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라는 말이 있다. 방법이야 어쨌든 간에 목적만 달성하면 상관없다는 의미의 속담이다.
스마트폰 시장에 뒤늦게 집중하기 시작한 삼성이 애플을 따라잡는 방법은 무엇일까? 나는 이전 포스팅인 <노키아의 몰락에서 삼성이 얻어야할 교훈은?> 이란 글을 통해 <선택과 집중>이란 방법을 제시했었다.
지난 D8 에서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애플은 다른 회사들처럼 자원이 풍족하지 않습니다. 애플은 늘 테크계의 대세를 타야합니다. 여러가지 기술을 둘러보고 전망이 있어보이는걸 골라야 하지요. 이 다양한 기술들은 흥할때가 있는가 하면 망할 때도있습니다. 현명할 선택을 한다면 여러가지 복잡한 문제들을 거치지 않아도 됩니다.
애플이 풍족하지 못한 회사라고?
이건 겸손인가, 아니면 강박관념인가? 시가총액으로 마이크로 소프트를 제치고 주가총액에서 최고 가치의 회사가 애플이다. 순이익률이 40프로가 넘는데다가 은행빚은 한 푼도 없고 엄청난 현금보유고가 있으며 직원이 3만명이 넘는 기업이 스스로 풍족하지 못하다니. 나는 사자가 양들 앞에서 <저는 사실 힘없고 불쌍한 짐승이에요.>라고 말하는 걸 듣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현재의 애플이 과연 스티브 잡스의 저 말대로 자원이 풍족하지 못한 회사라고 치자. 전세계 PC의 10퍼센트 남짓을 차지하고, 앱스토어 시장의 90프로 이상, 온라인 음악시장의 70프로 가까이를 차지한 회사가 자원이 별로 없어서 스마트폰에서 아이폰이란 단일 단말기에 iOS란 단일 운영체제에 집중하고 있다.
그런데 삼성은 생각이 좀 달라서 스스로가 매우 풍족하다고 생각하는가보다. 스마트폰을 새로 만들면서 벌써부터 옴니아, 갤럭시, 웨이브 등 단말기만 해도 여러 모델을 내놓았다. 운영체제도 바다OS, 안드로이드, 윈도우모바일 등 다양하다. 선택과 집중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나는 선택과 집중을 강조한 것인데 의외로 삼성은 이런 내 예상을 한차원 뛰어넘는 한가지 비전을 보여주었다. 어차피 삼성은 다양한 하드웨어 생산에 특화된 몸이니 그 길로 우직하게 밀고 나가겠다는 매우 기발한 전략이다. 다음 사진을 한번 보자.
이것은 삼성이 새로 내놓을 갤럭시Q의 예상 그래픽이다. 갤럭시S의 모양에 블랙베리 의 쿼티 키패드를 갖춘 이것은 메신저나 이메일을 주로 사용하는 사용자에게는 보기만 해도 매우 매력적인 디자인이다.
스마트폰을 좋아하긴 하지만 오타가 많이 나는 터치스크린 키보드가 불편한 사람, 안드로이드폰을 살까하다가 블랙베리의 키보드가 탐나서 주저하던 사람에게 이 제품은 고민을 싹 날려주는 해결책이 될 것이다. <이것은 진짜 제품이 아닙니다.>라는 문구가 아니라면 벌써부터 지름신이 강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잠시 멍하니 이 사진을 보다가 문득 뒷머리를 강하게 맞은 느낌이 들었다. 아! 이것이었구나. 하고 말이다. 삼성도 나름 인재들이 모인 곳이다. 그들이 전부 놀면서 월급받고 있지는 않았다. 그들은 삼성이 무엇에 강한 지를 알고 있었다.
아이폰에 대항하는 갤럭시S의 전략은 다양성?
손자병법에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고 했다. 첨단 IT를 논하면서 수천년전 병서를 들이댄다는 것도 우습지만 이런 경우에는 딱 들어맞는다.
애플 아이폰의 강점은 뭐니뭐니 해도 소프트웨어다. 업그레이드 될 수 있는 운영체제부터 시작해서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앱을 통해서 실현시킬 수 있다. 멀티터치 스크린과 각종 센서를 통하면 아이폰은 불가능한 것이 없는 요술상자가 된다.
하지만 이런 아이폰에게도 약점이 있다.
바로 단일 하드웨어이기 때문에 소프트웨어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부분은 구현해 줄 수 없다. 게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PSP처럼 본체에 6버튼이 달린 아날로그 조이패드를 원한다든가, 이메일을 위해 블랙베리처럼 본체에 부착된 쿼티 키패드를 원해도 들어줄 수가 없다. 심지어 외부메모리 장착용 슬롯이라든가, USB단자라든가, 본체에서 발사되는 빔프로젝터 기능을 넣을 수는 없을 것이다.
삼성의 장단점은 이와는 정반대다.
아이폰처럼 좋은 운영체제도 독자적으로 제공해주지 못하고 다양한 앱도 만들어 주지 못한다. 소프트웨어 역량이 너무 모자란다. 하지만 삼성은 하드웨어로는 채산성이 맞는 숫자의 고객이 원한다면 뭐든 다 해줄 수 있다. 이때까지 수많은 피처폰에서 삼성이 잘해오던 것이 바로 이런 다품종 하드웨어를 핸드폰에 장착하던 일이다.
<고객맞춤형 하드웨어>라고 볼 수 있는 이런 방향의 전략으로 갤럭시S의 파생형 변종을 만들어 내면 애플이 잡지 못한 시장과 고객을 끌어올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이건 반대로 애플이 노력한다고 따라갈 수도 없는 분야다. 애플은 잡스의 말대로 <자원이 풍족하지 못한> 관계로 단일 플랫폼 전략을 절대로 버릴 수 없다.
따라서 위에서 보여준 갤럭시Q가 단지 하나의 제품이 아니고, 앞으로 삼성이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을 상대할 하드웨어 다양성 이란 전략을 나타내는 상징이라면 매우 흥미있는 일이 된다. 그나마 삼성이 상대의 약점과 자사의 강점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어차피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내가 강조한 선택과 집중도 결국은 소비자의 마음에 들어 제품을 많이 팔기 위한 방법이라고 치면, 반대로 고객밀착형으로 하드웨어 다양성을 추구해서도 많이 팔고 소비자를 만족시키면 그만이다. 목적이 중요한 것이지 방법은 알아서 선택하는 것이다.
다만 여기에도 약간의 전제조건이 붙는다. 아무리 하드웨어를 붙인다고 해도 단지 그것만으로는 고작 특징이 될 뿐이다. 그 하드웨어를 하나의 솔루션으로 발전시키려면 역시 소프트웨어 역량이 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저런 퀴티 키보드를 통해 림사의 블랙베리를 잡고자 한다면, 키보드 뿐만 아니 기업용 솔루션으로 블랙베리의 BES, BIS서비스에 해당하는 솔루션을 내놓아야만 제대로 된 전략이 된다. 그래도 저기까지 생각했다면 설마 그정도를 모르지는 않을 거라 판단된다.
어쨌든 이렇게 아이폰에 대항하는 갤럭시S의 전략이 다양성일 지 모른다는 사실은 앞으로의 흥미있는 경쟁구도를 예측하게 한다. 고객의 입맛에 맞는 소프트웨어를 앞세운 아이폰과, 역시 고객의 입맛에 맞춘 하드웨어를 앞세운 삼성 갤럭시S 가운데 소비자는 어느쪽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해답은 이제 우리 모두의 선택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