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동해 (13) 파키스탄·동남아 넘어 아프리카로 비전케어 사역 첫발
이현성2026. 4. 29. 03:07
질병·고난의 땅 스와질란드
100만 인구에 안과의사 1명
늦은 밤까지 백내장 수술하며
배고픈 자 외면했던 교만 회개
김동해(왼쪽) 비전케어 이사장이 2007년 스와질란드(현 에스와티니)에서 스와질란드 왕자를 진료하고 있다.
비전케어 사역이 파키스탄과 동남아시아를 넘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던 2007년, 하나님은 우리의 시선을 전혀 예상치 못한 곳으로 돌리셨다. 아프리카였다. 당시 내게 아프리카는 미지의 땅이자 질병과 빈곤의 두려움이 앞서는 곳이었다. 하지만 주님은 강권적으로 우리를 아프리카 남부의 작은 나라, 스와질란드(현 에스와티니)로 이끄셨다. 제22차 비전아이캠프는 비전케어가 아프리카에 내디딘 첫걸음이었다.
현지 공항에 내린 순간부터 마주한 현실은 참혹함 그 자체였다. 당시 스와질란드는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감염률이 40%에 육박할 정도로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나라였다. 질병과 가난에 신음하는 이 땅에서 눈을 치료한다는 것은 사치처럼 여겨졌다. 현지 병원을 방문한 나는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충격적인 사실을 접했다. 인구 100만명이 넘는 이 나라 전체를 통틀어 안과 전문의가 단 1명뿐이라는 사실이었다.
임시 수술실이 꾸려지자 전국 각지에서 앞을 보지 못하는 환자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었다. 며칠을 걸어온 노인, 지팡이에 의지해 어린 손자의 손을 잡고 온 맹인 청년…. 더구나 그 나라 왕의 형인 왕자까지.
그들의 눈을 진찰하면서 치밀어 오르는 슬픔과 분노를 억누르기 힘들었다. 한국이라면 동네 안과에서 10분이면 끝날 백내장 수술조차 받지 못해 평생을 흑암 속에 갇혀 살아온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제때 수술만 받았어도 시력을 잃지 않았을 ‘피할 수 있는 실명’(Avoidable Blindness)의 잔인한 비극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늦은 밤까지 백내장 수술을 하면서 수술대 앞에서 조용히 눈물을 삼켰다. ‘하나님, 어찌하여 이토록 무심하십니까. 왜 이 땅의 사람들은 이토록 무서운 어둠의 형벌을 받아야 합니까.’ 하지만 그 원망은 이내 나 자신과 세상을 향한 뼈아픈 부끄러움으로 바뀌었다. 생명의 떡을 움켜쥐고도 배고픈 자들을 외면했던 영적 교만이 낱낱이 드러나는 듯했다. 주님은 수술대 앞의 내게 분명히 말씀하고 계셨다. ‘그래서 내가 너를 이곳에 보내지 않았느냐.’
그제야 파키스탄에서 겪었던 뼈아픈 배신과 눈물로 세웠던 ‘4대 원칙’(자원봉사, 전문성, 현지 중심, 협력 사역)의 진짜 이유를 깨달았다. 그것은 단순히 선교지의 한 병원을 돕는 일이 아니라 ‘가서 행하라’는 주님 말씀에 따라 진정한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척박한 아프리카 대륙의 수많은 생명을 품도록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하신 치밀한 영적 시스템이었다. 철저한 원칙이 없었다면 이 거대한 대륙의 필요 앞에서 우리는 감정적으로 소진돼 금세 무너지고 말았을 것이다.
스와질란드의 붉은 흙먼지 속에서 나는 하나님 앞에 새로운 서원을 드렸다. ‘주님, 이 생명의 빛을 아프리카 끝까지 전하겠습니다.’ 짐바브웨, 말라위, 에티오피아, 우간다 등 아프리카 16개국으로 이어질 길고도 가슴 벅찬 여정은 그렇게 스와질란드의 짙은 어둠 한가운데서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정리=이현성 기자 sag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