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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포럼 제 677 호 |
다시 한글날을 맞으며 |
송 재 소 (성균관대 명예교수) |
지난 10월 9일은 567돌을 맞는 한글날이다. 해마다 한글날을 맞이하지만, 올해의 한글날이 특별한 것은, 1949년 법정 공휴일인 국경일로 지정된 이래 1991년 법정 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가 다시 법정 공휴일의 지위를 회복한 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홍원 국무총리는 한글날 경축사에서 “문화융성의 중요한 토대가 바로 말과 글”임을 강조하고 “한글을 더욱 아름답게 발전시키기 위한 범국민적 언어순화운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어(敬語), 줄임말, 외래어의 남발 실제로 “범국민적 언어순화운동이 필요”할 만큼 한글은 지금 갈가리 찢겨져 있다.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습니다”, “이 옷 색상이 예쁘시죠?” 등 부적절한 경어(敬語)가 남발되고 있다. “안돼”를 “안대”로, “괜찮은데”를 “갠춘한데”로, 쓰는 등의 맞춤법 파괴 현상도 심각하다. 맞춤법이란 한글을 바르게 쓰기 위한 규범이다. 이 규범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형사적 처벌을 받지는 않지만, 대한민국 국민이 이렇게까지 한글을 학대해도 되는 것일까? 이른바 인터넷 줄임말도 가관이다. “갠소”(개인 소장),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 “버카충”(버스카드 충전), “여병추”(여기 병신 하나 추가요)와 같은 기괴한 낱말들이 버젓이 인터넷상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물론 줄임말은 어느 시대에나 있을 수 있는 일이고 또 언어는 언중(言衆)의 기호와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는 것이지만, 위와 같은 인터넷 준말 신조어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름다운 한글’과는 거리가 멀다. 과연 세종대왕이 이런 현상을 본다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이 밖에도 한글에 상처를 내고 한글을 아프게 하는 것들이 있다. 바로 무분별한 외래어, 외국어의 남용이다. 여기에는 영어가 주류를 이루는데 “스푼”, “키” 등의 일상어는 말할 필요도 없고 “어젠다”, “버블세븐지역”, “클러스트” 같은 외래어가 거리낌 없이 사용되고 있다. 나아가 상품 광고 문구에는 “too attractive”, “unite all originals” 처럼 영어를 직접 사용하기도 한다. 외래어 사용은 각급 행정기관이 선도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청렴 Happy Call 서비스”, “그린스타트 네트워크 구축” 등은 모 지자체의 정책 홍보 문구이다. 또 “맨붕”이나 “악플”과 같은 국적불명의 말이 있는데 이것을 한글 낱말이라 할 수 있을까? 중국의 한자 살리기 운동이 부럽다 이런 사정은 이웃 나라 중국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중국은 이르면 내년부터 대학 입학시험에서 영어 과목을 없애거나 점수 비중을 축소할 예정이라고 한다. 중국 교육 당국이 영어 비중을 축소하려는 것은, 자국민들이 영어는 중시하면서 모국어인 중국어를 경시하는 풍조를 바꿔보려는 의도라고 한다. 여기에다 디지털 기기의 보급으로 중국어를 쓸 줄 모르는 사람이 증가하자 당국이 특단의 조치를 내린 것이다. 또한, 중국은 GDP, WTO와 같은 영어 줄임말도 방송용어로 사용할 수 없게 했는데, “영어 약어의 지나친 사용이 중국어의 순수성을 훼손한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WTO”라 쓰고 말하는 것과 “世界貿易機構”로 쓰고 말하는 것과는 장기적으로 보면 많은 차이나 난다. 이처럼 중국인의 모국어 사랑과 모국어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일부 지역에서는 초등학교 3학년 이하의 학생들에게 영어 교육을 금지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라 하니, 유치원 시절부터 영어를 가르치고 사립 초등학교에서 영어몰입교육까지 시키는 우리나라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그저 부럽기만 하다. 사람이 언어를 만들었지만, 그 언어를 장기간 사용하는 과정에서 거꾸로 언어가 사람을 만들어간다. 사람은 언어를 통하여 사고하고 행동하며 이 사고와 행동이 축적되어 문화를 형성한다. 정 총리의 말처럼 “문화융성의 중요한 토대”가 되는 한글을 더 이상 오염시키지 않는 것이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에 대한 우리의 도리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