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소왕 막북무쌍.
험준한 태항산맥의 서쪽과 황하의 물줄기를 동쪽에서 가로막고 있는
여량 산맥의 우측 가운데 평지 平地를 따라 북상 北上하여 후군이 주둔 駐屯하고 있는 장성을 지나,
황하의 북쪽에 버티고 있는 음산 산맥의 산악지대를 조심스럽게 행군하여 벗어나니,
드디어 눈에 익은 친숙한 넓은 초원이 나타난다.
초원이 넓으니 통행하기에도 편하다.
그러자 후미 後尾 쪽의 설담비와 위지율. 걸걸호루 천부장은 재빨리
아군 我軍의 기존행렬 옆으로 행렬을 한 줄 더 만들어 행군한다.
이동하는 통로의 넓이에 따라 행군의 형태를 짧고 굵게 만들어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중군에서도 선두와 후미를 한눈에 일목요연 一目瞭然하게 관찰할 수 있는 가시권 可視圈에 들어온다.
치고 빠지는 전술로 철수 撤收할 때 신속히 이동할 수 있으며,
그러면 동료 서로 간에 소통이 쉬워지는 장점도 있다.
사정 수련원의 막내 걸걸 호루도 장성하여 이제는 어엿한 장부로서 천부장이란 중임을 담당하고 있었다.
아버지 걸걸 추로 소왕이 오라고 하여도, 호루는 사부 박지형과
사정 수련원 선배들과 함께 있겠다며 고집을 부려, 묵황 소왕 휘하의 이곳에 있는 것이다.
이제는 적 진영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안도감이 들자, 갖가지 전리품이 가득 실린 소 수레를 끌고 가는 병사나 노획한 양 떼를 모는 군사들도 긴장감이 풀리며, 행동은 조금씩 느긋해지고, 눈빛은 안정화되어 여유가 엿보인다.
그런데, 초원으로 회군 回軍하는 도중에 선두 先頭에서 잘 가고 있던 행렬이 주춤거리더니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한다.
가다가 멈추어 버리니 할 일이 없어진 양과 염소 떼는 풀을 찾아다니느라, 자꾸 자리를 이탈 離脫한다.
담당 병사들이 말을 몰아 무리에서 이탈한 양들을 이리저리 쫓아다니며, 한곳으로 모으느라 애를 쓰고 있으나,
발이 빠른 염소 몇 마리는 상당히 먼 곳까지 도망가고 있었다.
이를 뒤 쫓아가는 병사들의 마음이 바쁘다.
자칫하면 귀중한 전리품이 사라질 수도 있다.
이 전과 물 戰果 物을 획득하기 위하여 벌어진 공성전 攻城戰에서 동료가 죽었고,
나 자신도 여기저기 상처를 입었고, 다친 생채기에서는 지금도 붉은 피가 스며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한 마리라도 놓치면 아니 되는 소중한 재산이다.
아직 짐승과 이들을 모는 낯선 사람, 서로 간에 교감 형성 交感 形成이 미약하다.
양 떼들은 밤을 세워 계속 장거리를 이동하였고 더구나, 낯선 인간이 자신들을 통제하니 어리둥절하다.
몰아가고 통제하는 방법도 이전 주인과는 사뭇 다르다.
언어부터가 틀린다.
처음 들어보는 생소 生疏한 언어들이며,
특히,
목소리가 아주 크며 억양이 강렬하고, 대부분 짧게 축약 縮約된 단어를 빠르게 사용하고 있었다.
앞서 말하는 단어가 채 끝나기도 전에, 뒤에 순서대로 나와야 할 단어가 먼저 튀어나오는 성격 급한 모습이다.
빠르게 회전하는 뇌리 腦裏에서 생각하는 속도만큼 입이 제대로 따라가지를 못하여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니 대화할 때, 버벅거리거나 더듬는 사람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 더 많다.
급한 상황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한 경향 傾向을 보이며,
평소에는 과묵 寡默해 보이나,
술이나 한잔 들어가 흥분하게 되면,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기도 한다.
술집에 가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도 옆자리의 분위기나 대화를 들어보면 아니, 목소리가 크니 자연히 들리게 되어있다.
큰 목소리와 더불어 양팔이 번갈아 가며 허공을 휘젓고 있다.
크고 빠르게 내뱉는 말로도 상황을 설명하기에 부족함을 느끼니, 몸짓. 손짓까지 대동시켜 표현하는 것이다.
어느 지역 출신인지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구질구질하지 않고 단순명료 單純明瞭하다.
자신의 소신이 뚜렷하며, 한번 고집을 부리면 좀처럼 타협하지 않는다.
과격하고 자존심이 강하니,
상거래 商去來상 손해를 자초 自招하는 경우가 비일비재 非一非再하다.
바둑알처럼 흑과 백이 뚜렷하다.
넓은 초원에서 생사 生死를 건 잦은 전투 戰鬪를 치루면서, 형성된 유전인자다.
사방이 넓고 서로 간의 거리가 멀리 떨어진 경우가 많아, 의사전달 意思傳達시 목소리가 커지고,
목숨이 오가는 전투 도중, 이것저것 미주알고주알 상세히 설명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화살이 떨어지면, 그냥 “활”이라고 외치고,
창 자루에 금이 가거나 문제가 생기면,
단순하게 “창” 이런 식으로 서술어를 생략시키고,
급한 마음에 주어 主語만 내뱉으며, 마구 고함을 지른다.
그러니 곁에서 빨리 눈치채고 원하는 바를 알아주길 바란다.
[ * 이심전심 以心傳心.]
석가모니 釋迦牟尼가 설법 說法 도중,
연꽃을 꺾어 들고 뭇 제자들에게 보이자,
다른 이들은 그 의미를 몰라 가만히 있는데,
오직, 수제자 首弟子 가섭 迦葉 만이 그 뜻을 알아차리고,
빙그레 웃었다는 불교 佛敎에서 유래 由來된 고사 故事,
‘이심전심 以心傳心’을 최고의 미덕 美德으로 여기고 있다.
그 지역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어구 語句가 있다.
"꼭, 말을 해야, 알아듣냐?"
“내 말이, 그 말 아이가?”
“갸~가, 갸가?”
더 이상의 서술어 敍述語는 불필요하다.
주어 主語만 내뱉으면, 상대방이 이해한다고 여긴다.
더 이상 以上 길게 지껄이는 것을 스스로 용납 容納하지 않는다.
뜻만 통하면 되는 것이다.
“할아버지 오셨습니까?” 9자의 단어가 “할밴교?” 단 3자로 축약된다.
그 이상은 언어 사치 言語 奢侈고 시간 낭비 時間浪費라고 여긴다.
인터넷 [Internet]시대.
화면에 나타나는 대화 내용을 보고 있자니, 시간 단축을 위하여 단어나 서술어를 최대한 축약시킨다.
그렇게 해도 의사전달이 가능하다. 아니, 오히려 서로간 의사소통이 더 신속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축약시키다 보니, 자연스럽게 남쪽의 지방 언어로 둔갑하고 있다.
최첨단 시대에 적절한 소통 어구로 떠오른 것이다.
그러니까, 먼 고대 신라시대의 표준어가 현재 첨단 인터넷의 소통 언어로 맹활약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 인터넷 표준어로 정착할 태세다.
묘한 아이러니[irony]가 아닐 수 없다.
퇴근하여 저녁에 귀가한 가부장 家父長이 하는 말, 거의 공식화 公式化 되어있다.
“아~는?”
“밥 묵자”
“자~자”
말이 없더라도, 상세한 설명이 생략되더라도, 상황을 보고 상대가 궁금하게 여기고 원하는 바를
스스로 알아차리고 판단하라는 식으로 이심전심을 강조하는 어투 語套다.
초원 정착 定着 초기, 부족 간의 다툼부터 시작하여, 크고 작은 전투로 삶을 살아온 거친 유목민의 후예들이다.
드넓은 초원에서 이 천년 千年이 넘는 세월을 수십 대 數十 代를 이어가며 늘 그렇게 거칠게 살아왔으니,
자연스레 형성된 유전인자다.
옷차림새도 전혀 다르다.
남쪽의 농경민들은 북쪽 차가운 고원에 비해 날씨가 따듯하니 무명천과 목화 木花 솜으로 누벼 만든 옷차림새가 비교적 가볍고 색깔도 밝다.
이에 비해 새로운 주인들은 대부분 양가죽으로 만들어 입은 옷차림새가 두텁고, 말을 타기에 적합 適合하도록 특화 特化되어 있었다.
그리고 양 떼들을 몰아가는 방식도 남방의 농경민들은 걸어 다니며, 천천히 모는 것에 비해 새로운 사람들은 커다란 말을 타고, 가는 길을 급히 독촉 督促하고 있었다.
양과 염소들은 이런 상황을 처음 겪어보니 적응이 아니 되고 당황해하는 것이다.
중군과 후미에서는 이런 어수선한 상황이 여기저기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런 와중 渦中에
선두에서는 행군을 저지하는 어떤 장애물 障碍物을 만난 것 같다.
잠시 후,
“남 흉노의 병사들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라고 전령이 다급히 달려와 보고한다.
중군 中軍을 지휘하며 행군 行軍하던, 묵황 소왕 이중부가 앞쪽으로 급히 말을 몰아 가보니,
정돌식과 최장안이 연합하여 막북무쌍 한준과 어울려 싸우고 있는데,
용장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두 장수가 협공 協攻하여도 도리어 막북무쌍 한 명에게 밀리는 형세다.
아무래도 불안해 보였다.
군사 탁발 규에게 지시하여 징을 쳐서 두 장군을 불러들이고, 묵황야차 소왕 이중부가 전면 前面에 나선다.
또다시 만나 두 영웅.
고비사막 남동쪽 메마른 초원에서 또다시 부딪친 불세출 不世出의 영웅들이다.
관전하는 병사들은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손에 땀을 쥐고, 두 영웅의 결투를 지켜보고 있다.
북 흉노 병사들 대부분은 두 영웅의 무용담을 이야기로만 전해 들었지,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다.
그 무용담 武勇談에 매료 魅了되어 병사로 자원 自願한 젊은이들도 상당수 있었다.
막북무쌍 한준도 그동안의 전적 戰績과 뛰어난 무용과 공로 功勞를 인정받아,
남 흉노에서 소왕으로 임명되었다.
북 흉노군에서 귀순 전향 歸順 轉向한 자에게는 아주 특별한 배려였다.
그만큼 막북무쌍 한준의 무위 武威와 전공 戰功이 대단하였으며,
이를 모두 인준 認准한다는 것이다.
막북무쌍 소왕과 묵황야차 소왕.
소왕 대 소왕의 일기토 一騎討 대결은 좀처럼 보기 드문 광경이다.
소왕은 일반 흉노인들의 최종적인 목표다.
좌, 우현왕은 선우의 동생이나 자식 등 가까운 친인척이 대부분이다.
혈연 血緣으로 등극 登極한다는 것이다.
철저한 골품제다.
흉노족은 일반적으로 20대 중. 후반에 백 부장, 30대에 천 부장, 4. 50대에 만 부장이 되는데,
소왕(만부장)이 될 나이가 되면 일선에서 직접 싸우기에는 당시의 연령층으로 따져보면 이미 늦다.
신체의 근력 筋力이 줄어들어 힘이 빠진 노인네들이다.
늦은 나이에 노익장을 발휘하는 노 영웅들이 간혹 출현하지만, 양 진영에서 함께 노익장 老益壯을 과시하는
영웅이 동시대 同時代에 같은 전장터에서 맞닥뜨리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막북무쌍과 묵황야차는 뛰어난 무예로 약관 弱冠의 나이에
소왕의 지위에 오른 영웅들이기에 이렇게 둘이 마주치게 된 것이다.
숙명 宿命의 호적수들이다.
- 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