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베트남과 관련된 뉴스가 봇물 터진 듯 넘쳐나고 있다. 특히 유튜브를 살펴보면 갖가지 소식이 난무한다. 주로 나오는 이야기가 한국의 대기업들이 베트남 투자규모를 줄이고 슬슬 발을 뺄 준비를 하고 있다는 뉴스이다. 한때 너도 나도 마치 베트남에 가면 모든 것이 해결이 되듯 그렇게 요란을 떨었다. 특정 나라에 투자를 하기 위해 들어가려면 그나라의 역사와 국민성 그리고 문화를 철저히 연구해도 실패할 확률이 높은데 대부분의 기업들과 투자인들이 무작정 들어간 것으로 나는 파악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말이다.
나는 1990년대 초 베트남을 방문했다. 그 당시 호치민시티 공항은 그야말로 한국의 1960년대 지방 공항 수준이었다. 이른바 베트남에서 가장 큰 도시의 국제공항이라는 곳이 그랬다. 공항은 좁디 좁았고 공항 안팎은 그야말로 발디딜 틈조차 없었다. 한국도 예전에 그랬듯이 누군가 외국에서 오기라도 하면 온집안 사돈의 팔촌까지 총출동해 마중을 나왔다. 베트남인들의 가족사랑이 진한 것도 있지만 워낙 먹고 살기가 힘든 때여서 외국에서 먼 친척이라도 들어오면 마중나가 반기며 뭔가 떨어지는 것이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에서 나온 행동이라 나는 판단했다.
그 당시 호치민시티에서 만난 한국인 사업가들은 꽤나 사업에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워낙 변변한 가게도 없어 뭔가를 열면 장사가 잘 된다고 말했다. 당시 호치민 시티를 돌아보면서 나의 어린시절 1960년대가 연상됐다. 그래도 베트남인들의 가식없는 웃음은 좋은 인상으로 남았다. 그러다가 2017년 다시 호치민시티를 찾았다. 이번에는 뭔가 베트남에서 할 일을 찾아 보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 공항이 그야말로 상전벽해이다. 떤서녓 국제공항은 정말 국제공항답게 변해 있었다. 달라져도 참으로 놀랄 만큼 변해 있었다. 그곳에서 한국인 사업가들을 몇명 만났다. 근황을 물어봤다. 그들의 말은 지금 한국인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다.중국에서 발을 뺀 한국의 대기업들의 베트남행이 그야말로 봇물터진 듯 하다는 것이다. 그들의 입에서 조금 놀라운 소리가 들려 왔다. 베트남 사람들이 많이 변했다는 것이다. 경제성장이 빨라질수록 베트남인들의 성향도 급변하고 있다는 놀라운 소리였다. 이제 베트남에서 장사해 먹고 살기가 쉽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베트남인들이 돈을 버는 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의 사업영역에 베트남인들이 조금씩 들어오더니 이제는 왠만한 중소사업에 현지인들의 진출이 급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또한 한국인들이 급등하는 베트남 부동산 시장에 돈을 싸들고 들어온다는 말도 들었다. 한국인들의 과잉투자로 아파트값이 두세 세배로 뛴다는 말도 들었다.
그로부터 일년후 뭔가 본격적으로 베트남에서 할 일을 찾기 위해 2018년 다시 호치민시티를 찾았다. 이제 몇달동안 베트남에서 머물며 그곳의 문화와 독특함 등을 보고 판단하고 나 나름대로 정리도 할 생각이었다. 일년전 보다 더욱 달라져 있었다. 한국전쟁후 몇십년후 한국을 찾은 참전 외국인들이 한국의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외국인들은 한국의 발전상이 놀랍다 하지만 국민들의 모습도 많이 변한 것 같다, 다시말해 경제 성장이 급속도로 이뤄지면서 한국의 소박하지만 진실된 인상이 부정적으로 바뀌어져 있다는 말이 바로 베트남인들에게 그대로 적용되고 있었다. 베트남인들은 이제 과거의 베트남인들이 아니다. 외국 기업들이 마구 들어와 주체를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버렸다. 한국 기업들 그리고 한국의 자본이 베트남 곳곳에 넘쳐나고 있었다. 호치민시티의 주요 아파트들의 실소유자가 한국인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호치민시티나 하노이에 아파트 쇼핑가자는 말이 유행어가 되어 있었다.
그때 만난 베트남인들의 모습은 예전 처음 베트남에 갔을때 모습과 많이 달라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몇달 살아보니 그들의 문화와 베트남인들의 독특한 민족성을 제대로 알 수가 있었다. 한국인들의 사업체에는 명절이 끝나면 종업원 채용이 아주 골치아픈 일이 되고 있었다. 고향으로 간 뒤 돌아오지 않거나 조금 더 월급을 준다고 하면 뒤도 안보고 사라져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었다. 그리고 한국인들이 하는 사업에 베트남인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이제 한국인들의 전성시대는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한국 대기업들의 베트남행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축구를 업그레이드시켜 베트남인들 사이에 한국이 꽤나 인기가 있는 듯이 보였다. 베트남인들의 축구사랑은 축구자체보다 그 뒤에 걸린 도박과 관련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베트남인들의 도박성은 아마도 세계 최고일 것이다. 거리에 복권 장사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길을 걸으면 수없이 다가오는 복권장사 여성을 만날 수 있었다. 한국인들은 이미 베트남인들에는 봉이 되어 있었다. 한국인들은 돈이 많으니 바가지를 씌워도 되는 나라 사람들이다라는 인식이 베트남인들게 각인이 된 듯 보였다. 또한 한국은 베트남에 빚이 있다, 다시말해 베트남전에서 자신의 나라 사람들을 많이 죽였으니 우리가 한국인에게 복수하듯이 바가지를 씌우는 것이 하등에 죄책감이 들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깊게 남겨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국인이 가게 계약을 맺겠다고 하면 임대료가 갑자기 두배 세배로 뛰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일어나는 상황이었다. 가게를 열더라도 바로 옆에 같은 종목의 가게를 연 뒤 상품 가격을 반으로 내려 버리니 어찌 장사를 하겠는가. 베트남인들의 똘똘 뭉친 민족주의때문에 장사를 거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몇달 머물면서 베트남인들에 대한 그동안 나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다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지금 베트남에서 한국 대기업들과 사업가들이 슬슬 짐을 싸고 떠날 준비를 서두른다는 소식이다.솔직히 2018년 이후 베트남에 대해 관심도 없었고 관심을 가지기도 싫어 베트남 관련 뉴스에 신경을 안썼다. 하지만 쉴새없이 나오는 소리에 귀를 닫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4년동안 한국과 베트남관계가 많이 틀어졌구나 여겨졌다. 특히 코로나 사태때 베트남 정부의 봉쇄 정책으로 대기업들이 엄청난 어려움에 처했고 베트남 정부의 이중성에 배신감도 많이 들었을 것이라고 판단됐다. 하지만 되돌려 생각해 보면 한국인은 베트남인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예전에도 베트남인들은 그랬는데 그냥 그들의 웃음짓는 모습만으로 그들을 평가했기에 이런 결과가 도출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중국의 오랜 속국생활을 하면서 그들의 dna에 스며든 배금주의 사상과 자신들의 이득앞에는 다른 것은 생각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단기적 사고방식을 한국인들은 전혀 몰랐던 것이다. 물론 베트남인들가운데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공산주의 체제하에 자신의 민족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현지 언론도 당연히 없다. 배웠다는 학자들도 입을 꾹 다물고 있다. 괜히 나서서 한말 했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데 누가 감히 그런 지적을 할 것인가. 또한 베트남 공무원들의 그 무시무시한 삥땅주의 그것을 어떻게 지적하고 발설하겠는가. 그냥 모르면 당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베트남인들을 무작정 욕만 할 수가 없다. 그런 민족성을 미처 파악하지 못한 사람들의 잘못이 더욱 크다. 무작정 임금이 싸다고 밀물같이 밀려 들어갔다가 아이구 이게 아니구나 여기면서 낭패를 본 사람들이 더욱 문제가 있지 않겠는가 생각이 든다. 태국 캄보디아 등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데 베트남관광이 싸다고 너도나도 몰려간 사람들이 문제지 그곳에서 돈많다고 소문난 한국인에게 바가지 씌운 베트남인들만 욕할 일은 아니다. 유흥업소에서 돈자랑에 미친 한국인이 문제지 그돈을 받은 베트남 아가씨가 문제는 아닌 것 아닌가. 베트남에서 철수할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상대를 전혀 모르면 당할 수밖에 없는 당연한 진리를 이제서 알아차린 것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박항서 감독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승리하면 박항서를 외치지만 한번 패배하면 감독교체설을 강하게 주장하는 그런 사람들이다. 사람자체를 아끼고 위하는 것이 아니고 성과물에 환호하고 사랑하는 그런 민족인 것이다. 지금이 그런 것이 아니고 원래 그런 것이었는데 이제서야 우리는 알게 된 것이다. 이제 베트남에서 철수해 인도나 태국 그리고 인도네시아로 거처를 옮기더라도 제대로 그곳의 민족성 그리고 역사 문화를 잘 파악하지 않으면 또 당하고 만다. 영리하지 않으면 이제 뒤통수 얻어맞기 십상이다. 뒤통수를 때리는 놈보다 뒤통수를 허술하게 놔둔 놈이 더 어리석은 것 아닌가.
2022년 6월 12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