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지향적 삶과 존재지향적 삶(6)
눅12:13-34, 마6:19-34
1. 들어가는 이야기
사람이 소유지향적 삶을 사는 것은 재물, 권력, 학벌, 영향력, 능력을 소유하지 못하면 무시당할 수 있다, 사랑을 잃을 수 있다, 심지어 죽을 수도 있다는 원초적 두려움 때문에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의 현실에서 직접 경험하고 있듯 이렇게 시작된 소유지향적 삶은 구조적으로 끝없는 탐욕, 상대적 우열비교, 무한 경쟁으로 치닫게 되어 필연적으로 불안, 스트레스, 소외현상, 계급 사회, 불의, 부정, 부패, 전쟁에 이르는 가장 비인간적 삶에로 전락하게 됩니다. 또한 소유지향적 삶의 모순은 어느 정도 소유에 성공한 사람조차도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즉, 가난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의 비율과 부자의 자살 비율이 같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 신화 “마이다스 왕의 비극” 이 바로 그것입니다.
존재지향적 삶을 사는 사람은 먹고 마시고 입고 사는 생존 문제는 공중의 까마귀와 들의 백합화를 기르시는 하늘 아버지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므로 존재지향적 삶을 사는 사람은 문자 그대로 存在(존재=나와 함께 현재 지금 여기 있는 모든 것=나 자신, 가족, 친구, 이웃, 대자연)하는 모든 것에 대한 우열 비교나 상대 평가를 하지 않고 각각 저 마다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사랑하며 사랑 받으며 살아갑니다. 동양적 표현으로 말하면, 天地人 相關的 弘益 共同體(천지인 상관적 홍익 공동체=하나님, 천지만물, 사람이 상생적으로 널리 서로 유익하게 하는 우주적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것입니다.
2. 문제는 존재지향적 삶이 쉽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내가 전에 목회학 박사 과정 때 증경 총회장 연동교회 김형태 원로 목사님한테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존재지향적 삶은 우리 목사들에게도 어려운 것이야! 내 아버지도 목사님이셨는데 어느 주일 아침 까마귀와 백합화를 주제로 힘차게 설교 하시고, 아래 층 사택에 내려와서 목사 가운을 벗으며 하시는 소리가 얘, 형태야, 내일이 네 등록금 낼 날인데 큰 걱정이로구나 하시는 거야!”(이어진 뒷이야기는 생략함). 또 어느 목사님은 “하늘나라에서는 돈이 필요 없겠지만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은 돈이 꼭 필요해!” 라고 하여 모두들 공감하며 웃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존재지향적 삶을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기도원, 수도원, 산속에서 수 십년 동안 기도하고 도를 닦는 분들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소유지향적 삶을 철저히 부수고 無所有(무소유)하여 매일 매일 순간 순간 존재지향적 삶을 살기 위한 것입니다. 존재지향적 삶은 어렵긴 하나 수 십년 아니 평생을 바쳐서 修道(수도=도 닦음)할 만큼 가치 있는 삶이란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 분들은 그 분들 나름대로 속세에 사는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존재지향적 삶을 추구하며 사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3. 우리 속에 있는 존재지향적 삶을 위한 가능성
첫째. 우리 속에는 하나님께서 불어 넣으신 내면의 힘(inner power)이 있습니다. 천지자연을 조용히 바라보십시오. 찬란한 태양, 은은한 달빛, 빛나는 별, 무한히 자유한 바람, 유장하게 흐르는 물, 씨앗을 싹 틔워 숲을 만들고 숲 속에 온갖 생물을 기르는 위대한 대지,... 하나님께서 태초에 이 모든 것이 그렇게 스스로 운행할 수 있도록 저 마다에게 내면의 힘을 부여하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도 존재지향적 삶을 살아 냄으로 생육하고 번성(소유 개념이 아닌 존재 개념으로)할 수 있는 내면의 힘(inner power=the breeath of life=생명의 바람)을 이미 부여해 두셨다고 하셨습니다(창2:6). 우리는 마른 뼈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생기로 충만한 살아 있는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둘째. 소유를 위하여 일하지 말고 존재를 위하여 일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존재지향적 삶은 존재를 존중하고 일은 무시하는 삶이라고 오해합니다. 아닙니다. 이 오해는 일을 소유지향적 개념에서 파악하기 때문입니다. 존재지향적 삶에서 일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work)이고 소유지향적 삶에서 일은 소유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하는 일(labour)입니다.
흔히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 돈은 자연히 따라 온다”고 합니다. 때로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말 속에는 소유지향적 생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말을 정확히 표현하면 “자기가 진정 좋아하는 일은 하면 롤스로이스를 몰고 다니는 즐거움보다 더 큰 자기 존재 자체의 기쁨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일 그 자체를 위하여 스스로 萬難(만난)을 감수하는 사람들(등산가, 모험가, 음악, 미술, 사진, 무용, 시인, 작가와 같은 예술가, 여행가, 수집가, 학자, 등)이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셋째. 修道(수도=도 닦음=수련=영성 훈련=신앙 생활)하는 생활입니다. 존재지향적 삶을 산다는 것은 곧 수도하는 삶입니다. 수도하지 않으면 곧바로 나 자신도 모르게 소유지향적 삶에로 되돌아 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4:18),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 하라(벧전2:11),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6-18)고 하셨습니다.
소유지향적 삶은 두려움의 삶이고, 존재지향적 삶은 사랑의 삶입니다. 여기서 사랑은 내 곁에 있어 주, 가지 마오, 못 잊어 못 잊어, 하는 육체적, 애정적, 낭만적, 통속적 사랑이 아닙니다. 탕자의 아버지의 사랑,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사랑, 안식일인 줄도 모르고 사람 살리는 데 열중하신 예수님의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