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일 일요일 맑다. 중·한·일 세 나라 발음을 다 밝힌 미국의 한문 교과서
오늘 다시 사위와 같이 대학 중앙도서관에 가서 하루를 보냈다. 주차장에 파킹하기가 쉽고, 또 조용하다고 사위는 일요일에 도서관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지하서고에도 내려가서 중국문학과 철학과 관련된 서양말로 된 책들을 좀 둘러보고서 몇 권을 대출하기도 하였다.
오늘 살펴본 책중에 2007년에 하버드대학 출판부에서 낸 한문교과서 A New Practical Primer of Literary Chinese가 좀 눈에 들어왔다. 저자는 폴 라우져Paul Rouzer라는 사람인데, 지금은 미네소타대학교의 교수가 되었지만 이전에 하버드대학 등지에서 여러 해 동안 한문을 가르치던 사람인데, 그 때 나도 한 두 번 만난 일이 있고, 또 당시 다른 사람(Fuller)이 썼던 하버드 대학의 한문 교과서 (An Introduction to Literary Chinese)에 관하여 이야기를 좀 나눈 적도 있었는데, 이 사람이 다시 자기이름으로 같은 류의 책을 내었다고 하니 반갑게 생각되었다.
이 책은 앞의 풀러의 책과 같이, 서양 여러 나라 학자들이 이룩한 한학 연구의 성과를 수렴하는 등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중 이 책만이 가진 가장 큰 특징은 한문 글자 설명에, 먼저 발음을 밝히는데 처음에는 병음(倂音)부호로 북경발음을 적고, 그 다음에는 로마자로 일본식 발음과 한국식 한자 발음을 나란히 제시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책 뒷 부분에 보니, 교과서 본문에 나오는 모든 한문 원문을 모두 다 일본식 발음을 로마자로 다 한번 적어 두었고, 색인 부분에는 북경발음 로마자 음순 색인도 있지만, 한국한자 발음 로마자 음순 색인도 별도로 더 붙어있다.
왜 이렇게 해야만 하는가? 미국에서 동양학을 공부하고, 한문 고전 원문까지 공부해야할 필요성을 느끼는 학생들은 서양의 백인들 이외에도, 중국·한국·일본 같은 나라들의 교포, 또는 유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이러한 한중일 여러 나라의 문화 배경을 지닌 학생들을 위하여서는 이렇게 책을 만드는 것이 편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전에 미국서 이런 과목을 수강한다는 한국 유학생들을 만나보니, 한자의 발음을 꼭 현대 중국의 북경 발음을 몰라도, 한국식 한자발음으로 읽고도 뜻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과목을 들을 때 담당 교수들에게, 발음 문제는 중국어(현대 북경 발음)만 강요하지 말라고 요청을 한다고 하였다. 서양에서 한문을 공부하거나, 강의할 때 생기는 특수한 현상이다.
더러 서양에서 나온 한문 책 중에, 한자의 발음을 현대 북경 발음과 현대 광동발음을 병기한 책이나, 아주 드물고 전문적이기는 하나, 고대 한어(춘추전국시대나 그 이전) 발음이나, 또는 중고 한어(당나라 전후) 발음을 국제 음성기호IPS로 적고, 현대 북경어의 발음을 병음자모로 병기하여 놓은 책을 보기도 하였는데, 이렇게 교과서에서 현대 한중일 발음을 병기한 책은 처음 보겠다. 그런대 이러한 점을 통하여 한 가지 특별히 주목할 점은 서양의 동양학자들의 눈에는 “한문”이 꼭 중국 사람들의 것만도 아니고, 한국, 일본 같은 동양 여러 나라의 “공통 유산” 이라는 생각이 아울러 깔려 있다는 점을 확인 할 수도 있다.
한문이 있기 때문에 중국뿐만이 아니라 한일의 문화유산이 그만큼 풍부하여 졌고, 또 앞으로도 이 글을 잘 익힘으로서 옛 문화와 새로운 문화를 두루 계승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런대, 한국의 어떤 위인들은 “한문은 남의 것이니 버리자”고 하니 참 기가 찰 이이야기다.
이 한문 교과서를 보면서, 지금 한국이나 중국, 또는 서양 여러나라에서도 가장머리가 좋고 행운도 따라서 미국, 또는 영국의 일류대학에 와서 동양의 문학,사학, 철학 같은 분야를 공부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가끔 이렇게 열심히 한문을 가르치는 사람도 있고, 또 그것을 부지런히 배우고 있는 사람들도 있구나 싶어 탄성이 나온다. 한학 연구에 있어서도 미국과 영국은 역시 막강한 강국이다. 이러한 점이 이러한 나라를 일류국가로 만드는데 일조를 하게 한다.
오늘은 노트북까지 들고 가서 열람실에 설치하고서 인터넽도 하고 보니, 오랜만에 다시 학생이 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