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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명- 2021 신춘문예 당선 동화동시집
출-정은 출판사
독정- 2022. 7. 21.
♠ 머리말-우리 마음속의 동네 한 아이가 태어나면 온 동네가 키운다고 하는데, 시대 변화에 따라 동네 유형도 달라졌다. 지리적 동네도 많이 없어지고 정서적 동네는 와이파이와 SNS로 상징되는 가상 동네로 재편된 지 오래되었다. 지금 시대 동화, 동시는 시간적, 지리적, 정서적 아이들의 동네이며 우리들 동네다. 모두가 마음속 동네에서 마음껏 뛰어놀고, 행복하게 자라주길 소망한다. 코로나19로 많이 지쳐 있던 우리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우리 동네로 들어가 보자.
-광부처럼 아름다움을 캐내어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고 학대받는 아이들이 없는 사회가 되길-흰머리와 주름살이 늘어도 영원히 어린이로 살 수 있는 행복을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요? 때로 갑갑하고,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서 내가 원하는 모든 걸 만들 수 있는 행운을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요. 동화를 쓸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감사합니다.
♠ 목각인형(강원일보-김응현)
“마법사가 음식도 못 만들어?”
“내가 할 수 있는 마법이 있고 할 수 없는 마법이 있어.”
무지갯빛 구름이 민수 몸에서 뺘져나와 쓰레기통에서 주운 목각인형에 흘러들어가자 민수 다리가 아팠다. 누워있던 목각인형이 일어서서 걷기 시작했다.
“우아, 움직인다.‘
민수는 기뻐 아픈 것도 잊었다. 목각인형은 걷디감 했다.
“왜 걷기만 해?”
“지능이 없어서 그래. 따뜻한 물로 목욕시켜 주면 지능을 넣어줄게.”
“고양이는 목욕 싫어하잖아.”
“내가 아직도 보통 고양이로 보이니?”
민수는 난로 위 주전자 물로 따뜻한 목욕물을 만들었다. 욕실에서 나온 고양이 털빛이 선명해졌다.
“이번엔 너의 지능을 주어야 해. 그러면 머리가 좀 아플 거야. 학교 성적도 떨어지겠지.”
“그래도 좋아, 난 친구가 필요해.”
고양이가 마법 지팡이로 민수와 목각인형을 톡톡 치며 외쳤다
“수리수리- 야옹양ㅇ옹- 마하 수리 얍!”
민수 몸에서 구름이 뺘져나와 목각인형에게 흘러 들어갔다. 이번엔 머리가 아팠다. 그때 인형이 걸음을 멈추고 민수 앞에 앉았다.
목각인형은 민수가 만든 블록을 발로 찼다. 따뜻한 마음을 넣어줘야 하는데
“너의 따뜻한 마음이 줄어든 만큼 마음은 차가워져. 외로움도 줄고.”
“좋은 거야?”
“나는 좋던데. 외로움도 모르니까 친구도 필요 없고.”
“나도 목각인형에게 내 마음 다 줄래. 외로움이 없어져 버리면 좋겠어.”
무지갯빛 구름이 민수 몸에서 뺘져나와 고양이에게 흘러 들어갔다.
민수는 오늘 있었던 일을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는 이야기를 다 듣고 모두를 위한 맛있는 저녁을 준비했다.
-늦둥이 아들이 곰과 힘겨누기를 하고 외계인을 만났다.
김응현 강원일보-목각인형
♠ 내 이름은 구름이-남경희(경남신문)
이름이 꼭 있어야 할까 생각했는데 도둑고양이로 불리고 더러운 녀석이라 불려 싫었다. 한 아주머니가 마당에 하얀 나무수국을 심오 흙을 덮고 물뿌리개로 물을 뿌렀다, 가느다란 주둥이에서 맑은 물이 콸콸 나왔지. 갑자기 나도 목이 마르는 거야.
“야오이 야아옹.”
“어머나 너도 목마르니?”
아주머니는 잠시 후, 파란 꽃무늬가 있는 사기그릇에 물을 담아왔어. 이렇게 예쁜 물은 처음이야.
“어서 마시렴.”
정신없이 물을 마셨어 .얼마나 상큼하고 시원한지. 빙 좌 꽃들이 비 맞는데 나와 본 아주머니가 종이상자를 현관에 내놓고 들어오래. 샤워기를 틀자 햇살 같은 물줄기가 나왔다. 간지럽기도 하고 불편하고 싫었어. 하지만 꾹 참았지. 몸이 바들바들 떨려. 내 몸이 거품으로 온통 뒤덮였어
‘나는 눈사람이 아니라고요. 고야잉에요.’
“샴푸로 씻어야 고약한 냄새가 없어져. 안 그러면 너 밖으로 가야 행,”
밖에는 천둥소리 빗소리가 요란해 할 수 없이 눈 감고 얌전히 돌멩이처럼 있었어.
“어디 보자, 네 이름 구름이라 불러야겠다.”
“야호! 드디어 내 이름을 불러줬어!”
아주머니가 장터에 갔다 오자 달려 나갔지
“누군가 날 반겨준다는 게 이렇게 행복한 거구나.”
아주머니는 혼잣말하며 수면 방석을 꺼내 놓았다. 나는 행복해. 지금 아주머니 무릎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어.
“구름아, 어느 시인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가고 했어.’
하늘엔 뭉게구름이 두둥실 피어올랐지.
♠ 범인은 누구-윤혜경(경상일보)
고양이를 키우려고 교실에 데려왔는데 다음날 고양이 상자 지붕에 구멍이 생겨 범인을 찾으며
민수. 2 문방구 할머니, 3 과학 선생님으로 추정해 범인을 쫓는데 민우는 큰 스티로폼 상자를 가져왔고 알레르기 때문에 고양이에게 갈 수 없어 범인 목록에서 지우고, 문방구 할머니는 ‘신경통엔 고양이가 좋다던데’말했는데 무릎 신경통 때문에 문방구 밖을 나가질 않으니 지우고, 과학 선생님이 실험하려고 잡아갔나 싶어 교무실에 갔더니 선생님이 안 보여 물었더니 ‘지난주부터 다른 교로 교육받으러 갔단다.’ 다음 날 아침 갔더니 학교 건물 옥상을 가리키며 빗물받이 끝에 긴 고드름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ㄷ. 아침 햇살을 받은 고드름이 반짝이며 조금씩 녹고 있었다. 곧 떨어질 듯 아슬아슬해 보였다. 그 고드름 바로 아래 아이들이 만들어준 고양이 집이 있었다.
“집을 망가뜨린 게 바로 저 고드름인 것 같아! 녹아버려서 아무도 몰랐나 봐. 일단 집을 다른 곳에 옮기자. 나 혼자서는 힘들어서 누구든 오길 기다렸어.”
“그래 나랑 같이하자.”
유관순 동상 아래 있던 고양이도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수첩을 꺼내 적었다.
‘범인은 바로 고드름’
-평- 범인의 정체를 아이다운 깜찍함으로 표현했다.
♠8구역 배추자 여사-김효진(광주일보)
할며니가 발리 댄스복을 입는데 손주인 내가 싫어한다. 할머니는 손주인 나를 데리고 직접 쓴 전단지를 들고 <벨리댄스 강좌. 8구역 푸른 경로당. 강습료 무료> 글씨를 붙이라 한다. 나는 할머니를 놀리는 민상이를 보자 빨간 불인 것도 잊고 발을 내디뎠는데 할머니께 목덜미가 잡혔다.
“이거 놔! 재가 또 놀리잖아. 나, 이거 안 붙여. 이거 아동학대야.”
“너는 노인 학대야. 여태껏 키워줬더니 말하는 것 봐! 배은망덕하기는 어서 붙여?”
나는 배추흰나비 상자만 애지중지하는데 내가 할머니 옷을 마당에 던져버리자, 할머니가 내 번데기를 던져버릴까 봐 방에 들어와 문을 잠갔다. 불을 켜지도 않고 혼자 채집통을 열어보았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에 번데기를 비춰보았다. 속에 희미하게 나비 모양이 비치는 것 같은데 아직 그대로다. 채집통을 끌어안고 그대로 잠 들었다. 잠깨어 경로당에 갔더니 아이들이 많아 어린이집인지 헷갈렸다. 자세히 보니 얄팍한 천이 손 위에서 미끄러지는 게 괘 예뻐 보였다. 할머니는 동작 하나하나를 알려주고 있었다.
“자, 발은 어깨너비로 벌리고, 가슴 활짝 이렇게 배 집어넣고. 한쪽 엉덩이를 올렸다가 내리는 것 이게 드롭이고 가슴을 마구 흔드는 건 쉬미야.”
“쉬? 아이고 화장실 좀 다녀와야겠네!”
할머니의 동작은 하나같이 제각각이었다. 허리와 몸이 따로 움직이고 팔을 움직이라면 엉덩이를 뒤로 빼고 엉덩이를 빼라면 팔을 휘저었다. 할머니들에게 춤을 가리키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나는 번데기가 나비가 되지 않아도 계속 사랑할 거다. 할머니도 그런 거랑 똑같다. 동남 좋아하고 만날 떼쓰고 이상한 옷을 입어도 나는 할머니밖에 없다. 듣기 싫던 음악에 나도 모르게 어깨를 움직이고 있었다. 집에 가며 번데기가 나비가 되어 있을 것 같다. 배추자 여사가 날갯짓 한다. 경로당 안에 배추흰나비들이 훨훨 날고 있다.
평- 애벌레를 정성껏 돌보는 따뜻한 마음의 나와 자신과 주변을 밝은 에너지로 채워가는 배추자 여사 캐릭터가 매력적이다.
♠ 아디동 블루스-박나현(국제신문)
학교 음악제를 앞두고 집으로 가는 길 문화 장터에 축음기가 있었다. <아디동 블루스> 축음기 소리를 높이자 아리랑 첼로 연주가 재즈 음악으로 흘러나왔다. 축음기가 지직거리더니 나팔관이 마치 입처럼 오물거렸다. 축음기 나팔관으로 다가가자 나팔관에서 손이 쑥 나와 내 손을 낚아챘다. 나는 나팔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웅웅대는 소리가 났다 묵 속에 있는 것 같았다. 숨이 막혀왔다. 정신이 아득해지려는 순간 누가 내 손을 잡고 쑥 끌어 올렸다. 정신을 차라자, 안경 벗은 아가비가 보였다. 아가비는 미군 군복 빨래를 하고 있었다.
“너도 피난길에 혼자가 된 모양이구나. 1952년.”
“장난하냐?”
“우리 할아버지는 떼꾼이었어! 정선 소나무가 진짜 좋거든 서울까지 운반하는 사람. 뗏목을 타고 말이야.”
“뗏목?”
“아우라지에서 서울로 가는 길은 물살이 센 곳이 많아. 뗏목을 타고 가기엔 힘든 길이었어, 그럴 때마다 떼꾼들은 아라리를 부르며 힘을 냈대.”
“아라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 주게. 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노랫가락이 구슬펐다.
“여기까지 오면서 굶어 죽은 사람도 봤고 총 맞아 죽은 군인도 봤어. 무서웠어. 그럴 때마다 나도 할아버지처럼 소리를 했어.”
“위문공연단이 왔나 보네.”
다음날 등나무 아래에서 이가비를 만났다. 주삣대던 이가비가 내 가방에서 레코드판을 꺼내 들었다.
“어, 이거 우리 집에도 있는데 예전에 할아버지가 미군 부대에서 아리라를 불렀대. 그걸 듣고 미국 재즈 음악가 아저씨가 음악을 만들었대.” “내가 앞에 랩을 할 테니까 랩이 끝나면 네가 아리랑을 불러 봐.”
등나무 아래는 우리 무대였다. 등나무꽃이 무대 조명보다 환하게 우리를 비추었다.
평-한국 전쟁 당시 위문공연 차 우리나라에 왔다가 들은 아리랑을 재즈 블루스로 편곡해 해외에 알린 미국인 오스카 패티포드의 이야기를 국악 판소리의 아니리를 랩으로 부른 래퍼 소년과 연결하여 쓴 작품이다. 우리 현대사의 미세한 부분을 발췌하여 그것을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 버무린 까다로운 작업을 상상력으로 잘 엮어냈고 취재력과 구성력을 보여 탄탄한 작품이 되었다.
♠ 니들이 사춘기를 알아-김은아 동아일보
누나, 아바, 엄마가 사춘기, 갱년기라고 바라보며 투들거렸는데 가족들은 내가 사춘기라며 감싸주고 수군대는 반전‘ 엄마가 모든 것 해결해 줄 거로 생각하는 것부터가 동생은 아직 꼬맹이다. 선생님 잔소리를 왼쪽 귀로 받아 오른쪽 귀로 흘려보냈다. 선생님 붉은 대머리를 보니 엔진이 과열되어 터질까 걱정되었다. 짬뽕 한 그릇이라도 내가 먹고 싶은 걸 시키며 승리라도 한 것처럼 우쭐대었다. 방에 들어와 혓바닥을 내밀고 혀의 매운맛 반응을 관찰했다. 아빠한테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들켜 화가 났다. 얼굴이 확 달아올라 따ㅣ가웠다. 화끈거리는 얼굴에 찬물 마사지가 필요한 순간이다. 이렇게 나의 사춘기는 시작되었다.
♠ 우리 집에 놀러 와-박규연(매일신문)
엄마가 친구 건호를 돌봐주며 나랑 같이 대해주어 화가 난다. 신발 끈이 풀려도 엄마 앞에 대고 왼쪽 발을 척 내밀었다. 엄마의 굽은 등이 처량해 보였다. 그리고 학교에서 내가 넘어진 것도 엄마 앞에서 흉보는 건호가 미웠다. 엄마는 건호 손톱도 깍아주었다.
“우리 엄마가 네 종이냐?”
“너희 엄마 돈 받잖아. 나 봐주는 대신 우리 엄마가 돈 준다고!” 건호가 이글대는 눈으로 나지막하게 쏘아붙였다. 그러다가 사골국을 먹은 건호가 토하자 건호 엄마가 와서 데려갔다.
“엄마 돈 받아? 건호 봐주는 대신 건호 엄마한테 돈 받아?”
“돈? 그거야. 건호 간식 먹이고 저녁까지 먹여준다고 건호 엄마가 고마워서 주는 거지.”
학교에서 건호가 달려왔다.
“야, 너 끈 풀렸어, 발 줘봐.”
물끄러미 발을 내려보았다. 왼쪽 운동화 끈이 풀어져 운동장 흙에 맥없이 끌리고 있었다. 건호가 쪼그려 앉아 내 운동화 끈을 묶어주었다. 나는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다가 건호 옆에 같이 쪼그리고 앉았다.
“나 끈 묶는 거 배웠지! 잘하지?”
건호가 다부지게 매듭을 묶고는 나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건호의 눈빛에 갑자기 눈이 부셨다.
‘고마워.“
우리는 함께 일어서서 교실로 달려갔다.
“건호야! 우리 집에 놀러 와!”
운동장이 쩌렁쩌렁 울리게 큰 소리로 외치면서 뛰었다.
평- 사건은 대단한 것이 없고 등장인물도 단출하지만, 아야기를 떠받치는 통찰의 무게가 녹록하지 한다. 미묘한 심리 변화까지 서두르지 않고 담담하게, 치밀함으로 개연성 있게 묘사했다.
♠ 가짜 일등- 소지연(무등일보)
키보드 위 손가락이 솜사탕처럼 가벼워졌다. 날래 아이템은 내 속도를 두 배로 올리는 거. ‘바나나 껌질’아이템은 상대를 느리게 만드는 거, 마지막으로 ‘폭탄’ 아이템은…… .
나는 미리 숨겨 둔 ‘폭탄’ 아이템을 준수 캐릭터를 향해 발사했다. ‘펑!’하는 소리와 함께 준수 켸릭터가 꼬질꼬질한 폭탄 머리로 변했다. 이히히! 깔끔하게 머리 빗는 순수를 생각하니, 지금 꼴이 우스웠다.
현호) 이렇게 변하니까 무조건 피하기!
준수) 아이, 깜작이야! 크크.
준수는 부러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웃어넘겼다. 하지만 사실 창피해 죽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을 거다. 나는 어깨가 한껏 올라간 채로 계속 키보드를 두드렸다.
현호) 이렇게 상대방을 쳐서 방해할 수 있어. 상대보다 내가 먼저 제트 키를 누르는 게 포인트!
윤지) 오호, 이건 몰랐던 기술이네
신기해하는 윤지와 달리, 준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는가. 모르긴 해도 좋아하는 윤지 앞에서 자존심 꽤 구겼을 거다. 윤지도 이쯤 되면 준수가 하찮아 보이겠지? 곧 당당히 일등을 차지할 나와 더 비교되어 보일 게 틀림없어.
현호) 그럼, 이제 진짜 게임을 시작해볼까?
준수) 아, 그런데 있잖아…… .
준수가 뒤늦게 무슨 말을 하려는 것 같았지만 나는 ‘게임 시작 ’버튼을 눌렀다. 자식, 인제 와서 나랑 대결하는 게 두려워진 건가? 흥, 그래도 어림없지!
“삼, 이, 일, 준비, 출발!”
카운트다운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재빠르게 위쪽 화살표 키를 눌렀다. 내 캐릭터가 ‘휘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앞으로 달렸다. 이윽고 모퉁이가 나왔다. 재빨리 오른쪽 화살표 키를 눌렀다. 내 캐릭터는 장애물이 튀어나왔지만, 점프 기능이 있는 스페이스 키를 가볍게 눌러주면 된다. 순간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어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윤지와 준수 컈릭터가 보이지 않았다. 내 캐릭터가 길 한복판에 우뚝 멈춰 섰다.
현호) 얘들아, 너희 대체 뭐해?
윤지) 현호야! 준수가 아까 그랬잖아. 달리기 전에 여기 ‘백설 공주’ 마을 좀 구경하자고. 너 채팅창 못 봤어?
나는 뽕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달리는 데만 집중하느라 잠시 채팅창 보는 걸 깜빡한 거다.
준수) 게임 속 마을이 너무 예뻐서 말이야. 달리기만 하면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못 보고 지나치잖아. 더군다나 윤지가 제일 좋아하는 ‘백설 공주’ 마을인데.
준수) 윤지야, 저기 일곱 난쟁이가 쓰는 침대도 있어!
윤지) 진짜? 아주 귀엽겠다. 준수야. 얼른 같이 가보자!
가슴 속에서 화가 폭죽처럼 펑펑 터졌다. 에잇! 준수 녀석 때문에 내 완벽했던 계획이 전부 엉망이 돼버렸다. 다시 출발선으로 발을 옮겼다. 이미 둘 사이엔 개가 끼어들 틈조차 없었다. 그런데 그동안 게임 속에 있는지도 몰랐던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알록달록한 꽃과 나무 나풀나풀 날아디니는 나비, 파랑새. 일곱 난쟁이의 아기자기한 통나무집과 뭉게구름 가득한 하늘도 보였다.
“와, 신기하다. 그저 시합 장소라고만 생각했는데 …….”
눈물을 꾹 참고 ‘날개 아이템’을 눌렀다. 바람 같은 속도로 앞을 향해 달렸다. 마을 풍경이 안개처럼 뭉개지며 나는 순식간에 결승선을 넘어 경쾌한 나팔 소리와 함께 문구가 떠올랐다.
‘일등을 축하합니다!’
수는 꼴등. 삼등이었다. 하지만 나 이 게임의 진짜 일등이 아니란 걸 알았다. 때론 꼴등이 일등보다 훨씬 더 많은 걸 보고 듣고 중요한 걸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을. 무늬만 일등인 가짜 일등이 아니라 내게 소중한 오윤지의 사랑을 차지하는 진짜 일등이 되겠다는 것
※ 평- 이기겠다는 맹목적 마음만 앞서 진짜 좋아하는 아이와 어떻게 놀아야 제대로 노는지를 자연스럽게 깨달아가는 이야기다. 다만 게임을 하면서 주변 풍경을 돌아보는 이야기는 어른 시각이 담겨 있는 듯 작위적이었지만 전체 이야기를 해칠 정도가 아니라 당선작으로 뽑았다. 심사: 임지형
♠손톱- 정승진(문화일보)
맛있는 냄새가 나는 수상한 판이 바닥에 놓였다. 개 사료 같은 게 뿌려져 있는데 투명한 액체가 발라져 있었어. 발을 디뎌도 되나 망설이는데, 파리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아 다시 날지 못하는 거야. 그래 끈끈이였다. 아저씨, 여기 구운 계란 이천 원어치만 더 주세요.“
쥐인간은 하나 남은 계란을 집어 들며 말을 이었다.
“쓰레기통을 엎고 바닥에 흩어진 반달 모양의 손톱을 발견했지. 큼큼한 냄새가 나는 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어. 딱딱했지만 씹어보니 짭짤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났어. 흩어진 손톱들을 모조리 먹어 치웠지. 갑자기 방문이 열리며 아이가 들어와서 당황해서 재빨리 도망친다는 게 옷장 속에 들어갔지. 폭신해서 그만 잠이 들었어.”
매점 아저씨가 구운 계란을 가져다주고는 빈 그릇을 치워갔다. 다시 계란이 세 알이 됐다.
“눈을 떠보니 한낮이라 문을 열고 나왔어. 뒤돌아서자 옷장에 붙어있는 거울 속에 내가 비쳐 보였어 나는 사람으로 변해있었어. 손톱 주인, 이 집 아들, 열 살 민수.”
쥐인간은 네 번째 계란을 까기 시작했다. 민수랑 바꿔서 하기로 하고 학교에 가서 열심히 배웠어. 민수를 괴롭히는 아이랑 붙어 그 녀석을 놀이터 바닥에 메다꽂아버렸지. 우리 엄마는 고양이에게 맞서 싸운 쥐야. 난 그 자식이고. 난 한 번 죽었던 몸이야. 그 녀석이 뒤로는 안 괴롭혀서 즐겁게 학교에 다녔어. 어느 날 게임하던 아이가 짜파구리를 먹고 싶다고 내게 심부름을 시켰어. 엄마 카드를 들고 라면을 사가지고 왔는데 그 아이 엄마가 있었어
“엄마는 안 보는 척하지만 모르는 게 없어. 옷이 한두 벌 없어지모 평소보다 먹는 양이 두 배는 늘어났는데 자꾸 방안으로 가지고 들어가 수상했대. 엄마는 나를 쫗아내려 했더 하지만 둘 중 누가 자기 아들인지, 누가 쥐인지 몰랐지. 처음엔 내가 조용히 나가려고 했는데 민수가 나한테 개고생을 시켜놓고 피해자인 척해서 나도 곱게는 못 물러나지 서로 머리를 쥐어뜯고 싸우자 엄마가 민수 엉덩이에 점이 있다며 엉덩이를 까보였지. 나한테도 점이 없을 리가 없잖아. 민수는 아는 것 중에 내가 모르는 건 없었어. 하지만 내가 아는 것 중에 민수가 모르는 건 많았어. 학교도 안 가고, 심부름도 안 갔지. 태권도. 피아노학원도 안 갔으니까 내가 말했어. 엄마 수학 문제 내보세요. 피아노 시켜보세요. 쥐인간은 그런 거 모를걸요? 쥐 안간이 학교도 대신 다녔다고 하지 앟았나? 역시 쥐가 머리가 좋다더니 대단하구나 하고 생각했다. 쥐인간은 말을 이어갔다.
“엄마는 우리 둘에게 세 가지 시험을 시켰어. 수학 시험, 피아노 치기, 태권도 시범 보이가. 나는 자신 있었지. 인간이 되기 위해 열심히 했으니까 민수는 나한테 맡겨두고 놀기만 했으니 제대로 할 리가 있나. 당연히 내 승리지,
‘엄마가 시험을 보니 확실히 알겠구나. 누가 내 아들인지. 내 아들은 너다.‘ 하더니 민수를 가리켰어
‘안타깝지만, 우리 아들이 그렇게 열심히 할 리가 없거든’. 더니 날 쳐다보더라. 어느새 엄마 손에는 몽둥이가 들려있었어. 게으름이 민수를 구원한 셈이지. 나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쳤어. 그래서 거리에 살게 된 거야. 고양이 밥도 나눠먹고 손톱을 구하면 인간으로 잠시 살다가 다시 거리를 헤매다가 이 목욕탕을 발견했어 목욕탕에서 사람들이 손톱을 깎더라. 여기구나 생각했지.“
게으름이 구원이라는 말은 처음 들어봤다. 쥐 인간을 그 몽둥이가 자길 향한 거라 생각했겠지만 아닐 수도 있다.
“제발 손톱 좀 나눠줘. 식산이 다 됐어.”
나는 흠칫 뒤로 물러섰다
“찍찍.”
옷 한 벌이 바닥에 떨어지고 작은 쥐 한 마리가 옷을 뒤집어쓴 채 눈앞에 나타났다.
“쥐다!‘
이발사 아저싸가 평상위로 펄쩍 뛰어올랐다.
“어디?”
빨간 팬티만 입은 세신사 아저씨가 빗자루를 들고 뛰어왔다. 카운터에서 졸던 매점 아저씨가 슬리퍼를 던졌다. 슬리퍼는 세신사 아저씨 얼굴에 맞았고 세신사 아저씨가 휘두른 빗자루는 허공을 갈랐다.
※수락산 둘레길에서 바위를 보며 “이 바위, 거인 손자국 같지 않아?”
그 말에 반짝 이야기 하나가 떠올랐다.
평- 쥐 변신 담에 이야기 모티프가 남탕 탈의실의 나른한 일요일 아침으로 찾아와 TV 리모컨을 쥔 어린이의 혼을 쑥 빼놓았다. 구운 계란과 바나나 우유까지 덤으로 한국 호러 판타지라고 소개해도 좋다. 서사와 인물과 문장과 의미까지. 흠잡을 데가 없다.
♠ 어색한 전쟁- 김보미(전남매일)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는 세 가족은 집에 바퀴벌레가 나와 잡으러 다니다가 서로의 문제를 발견한다.
“아니, 이게 다 뭐야!”
엄마가 화분 틈새에서 무언가 발견한 듯 눈썹을 꿈틀했다. 얇은 시집이었다. 시집을 거꾸로 휘리릭 넘기자 오만 원짜리 지폐들이 후드득 덜어졌다. 언 듯 봐도 4-50장은 되어 보였다. 아빠는 들고 있던 트랩을 내던지고 황급히 돈을 주웠다.
“그동안 나 몰래 비상금 챙겨놨던 거야? 무슨 꿍끙이야? 발리 말 안 해?”
엄마는 끈질기게 아빠에게 물었지만, 아빠 입은 철썩 붙어 절대로 열리지 않았다. 다음은 내 차례였다. 살충제를 들고 앞장섰다. 방바닥이 하예지도록 상충제를 뿌려도 바퀴는 쉽게 죽지 않고 뒤집혀 몸부림쳤다. 아빠가 책상 서랍 뒤에서 종이 한 장을 발견하곤 바퀴가 든 비닐봉지를 떨어뜨렸다. 화를 내려던 엄마 눈이 가늘어지더니 아빠 손에 든 종이를 낚아챘다. 그게 무슨 종이인지 제일 늦게 깨달은 건 한심하게도 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난 순혁이랑 일주일 전에 헤어졌기 때문이다. 이제 걔가 준 연애편지 따위는 바퀴벌래랑 같이 뒹굴어도 상관없었다. 엄마는 “너,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여태 연애나 하고 다녔던 거야? 너 연애질하라고 꼬박꼬박 진수성찬 차려대며 회사 다닌 줄 알아?”
나는 엄마 손에서 편지를 빼앗아 바퀴벌레가 든 봉지에 구겨 넣었다.
“이제 다 끝났어. 이미 지난주에 차였다고!” 엄마는 치약을 들고 부엌으로 갔다. 나도 신경적으로 치약을 구석구석 발랐다. 그런데 천장 맨 꼭대기 틈새에 반짝이는 비닐 간은 게 끼어있었다. 나는 호기심에 비닐을 쭉 당겨보았다. 그 순간, 찬장에서 수십 개의 반조리 식품들이 쏟아졌다. 미역국, 소고기뭇국, 육개장부터 장조림 메추리알, 우엉 조림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그럼, 당신 그동안 숨겨놓고 가족에게 ….”
아빠가 입이 떡 벌어져 말을 다 못이었다.
“엄마가 전부 손수 한 거라서 남기지 말라며.”
아빠가 다 못 한 말을 내가 맺었다.
“회사 다니면서 이런 거 데워서 먹이는 것도 쉬운 일인 줄 알아? 여태 잘 먹었잖아!”
우리 셋은 다시 흩어졌다. 바퀴들은 집 안 구석구석을 한 몸처럼 몰려다녔다. 혼자서 전쟁을 계속해가며 엄마, 아빠의 숨겨진 모습들을 또 발견했다. 엄마의 스케줄러와 아빠의 폴로리스트 자격증이었다. 몰래 공부해서 자격증을 딸 정도로 꽃에 뺘저 있는 줄은 몰랐다. 난 아빠가 꽃을 좋아하는 게 창피했는데, 아빠의 비상금은 아마도 이런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ㅇ에 와보니 일기장 위치가 살짝 바뀌었다. 한 번도 말하지 않았던 내 마음을 여 준 것 같아 이상했다. 이상하고 복잡한 느낌을 없애기 위해 밤 늦도록 바퀴를 잡은 일뿐이었다. 휴대폰이 울려 문자를 확인했다. 가족 모두 보건소 문자를 받았다.
“만세!”
지잉, 지잉, 휴대폰 세 개가 또 한 번 한꺼번에 울렸다. 두 번째 문자였다. 코로나는 아니지만 2주 동안 집에서만 격리해야 한다는 소식이었다. 우리 셋은 얼음이 되어 서로 쳐다봤다. 거실에 검은 바퀴 한 마리가 슬금슬금 지나갔다. 우리의 전쟁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
※ 가족이 서로의 문제를 발견하지만, 공통의 문제에 직면해 서로 인정하고 의지하여 극복하는 과정이 유쾌하게 그려졌다. 급히 당대를 반영하려다가 소재에 매몰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사회에 지금 필요한 것을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솜씨 좋게 동화를 풀어냈다.
♠ 현우의 동굴-성욱헌(한국일보)
혼자 잠을 자야 하는 현우는 동굴에 갇힌 것 같은 집에서 지리산국립공원에서 곰이 탈출했다는 뉴스를 보며 자기가 곰이 된다.
“안전한 동굴을 찾을 수가 없어. 동굴을 찾으면 아이를 데리고 나오려고 했어. 그 사냥꾼이 쫓아오지만 않았어도 동굴을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총소리가 어찌나 무섭던지, 결국 동굴과 비슷한 다리 밑에서 변신했더니 이렇게 반만 사람이 되어버렸어.”
다리 밑이 동굴이었다면 왠지 더 아늑했을 것 같았다. 곰이 되어보니 알게 된 사실이다. 어쨌든 현우는 이제 일주일에 삼일 정도는 혼자 잘 수 있다. 현우으 동굴 앞으로 매일 밤 긴 줄을 선다. 곰이 무서워 곰이 되고 싶은 사냥꾼이나. 사람이 무서워 사람이 되고 싶은 곰들이.
※ 도시 주택에서 혼자 밤을 지내야 하는 아이의 두려움에 깊이 공감한 작품. 옛이야기의 화소를 적절히 들여오면서도 어린이와 동물의 고립감으로 재해석하는 방식은 매우 현대적이다. -임정자
가벼운 보름달- 박미영(경상일보)
우리가 건져 줄게
호숫가 나무들이 손을 뻗었어
물결은 호숫가로 달을 떠밀어주었디
바람이 끌어당기는 순간
앗! 보름달이 부서졌어
물에 녹아버린 줄 알았는데
어느새 하늘로 올라갔네.
별들이 반짝이는 이유
하늘 베터리가 얼마 안 남았다. 오버
노을은 빨갛게 위험신호를 보낸다
저녁은 절전모드로 진행 중
배경부터 어두컴컴하게 바람과 구름도 잠시 멈춤 완료
새들도 대기모드 완료
하나둘셋넷. 둘둘셌넷
드디어 나타났다. 오버
별들이 깜박깜박 하늘을 충전시키고 있다.
엄마의 꽃밭- 김광희(조선일보)
종일 튀김솥 앞에 서서
오징어 감자 튀기는 엄마
밤늦게 팔에다 생감자 발라요
그거 왜 발라?
예뻐지려고
웃으며 돌아앉아요
얼마나 예뻐졌을까
곤히 잠든 엄마 팔 걷어 봐요
양팔에 피어나는 크고 작은 꽃들
튀김기름 튄 자리마다
맨드라니, 봉숭아, 채송하
동생과 나를 키운 엄마의 꽃밭
팔뚝에 가만히 얼굴을 묻으면
아릿한 꽃향기에
눈이 촉촉해져요
검은 고양이-최영동(한국일보)
전봇대 밑을
두리번거리는 그림자
그 속에서 발톱이 솟아올랐다
날카롭게 가다듬은 발톱에
아무것도 걸려들지 않아
등뼈는 어제보다 하늘로 솟구치고
뱃가죽은 전단지처럼 펄럭거리네
사방에 참치 캔이 구르고
살코기가 있던 자리 혓바닥보다 콧등이
먼저 파고들었어
살코기 한 점 남아 있지 않은
오늘 저녁
지붕 너머로
번쩍
저녁을 낚아채려는
고양이의 앞발
솟아오르는 발톱에
걸려드는 꼬리 같은
골목의 불빛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