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벼루에 구멍이 날 때까지
먹을 갈고 붓을 적시리라.”
함께 그림의 세계를 꽃피운 김정희와 허련의 아름다운 만남!
스승과 제자가 서로에게 열정을 다하여
각자의 예술혼을 펼친 묵직한 감동의 이야기!
스승을 찾아내고 스스로 제자가 되어라
조선 후기 문인이자 화가였던 김정희는 시와 그림은 물론 서예와 금석학에 뛰어난 실력을 보인 당대 최고의 예술가였다. 그에게는 교유하는 벗과 제자, 선배들이 많았는데 그중 가장 외롭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함께 보낸 잊지 못할 제자가 있었다. 바로 시골의 그림쟁이였던 허련이었다. 허련은 당파 싸움으로 인해 낯선 제주도에서 유배 생활을 시작하게 된 김정희를 찾아가 시중을 들었던 유일한 제자였다. 하지만 김정희는 허련을 제자로 받아 주지 않고 ‘스승을 찾아내고 스스로 제자가 되라’고 말한다. 이는 학문을 연구하고 끊임없이 수련하여 스스로 배움의 길을 얻어야 한다는 깊은 가르침이었다. 결국 허련은 스승 김정희가 박제가와 완원, 옹방강을 스승으로 섬기기 위해 열정을 다했던 것처럼 부지런히 책을 읽고 화첩을 연구하여 예술의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그런 제자를 기특하게 여긴 김정희는 제주도 유배 시절뿐 아니라 죽을 때까지 허련에게 글씨와 그림을 가르쳤다. 서로가 서로에게 열정을 다해 함께 그림의 꽃을 피운 추사 김정희와 소치 허련의 이야기는 오늘날 대화와 소통이 부재한 사제지간에 새로운 귀감이 될 것이다.
붓으로 정신을 옮기다
남종화는 드높은 학문과 고결한 인품을 쌓은 문인들이 그린 그림으로 문인화라고도 한다. 사실적인 표현보다는 내면의 정신적인 세계를 드러내는 것을 중요시하여 학문에 정진함은 물론 그 속에서 깨달음을 얻어 붓으로 표현해 내는 수련이 필요하다. 그림 하나에 자신의 정신을 모두 담아내어 많은 이야기를 꽃피울 수 있게 하는 남종화의 매력은 김정희로부터 시작된다. 삭막했던 제주도 유배 시절에 그린 <세한도>는 남종화의 진수를 보여 주는 작품이다. 황량하고 차가운 풍경 속에 꼿꼿하게 서 있는 소나무를 그린 이 작품은 비록 어려움에 처했지만, 선비의 올곧은 정신은 살아 있음을 드러내는 김정희의 마음을 담고 있다.
평생 열 개의 벼루에 구멍을 내고, 천 자루의 붓이 몽당해질 때까지 쉬지 않고 붓질을 했던 김정희의 예술혼은 허련에게 전수되어 빛을 발한다. 남종화의 정신과 화법, 필체를 고스란히 배운 허련은 산수화와 추사체가 잘 어우러진 <선면산수도>를 그리며 남종화의 대가로 불리게 된다. 수십, 수만 번의 붓질을 통해 마음을 수련하고 내면세계를 담아냈던 남종화를 통해 당시 끊임없는 노력으로 일구어 낸 문인들의 드높은 예술혼을 되새기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림에 대한 깊이 있는 역사 알기
부록에 수록된 ‘깊이 보는 역사-그림 이야기’에서는 조선 후기 그림은 어떻게 발달되었는지, 남종화의 특징은 무엇인지, 김정희와 허련은 어떤 그림들을 그렸는지 등을 꼼꼼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조선 후기의 미술 역사를 엿볼 수 있고, 치열한 열정과 노력으로 그림과 글씨를 완성한 예술가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합니다.
추사 선생이 탐구와 궁리의 자세로 일구어 낸 수많은 학문적 업적은 그의 제자 허련에 의해 더욱 찬란하게 꽃피울 수 있었다. 이처럼 선조의 유업을 귀히 여겨 당대의 문화로 전승시키고자 애쓰는 후학들의 노력이 더해질 때, 우리 역사는 발전해 가는 것이다. 『구멍 난 벼루』가 그려 낸 추사 김정희와 소치 허련의 이야기는 사제 간의 진정한 교류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소통의 가치를 부각시켜 오늘날 우리에게 귀감이 되고 있으며,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 서울대학교 뿌리깊은 역사나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만남은 어떤 것일까요? 또 그 만남을 이어 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김정희와 허련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으나 어려움 속에서도 스스로 스승을 찾고, 스스로 제자가 되면서 서로의 인연을 이어 갔습니다. 벼루에 구멍을 내고 수많은 붓이 몽당해질 때까지 서로의 그림 세계를 넓혀 주며 예술혼을 불태우는 모습은 가슴 찡한 울림을 줍니다. 이 두 사람의 만남을 통해 사람 사이의 소중한 인연을 함께 헤아려 보는 뜻 깊은 책읽기를 추천합니다.
- 전국초등사회교과모임
저자 : 배유안
저자 배유안은 2006년 『초정리 편지』로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을 받으며 작가가 되었습니다. 동화와 청소년 소설 창작의 즐거움에 빠져 있고, 아이와 어른이 다 함께 읽을 수 있는 명작 하나 쓰는 게 꿈입니다. 지은 책으로 『스프링벅』, 『콩 하나면 되겠니?』, 『분황사 우물에는 용이 산다』, 『아홉 형제 용이 나가신다』, 『할머니, 왜 하필 열두 동물이에요?』, 『서라벌의 꿈』, 『뺑덕』, 『쿠쉬나메』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