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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예배 | 강신규 목사] 열왕기상 8장 1-11절 | 2024. 4. 18
https://www.youtube.com/live/jaqZMxACL1A?si=u99XyxXSR01XbVVo
언약궤를 옮기는 솔로몬 8:1~5
1 이에 솔로몬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윗성 곧 시온에서 메어 올리고자 하여 이스라엘 장로와 모든 지파의 우두머리 곧 이스라엘 자손의 족장들을 예루살렘에 있는 자기에게로 소집하니
2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다 에다님월 곧 일곱째 달 절기에 솔로몬왕에게 모이고
3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이르매 제사장들이 궤를 메니라
4 여호와의 궤와 회막과 성막 안의 모든 거룩한 기구들을 메고 올라가되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그것들을 메고 올라가매
5 솔로몬왕과 그 앞에 모인 이스라엘 회중이 그와 함께 그 궤 앞에 있어 양과 소로 제사를 지냈으니 그 수가 많아 기록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었더라
언약궤를 성전에 안치함 8:6~11
6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그 처소로 메어 들였으니 곧 성전의 내소인 지성소 그룹들의 날개 아래라
7 그룹들이 그 궤 처소 위에서 날개를 펴서 궤와 그 채를 덮었는데
8 채가 길므로 채 끝이 내소 앞 성소에서 보이나 밖에서는 보이지 아니하며 그 채는 오늘까지 그곳에 있으며
9 그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것도 없으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여호와께서 저희와 언약을 맺으실 때에 모세가 호렙에서 그 안에 넣은 것이더라
10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하매
11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함이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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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솔로몬은 다윗성에 있는 언약궤를 성전의 지성소로 메어 올리게 합니다. 제사장들이 언약궤와 회막, 성막 안의 모든 기구를 메고 성전에 올라가니 솔로몬과 회중이 수많은 양과 소로 제사를 지냅니다. 두 돌판이 든 언약궤를 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여놓고 나올 때, 하나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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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궤를 옮기는 솔로몬 8:1~5
성전이 완공되기 전에 언약궤는 다윗성에 안치되어 있었습니다(삼하 6:1~17). 솔로몬은 예루살렘 성전을 완공한 다음 해 일곱째 달 절기 곧 초막절에 언약궤를 옮깁니다. 초막절은 광야 생활 중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모세 때 만든 언약궤를 새 성전에 두는 것은 성전이 성막(회막)을 계승한다는 의미입니다. 제사장들은 규례대로 언약궤와 성막과 성막의 기구들을 어깨에 메고 행진하며, 솔로몬과 백성은 언약궤 앞에서 많은 양과 소로 제사를 드립니다. 이는 다윗 시대에 언약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옮겼을 때 제사드렸던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삼하 6:13).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인 다윗처럼, 솔로몬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 더 깊은 묵상
솔로몬이 언약궤를 성전으로 옮긴 때는 어느 절기였나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나는 주로 어떤 준비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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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궤를 성전에 안치함 8:6~11
성전에서 가장 중요한 물건은 ‘언약궤’입니다. 언약궤의 위치는 지성소 안 그룹들의 날개 아래입니다. 지성소의 언약궤를 성소에서 바라보면 언약궤와 운반용 채는 그룹의 날개에 덮여 보이지 않고, 채 끝부분만 보입니다(7~8절). 언약궤 안에는 두 돌판만 들었는데, 그 돌판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주신 언약의 징표입니다. 언약의 징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 관계가 여전히 유효함을 의미합니다.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오자 구름이 성전에 가득합니다. 이는 모세 시대에 성막을 완공했을 때 구름이 덮이고 하나님 영광으로 가득했던 것과 동일합니다(출 40:34~35). 성전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과 함께하시는 분입니다.
● 더 깊은 묵상
제사장이 언약궤를 지성소에 안치하고 나오자 어떤 일이 일어났나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심을 확신하는 징표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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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차이를 뛰어넘는 가치
달라진 시대상과 세대 차이를 풍자하는 그림을 본 적이 있습니다. 1980년대 그림에는 두툼하고 무거운 컴퓨터 앞에 홀쭉한 사람이 앉아 있는 모습을, 2010년 그림에는 얇고 가벼운 노트북을 뚱뚱한 사람이 두드리는 모습을 화가가 표현했습니다. 예전 아이들은 종일 밖에 나가 뛰어놀았는데, 요즘 아이들은 집에서 전자 기기를 가지고 노느라 놀이터에도 잘 가지 않습니다. 손수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살던 시대에는 땀 흘려 밭을 갈면서 저절로 운동이 되었는데, 여러 면에서 풍족하고 편리해진 지금은 과식에 운동 부족으로 성인병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시대가 달라지며 발달한 문명은 많은 좋은 것을 선물해 주었지만, 그 편리함이 삶을 나아지게 하지 못한 경우도 많습니다.
요즘은 성경을 가지고 다니며 읽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예배를 드리러 직접 현장에 가지 않고 온라인 예배로 대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결국 우리는 시대 차이가 건드릴 수 없는 본질에 집중해야 합니다. 즉 어느 시대든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하나님 말씀을 우리 마음 중심에 두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늘 묵상하며, 삶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최신 스마트폰이 주는 즐거움과 편리함에 도취되지 말고, 불편하지만 깊은 묵상의 길로 묵묵히 나아가며 신앙의 본질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 왕대일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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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열왕기상 8장 9, 11절
솔로몬은 최상의 재료로 성전을 지었습니다. 사람들 눈에는 성전의 거대한 규모, 화려한 장식, 값비싼 기물 등이 크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전을 성전 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와 그분의 말씀, 그리고 말씀에 순종하는 하나님 백성의 삶입니다. 사람이 손으로 지은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로만 성전을 이해하면 안 됩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는 성도가 곧 성전입니다.
존귀와 영광의 자리를 주님께 드리고 우리는 지극히 비천한 자리를 취할 때 우리 삶이 귀하고 아름답게 된다. - 앤드루 머리
오늘의 기도
하나님! 성전이 완공되자 가장 먼저 언약궤를 그곳에 들여놓는 솔로몬을 보며, 성전의 아름다움은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에 있음을 깨닫습니다. 화려함으로 치장하는 것에 목적을 두지 않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인생 되기를 소망하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209 이 세상 풍파 심하고)
하나님은 주님의 성전 주님의 영광으로 가득 채워 주신 하나님입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주님의 성전이 되는 우리 마음 안에 주님의 말씀과 규율이 자리하고, 그 말씀을 따라 거룩하고 정결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는 그분을 믿고, 그분만을 의지하면서 매일매일 성실히 살아가도록 하자
우리를 지켜 주시고,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그분을 따라 담대하게 발걸음을 옮겨 나갈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도록 하자
4/17일 전도
이스라엘은 언약궤를 무지하게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그것을 성전 가장 깊은 지성소에 두고, 오직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한 차례 들어간 것입니다. 거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건이라기보다 거룩한 성물입니다. 하지만 흔히들 잘못 생각하는 것처럼 돌 판에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을 가시적으로 보여준 증거물에 불과합니다.믿음이 약한 사람들이나 보이는 것을 믿는 속물들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임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어떤 것도 그분의 형상을 대체할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바로 그것들을 성취한 영웅들의 이야기입니다. 노아, 아브라함, 야곱, 요셉과 모세, 하다못해 여리고성 기생 라합도 있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기드온, 다윗, 사무엘, 수많은 선지자들 삼손과 입다까지 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솔로몬은 보이지 않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어려운 가운데 믿고, 믿을 수 없는 가운데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혜로 그 믿음을 대치해 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경의 솔로몬의 기사에서 믿음으로 살았다는 기록이 없는 것이 그것을 말해 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보관 되었던 언약궤는 남 왕국 유다의 가장 악독한 왕 므낫세 때 아세라 목상과 바꿔치기 당하는 운명을 맞습니다. 그 후 요시야 왕 때 겨우 원상복귀 됩니다. 하지만 B.C. 586년 성전이 파괴되면서 언약궤는 그 이후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립니다. 오늘날 보이지 않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믿음입니다. 돌 판을 믿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것은 사라질 수 없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은 영원합니다. 만약 히브리서 11장이 계속 쓰인다면 우리들의 이름도 거기 있을 것입니다. 우리도 그들처럼 믿기 때문입니다.
(왕상 8:1~11절)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
❚ 하나님의 임재를 기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어야 합니다.
✔ 값진 인생은 어떤 삶입니까?
➲ 하나님을 중심으로 세워진 삶입니다(1~5절).
솔로몬은 성전 건축을 마친 후에 언약궤를 성전으로 메어 올리기 위해 이스라엘의 대표들을 예루살렘으로 소집합니다. 초막절, 장막절 절기가 있는 에다님월(7월)에 이스라엘의 대표인 왕과 장로와 모든 지파의 족장들이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그러자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새로 건축한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3절). 과거 웃사가 수레에 실은 궤가 소가 뛰므로 궤를 붙잡았다가 죽은 일(삼하 6:3~7)이 있은 후로 하나님의 궤는 소의 수레에 싣지 않고 반드시 제사장들이 직접 메었습니다. 그리고 성막에 있었던 거룩한 기구들은 레위인이 메고 올라가고, 그 행렬 앞에서는 솔로몬 왕과 이스라엘 회중이 셀 수도 없는 많은 양과 소로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렸습니다(4~5절).
하나님을 내 자신의 삶에 중심에 두고, 하나님을 가장 기뻐하는 것이 나의 삶의 목적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나아가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의와 뜻을 이루며 살아가길 간절히 원합니다. 나 한 사람의 올바른 신앙관은 결국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도 동일한 영향력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마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힘을 합하고, ‘하나같이’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기쁨을 나누는 공동체로 만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 ‘홀로 믿음’의 열기를 오래가기가 힘들지만, ‘다함께’ 믿음은 오래가며 결코 쓰러지지 않는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내 자신 뿐만 아니라 우리의 공동체가 하나님을 중심으로 세워져 한마음으로 예배하고, 섬기는 공동체로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진 삶입니다(6~9절).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성전 내실 지성소 안, 그룹들의 날개 아래에 가져다가 놓았습니다(6절). 그룹은 성전을 지을 때 감람나무로 만들었습니다(6:23~28). ‘그룹을 타고 다니심이여 바람 날개를 타고 높이 솟아오르셨도다...’(시 18:10)라는 찬양에 나타나듯이 그룹은 하나님의 임재와 자유로운 이동을 상징합니다. 즉, 성전이라는 건물에 안주하지 않고 어디든지 자유롭게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날개 달린 그룹의 이미지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언약궤를 메고 옮길 때 두 개의 채를 사용하였습니다. 언약궤를 지성소에 안치한 후에 그 채를 궤와 함께 두었습니다(8절). 궤 속에는 호렙에서 모세가 넣어 둔 두 개의 돌판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9절).
하나님의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하나님의 말씀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 두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매 주일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행위 그 자체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내 자신의 일상 생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지키며 살아가는 것 역시나 중요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형식적인 종교 생활이 아닌 참된 신앙생활을 위하여 말씀을 깊이 읽고 상고하여 말씀에서 나오는 삶의 원리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하게 채워 말씀대로 움직이며 말씀을 실천함으로 신앙의 근육을 날마다 키워 나아가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삶입니다(10~11절).
제사장이 성소에서 모든 제사 의식을 마치고 나올 때 구름이 성전에 가득하였습니다.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가시적으로 나타내는 것으로 시내 산과 출애굽의 여정에서 하나님께서 나타나실 때에는 항상 구름이 그분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영광이 주님의 성전을 가득 채워서 구름이 자욱하였으므로 제사장들은 서서 일을 볼 수가 없었고, 온 백성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체험하고 그분을 경외하였습니다.
오늘날에는 보혜사 성령께서 내 안에 내재하셔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하십니다. 무소 부재하신 성령께서 내 안에 내주하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 된 내 자신은 두려움으로 몸과 마음을 성결케 하여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늘 체험하며 살아가는 삶이어야 합니다.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갈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진리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비추는 거울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로 살아가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눈 앞에 펼쳐진 말씀으로 삶을 바로잡고, 새롭게 하고 인도함을 받을 수 있도록 늘 깨어 있는 삶을 살아갈 뿐만 아니라 말씀 속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며, 그 친밀한 교제를 통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값진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왕상 8:1~11절)...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6-9절 자기 백성과 언약을 통해 관계를 맺으십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그 백성이 된다는 언약의 증거입니다. 이 언약궤가 하나님의 성전에, 이스라엘 가운데 있음으로, 그들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 수 있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신들이 누구인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정체성이 이스라엘의 근본이고 존재의 목적입니다. 하나님 없이 나 혼자만으로는 존재의 이유와 삶의 목적을 궁극적으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누구신가?” 또 “그 앞에 있는 우리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이 우리의 정체성을 제대로 일깨워줄 수 있습니다. 나를 제대로 알기 위해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정립해야 합니다.
10-11절 언약을 맺은 백성과 기꺼이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궤를 지성소로 옮긴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했으며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고 계심을 성전에 가득한 구름으로 알려주셨습니다. 이는 마치 출애굽 후 광야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회막을 완공했을 때 구름이 그 위에 덮이고 하나님의 영광이 그 안에 충만했던 모습과 같습니다(출 40:34,35). 이 장면에서 자기 백성과 함께하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성전 된 우리 가운데 거하심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처럼,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삶을 삽시다.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1-5절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성전 앞에 모일 공간이 없지만,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언약궤를 옮기는 일에 동참했다는 것은, 온 백성이 ‘한마음’으로 그 일에 동참했고, ‘하나같이’ 기뻐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누구의 일이 아닌, 공동체 모두의 일이고 기쁨입니다. 내가 직접 관여하는 일이 아니라서 공동체의 일에 무심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일에 수고하는 이들과 함께 같은 마음으로 기쁘게 협력한다면, 우리 공동체는 성전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기도
공동체-저희 가운데 거하심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저희도 기쁨으로 모시며 살게 하소서.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0,11절 언약궤가 지성소에 안치되자 구름이 성전을 가득 채웁니다. 제사장들이 서 있을 수 없을 만큼 하나님의 영광이 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짙은 구름을 가리켜 빛나는 광채, 곧 “영광”이라 이름합니다. 이 구름이 우리의 닫힌 시야를 열어 주를 바라보게 하리라는 약속의 징표이기 때문입니다. 시야를 가린 캄캄함도, 앞날의 암담함도, 주와 함께라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2절 칠월 절기인 장막절은 한 해의 수확에 감사하고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이고, 매 7년마다 율법이 온 회중에게 낭독되는 절기입니다(신 31장 9~13절). 솔로몬은 언약궤 안치와 성전 봉헌을 이 시기에 맞춤으로써 출애굽의 완성과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알리고, 이스라엘을 ‘건물’이 아닌 말씀(언약) 중심의 공동체로 세우려 했을 것입니다. 예배와 삶의 중심에 말씀이 있습니까? 오늘도 두려움 없이 살아갈 이유를 말씀 속에서 찾고 있습니까?
1~5절 왕에서 백성에 이르기까지 온 이스라엘이 언약궤를 지성소에 안치하는 일에 참여합니다. 하나님을 공동체와 삶의 중심에 모시는 일에 지파와 신분, 출신과 계층의 구분 없이 한마음이고, 한뜻입니다. 서로 현재와 살아온 과거의 내력은 다를지라도, 주 안에서 일치와 화목을 이룬 모습입니다. 주 안에서 우리의 다름은 갈등이 아니라 풍성한 교제의 밑거름이 됩니다.
6~9절 성전 건물이 완공되자 솔로몬은 언약궤를 성전 내 지성소에 정성 들여 모십니다. 언약궤가 없는 성전은 빈껍데기일 뿐이고 이방의 신전과 다름없습니다. 지성소에 안치된 언약궤(“두 돌판”)는 하나님과 그 백성이 맺은 언약의 증표요, 하나님의 통치 원리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는 언약이 없고, 말씀에 순종함이 없이는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이나 하나님과의 사귐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가르치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는 삶이 있을 때, 하나님은 사람이 많든 적든, 건물이 있든 없든 그곳에 임재하실 것입니다.
기도
공동체-삶의 순간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을 기억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