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요한 목사님과의 인터뷰는 5월 2일에 있었던 형진님 월드카프회장 취임식 이후에참부모님 생애전시관 2층에서 약 1시간 20분 동안 이루어졌다. 목사님께서는 전라도 순회를 하시다 5월 1일 제54주년 협회창립기념일 행사에 참석하시기 위해 하루전 성남시 자택으로 오셨으며, 인터뷰 이후 다시 순회 일정에 들어가신다고 하셨다. 인터뷰를 위해 목사님은 사모님과 함께 직접 기획국을 방문해 주셨는데, 너무도 반갑고 다정스럽게 대해주셨다. 긴 시간 동안 너무도 감동적이고 교훈적인 말씀을 많이 해주신 목사님과 함께 동행해 주신 사모님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편집에 대해서 잠깐 언급해두고자 한다. 말씀하신 원본 그대로 편집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구어체로 주로 말씀해주셔서 여기서는 문어체로 편집하였으며, 인터뷰 원본은 동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약 력 출생 및 학력 1916년 9월 4일 평안북도 선천군 선천읍 출생 1933년 만주 숭문중학 졸업 1942년 일본 동경 동아신학교 수료 주요경력 1935년~40년 중국 하북성 한국인 장로회 전도사 1946년~49년 황해도 영일감리교회 전도사 1952년 12월 1일 부산 범냇골에서 입교(전도자: 옥세현 할머니) 1953년 8월 대구 개척전도, 전도사 1957년 6월 부산교회 전도사 1958년 1월 1일 경상지구장 1961년 9월 10일 경북지구장 겸 제4지구 기대장 1965년 2월 1일 협회본부 전국순회사 1965년 11월 8일 전국순회사실장 1968년 1월 1일 협회 가정부장 1968년 4월 1일 서울특별지구장 겸 본부특별지역장 1969년 9월 4일 서울 성북지구장 1970년 2월 16일 중앙수련소장 1974년 3월 1일 협회 전도부장 1974년 5월 1일 전국순회사실장 1974년 7월 6일 참부모님 안수로 목사로 봉직 1977년 5월 10일~1988년 8월 30일 통일신학교장 1978년 4월 1일~1981년 11월 4일 본부특별교역장 1988년 8월 선문대학교 교목 1994년 2월 4일 일본선교사 1996년 6월 국가메시아(스웨덴) 2001년 8월 1일 경기남부 분당연합회장 주요 수상경력 1968년 2월 7년노정 대상 1996년 1월 목회 선교부문 33년 공로상 2004년 5월 창립 50주년기념 섭리노정 부문상 주요 저서 한(恨)의 하나님 (성화사, 1981년) 복귀의 한 (성화사, 1984년) 본성으로 산다 (원리연구회 출판부, 1989) 등 신앙과 생활(일본어판) 등 가족관계 1960년 36가정 축복(대상 : 원심희 元心姬), 슬하에 4남1녀를 두심 최근 전라도를 순회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순회는 어떠셨습니까? 주로 중심가정을 중심으로 교역 연합단위로 하기도 하고 몇몇 지역에서는 개체단위로도 했는데, 오전에는 30여명 오후에는 60여명 모여서 집회를 했습니다. 내용은 주로 “천지개벽(天地開闢)이후 선천시대(先天時代)가 지나가고 하나님께서 직접 주관하는 시대에 들어왔기 때문에 우리들의 타락성(墮落性)으로는 이제는 용납할 수 없는 시대에 들어왔다. 본연의 인간으로서의 참사랑의 생활을 실현하지 않으면 안 될 시대, 타락성이 없는 개인과 가정이 되어야 할 시대이므로 ‘타락성 없이 생활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했습니다. 어제(5월1일) 협회에서 거행된 협회창립기념일과 금일(5월2일) 형진님 월드CARP회장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서울에 오셨다가 참석 후 다시 지방순회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순회가 힘드시지는 않으셨는지요? 93세이신데, 평소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고 계신지요? 아침집회와 저녁집회를 하니깐 건강에는 별로 지장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특별한 건강관리는 없습니다. 형진님께서 가정연합 세계회장ㆍ한국회장 취임하시고 금일(5월2일) 월드CARP회장에 취임하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현재 섭리의 대전환기라고 볼 수 있는데, 목사님께서는 이 시기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지요? 이제 재래식의 교회생활은 끝났습니다. 이제는 참사랑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면서 가정이라는 4대 심정권, 가정생활에서 어떻게 우리는 내 진심(眞心)을 투입하면서 살 수 있느냐, 이런 생활이 신앙생활이라기보다는 참사랑을 실천하는 생활, 그러니까 ‘내 마음에 우러나는 생활, 모든 일을 사랑 때문에 사는 생활, 그것이 중심이다’는 생활자세로 사랑을 원인으로 해서 사는 생활, 사랑 때문에 사는 생활, 마음에 의욕이 있고,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사는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협회창립 기념행사 격려사에서 국진님께서는 과거의 권위주의적 리더십에서 식구들을 섬기는 봉사적 리더십을 강조하셨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4대 심정권으로 말하면, 가정에서 어머니는 자식에게 사랑의 종이며 아버지는 가정을 위해서 사랑 때문에 있는 아버지이므로, 어머니와 아버지는 가정의 주체자가 아닙니다. 가정의 주체는 가정이며 사랑입니다. 따라서 아버지는 가정에서 주도권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가정 때문에 있는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는 교회의 사랑 때문에 있는 목회자입니다. 따라서 목회자는 아벨이 아니며 식구들이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목회자가 겸손해야 한다”는 말씀은 ‘나는 이 교회의 지도자이다’는 의식보다는, 마치 가정에서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효심(孝心)을 갖게 해주고 자녀들로 하여금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갖게 해주는 가정이 중심이 됨으로써 가정의 주체자 아닌 대단히 겸손한 것처럼, 가정에서 아버지의 역할처럼 교회의 교인들에게 교회와 목회자에게 사모하는 마음을 일으켜줘야 할 목회자이므로 대단히 겸손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가정에 대해서 겸손하며, 어머니는 가정에 있어서 자녀들의 머슴과 같습니다. 즉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정에 대해 겸손한 분입니다. 따라서 ‘목회자는 교회에서 제일 겸손한 사람이다’ 그렇게 말씀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아버님의 어려운 말로 표현하면 ‘4대 심정권 구형운동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지금까지 없었던 말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쓰던 말은 자식은 부모에게 효(孝)하라는 것인데, ‘4대 심정권 구형운동의 사랑’에서는 부모도 자식에게 효해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효한다는 말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구형(球形) 속에서는 상하가 없습니다. 따라서 ‘효’라야 4대 심정권이 형성되며 그 ‘효’는 ‘구형운동의 심정을 표현하는 것이다’라로 할 수 있습니다. 아버님의 구형운동의 사랑이라는 말씀은 상하가 없고 좌우가 없는, 완전히 입체적인 것입니다. 교회에서 목회자가 그러한 인격자, 교인들을 가장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인들로 하여금 교회에 오고 싶어하는 마음을 우러나게 해주는 구형운동의 사랑을 실현하게 되면 목회자는 존경받으며, 교인들의 그리움의 주체자가 됩니다. 참아버님이 그런 분입니다. 한 번 만나면 또 보고 싶고, 또 보고 싶고, 또 보고 싶고……
참아버님은 구형의 사랑을 하시는 분 아니에요? 직선적인 사랑을 하는 아버님이 아닙니다. 그것을 모델로 이제 교회에 옮길 때이며, 지금 참자녀님들이 그 구형운동의 사랑을 가지고 계십니다. 참자녀님들은 ‘지도자다’는 의식보다는 하늘을 사모하는 마음, 교인을 귀중이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루 아침에 될 수 없으며, 이런 의미에서 참아버님의 사랑의 인격을 우리들이 닮아야 한다는 말로 말씀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지난 해 경기남부 교구에서 “부부도 효(孝)하라”라는 말씀을 주셔서 교구 식구들에게 많은 은혜와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 역시 지금 말씀하신 ‘구형운동의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요? 남자는 하나님의 남성성상(男性性相)입니다. 따라서 아내는 남편을 섬기고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남편 역시 여자는 하나님의 여성성상(女性性相) 곧 어머니의 입장이므로 단순한 여자가 아닌 하나님의 여성성상으로 대해야 합니다. 아버님의 메시지(―‘평화훈경’을 말함. 이하 동일―)에는 점령이라고 해서 ‘부부는 왜 결혼하느냐?’고 했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점령’이란 부부끼리 서로 하늘같이 여기면 하나님께서 임재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부부간에 서로 차별해서는 안 되며, 부부간에도 구형운동의 사랑을 해야 합니다. “부부가 서로 화합하고, 부모가 자식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효를 돌릴 때 구형운동이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셨는데, 식구들이 구체적으로 실생활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시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는 타락성이 있다 보니 가까워지면 반말을 합니다. 부부간에 반말하고, 형제간에 반말하고, 이건 구형운동이 아닙니다. 직선적입니다. 직선의 말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대해야 된다”고 메시지에 나왔습니다. 예컨대 형은 동생을 존귀하게, 동생은 형을 존귀하게 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서로 횡적인 인물이 아닌 하늘을 중심한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평면적인 ‘내 부부’, ‘내 아들’이 아닙니다. ‘내’라는 게 붙으면 벌써 타락성입니다. 그런데 아버님은 ‘내’가 1%도 없습니다. 아버님은 당신이 1%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절대로 한 심정. 그러니까 식구들이 오면 하나님이 보낸 분, 역사적인 조상의 한(恨)의 대상의 실체로 오신 분, 아버님께서는 이렇게 역사적으로 많은 희생자들의 터전에서 오늘을 이렇게 찾아 나오신 분으로, 말씀을 안 하시지만, 말을 함부로 안하십니다. 그게 어렵죠. ‘현재의 ‘나’는 가치가 없지만 이 종적 역사적인 가치를 가지고 온 분이다‘, 아버님께서 이렇게 보십니다. 그래서 아버님은 식구 하나하나에게 함부로 말씀하지 않으시며, 함부로 ‘이래라, 저래라’ 말씀을 안 하십니다. 그저 그분의 마음에 우러나오는 것을 중심하고 귀중히 여깁니다. 우리는 마음을 볼 줄 모르기 때문에 그 사람 마음에 맞지 않는 말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
첫댓글 참부모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