자처 하지 않는데 미국진영에서 공산국가라고 하면 공산국가가 되나요 ?
당신 리플 보고싶지않으니 내 글에는 앞으로 리플 달지마시오 아시겠소?
내 질문에 답변을 안하시네 ? 그나라들이 공산국가라는 최소한의 근거라도 들이 밀어야 되는건 아닌가요 ? 댁말고 어떤 유식한 분들은 이런말도 합디다. 공산당이 국가의 권력을 갖고 있어서 공산국가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기는 합디다.그런논리라면 미국은 민주(당)국가 였다가 공화(당)국가인가요 ?
혹시라도 개그성 답변을 할까 우려되어 미리 예시를 하였으니, 고견을 들려 주시겠읍니까 ? 제 댓글(전 무식해서 우리말을 쓰는 편이랍니다. 너그러히 이해하시길 바람니다)을 보고 싶지 않으시면 글을 안올리는 방법도 있거나 회원제로 하거나 기타 접근제한 조치를 취하시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