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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선택과 구원에 이르는 순종
히브리서 11:31
히 11: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전자제품 회사의 광고가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내게 닥쳐진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죽음의 선택도 저주의 선택도 할 수 있습니다.
이 선택의 기준이 무엇이 되어야 하며 바른 선택으로 얻어지는 생명에 대하여 함께 나눈 라합의 이야기를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나눌 라합은 아모리 족속의 이방 여인으로 여리고성에서 참 보잘것없는 여인숙의 주인으로 밥을 지어 팔고 때로는 유숙하는 사람을 위하여 술과 잠자리를 제공하였던 사람입니다. 그를 기생이라고 하였고 다른 성경에서는 그녀를 창녀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녀는 부모와 형제자매들은 있었으나 남편과 자녀는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녀의 이름이 예수님의 계보에 올라 구속사의 흐름을 이뤄간 한 사람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라빈스'는 그녀에게서 8명의 선지자와 제사장이 나왔다고 할 정도로 그의 변화는 놀랍기만 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된 배경에 대하여 본문 히 11:30에서“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여호수아 2장을 근거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가나안 정복을 맡은 지도자는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의 첫 관문인 여리고 성에 두 명의 정탐꾼만을 보냅니다. 물론 작은 성이라 두 명이면 충분하지만, 깊은 뜻은 40년 전에 올바르게 판단한 에브라임 지파와 유다 지파에서 선발되었다고 보겠습니다.
민수기 13장에서 출애굽 후 약 2년째 되던 해에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 산을 떠나 가데스 바네아(Kadesh-barnea)에 도착했을 때였습니다. 그들은 각 지파에서 한 명씩 선발하여 12명의 정탐꾼으로 장차 그들이 들어갈 가나안 땅의 지형과 거주민 그리고 그들의 성읍 및 토산물에 대하여 살펴보라고 오라는 사명을 주었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 긍정적인 의견을 보고하는 것은 에브라임 지파의 여호수아와 유다 지파의 갈렙, 두 명이라는 사실입니다. 남은 10명은 자신을 저들 백성에 비하면 메뚜기 같다고 하면서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였습니다. 이때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낙담하고 절망한 결과로 40년을 광야에서 배회(徘徊)하여야 했습니다. 올바른 선택이 중요함을 뼈저리게 느꼈던 여호수아는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정탐꾼을 선택하여 여리고 성에 들어가도록 한 것입니다.
가나안 땅의 첫 관문인 여리고성의 성벽 위의 라합의 집에 정탐꾼이 숨어들어 갔습니다. 이 집을 택한 이유는 외부인이 드나들기 쉬웠고, 낯선 사람들이 머물러도 의심을 덜 받는 장소였으며 만약 발각되었을 때 쉽게 도망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라합에게 두 정탐꾼이 찾아듭니다. 여리고 사람 중에 두 정탐꾼을 목격한 자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곧 여리고 왕에게 “이 밤에 이스라엘 자손 몇 사람이 땅을 탐지하려 이리로 들어왔나이다.”고 일러바쳤습니다. 여리고 왕은 즉시 라합에게 기별하기를 “네 집에 들어간 사람을 끌어내라. 그들은 이 온 땅을 탐지하러 왔느니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 기생 라합은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지붕 위에 벌여놓은 삼대 사이에 숨기고서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되 급히 따라 가라. 그리하면 그들에게 미치리라”고 하여 두 사람의 목숨을 구해주었습니다. 이 사실이 발각되면 민족을 배반한 만고의 대역죄(大逆罪)인이 됩니다.
이런 상황에 대하여 여호수아 2장 9절에서 라합은 이런 고백을 합니다.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선택의 상황에서 내가 아닌 하나님의 뜻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비록하여 여리고성도 이스라엘에게 넘기시기로 작정하심을 알았기에 망설임 없이 하나님 편에 서게 된 것입니다. 라합이 이렇게 바른 판단을 하게 된 것은 일시적인 생각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라합은 이어서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하나님께서 행하심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자기 성읍이 무너지는 것은 분명 저주의 소식입니다. 그 소식 가운데 하나님이 행하신 것을 듣는 것 이것이 바른 선택에 따르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여호수아 2:11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나의 민족 내 나라가 우선이 아니라 하나님이 모든 만물의 으뜸이시며 소유자이심을 믿기에 하나님의 선택에 동조하는 것이 바른 선택의 기준이 됩니다.
정탐꾼 중의 한 사람이 살몬이었고 라합은 이 사람과 결혼한 것으로 보아 배경에 Love Story가 깔려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되는 것은 사랑의 힘입니다. 그녀의 이름 '라합'은 히브리어의 '폭 넓은'이란 뜻을 지니고 있으며 그 이름의 의미대로 두 정탐꾼 중의 하나인 유다 지파 살몬과 마주칠 때 뭐라 형언치 못하는 사랑의 힘에 끌렸습니다. 살몬은 사랑할 만한 여자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추하고 더러운 여자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 사랑은 보통 사람이 가질 수 없는 큰 사랑이었습니다. 기생 라합의 집에 술을 마시러 왔던 수많은 남자와 달리 살몬은 자기의 생명을 걸고 기생 라합을 사랑했고, 그들은 서로 사랑의 약속을 했습니다. 잠깐 머물렀던 그사이에 사랑에 대해 확신을 했다는 것이 신기할 뿐입니다. 살몬의 아버지 나손은 민수기 2장3절에 장막을 중심으로 가나안 땅으로 행진을 할 때 선두 깃발을 든 자가 유다 자손의 족장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로 미뤄 그 가정은 신실한 믿음의 전통이 있는 가정입니다. 살몬은 진실한 가정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그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철저하게 믿고 순종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진실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그가 보여 준 사랑의 표현이 라합에게 그대로 와 닿았고 믿어지기 시작한 것이지요.
얼굴이 예쁘고 행실이 착하고 진실한 여자라면 어느 남자가 그를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모든 남자가 얼굴이 예쁘고 마음이 착하고 진실한 여자를 찾기 때문에, 그것은 특별한 사랑이 아닙니다. 그런 여자는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으므로, 그런 여자가 어떤 남자에게 사랑을 받는 것은 별로 놀랄 만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추하고 더러운 여자가, 저녁마다 뭇 남자들에게 술을 팔기 위해 노래를 부르고 몸이나 파는 기생이, 살몬같이 훌륭한 가문의 뛰어난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것은 누가 봐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놀라운 사랑인 것입니다.
살몬의 사랑은 우리가 주님께 받는 사랑을 대변하여 주고 잇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진실하고 착해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거짓되고 악한 우리를 그냥 사랑하신 것입니다. 종족이 다르고 신분이 천하고 살아온 배경이 엄청나게 다른데, 어떻게 서로 알게 되어 부부가 되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단 하나 서로 사랑했었다면 그것 하나만은 이해가 가능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모든 어려움을 넘어 모험을 감수하면서 정탐꾼을 숨겨 줄 수 있었습니다.
라합의 바른 선택에 의한 믿음의 순종으로 구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믿음은 선택입니다. 이것을 잡기 위해 저것을 놓아야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영화 <타잔>을 보신 분들은 타잔이 이 줄을 잡고 저쪽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상야릇한 괴성을 지르며 이쪽을 잡은 것을 놓고 저 줄을 잡아야 하는 것처럼 세상에 살지만, 세상 사랑을 놓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요한일서 2:15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라합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의 동족을 끊어내고 하나님의 백성을 택하여야 하는 아픔을 치르고 나서야 그 믿음이 진짜 믿음입니다.
라합는 단지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승리하는 소문들을 손님들을 통해 들었을 뿐인데, 직접 이적을 목격한 이스라엘 백성도 하나님을 믿지 않았는데 이 소문을 믿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세상을 살면서 소문을 믿는 사람들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자신이 직접 보고 만져도 보고 조사를 하여 보아도 속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그분이 행하심이 구원에 속한 것이라는 것을 믿는 것은 은혜중에 은혜입니다. 그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을 얻습니다.
영국의 고고학자 가스탕의 여리고 발굴(1930~1936)에 의하면 여호수아 당시의 여리고 성은 4~5미터 간격을 사이에 둔 두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중 성벽으로 인해 성 내의 면적이 대폭 축소되었기 때문에 두 성벽 사이에 대들보를 올려놓고 그 위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고 하는데, 이는 이중 성벽을 통해 외부인들의 조사와 침략에 대한 방어책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정탐꾼을 숨겨준 대가로 그녀와 그 가족이 구원받게 될 언약을 받아냅니다. 여호수아 2:18에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 내린 창문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버지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진실한 표를 요구하는 라합에게 정탐꾼이 준 것은 ‘이 붉은 줄’ 입니다. ‘이 붉은 줄’이 무엇을 가리키는가 하는 점입니다. 특히 ‘이’라는 지시대명사를 사용한 점 등으로 미루어 그 두 줄은 정탐꾼이 타고 내려간 줄과 동일한 것이라는 견해가 옳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붉은 줄은 이스라엘과 라합 사이의 구원의 약조였습니다. 윌리암 바클레이 같은 주경학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승리할 확률은 백만분의 일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상황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불리하였습니다. 아무런 무기도 없이 사막을 건너온 유목민들이 여리고 성을 정복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라합은 눈에 보이는 현상보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더 신뢰하였습니다. 그래서 라합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고 했고, 그러한 확신에 가득 찬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창문에 붉은 줄을 매어 달았던 것입니다.
많은 학자는 라합이 매어 달았던 붉은 줄은 단순한 약조의 표시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속죄의 피를 예표한 것으로 봅니다. 퐁크(C. VONK) 같은 학자는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생명, 구속, 정결케 함에 관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가르침에 있어서 사용하신 빛이 붉은 빛이다.’고 했습니다. 일찍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오게 될 때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름으로 구원받은 바 있었습니다. 그때 바른 양의 피도 물론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예표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중요한 피의 색깔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흐려지지 않고 전승됐습니다. 라합은 이처럼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붉은 줄’을 즉시 창문에 매어 달았습니다. 이처럼 산 믿음에는 반드시 행위가 따르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소식을 듣고 알고 믿었던 라합은 그 믿음의 당연한 결과로 행동을 낳았습니다. 그래서 왕의 명령도 무서워하지 않고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서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숨겨주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히 11: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이 구절의 핵심은 ‘믿음으로 순종한 라합’과 ‘순종하지 아니한 자들(여리고 사람들)’의 대조입니다. 여기서 ‘순종’이란 단어의 의미와 ‘복종’과의 차이가 있습니다.
‘순종하지 아니한 자들’로 번역된 헬라어는 ‘아페이데오 ἀπειθέω’입니다. 이 단어의 기본 의미는 ‘믿지 않다, 불신하다, 거역하다’입니다. 즉, 반대 개념인 ‘순종하다’는 단순히 명령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신뢰함으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라합이 정탐꾼을 숨겨주었던 행동은 ‘믿음에 근거한 신뢰의 행동’을 하였음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하셨던 지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기에 그녀의 마음에는 평안이 있었습니다. 믿음에 따르는 평안이 주었졌다는 말입니다.
여리고 성에 있는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공격에 두려움 속에서 간담이 녹았으며 정신을 잃었지만, 기생 라합은 이스라엘 백성의 공격이 두렵지 아니하였습니다. 라합에게는 정탐꾼과 맺은 약속이 있었는데, 그들이 와서 틀림없이 약속대로 자기와 자기의 가족들을 건져줄 것을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정탐꾼들의 약속을 생각하고 그 약속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는 그는 정말 두렵지 않았고, 속히 그날이 오기만을 고대하였습니다. 자기와 사랑을 나누었던 정탐꾼 중의 한 사람인 살몬과 결혼을 해서 함께 살 그날이 기다려졌던 것이지요.
믿음의 사람에게는 세상의 환란이 두렵지 않습니다. 환란의 때에도 나를 도우시기 위하여 오신 주님이 거기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날 주님이 오실 때는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엄청난 재난이 덮칠 것을 말씀합니다만 예수님을 신랑으로 모신 믿음의 사람에게는 절대로 두렵지 않습니다. 신부된 교회의 성도들을 이끌어 내시고 주님의 영광에 동참하도록 오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이 가까이 올수록 소망을 갖고 있습니까?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은 저 여리고 성의 한 죄 많은 기생이 어떻게 해서 그의 가족이 다 구원을 받았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기생 라합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면, 죄 많은 우리도 분명히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라합처럼 하나님의 말씀 혹은 하나님의 하신 일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누구나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습니다.
그러나 생명력 있는 참된 믿음의 소유자에게는 반드시 행함이 따른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생 라합이 붉은 줄을 창문에 매어 달아 구원을 받았던 것처럼, 여러분과 여러분의 사랑하는 가족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여 모두 다 구원을 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