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의 연속인 삶

[덕유]

                    후회의 연속인 삶

                                                                  한옥자

여러 날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 잡념 하나가 있다. 마치 손에

잡았던 물고기를 놓치고 난 후처럼 허망한 마음이다. 가슴속에는

빈 구멍 하나가 새로 생겼고 도무지 일에 의욕도 나지 않는다.

사실 놓쳐버린 물고기는 처음부터 그리 욕심나는 일은 아니었

다. 내가 갖기엔 부족하고 남 주기엔 아까운 일이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숨차게 일하는 시간이 내가 살아

숨쉬고 있다는 확인이고 일에 빠져 있으면 시간가는 것도 딴 생

각을 하는 것도 모두 잊어버려 꼭 낙찰 받아보려던 일이었다.

사람마다 타고나는 여러 가지 복이 있다는데 그 중에 나는 복중

에 복인 일복을 확실하게 타고난 것 같다. 정신 없이 일에 몰두

하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신명이 나고 하루가 어찌 지나가는 줄

모르는 것이 그 이유이다. 하지만 가끔은 내가 일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나를 일이 부리는지 회의가 들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일

을 미루고 보고 싶었던 책을 보려한다든지 나직이 음악소리에 빠

져들려 애를 써 보지만 미룬 일이 마음에 걸려 책도 음악도 빙빙

겉돌아 차라리 일을 하는 것이 훨씬 홀가분하다. 모처럼의 여유

가 휴식이라기보다는 왠지 불안하고 곤혹스럽기 짝이 없으니 일

을 하며 빈곤하게 즐기는 글 한 편, 음악 한 곡이 내게 맞는 최

상의 호사임에 틀림없다. 만약 나에게 누군가가 일을 그만두라고

하면 그는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

다.

입찰 참가 안내 공문서를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하는

일이 겨울철은 비수기인 업종이라 공연히 좀이 쑤시고 무력감에

나태해져 있던 참이었다. 교육청 발주 인 제한 경쟁에 의한 최저

가 총액 입찰 건인지라 자료를 받아들고 고심을 했다. 혹시라도

물량산출을 잘못하는 것은 아닐까? 계산에 실수가 있으면 하나

마나한 일인데? 아니 오히려 보태주는 길이 될 수도 있다! 노심

초사 설계도면을 보고 또 보며 여러 번 반복하여 원가 산출을 해

보았다. 그리고 투찰 당일 다른 입찰 참가자들의 눈치를 살피며

이미 마음먹은 최저가의 입찰참가금액을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이

리저리 다시 재보았다. 하나 전날 밤 염두에 두었던 금액으로는

아무래도 속 빈 강정 같은 실속 없는 짓을 또 하는 것만 같았다.

슬그머니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고개를 들었다. 돈

앞에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더군다나 이윤추구는

경제활동의 기본사항인데 남지 않는 일은 해서 뭣하나.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데 대충 값싼 자재로 공사를 해주면 되

겠지! 이런 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대니 욕심은 풍선처

럼 부풀어 조바심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전년에도 십 수 개의 학교 창호공사를 하느라 마음고생 몸 고생

만 진탕 한 적이 있다. 소리만 요란했지 공사 후 결산을 하여보

니 겨우 직원들 인건비와 세금정도 건진 폭이었다. 옛 말에 노인

이 일찍 죽고 싶다는 말과 처녀가 시집가기 싶다는 말, 장사꾼이

남지 않고 물건 판다는 말은 삼 대 거짓말이라고 하였다. 그러니

실컷 일하고 이익이 남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누가 그 말을 믿겠

는가.

그 때의 허탈한 마음이 떠올라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욕심을

냈다. ‘오 백 만원만 더 써내자.' 입찰 마감시간에 임박하여 투찰

을 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꼭 오백 만원 차이였다. 차라리 더

큰 액수 차이였다면 쓴웃음 한 번 웃고 그대로 잊었을 것을 쥐꼬

리만한 욕심으로 입찰에서 떨어진 심정은 참담했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물질과의 단절을 의미하는데 아직 매순간

마다 선택해야만 하는 물욕의 유혹에서 벗어날 자신이 없다. 비

록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이 불합리할지라도 작은 틈바구니라도

비집고 들어가 나의 실익을 추구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밤새 잠을 설치며 내 스스로에게 ‘욕심을 버려야 한다.’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수없이 나 자신에게 되 뇌였으면서 도 예정 가

삼 억 원에 가까운 공사를 겨우 오십 퍼센트인 일 억 오 천 만원

에 한다고 써내야 낙찰 받는 현실을 잠시 잊은 내 자신이 참으로

한심하다. 수삼일 들인 공이 수포로 돌아감은 제쳐 두고라도 터

무니없는 금액에 부실 공사를 자초하는 최저가 입찰제라는 입찰

제도에도 은근히 부아가 솟고 언제인가 모르고 씹었던 소태나무

의 뒷맛처럼 오래도록 고약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작년 새로 지은 초등학교의 창호공사를 해 준 적이 있다. 그 때

도 사정은 지금과 비슷해 공사를 낙찰 받고 보니 최소한의 원가

절감이 절박한 상황이었다. 초현대식으로 설계한 건물이라 어느

것 하나 소홀함 없이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내 학창 시절의 추

억 어린 교실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삐꺽거리던 마루바닥과

칙칙하고 암울한 잔재가 남아있는 듯한 일본식 건물, 여닫을 적

마다 모서리가 문틀에 걸리던 나무창문과 전기불도 들어오지 않

던 누렇게 빛 바랜 페인트 벽. 일류 호텔처럼 밝고 무지개 빛 감

도는 새 학교에 추억 속의 학교가 겹쳐져 만감이 교차했다.

순진무구 하던 반 친구들, 지금은 기억에도 희미한 담임 선생님.

추억은 앙금처럼 가라앉고 그리움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이 학교를 다닐 아이들에게 이곳은 추억의 산실이라는 생각이 거

칠게 나를 감쌌다. 질이 낮은 부속을 썼다가 혹시 어린 녀석들이

문을 여 닫을 때 불편하면 어쩌나, 창문이 떨어지거나 하여 유리

라도 깨지면 아이들이 다칠 수 도 있는데 라는 노파심도 꼬리를

물었다.

역지사지라고 아이를 키우는 어미의 마음이 되고 보니 날림공사

로 실속을 챙기겠다는 생각은 차마 엄두도 내지 못했었다. 공사

내역에도 없는 창문 손잡이까지 아이들 키에 맞춰 달아 주고 건

물의 꽃과 같은 창이 완성되었다. 내 가슴속은 앙증맞은 어린 영

흔들의 모습이 파고들었다. 햇빛 한 조각 말간 유리창을 통해 어

린 품에 안겨 들어 꿈을 잃지 않는 사람을 키우는 학교가 될 것

이라는 희망이 내게 남았다.

누구나 자기가 하는 일에 애환은 있게 마련이다. 일을 하다보면

원치 않는 난적을 만나 벅차기도 하고 마음을 다칠 때도 있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 자기 일을 사랑하며 최선을 다하려는 마음만

잃지 않는다면 진정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라 믿고 싶다.

마음가는 대로 진심을 다하다 보면 무엇과도 바꾸지 못하는 성취

감이 사는 보람이라는 이익으로 남는 것 같다.

어제 세 번의 실패 후에 공사 한 건을 수주했다. 앞으로 일을

마무리 할 것을 생각하니 착잡한 심정은 낙오했을 때와 별반 다

르지 않다. 하지만 실익 없는 일을 해도, 하지 않아도 후회할 것

이 불 보듯 환해도 나는 하고 후회하는 쪽을 택하고 싶다.

 2002 12집

[명월]

누구나 자기가 하는 일에 애환은 있게 마련이다. 일을 하다보면 원치 않는 난적을 만나 벅차기도 하고 마음을 다칠 때도 있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 자기 일을 사랑하며 최선을 다하려는 마음만 잃지 않는다면 진정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라 믿고 싶다.

[둥실이(강지화)]

실익 없는 일을 해도, 하지 않아도 후회할 것

이 불 보듯 환해도 나는 하고 후회하는 쪽을 택하고 싶다.

[이현자]

마음가는 대로 진심을 다하다 보면 무엇과도 바꾸지 못하는 성취
감이 사는 보람이라는 이익으로 남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