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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각산 기슭에 자리한 흥천사 전경. 강북지역을 대표하는 포교도량으로 성장하고 있다. |
4년 전만 해도 흥천사(興天寺)는 퇴락한 절에 불과했다. 아파트단지가 밀집한 서울 강북의 포교요충지는 철저하게 버려졌다. 6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명찰이었지만 현대에 와서 기세가 꺾였다. 불교정화운동 당시 대처승이 거주하게 되면서 1962년 통합종단 출범 이후 종단은 실질적인 운영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더구나 이전 주지가 무단으로 토지 매각을 시도하면서 존폐 위기까지 몰리게 됐다.
2011년 6월 정념스님(조계종 중앙종회의원, 종책특보단장)이 신임 주지로 부임하면서 흥천사는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2005년 4월 산불로 잿더미가 된 양양 낙산사를 3000일 복원불사로 다시 일으켜 세운 바로 그 스님이다. 전 주지가 건설사와 맺은 토지매매 계약을 백지화하고 사찰 토지를 점유해 살던 22가구 80세대 주민들과 원만한 보상 합의를 이뤄 내보냈다. 그해 10월 사찰을 관리하던 거주승과 협약을 맺고 인수절차를 마무리했다. 반세기만의 귀환이었다. 구설수로만 떠돌던 고찰이, 명실상부한 종단의 공찰(公札)로 거듭나던 순간이다.
절은 깨끗해졌고 땅은 넓어졌다. 낙산사가 그러했듯 흥천사 역시 정념스님을 만나면서 과거의 영광이 조금씩 그러나 빠르게 드러났다. 종무소를 손보고 경내에 돌길을 새로 깔았다. 시민선방인 삼각선원을 새로 짓고 지난 6월1일엔 서울시 최초의 전통 한옥식 어린이집을 개원했다. 단 2명이었던 신도 수는 이제 3000가구를 바라본다. “처음 주지로 부임해 올 때 종무소에는 책상은 커녕 볼펜 한 자루조차 없었다”던 스님의 회고를 떠올리면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주지로 취임하면서 정념스님은 “흥천사를 교세 확장의 수단으로 삼지는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서울 시민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쉼터로 복원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흥천사의 청사진은 균형과 조화, 자연과 문화가 공존하는 생태공간”이라고 소개했다. “주민들이 아침에 일어나 거닐고 싶은 도량으로 만들고 싶다”는 게 궁극적인 원력이었다. “지역주민이 관세음보살이니 이들을 극진히 섬겨야 한다”는 설악산 신흥사 조실 설악 무산스님의 가르침을 따른 것이다.
사람 냄새나는 절로 가꾸려면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했다. 주민들과의 신뢰감 조성 그리고 신뢰감을 이어갈 프로그램 개발을 사찰 운영의 첫 번째 화두로 삼았다. ‘내 꿈이 이루어지는 108배’ 프로그램엔 흥천사의 급격하고 경이적인 변화가 집약됐다. 불교의 대표적인 수행법인 108배의 생활화 그리고 사회화를 통해 사람이 왜 절에 와야 하는지를 일깨웠다.
‘내 꿈이 이루어지는 108배’가 실현되는 장소는 법당이 아니라 각자의 가정이다. 새로 등록한 신도에게 좌복과 부처님 사진, 종이 불전함, 가족축원문을 선물한다. “일상 속의 수행으로 스스로의 소중함과 뭇생명의 고마움을 깨우치라”는 배려다. 몸이 아프든 바라는 것이 있든 세상사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든, 언제 어디서나 108배를 할 것을 권한다. 108배가 힘들다면 21배만 해도 좋다. 매일 한다는 것이 중요하며 그것이 삶을 지키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부여한다는 믿음이다.
좌복과 부처님 사진이 108배의 생활화를 위한 수단이라면, 종이 불전함과 가족축원문은 108배의 사회화를 위한 매개다. 집안에서 수시로 기도하면서, 짬짬이 보시를 하고 가족 전체가 참다운 불자가 되겠다는 다짐을 독려한다. 종이 불전함에 넣은 돈의 쓰임새는 투명하고 체계적이다. 절반은 100일기도 보시금, 40%는 자비나눔기금, 10%는 각자 희망하는 사회복지시설 후원기금으로 지정기탁한다. 내 꿈을 이루려면 먼저 남들의 꿈이 이뤄지도록 도와야 한다는 연기법의 이치를 가르친다.
휴대폰 문자메시지도 사찰과 신도 간의 거리를 가깝게 하는 끈이다. 흥천사 신도들은 매일 아침 9시면 어김없이 휴대폰으로 문자메시지를 받는다. 회사에 출근해 하루 일과를 시작할 무렵이다. 발신지는 흥천사 종무소. ‘오늘의 부처님 말씀’과 함께 사찰의 주요행사 일정이 공지된다. 본인이나 가족의 생일이면 어김없이 진심을 담은 축하의 글귀가 휴대전화에 도착한다. 이런저런 상업광고와 스팸 문자에만 익숙한 도시인들에겐 낯설고도 고마운 경험이다.
일요법회의 모습도 정겹다. 모토는 ‘법문은 짧게, 대화는 길게.’ 절에서 1주일을 마감하고 단출한 마음으로 편안하게 쉬다 가게 하자는 취지다. 여느 사찰과 다르게 오후 2시에 법회를 시작한다. 사람들이 모이면 곧장 절 밖의 울창한 숲 속으로 나간다. 1시간가량 정릉을 산책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 산책을 마치면 108배로 몸을 풀고 마음을 쉰다. 경전과 불서에서 좋은 구절을 뽑아 대중이 함께 읽는다. 주지 스님이 짤막하게 코멘트를 하면 끝. 이후 옹기종기 대방에 모여 앉아 푸짐하게 차린 꽁보리밥을 먹고 헤어진다. 단란한 어느 가정의 주말 오후가 연상되는 장면이다.
현재는 정념스님이 회주로 물러나면서 정관스님이 주지를 맡아 포교에 매진하고 있다. 어린이법회 모범도량으로도 이름이 높다. 어느새 가족이 된 흥천사 신도들은 스님들과 함께 지금도 절을 일으켜 세우는 중이다. 극락보전과 대방, 산신각과 칠성각 등 모든 전각에서는 밤낮으로 염불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매일 108배를 하고 힘닿는 대로 보시를 하고 나와 가족과 이웃의 행복을 빌면서, 불성(佛性)을 깨우쳐 가는 공간은 성스러우면서도 정답다. 흥천사의 꿈은 곧 한국불교의 꿈이다.
서울시 최초 한옥 어린이집
국공립 ‘흥천어린이집’ 개원
지난 6월1일 개원한 흥천어린이집.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과 흥천사 대중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서울시 최초의 전통 한옥식 어린이집이 사찰 안에 지어졌다. 서울 흥천사는 경내에 마련된 국공립 흥천어린이집 개원식을 지난 1일 성북구청 관계자와 마을 주민 등 사부대중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했다.
전통한옥 구조의 건물로 유명한 흥천어린이집은 서울시 ‘1동 2구립어린이집 이상 설치’ 정책과 성북구청장의 ‘국공립어린이집 확충 공약’에 따라 추진됐다. 지상 2층 지하 1층 연면적 591.86㎡ 규모로 총공사비는 중앙 및 지방정부 예산과 흥천사 자부담 3억 원을 포함해 22억 원이 소요됐다. 정원은 85명이며 현재 50명의 영유아들이 공부하고 있다. 특히 자연채광이 우수하며 친환경 자재를 활용해 전통한옥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개원식에서 흥천사 회주 정념스님은 인사말을 통해 “여기 모이신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나라에서 손꼽히는 아동보육시설을 가질 수 있게 됐다”며 “지역의 어린이들이 바르고 아름답게 자라날 수 있도록 성심을 다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홍창진 광명성당 주임신부는 축사에서 “정념스님이 오신 이후 나날이 발전하는 흥천사에 또 하나의 결실이 만들어졌다”고 기렸다. 김영배 성북구청장 역시 “청소년쉼터와 노인복지관도 건립해 흥천사를 종합복지도량으로 성숙시켜 나가겠다는 스님의 원력을 돕겠다”고 말했다.
한편 개원식에 앞서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은 흥천어린이집 시설을 둘러보며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총무원장 자승스님을 비롯한 부실장 스님들은 지난 5월20일 서울 돈암동에 위치한 흥천사 어린이집을 흥천사 회주 정념스님과 주지 정관스님의 안내로 둘러봤다.
정용기 어린이집 원장의 브리핑을 받은 총무원장 스님은 “지금까지 둘러본 어린이집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친환경적인 어린이집”이라고 높이 평가하며 “불교계 최고의 어린이집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고 교사들에게 당부했다. 이와 함께 흥천사 대중은 이날 네팔 대지진 희생자를 돕기 위해 500만원의 구호기금을 종단의 공익법인 아름다운동행에 전달했다.
서울 성북구 흥천사길 29(돈암동) ☎ (02)929-6611~2
“전체 3층 규모 정원 85명
‘아름답고 친환경적’ 호평
청소년쉼터 노인복지관도
건립해 종합복지 나설 것”
지역사회 신뢰 얻어낸 경로잔치
매년 어버이날 즈음이면 흥천사 주변은 수천 명의 노인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흥천사의 경로잔치는 이미 동네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혹한기(12,1,2월)와 혹서기(7,8월)만 제외하고 연 4~5회 꾸준히 개최하면서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행사로 정착했다.
매회 적게는 1000명 많게는 1500명씩 찾아오는 어르신들에게 푸짐한 점심공양을 제공하고 돌아가는 길에는 생필품을 선물로 증정한다. 경로잔치의 비용은 흥천사에 다니는 신도들의 희사로 마련된다. 신도들은 매월 1만원씩 보시하고 한 달에 한 번 씩 봉사활동에 참가하며 보살행을 실천하고 있다. ‘내 꿈이 이루어지는 108배’ 기도로 모은 돈이다. 점심공양 행사에서도 신도들은 직접 앞치마를 두르고 음식시중을 들며 노인들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경로잔치가 열리지 않는 달에도, 온정까지 끊어지진 않는다. 여름이면 수박과 부채를, 겨울에는 일회용 커피뭉치를 싸들고 경로당을 방문해 어르신들의 말벗이 되어준다. ‘약식’ 경로잔치인 셈이다. 사찰을 오가는 등산객들에게도 수백 통의 얼음물을 준비해 건네준다. 사찰 안에 설치된 커피 자판기는 모두 공짜다. ‘베풀고 베풀고 또 베푸는 절’이라는 흥천사의 이미지는 마을 주민들에게 깊게 각인됐다.
흥천사의 역사
흥선대원군이 쓴 흥천사 편액 |
조선 태조 신덕왕후 원찰
천수관음보살상도 ‘눈길’
서울 돈암동 삼각산 기슭에 자리한 흥천사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1395년 두 번째 부인이었던 신덕왕후 강 씨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원찰이다. 가까이 강 씨의 무덤인 정릉이 있다. 숭유억불 체제로 일관했던 조선시대, 흥천사는 한국불교의 명맥을 지키는 근거지로 번창했다.
1397년 불사가 완공되면서 방사(房舍) 170여 칸의 대가람으로 위용을 자랑했다. 창건 이후 억불의 시대적 조류에서도 흥천사는 왕실의 지원과 장려를 받으며 꾸준히 법통을 이었다. 왕실의 제사가 행해졌고 왕족이 병들면 치병을 위한 기도소리가 울렸다. 가뭄에는 국가 차원의 기우제를 여기서 열었다.
극락보전에 봉안된 천수관음보살좌상. |
흥천사가 소유한 토지는 5만㎡(1만5000평) 이상이다. 큰법당인 극락보전을 비롯해 조선 26대 왕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쓴 興天寺(흥천사) 편액이 걸려있는 대방, 고종이 복원한 지장전 등 다수의 전각이 보존돼 있다. 극락보전에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이 5세 때 쓴 글씨가 남아 있다. 사찰림도 준수하고 절 바로 아래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밀집해 있어 포교입지도 양호하다.
특히 극락보전에 봉안된 천수관음보살좌상에 힘입어 상서로운 기도도량으로서의 면모도 갖췄다. 흥천사 천수관음보살좌상은 고려시대 초기에 철을 녹여 조성한 드문 형태의 보살상으로 높이 평가받는다. 더구나 2012년 9월 일제강점기 평양 광법사에 모셔진 천수관음좌상이 바로 오늘날 흥천사 천수관음좌상이란 사실이 밝혀져 눈길을 끌기도 했다. 천 개의 손으로 일체중생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있는 보살상의 빛나는 형상은, 수행과 전법으로 지역사회의 모범이 되고 있는 흥천사의 상징과도 같다.
[불교신문3111호/2015년6월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