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언어의 정원을 봤다.
타카오는 비가 오는 날 오전마다 등교하지 않고 어느 정원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매번 출근하지 않는 한 여자를 만났다. 타카오는 여자를 처음 봤을 때 우리가 어디서 본 적이 있냐고 묻자 여자는 봤을 수도 있다며 단가(일본 시문학 종류)를 읊었다. 둘은 장마기 동안 비가 오는 오전마다 만나서 시간을 보냈다. 도시락을 나눠먹기도 하고 타카오가 구두장인이 되고 싶다 하고 나서는 신발 만드는 법의 책을 선물 받고 여자를 위해 구두를 만들어 주겠다고 한다. 장마가 끝나자 둘은 다시 보지 못하고 시간이 흐른다. 그러던 중 학교에서 그 여자를 만난다. 여자에게 아는 척을 하던 친구들은 그 여자는 고전 선생님 유키노이고 학생들이 나쁜 소문을 퍼뜨려 힘들어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날 타카오는 소문을 낸 선배들을 찾아가서 싸우고 왔다. 다음날 비가 오지 않았지만 타카오는 정원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유키노가 읊었던 단가의 답가를 읊어줬다. 그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쫄딱 젖은 둘은 몸을 말리러 유키노이의 집으로 갔다. 밥을 해 먹고 대화를 나누며 서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타카오는 밥을 다 먹고 앉아 있다가 유키노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유키노는 선을 긋는 얘기를 했고 타카오는 그 말을 듣고 집을 나섰다. 유키노는 심란하게 혼자 생각을 하다가 타카오가 불러준 답가를 떠올렸고 급하게 뛰쳐나가 타카오를 잡았다. 타카오는 유키노를 보고 처음부터 싫었다고 다 알고 있었으면서 왜 나한테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냐고 평생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살라고 화를 냈다. 그런 타카오를 유키노가 안아주면서 매일 출근하기 싫어서 정원으로 도피했던 자신을 일어서게 해 줬다고 고백했다. 날씨가 개고 햇빛이 비추어지고 둘은 눈물을 흘리면서 껴안고 영화가 끝났다.
둘이 처음 만났을 때 유키노가 읊었던 단가는 우렛소리 희미하고 구름이 끼고 비라도 내리면 그대 붙잡으련만,
타카오가 불렀던 답가는 우렛소리 희미하고 비가 오지 않아도 나는 여기에 머무르오 그대 가지 마라 하시면 이었다.
영화를 반정도 봤을 때는 내용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다 유키노의 정체가 밝혀지자 조금씩 내용이 읽혔다. 끝까지 봤을 때는 어느 맥락에서 둘이 사랑하고 서로 위로받았다는 건지 이해가 다시 안 됐다. 사실은 둘이 껴안고 우는 거 보고 이해가 안 돼서 소리 질렀다.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 스즈메의 문단속 등 우리나라에서도 흥행했던 영화들의 같은 감독 작품이라는 걸 알게 되고 너의 이름은 과 스즈메의 문단속은 나름 몰입해서 재밌게 봤는데 뭐가 문제인가 싶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일단 영화다 보니까 책과 비교했을 때 어쩔 수 없이 스토리, 서사, 표현들이 생략된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 때문에 개연성이 잘 느껴지지 않은 것 같다. 게다가 단편영화다. 러닝타임이 46분으로 되게 짧다. 그렇다 보니 인물들의 서사와 감정의 빌드업 같은 게 짧고 안 그래도 몰입이 안 되는 나는 튕겨져 나간 것 같다. 또 다른 이유로는 굉장히 억울한 부분이었는데 번역 문제도 있는 것 같았다. 영화를 다 보고 글 쓰려고 단가 구절을 찾아보는데 내가 봤던 거랑 너무 달라서 영화를 돌려보니 내가 본 번역이 잘못된 걸 알 수 있었다. 누가 봐도 두 가지 번역 중 뭐가 더 정확한 번역인지 알 수 있을 만큼 내가 본 번역이 더 말이 안 됐다.
하늘의 천둥이 여리게 울리니 드리운 구름에 비라도 오려나 당신을 붙드네
하늘의 천둥이 여리게 울리고 비님이 안와도 이 몸은 있겠네 그대가 원하면
이게 내가 본 번역이다. 위에 영화를 보고나서 찾은 번역이 훨씬 답가와 연결이 잘 된다. 굉장히 중요한 대사들인데 번역에 약간 오류가 있다고 해도 되는지 아니면 비교적 이해가 덜 잘되는 번역이라고 해야 하는지 번역이 좋았으면 조금 더 이입돼서 볼 수 있었을 것 같았다. 내가 몰입이 안된다고 인지하기 시작하니까 그 생각에 지배돼서 점점 몰입과 멀어진 것도 있다. 뭔가 유키노가 자꾸 별것도 아닌 거에 이상하게 수줍어하거나 놀랍다는 듯이 반응하는 거 때문에 거부감을 느낀 것에서부터 시작된 것 같다.
나는 보면서 정말 싫었어서 인정하기 싫지만 영화보다 내가 이상한게 맞는 것 같았다. 엄마한테 혹평을 하고 짧으니까 한번 보시라고 했더니 엄마가 끝까지 보고서 뭐가 문제냐고 그러셨다. 다른 평가들을 봐도 딱히 안좋은 평가들이 있는 것 같진 않다. 그냥 내가 몰입을 못하고 이해를 못한 것 같긴하다.
나는 영화를 볼 때 영상미가 좋으면 재미있게 보는 것 같다. 그부분에선 영화가 좋았다. 타카오가 비 오는날 낮에 정원을 찾는다는 설정때문에 도시속의 정원의 눅눅하고 푸릇푸릇한 모습이 주로 보였다. 그리고 둘이 서로 읊어주는 시가 가장 좋았다. 말 자체도 좋고 타카오와 유키노의 상황과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도 좋았다. 그대를 잡을 어떤 구실이나 핑계가 있었으면 하지만 어떤 조건이 없어도 특별한 날이 아니여도 그냥 그대가 원한다면 있겠다는 붙잡기만 하면 있겠다는 그런 말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