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의학(醫學)이란 무엇인가
‘의학’이라는 단어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연상하는가. 하얀 가운? 환자들이 북적대는 병원? 실험기구로 꽉찬 연구실? 혹은 인도주의 정신과 위대한 과학적 발견으로 인류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의학자들?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를 것이다. ‘의학’이라는 말 자체가 너무 복합적인 뜻을 지닌 말이기 때문에 연상되는 것을 한 마디로 말하기는 어렵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 물음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려고 한다.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본질에 대한 물음이다. 그것은 하나의 대답, “이것이다.”로 대답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본질에 대한 물음은 한 마디로 대답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어떤 대상을 묘사하거나 설명하거나 혹은 토론을 진행하기 위하여 어떤 가정을 세울 수는 있다. 그러나 본질에 대한 물음에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은 철학적 사색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병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모두 근본을 묻는 철학적 물음이기 때문에 항상 인간으로서 인생을 살며, 병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막상 이런 물음에 접하면 말문이 막히고 당황하게 된다.
의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의학이 현재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느냐를 묻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생각해 온 ‘의학’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비록 그 대답이 어렵고 생각해 가는 과정이 번거롭다 하더라도 우리는 한번 우리 스스로에게 이와 같은 근본적 물음을 던져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해 온 것, 현재 하고 있으며 앞으로 해 나가야 할 것에 관하여 성찰하고 반성하기 위하여 이 물음은 필요하다. 그리고 『의학개론』은 바로 의학의 본질에 대한 이와 같은 물음에서 시작하고 그 물음에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학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은 반드시 의학의 어느 한두 측면을 기술하는 것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다. 또한 의학이라고 하는 것에 해당되는 것들을 모두 나열한다고 하여 해답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 물음은 의학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걸쳐 일관되게 존재하는 핵심, 당위(sollen)로서의 의학, 즉 “의학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직결되는 것이다.
이러한 물음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먼저 부딪치는 것은 ‘의학’이라는 단어의 해석이다. ‘의학’은 medicine(Medizin)의 한자역이다. 의학이란 무엇인가 할 때의 ‘의학’은 의과학(醫科學), medical science 즉 과학으로서의 의학이 아니라 medicine, 의(醫), 또는 넓은 의미의 ‘의학’을 말한다. 여기에는 학문뿐 아니라 의료가 포함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물음은 “우리가 넓은 의미의 ‘의학’으로 알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뜻이 된다.
‘의(醫)’란 무엇인가. 중국고대의 어원사전인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의하면 병을 고치는 기술을 뜻한다. 예(殹)는 애(㿄)자를 생략한 글자로서 ‘나쁜 모습’ 또는 ‘병자의 목소리’를 뜻하며 의사가 병을 고치기 위해 술을 쓰므로 여기에 유(酉) 글자를 합하여 ‘의’라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의는 의사나 약사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고 ‘병을 고친다’, ‘구제한다’는 뜻도 된다. 또한 무(巫)와 의는 같은 것으로 간주되기도 했고 술을 가지고 치료하는 의사와 주술 등으로 치료하는 의사를 구분하기 위하여 의(毉)라 쓰기도 하였다. 의학은 고대중국이나 우리나라 삼국시대에 의학교육기관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기도 했고, 병을 치료하는 기술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의술은 보통 의방(醫方)이라 표현되어 왔다.
과학으로서의 의학은 근대의 소산으로 최초에는 의(醫), 즉 의료가 있었을 뿐이라는 사람도 있지만 학문이 자연의 관찰, 경험의 반성이라고 본다면 그 기원은 인류의 문명, 의(醫)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넓은 의미의 ‘의학’의 본질을 구명하기 위해서 학문으로서의 의[醫, 의학(醫學)], 술(術)로서의 의[醫, 의술(醫術)], 도(道)로서의 의[醫, 의도(醫道)], 이 세 가지 측면에서 문제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네이버 지식백과] 의학이란 무엇인가 [醫學-] (의학개론 1(의학의 개념과 역사) , 2006.4.10, 서울대학교출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