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K]실시간 검색어 이슈!! BBK 사건 총정리

[BBK사건이란?]
피해자 5200여명에 달하고 그 피해액이 600억에 달하는 대형 금융 사기 사건으로
일간에선 피해를 본 사람들 중에 자살을 시도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이렇듯 이 BBK 사건은 희대의 경제사기 사건이고 파렴치한 범죄 행위다.

[이명박 대통령이 연관된 이유?]
▲ 이명박과 김경준이 공동 설립한 LKe뱅크의 사무실과 BBK가 같은 사무실을 쓴다는 점
▲ 이명박의 친형 이상은이 운영하는 다스가 BBK에 190억을 투자했다는 점
▲ 중앙일보 2000년 10월 16일 이명박 인터뷰 기사 "(내가) LKe뱅크와 자산관리회사인 BBK를 창업했다..."

▲ 2000년 6월 24일 = 하나은행과 LKe뱅크 투자계약
[BBK사건일지]
제 1 기 = BBK가 설립된 1999년을 포함하여 이명박씨가 LKE 및 EBK의 대표이사를
사임하고 표면적으로 김경준씨와 결별을 선언한 2001년 4월 18일까지
제 2 기 = 2001년 4월 18일 이후부터 (주)다스가 김경준씨를 사기 및 횡령 혐의로
고발한 2003년 1월 이전
제 3 기 = 2003년 1월부터 (주)다스가 옵셔널벤쳐스 대표였던 김경준씨를 상대로
한 140억 원 투자금 반환 청구 소송에 대해 미 LA카운터 수퍼리올코트
(1심법원)이 기각 판결을 내린 2007년 8월 20일까지
제 4 기 = 2007년 8월 20일 이후부터 현재까지

▲ 2000년 10월 15일 = 이명박, 동아일보와 인터뷰

▲ 2000년 3월 28일 = 이명박, 월간중앙(3월호)과 인터뷰

▲ 2000년 11월 11일 = MBC 경제매거진의 박영선 당시 MBC기자가 이명박을 인터뷰한 내용 방송
[BBK라는 회사의 의미?]
Bank of Bahrain, Kuwait 의 약자를 따서 만든 거라는데요..
다른 측면에서는..
BBK는 B(김경준의 단짝 친구인 오영석의 영어 이름 Bob), B(김경준의 처 이보라의 Bora) K(김경준의 Kyungjoon)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BBK 3인방이 BBK 설립당시 이사였다.

▲ 2001년 11월 2일 = 이명박, 김경준에 서신(전영호씨의 서한과 심텍의 가압류신청에 의한 듯)

▲ 2000년 11월 12일 = 이명박, 일요신문과 '가까이서 멀리서 뉴스메이커'
<인터넷에서 다시 '첫삽' 뜹니다> 제하의 인터뷰

▲ 2001년 2월 28일 = BBK계좌에서 이명박 개인계좌로 50억원 지불
[실시간 검색어에 BBK가 뜨는 이유?]
이병박 대통령이 당선되는 시기와 맞물렸던 지난 'BBK특검' 당시 검찰에서 회유와 협박을 당했다는 김경준 씨의 옥중 메모를 보도한 한 언론사에게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2심 판결이 나왔습니다.
서울고등법원은 당시 BBK 특검 수사팀이었던 최재경 법무연수원 부원장 등 수사팀 10명이 허위 보도로 명예 훼손을 당했다며 주간지 시사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1심을 뒤엎고 시사인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재판부는 검사 등의 수사과정 직무 집행은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자필 메모와 육성 녹음이 있다는 보도 내용에 허위성을 인정할 만한 사유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앞서 지난 2007년 시사인은 "이명박 후보에게 유리한 진술을 하면 형량을 줄여주겠다"며 검찰의 협박을 받았다는 김경준 씨의 자필 메모를 보도했고, 당시 수사팀 10명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는 3,600만 원의 배상 판결을 받았습니다

[법원의 판결문]
- 당시 대선을 앞두고 BBK문제에 대한 관심이 사회적으로 높았고, 기사는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검사가 회유를 하려 했다는 증거를 밝혔다. 공공적인 관심이 높은 사안에 대해서는 명예훼손 책임을 엄격히 따져야 한다.
- 국가기관 수사가 적법하게 이루어지는지 여부는 공적인 감시와 비판 대상이므로 수사 진행과정에서 김경준을 회유했는지 의혹을 제기한 기사는 적법하다.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이 아닌 한 언론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
- 기자가 직접 관련자를 만나 김경준이 작성한 자필 종이와 육성 녹음을 건네받고 인용해 작성한 것으로 명예 훼손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 증거물 존재 자체를 보도한 것은 허위사실 공표라고 보기 어렵다. 또한 증거물의 사후조작 증거가 없고, 메모도 검찰청사 내에서 작성됐으며, 녹음 테입도 마찬가지로 검찰청사 내에서 가족과 통화한 부분이다. 객관적 사실 보도로 명예훼손이라고 보기 어렵다.
- 따라서 원고의 손해배상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동일 이명박측, BBK투자자문(주) 김경준에게 심텍 가압류 사건 관련 문서 전달>
[BBK논란의 시작]
정치에 입문한 1993년부터 그는 불성실한 재산공개로 비난을 받았다.
1996년에 이명박은 총선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는데, 선거비용을 속이고 증인을 해외로 도피시켰음이 밝혀져 선거법 위반으로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의원직을 상실하기 직전에 의원직에서 사퇴하였다.
그가 서울시장에 재직하던 당시에도 여러가지 의혹과 비판이 제기되었다.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이명박 공짜 테니스 의혹 사건 이 있으며, 그가 추진했던 청계천 복원사업, 대중교통 개편은 많은 호응을 받았고 세계적인 모델이 되었으나 재정지출의 증가로 인한 비판도 일각에서 일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에 대한 주요한 비판은 그가 2007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이후에 나타났다.
한나라당 경선 상대였던 박근혜와 대통합민주신당 등 경쟁 정당들이 뉴타운 의혹, 위장전입, 자녀 위장취업을 통한 탈세 , 소유 빌딩 지하업소의 성매매등 여러 의혹을 제기하였고 그중 일부는 사실로 확인되었으며, BBK 주가 조작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은 그의 대선 행보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로까지 거론되기도 하였다.
BBK 주가 조작 사건은 사건의 당사자인 김경준이 선거에 즈음하여 귀국함에 따라 이에 대한 검찰수사가 대선의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김경준이 귀국하며 가져온 이면계약서등 이명박이 BBK와 관련되었다는 증거로 제출되었으나 검찰의 수사결과 이것은 위조된 것이고 이명박이 연루되었다는 증거가 없어 무혐의로 밝혀졌다.
하지만 정치권의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았고 정동영을 비롯한 당시 대선후보들과 대통합민주신당등의 주장을 이명박이 받아들여 BBK사건 뿐만아니라 차명재산, 서울시장 시절의 특혜의혹등에 대한 이명박 특검법이 입안되어 특별검사의 조사가 이뤄졌다.
2008년 2월 21일 발표된 특검의 수사결과 이명박에 대한 모든 의혹은 무혐의로 밝혀지면서 BBK와 특혜의혹등은 일단락되었다.

[BBK사건을 이해하기 어려운 분을 위한 간단한 비유]

동영상 플레이 : http://serviceapi.nmv.naver.com/flash/NFPlayer.swf?vid=599B89A0A10E122375BBACB9DC3074B7360C&outKey=V1252fa60fba4cc48d91962ee1b296cddb4ec545e5260b86fd57462ee1b296cddb4ec
첫댓글 아이고 두야.......
언젠간 반드시 멩박인 bbk에의해 덜미가 잡힐거여
지금이야 서슬이 퍼런 째진 눈깔을 겁내는 이들로 무사하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