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야인시대”를 즐겨봤습니다.
일제강점기부터 격동의 근대사까지
장군의 아들 “김두한”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였습니다.
구마적, 쌍칼, 시라소니 모두모두 내 마음을 설레게 했습니다.
그중 단연 김두한이 최고였죠.
결투장면이면 어김없이 나오는 배경음악 아시죠?
“바람처럼 스쳐가는 정열과 낭만아~”
이 노래가 나오는 순간, 온몸에 있던 말초신경들은 아드레날린을 내뿜으며 황홀경에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긴장감이 고조되는 결투장면에서 드라마가 끝난단 말입니다.
왜 이리 허탈한지. “일주일을 또 어떻게 지내나?” 고민 많이 했습니다.
두 주먹으로 승자를 가렸던 낭만시대.
우리나라도 이런 시대가 있었다는 것에
김.성.민,
이 뜨거운 사나이 가슴 활활 타올랐습니다.
버버리코트를 입고, 중절모를 쓴 다음,
허공에 대고 주먹질 좀 날렸습니다.
통째로 종로를 먹으려는 일본의 오야붕 “하야시”와 17대1로 대결한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김두한은 아버지 김좌진 장군처럼, 그 나름대로의 반일운동을 했던 것입니다.
그는 애국정신이 투철했으며, 반일감정 또한 누구보다 강했던 사람입니다.
광복 후, 국회의원선거에도 나와 야당의원이 됐습니다.
당시 여당의 실세였던 이기붕과의 마찰로 힘든 시간을 보냈었죠.
이것이 나중에 “똥이나 쳐먹어”라며 오물투척사건의 발단이 됩니다.
정권의 독재가 극에 달했을 무렵,
김두한 때문에 모든 일이 막히자
이기붕은 김두한을 찾아가 이렇게 말합니다.
“너, 지금이 어느 시대라고 날뛰어,
내가 입만 뻐끔하면 쥐도새도 모르게 죽는 것 몰라?
‘친일반역자’로 소문 한번 내줄까?”
그러자 김두한은 이렇게 응수합니다.
“소문 내봐 어디,
내 아버지가 독립운동가였어.
청산리계곡에서 수백 명의 일본군을 죽였던 장군이라구,
또 일제시대 때, 내가 일본놈들과 싸웠던 사실은 온 천하가 다 알아.
그러니 소문낼 테면 내봐”
이 대사는 20년이 지났는데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누구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대범함에 한 번 놀라고,
“정체성”이 분명한 사람은 어떤 소문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단체를 운영하는 저에게도 뜻하지 않는 소문이 퍼집니다.
돌고 돌아서 내 귀까지 들어옵니다.
웃음만 나오는 허탈한 괴소문, 실체가 없는 소문뿐입니다.
세상법정에서는 “소명”이란 기회를 주지만
이런 소문들은 기회조차 없습니다.
하지만 저를 쭉 지켜봐왔던 사람들은 그런 소문에 넘어가지 않을 거라 믿습니다.
"김성민이 호의호식하며 잘 살아간다" 카더라 해도
씨알도 안 먹힐 겁니다.
김두한이 자신있게 말했던 것처럼
“내가 구린내가 없다는 건 온 세상이 다 알아”
오랜 시간 단체를 운영해왔습니다.
단 한 번도 잘못된 적이 없었죠.
사법처리나 행정처분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역사”가 있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급식소에 반찬 하나를 안 가져가는 사람입니다.
그만큼 철저한 사람입니다.
물론 털어서 먼지 안 나올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저도 나올 수도 있겠죠.
그러나
완전 마음먹고, 의도적으로 사기치지 않았다고 자신있게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착오"나 "실수"를 해서 나올 수는 있겠지만 그 외는 없습니다.
선천적으로 거짓말을 하면 가슴이 미친 듯 뛰는 스타일입니다.
얼굴은 홍당무, 말은 더듬고, 오줌이 마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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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교회 나이많은 권사님이 매주 헌금합니다.
한 주도 빠지지 않고 합니다.
기도제목엔 이렇게 씁니다.
“주님,
우리 목사님 죽는 날까지 돈, 명예, 여자관계 때문에 범죄치 않도록 해주세요.
욕심 없고, 끝까지 겸손과 온유하게 해주세요.”
이 기도 때문에 잘못을 저지르고 싶어도 못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