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9일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해양방출이 재개되었다. 이번 방출은 2023년 8월에 개시된 이후 5번째로 5월 7일까지 19일 동안 7,851톤이 방출되었다. 올해에는 7회에 걸쳐 약 5만 4,600톤이 방출되며, 이에 포함되는 삼중수소 총량은 약 14조 베크렐에 이를 예정이다. 연 상한으로 설정된 22조 베크렐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2023년도에 방출된 처리오염수 3만 1,200톤, 삼중수소 약 5조 베크렐에 비하면 대폭 증가한 양이다.
사건 사고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 2월 7일 세정후 폐액이 원자로 건물 밖으로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작년 10월에는 이른바 다핵종제거설비(ALPS)에서 누출된 액체에 노동자 2명이 피폭당하는 일도 있었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해양방출을 강행할 방침이다. 설득력 약한 해양방출이 왜 강행되는가 체념 상태의 일본 국민들은 이를 수용하는 듯 보인다. 그 이면에서 이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4차 방출을 앞둔 지난 1월 18일 한 단체가 시작한 방출 반대 서명운동은 5차 방출이 시작된 4월 19일 직후까지 진행되어 18만 4,712명분의 서명을 일본 정부에 전달하기도 했다. 오염수 해양방출에 대한 반대 목소리는 일반 시민, 주민들뿐만 아니라 원자력이나 의학 방면의 전문가와 원전 종사 경혐자들로부터도 ‘과학적 근거’에 입각해 제기되고 있으며 활발한 대안 제시도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1975년에 설립되어 50년의 역사를 지닌 원자력자료정보실(CNIC), 후쿠시마 원전 사고 2주년을 계기로 설립된 원자력시민위원회 등이 그 중심에 있다. 이들 해양방출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육상에서의 장기 보관과 모르타르 고체화 방식이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공간’과 ‘시간’ 부족을 이유로 그 가능성을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공간’에 대해서는 이미 확보한 방대한 오염토 매설 부지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논거가 무너졌다. 그 방대한 부지에 저장하여 ‘시간’을 벌 수 있다는 반론에 대해서 일본 정부는 유효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해양방출의 경제성을 주장하는 것도 설득력을 잃었다. 2016년도 경산성 시산으로 17-34억엔의 비용에 52-88개월이었던 것이 현재는 1,200억엔 이상의 비용에 30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는 계산이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해양방출을 강행하고 있다. 여기서 던져져야 하는 것이 “일본의 민주주의는 안녕한가”라는 질문이다. ‘임박’한 ‘예외상태’란 구실이 민주주의를 형해화 이에 대한 대답을 찾는 과정에서 ‘예외상태’의 민주주의와 관련한 정치철학자들의 논의를 참고할 수 있다. 오염수 저장 시설이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다는 ‘임박한 사태’와 그로 인한 ‘예외상태’가 ‘오로지 해양방출’의 구실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상황이 ‘예외상태’로 규정되면 정치적 결정의 정상적인 과정이 중단된다. 이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권력이다(칼 슈미트, Carl Schmitt). 그런데 예외상태는 시간의 문제와 관련된다. 통치자들은 위험이 ‘임박’해 있다고 하여 예외상태를 정당화한다. 그리고는 예외상태가 ‘일시적’이라는 것으로 이를 합리화한다. ‘즉시’ 대응해야할 위험 앞에서 ‘잠시’ 민주주의의 중단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예외상태는 규칙이 되어간다(발터 벤야민 Walter Benjamin). 그러나 문제는 견디어야할 시간이 ‘잠시’가 아니라 거의 ‘항구적’이라는 사실이다(조르쥬 아감벤, Giorge Agamben).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예외상태는 예외상태가 아니다.
항구적 예외상태에서 일본의 민주주의는 안녕한가? 북한의 핵 미사일 능력 강화를 구실로 ‘몫 없는 이들의 몫’으로서 ‘정치’(자크 랑시에르, Jacques Rancière)를 배제하고 ‘치안’에 집중하여 적기지 공격능력을 보유하고 평화헌법에 예외상태를 선포한 것이 해양방출 개시를 확정한 것과 시기적으로 겹치고 있는 것은 그저 우연인 것일까?
암반처럼 굳건하다고 여겨지던 일본의 전후 평화주의와 민주주의가 오랜 시간을 거쳐 이윽고 형해화되고 있다. 한일관계가 끝모를 나락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이 이와 무관하지 않는 것 같아 걱정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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