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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귀검신(弓鬼劍神)제24장 서전(緖戰)-1
세가를 돌며 방어 준비를 살펴보던 남궁검과 남궁우가 막 연무장을 지날 때
허겁지겁 뛰어오는 수하가 있었다.
"가주님?"
"무슨 일이냐?
남궁검 대신 옆에 서 있던 남궁우가 급히 물었다.
"저들이 사신(史臣)을 보내 왔습니다. 어찌 할까요?" "뭐야! 사신?.... 어찌
할까요. 형님?" "사신이라... 뭐 특별한 말이야 있겠는가. 이리 불러오게"
남궁검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대답을 했다. 대답을 듣고 정문을 나선 수
하는 한 명의 흑의무복 사내를 데리고 왔다.
패천궁에서 사신이 왔다는 소리에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이 연무장으로 몰려
들었다. 모여든 사람들을 뚫고 당당하게 걸 어온 그는 남궁검을 한눈에 알아본 듯 다가와 인
사를 했다.
"패천궁의 흑기당(黑氣堂)을 맡고 있는 은세충(殷世忠)이 오"
"호오, 자네가 그 유명한 비도탈명(飛刀奪名)이로군" "그저 허명일 뿐이오"
"그래 무슨 일로 왔는가?"
남궁검은 그가 온 이유가 몹시 궁금했다. 사신이란 무언가 협상할 꺼리가 있
어야 오고 가는 것인데 지금 상황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걸려 있을 뿐 애당초 협상이란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나는 이번 출정의 책임자인 패천궁의 군사인 귀곡자 어르 신의 말을 전하고
자 왔소. 이곳에는 이미 많은 흑도의 문파 의 무사들과 우리 패천궁의 흑기당과 함께 혈참마
대가 와 있 소. 전력면에서도 이곳에 모인 사람들과 비교가 되지 않소.
하지만 백도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패천궁은 피를 좋아하는 문파가 아니오.
해서 귀곡자 어르신이 말씀하시길 이쯤에서 항복을 하고 삼년 간 봉문을 약속한다면 이대로
조용히 물러 가신다 하셨소. 어차피 싸움이 시작되면 이곳에 있는 그 누 구도
살아 날 수 없소. 물론 우리도 어느 정도 피해는 입겠 지만 남궁세가나 이곳의 무인들이 입는
피해에 비하면 조족 지혈(鳥足之血)이오. 투항을 하는 것이 남궁세가와 강남 백도
의 명맥을 잇는 유일한 수단이 될 것이오" "하하하하하하하!!!"
비도탈명 은세충은 자신은 진지하게 말을 했건만 듣고 있 는 남궁검이 자신
의 말에 커다란 웃음을 터뜨리자 기분이 상 했다. 하지만 그런걸 내색할 만큼 수양이 얕지는
않았다.
"지금 항복이라 했는가? 삼년 간 봉문을 하라고? 그걸 지 금 말이라고 하는
것인가... 내가 그따위 제안을 받아들일 것 이라 생각했단 말이지.... 하지만 칼을 물고 죽으면
죽었지 그 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니 그리 알고 물러가라" 남궁검의 목소리는
싸늘하다 못해 냉기를 풀풀 풍기고 있 었다.
"후회하게 될 것이오"
"후회를 해도 내가 할 것이다. 하지만 그 후회는 너희들에 게도 포함된단 말
을 해주고 싶군"
"곧 다시 보게 될 것이오"
은세충은 마지막 말을 끝으로 뒤를 돌아 자신의 본진으로 걸어갔다. 한치의
두려움도 주저함도 없는 걸음걸이에서 그 의 자신감을 읽을 수 있었다.
"흠, 거절을 했다. 이거지... 하하 당연하겠지"
귀곡자는 은세충의 말을 듣고 이미 예상을 했다는 듯이 껄 걸 웃었다. 그런
귀곡자의 모습에 의문을 가진 은세충이 그 이유를 물었다.
"뻔히 거절 할 것을 알면서 소신을 보낸 까닭이 무었입니 까?"
"하하, 그것 말인가? 별거 아니네. 강자의 도리라고나 할 까... 한번의 항복
을 권고할 수 있는 여유라고 해야 할까? 아 무튼 별 의미는 없었던 거라네...하하하"
'역시 무인이 아니라 그런 것인가? 상대방의 자존심을 헤 아려 주는 무사
의 도리를 모르는군....'
은세충은 가볍게 얼굴을 찌푸렸다. 중앙의 의자에 깊이 몸 을 묻고 있던 궁
사흔도 이런 귀곡자의 행동을 영 못 마땅하 게 생각하고 있었다. 당연히 말속에 냉기가 묻어
나왔다.
"그럼 공격을 언제 시작을 하면 되겠나?" "이제 저의 역할은 끝났으니 모
든 것은 태상장로님께서 결 정을 해 주십시오. 저는 뒤로 빠지겠습니다."
눈치 빠른 귀곡자가 궁사흔의 불편한 심기를 눈치 못 챌 까닭이 없었다.
재빨리 자신을 낮추고 모든 것을 궁사흔에게 넘겨 버렸다.
"흠, 알았네. 밤도 제법 깊었으니 그럼 예정대로 공격을 시 작하도록 하지"
말을 마친 궁사흔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사람은 위치나 상황에 따라서 그
인물됨이 변한다고 하던가? 의자에 앉아 있을 때만 해도 그저 책이나 읽는 노인처럼 보이던
궁사흔이 싸움을 시작하고자 몸을 일으키자 그 기도가 확연하게 변했 다. 말투
마저 변하고 있었다.
"귀면쌍살!"
"예, 태상장로님"
"자네들은 지금 즉시 휘하의 수하들을 이끌고 남궁세가의 동편을 쳐라"
"존명"
"마검풍(魔劍風), 독패존(獨覇尊)!"
"예, 태상장로님"
"너희들은 남궁세가의 서편을 쳐라"
"존명"
"그리고 냉악!"
"예...."
"자네와 혈참마대는 여기 남아서 본진을 지키고 흑기당이 나를 따라 정면을
친다."
"예...."
명령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명을 받은 이들은 자신의 수 하들을 데리고 순
식간에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궁사 흔은 서두르지 않았다. 남궁세가를 향해 천천히 걸
음을 옮겼 을 뿐이었다. 많은 흑도의 무인들이 그런 그를 따랐고 맨 뒤 에는 은
세충의 명령아래 흑기당의 무인들이 움직이고 있었 다.
밤이 어두워 졌지만 남궁세가를 밝히고 있는 불빛은 이런 어둠을 무색하게
하는 밝음이 있었다. 남궁세가에 모인 백도 인들은 적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상태라 기습
공격에 대 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금도 이들의 수뇌들은 세 심각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저들이 너무 조용하지 않습니까?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미
집결을 했다고 들었습니다만...게다가 보내온 사신도 그냥 돌려보냈거늘..."
"예, 오늘 오후에 들어온 보고에 의하면 우리와 마찬가지 로 그들 역시 모
든 준비를 끝내고 공격의 기회를 엿보고 있 다고 합니다"
"흠, 그럼 이제 곧 공격이 시작되겠구려"
황보천악은 남궁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황보천악은 차라리 이런 지
리한 대치보다는 화끈하게 붙어서 승패를 가 늠하는 것이 더 좋다고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자신의 생각을 밝힐 수는 없었다.
"그래도 쉽게는 들어오진 못할 것입니다. 제갈 가주께서 가솔들을 이끌고
세가의 주변에 오행쇄금진(五行鎖禁陣)을 펼쳐 놓으셔서 기습이라는 것은 감히 꿈도 못 꿀
것입니다." "이런, 하하 너무 과찬을 해 주시는구료"
제갈공은 남궁검의 말에 살짝 안색을 붉히며 겸양의 말을 하였지만 그 말투
에는 은근한 자부심이 내포되어 있었다. 남 궁검이 말한 오행쇄금진은 제갈공이 자부심을 가질
만한 충 분한 자격이 있는 위력적인 진이었다.
오행쇄금진은 허공을 운행하는 화(火)·수(水)·목(木)·금 (金)·토(土)의
다섯 가지의 기들을 이용하여 오행상생(五行 相生)과 오행상극(五行相剋)의 이치를 담아 하
나의 커다란 공 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 안에 들어선 모든 사람은 진을 설 치
한 사람의 의도에 따라 환상(幻想)과, 착시(錯視)등을 일으 키고 또한 진의 안에선 그 어떤 물
리적인 힘도 통하지 않는 실로 엄청난 위력을 지닌 진이었다. 제갈공은 이런 오행쇄금
진을 남궁세가 주변의 지형지물과 교묘하게 뒤섞어 배치하여 흑도의 무리들은 물론이고
세가에 모인 사람들의 이동까지도 철저하게 차단하고 있었다. 그러니 남궁검이 이리 안심을 하
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이들의 생각은 폭약이란 엉뚱한 물건에 의해 산산조
각이 나고 말았다.
"꽝!....쿠우우우우"
"꽈광.......꽝!"
갑자기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대지를 뒤흔드는 울림이 있 었다.
"무슨 일이냐? 빨리 가서 알아 보라!"
남궁검은 갑작스런 소란에 주변의 수하를 시켜 그 원인을 알아보고자 하였
으나 그 수하가 나가기도 전에 밖에서 급한 연락이 왔다.
"가주님. 크...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이냐? 당황하지 말고 차근차근 말하여보거라" "그..그게 세가를 둘
러싸고 있는 진의 한쪽에서 폭약이 터 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곳을 통해 패천궁의 무리들이
진 안 으로 진입하여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급하게 뛰어왔는지 여전히 숨을 헐떡이고 있는 수하의 말 을 들은 남궁검과
주위의 수뇌들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뭐....뭣이? 폭약? 이럴수가..... 폭약이라니.... 저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폭약을....?"
남궁검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을 더듬었다. 하지만 보고 를 듣던 제갈공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아뿔싸! 내가 왜 폭약을 생각하지 않았더란 말인가? 비록 관에서 금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처럼 빠르게 진을 뚫 을 수 있는 것이 없거늘....'
자신의 자만심을 책망하던 제갈공은 천천히 눈을 뜨고 당 황하는 남궁검에
게 말을 했다.
"저들이 관에서 금지하는 폭약을 사용할 줄은 꿈에도 몰랐 습니다. 저처럼
자신 있게 사용하는 것을 보아 이미 관에도 손을 써 놓은 듯 합니다.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이 되어 버렸습니다. 진은 뚫렸으니 이렇게 앉아만 있을 것이 아니라 지금이
라도 당장 전열을 정비하여 밀려오는 적을 막아야 할 것입니다"
하도 황당해서 일순 말을 잃었던 남궁검은 제갈공의 말을 듣고는 재빨리 정
신을 수습했다. 이러고 있을 것이 아니라 제갈공의 말대로 전열을 정비하는 것이 중요했다.
"다들 나가서 준비를 하십시다. 비록 진은 뚫렸지만 저들 이 순순히 이곳으
로 오게 만들 수는 없지요. 자 갑시다."
남궁검이 자신의 검을 들고 밖으로 나가자 모여 있던 수뇌 들도 분분히 따라
나섰다. 이미 연무장에는 세가의 무인들과 남궁세가를 지원하고자 몰려온 무인들로 가득 차 있
었다. 하 나같이 긴장된 얼굴로 모여있는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자
신들의 무기만을 힘껏 잡은 채 남궁검의 말이 떨어지 기만을 기다렸다. 남궁검은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그들의 앞 에 섰다.
"저들이 드디어 이곳까지 마수를 뻗치고 있소. 하지만 우 리가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줍시다. 우리 가 무너지면 장강 이남의 백도는 전멸이오. 나는 이
런 치욕 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있소. 그리고 그것은 비
단 나뿐만 아니라 여러분도 같을 거라 믿고 있소.
비록 우리가 그 수에 있어서는 저들보다 열세이기는 하지만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다면 이기지 못할 것도 없소.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오."
남궁검의 말에 모여 있던 무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소리 를 질렀다. 남궁
검의 말에 동의하는 것도 있겠지만 이렇게 소리를 지름으로써 약간의 두려움이나마 덜자는
생각들도 가 지고 있었다. 남궁검은 함성이 잦아질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 가 말
을 이었다.
"저들은 지금 그 수를 세 곳으로 나누어 몰려오고 있다고 하오. 정면은 우
리 남궁세가가 맡을 것이오. 좌측은 황보세가 와 하북팽가에서 책임져 주시고 우측은 당가와
강남의 백도 여러분이 맡아주시오. 제갈가의 사람들은 각각 흩어져 병력 을 통
솔해 주십시오"
"맡겨주시구려."
"하하...이곳은 염려 마십시오"
남궁검의 말에 수뇌들은 자신감이 넘치는 어조로 대답을 하였다. 남궁검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허허, 이중에서 과연 얼마나 살아남을 것인가....?'
이들의 사기를 위해서 말은 그리 했지만 저들의 병력이나 무위로 보아 힘든
싸움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필시 엄청난 희생이 뒤따를 터, 남궁검은 안타까운 맘을 금할 길
이 없었 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죽지 마시오. 남겨진 자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 면.... 죽지.... 마
시오!!"
남궁검의 비장한 말에 사람들은 모두다 침묵을 지켰다. 그 리곤 자신의 주변
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다 형제 같이 친하게 지낸 사람들이 아닌가? 모여있
는 모두가 언제나 같이 술 한잔을 할 수 있고 힘들면 힘들다고, 기쁘면 기쁘다
고 말을 하고 나눌 수 있는 친구요, 형제요, 가족이었 다. 남궁검의 마지막 말은 모여있는 이
들의 전의를 불태웠다.
자신이 아닌 옆의 동료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겨야 하는 싸 움이었다.
잠시 후, 각각의 위치를 배정 받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 켜야할 곳으로 이
동을 했다. 그 모양을 보던 남궁검은 자신 의 옆에 있는 막내 동생을 쳐다보았다.
"식솔들은 안전한 곳으로 이동을 시켰겠지?" "얘, 형님. 이미 가솔들은 근
처의 마을과 친척집으로 다 돌 려보냈고, 가족들은 지금쯤은 장강을 넘고 있을 것입니다. 하
지만...."
"하지만 뭔가?"
"셋째 형수님이 부득불 우겨서 그분은 아직 이곳에 남아 계십니다."
"허, 이런 낭패가... 하긴 제수씨 성정에 떠나라고 떠날 사 람도 아니고..."
남궁검은 잠시 자신의 제수씨를 생각해 보았다.
이가희(李(歌喜)! 화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섬서이가의 딸이었다. 섬서이
가가 비록 중원의 오대세가에 비해 다소 손 색이 있긴 했지만 그 규모가 작아서 그런 것이지
무공이 떨 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무가에서 자 란 그녀
는 얼굴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무공은 그녀의 남편인 남궁수민 보다 한 수 위였다. 다만 그녀
가 내색을 하지 않을 뿐이었다. 당연히 시댁의 존망이 걸린 싸움에 나서지 않을
그녀가 아니었다.
남궁검이 그녀를 생각하며 고소를 짓고 있을 때 세가의 서 편에서 최초의 충
돌음이 들려왔다.
궁귀검신(弓鬼劍神)제24장 서전(緖戰)-2
"쳐라!"
남궁세가의 서쪽 문을 부수고 난입하는 흑도의 무인들을 맞이한 것은 황보
세가의 가주인 황천악의 싸늘한 음성이었 다.
"와아!"
"죽어라....!"
황보천악의 명령이 떨어지자 황보세가의 무인들은 적들을 향하여 일제히 달
려나갔다. 황보세가의 무인들은 대체로 권 장법이 능해서 대부분이 맨손으로 뛰어 나갔으나
개중에는 검을 들고 나서는 자들도 있었다. 이와는 다르게 팽가의 무 인들은
그들의 독문 도법인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를 주로 사용하기에 한결같이 거대한 도를 들고
싸움에 임했다. 먼저 기선을 잡은 쪽은 이대세가였다. 이대세가의 무인들은 벌떼
처럼 달려드는 흑도의 무인들을 마구잡이로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두세 명이 교묘하게 짝
을 이루어 적을 베어나갔다.
비록 급조해서 만든 연합공격술(聯合攻擊術)이었지만 이렇게 다수를 상대하는
데에는 톡톡히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이 들 중에 특히 뛰어난 실력을 보인 것은 팽도정, 팽
조윤 남매 였다. 이들은 마치 오랜 동안 합격술(合格述)을 연마한 것처 럼 서로
가 상대의 위기를 보호해 가며 흑도의 무인들을 무자 비하게 쓸어갔다. 이들이 지나간 자리에
는 멀쩡하게 서 있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을 정도였다.
"제법 상황이 좋소이다."
전황을 주시하던 제갈공이 약간은 안심이 된다는 듯이 말 을 했다.
"하하, 저 따위 오합지졸이야 그 수가 아무리 많으면 무엇 하겠소"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짝을 지어 공수에 대비한 연습 을 한 것이 주효
했소이다."
황보천악과 팽언문은 여유있는 모습으로 말을 주고받았다.
과연 그들의 말대로 공격을 하는 흑도의 무인들은 계속 쓰러 지고 있었지만 이
대세가의 무인들은 어쩌다 한두 명이 쓰러 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여유로운 모습
과는 달리 상당히 초초해 하는 이들도 있었다.
"오대세가가 강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밀릴 줄은 몰 랐소...허...."
"그것보다는 저들이 일대일이 아닌 무리를 지어 우리의 공 격을 막아내는 데
그게 우리의 수하들을 당황하게 하는 이유 가 되는 것 같소이다. 우리의 공격에 대비해 급히
연습한 것 같은데...아무래도 우리가 나서야 겠소이다."
궁사흔으로부터 남궁세가의 서쪽을 공격하라는 명을 받은 파력궁(波力宮)의
궁주 마검풍 유경(劉璟)과 잔결방(殘缺幇)의 방주인 독패검 좌광두(左狂頭)는 공격해 들어간 흑
도의 무인 들이 형편없이 몰리자 내심 당황했다.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이름도
없는 소문파의 무인들로 오대세가의 정예를 상대하기 란 역시 역부족임을 느끼고 있었다. 결
국 자신들의 직계 수 하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가라. 우리의 미래가 이곳에 달려 있다. 가서 공을 세우 라!!"
유경의 말에 지금껏 뒤에서 관망만 하고 있던 파력궁의 문 도들이 일제히 함
성을 지르며 달려갔다. 이들은 앞서 공격했 던 자들이 당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상당히 신중
을 기해서 접근을 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수가 적에 비해 월등한 것을 이용해
연합공격을 펴는 이들을 아예 둘러싸고 공격을 했다.
그러자 지금까지 일방적으로 도륙을 당했던 흑도의 무사들 도 제법 대등하게
대응을 하기 시작했다. 이대세가의 무인들 에게 특히 위협이 되는 것은 잔결방의 방도들이었다.
잔결방 은 말 그대로 몸 어느 한 부분이 정상인과는 다른 자들로 이 루어져 있
었다. 남들과 다르다보니 성장과정에서 많은 서러 움을 겪었고 그 서러움이 쌓이고 쌓여 이
들에게 남은 것은 깡과 독기뿐이었다. 이대세가의 무인들에게 상처를 당하면
그 빛을 갚고자 몸을 아끼지 않았다. 이들이 하는 대부분의 공격이 무인들이 가장 금기시 하
는 동귀어진(同歸於盡)의 수 법이었다. 게다가 이런 기도가 실패하면 아예 몸을 던져 자
신을 희생하곤 동료에게 기회를 열어주는 극단적인 수를 쓰 기도 했다. 잔결방의 방
도가 하나둘씩 쓰러져 갔지만 그에 따라 이대세가의 무인들도 상당히 많은 수가 땅에 쓰러지
고 있었다. 전세는 서서히 변하고 있었다.
"저....저!"
여지껏 여유롭게 상황을 지켜보던 삼대세가의 수뇌들은 경 악을 금치 못했
다. 자신들의 수하들이 무공이 월둥 함에도 잔결방의 악독한 수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
다. 또한 잔 결방과 함께 뒤늦게 공격을 시작한 파력궁의 무인들도 만만 치 않
은 실력을 지니고 있는지라 어찌어찌 방어는 하고 있었 지만 이대세가의 무인들은 급격히 밀리
고 있었다.
"이놈들!"
결국 팽언문이 더 이상 참지를 못하고 들고 있던 도를 앞 세우고 싸움에 뛰
어들었다. 삼국시대의 맹장(猛將) 여포(呂布) 의 용맹이 이러했을까? 닥치는 대로 베어 넘기는
그의 도를 그 누구도 받아내지 못하였다. 그렇게 지독하게 무인들을 물 고 늘어
졌던 잔결방의 방도들 또한 팽언문에게는 감히 덤비 지 못하고 피해 다녔다.
"허, 대단하구만. 내 일전에 그의 형의 무위를 본 적은 있 지만 이 친구는
더 대단한 것 같구만... 그러나 나도 구경만 할 수는 없지!"
팽언문의 활약을 잠시 지켜보던 황보천악도 싸움에 끼어 들었다. 황보천악
과 팽언문의 등장에 잠시 기가 꺾여 있던 세가의 무인들은 다시금 전열을 정비하였다. 반대
로 잔결방 의 희생(?)으로 기선을 잡아가던 흑도의 무인들은 그 기세가 주춤했
다. 더구나 맨 마지막에 싸움에 뛰어든 황보천악에게 그들의 우두머리 중 하나였던 잔결방주
좌광두가 미처 삼초 를 버티지 못하고 피를 뿌리며 쓰러지자 그들의 사기는 급격
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남궁세가의 서쪽의 싸움이 점차 백도 쪽으로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반면에 당가와 함께 싸우고 있는 동쪽의 백도세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동쪽의 흑도세를 이끌고 있는 자들은 패천궁의 호법인 귀 면쌍살이었다. 그
무공이나 흑도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마검풍이나 독패존에 비교할 바가 못되었다.
귀면쌍살은 손속에 인정을 두지 않았다. 형인 대살(大煞)은 쌍륜(雙輪)을 무
기로 사용하며 닥치는 데로 살상을 하고 있 었고 동생인 소살(小煞)은 자신만큼이나 무식
하게 생긴 부 (斧)를 휘두르며 백도진영을 휘젓고 있었다. 그러나 강남 백 도
의 우두머리라는 자들은 이들을 슬슬 피하며 겨우 조무래 기 몇몇을 상대하기 급급했다. 결국
싸움이 시작 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많은 백도의 무인들이 쓰러졌다. 백도인들이 그
나마 버티고 있는 것은 당가의 무인들의 암기가 적절한 시기 에 그들을 도와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폭풍처럼 백도의 무인들을 쓸어가던 대살을 막아선 것은 당문성과 말리는
아버지를 끝까지 졸라 남궁세가에 온 당소 미(唐素美)였다. 당문성은 대살과 직접 손을 섞고
있었고 당 소미는 대살의 틈을 파고들며 비침을 날리곤 했다. 당가의 부녀가
대살을 막는 동안에도 소살은 백도의 진영을 마음껏 휘젓고 있었는데 그를 막고자 청룡문의
문주인 상방충과 그 의 수하들이 막아섰지만 역부족이었다.
당문은 도나 검보다는 독(毒)과 암기에서 중원의 그 어떤 무가보다 최고로
인정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암기나 독이라 는 것은 근거리보다는 원거리에서 적을 상대하기에
더 편리 했다. 전체적으로 보아 같은 실력을 지녔다면 아무래도 근거 리에선 검
이나 도를 익힌 무인보다는 다소 손색이 있었다.
그런데 대살과 당문성의 무공은 애초에 큰 차이가 나는데다 가 대살이 당문성
에세 좀처럼 거리를 주지 않고 집요하게 쫓 아다니며 공격을 하자 당문성은 겨우 몸만 빠져나
가는 상황 에 처해 있었다. 때때로 도움을 주는 당소미의 암기가 없었 다면 이
미 목숨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결국 대살은 또 한번 자신이 쌍륜을 피하며 달아나 던 당문성에게 오
른쪽 손에 들고 있던 륜을 집어던졌고, 그 륜은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당문성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는 상처를 입히고 말았다. 호연십팔보(湖燕十八步)를 이용해 간 신히 륜
을 피하던 당문성에게 허벅지의 상처는 곧 죽음을 의 미했다.
"흐흐, 어디 더 도망가 보거라..."
대살은 이를 악물고 멈춰서 있는 당문성을 보며 입가에 조 소를 지었다.
"멈춰라. 악적!"
당소미는 대살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다가가자 급한 나머지 손에 들고 있던
모든 암기를 던wu보았다.
"따다당!"
대살이 가볍게 륜을 들어올리자 날아오던 암기는 벽에 가 로막힌 듯 모조리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당소미가 던진 최 후의 암기를 막은 대살은 당문성에게 한걸음씩 다가
갔다. 처 음에는 몰랐지만 대살이 사용하는 륜에는 독이 발라져 있는 듯 싶었
다. 치명적으로 목숨을 뺏는 독은 아닐지라도 온몸에 힘이 빠지고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게
만드는 것을 보면 상 당히 위력적인 독인 모양이었다.
'제길 독에 당하다니...'
중원에서 독만큼은 최고라고 자부하던 당가의 후손이었기 에 밀려오는 수치
감은 그 누구보다 더 했다.
"흐흐, 이제 보니 당가의 암기도 별것이 아니로군. 그래...
그 많은 비침을 날리고도 나에게 상처 하나를 입히지 못하 니...하하핫!"
굳은 듯이 땅에 앉아 있는 당문성에게 다가간 대살은 살짝 고개를 돌려 어쩔
줄을 몰라하는 당소미를 쳐다보며 앙천광 소(仰天廣笑)를 터뜨렸다. 그때였다.
"너 따위가 비웃을 당가가 아니다."
한줄기 음성과 함께 대살을 향해 무엇인가가 엄청난 속도 로 날아오고 있었
다. 대살은 황급히 들고 있던 륜을 들어 날 아오는 무엇인가를 막았지만 엄청난 힘의 여파에
의해 몇 발 자국 뒤로 물러서고서야 신형을 바로 세울 수 있었다.
'헛, 아무리 내가 급하게 막느라고 내공을 제대로 싣지 못 했지만 이런 위
력은 무엇이란 말인가?'
대살은 황급히 자신을 물러나게 한 힘의 주인을 찾아 고개 를 돌렸다. 그러
자 깔끔한 당의를 입은 오척 단구의 노인이 조약돌 몇 개를 들고 서 있었다.
"아...아버님!"
"할아버지!!"
당문성과 당소미는 그 노인을 보고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 의미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당문성은 이런 꼴을 보인 것을
죄송스러워 했고, 당소미는 겁에 질려 있다 가 구원자를 만났으니 환호성을 지른 것이었다. 당
천호는 그 런 자신의 손녀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보이더니 여전히 앉아 있는 당
문성에게 시선을 주었다. 당천호의 시선을 받은 당문 성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당천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긴장을 하며 서 있는 대살에게 조용히 말을 했다.
"우리 당가는 너희 형제 따위에게 조롱을 당할 정도로 약 하지 않다. 왜 그
런지 이제 곧 알게 될 것이다."
당천호의 싸늘한 눈빛을 보고 있는 대살은 온몸에서 소름 이 끼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암왕이라니...빌어먹을.... 남궁세가에 이 인간이 와 있단 소 식은 듣지 못했
는데.... 오늘은 득 보단 실이 많겠구나...'
대살은 형세의 불리함을 깨닫고 잽싸게 자신의 동생에게 전음을 보냈다.
[아우야. 빨리 이곳으로 와라. 급하다.]
사실 귀면쌍살이 패천궁의 호법이 된 것은 아주 최근의 일 이었다. 이들은
오랜동안 패천궁의 소궁주였던 관패의 호위 를 맡다가 이번에 관패가 궁주가 되면서 그 공
을 인정받아 호법이 된 자들이었다. 실력 면에서 헌원강이나 목사혁에 비 해 한
참 모자람이 있었다. 자신을 막던 상방춘을 거의 빈사 상태까지 몰고 갔던 소살은 대살의 전
음을 받고 쏜살같이 다 가왔다.
"두 놈이면 상황이 다를 줄 아느냐?"
그 모양을 지켜보던 당천호는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이런 쥐방울만한 영감탱이가...감히..."
소살은 당천호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자기 딴에는 위협 을 주려고 한 것
이었지만 활활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 되고 말았다. 소살은 자신의 앞에 있는 노
인이 누구인 지 몰랐다. 오랫동안 관패의 옆을 지키느라 패천궁을 잠시도 떠나
보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것은 대살도 마찬가지였다. 다 만 대살은 당문성이 아버지라 부르고
당소미가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서 당천호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지만
급하게 온 소살은 그 노인이 누구인지 알 리가 없었다. 다만 건방진 꼴이 우스워 그렇게
소리를 지른 것인데....
"쥐방울이라...."
소살의 말을 다시 한번 되새김질하던 노인의 자그마한 몸 에서 갑자기 엄청
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명성에 걸맞지 않게 왜소한 몸이 언제나 마음에 걸린 그였다. 그
래서 인지 자신의 몸에 대한 말이 나오면 언제나 예민해 하던 당천호였 다. 달
라지 당천호의 기도에 흠칫한 소살은 슬쩍 대살에게 눈길을 보냈다. 그 눈길의 의미를 알고
있는 대살은 소살에 게 전음성을 보냈다.
[경거망동하지 말아라. 저 늙은이가 암왕이라 불리는 늙은 이다. 너와 내가
죽기를 각오하지 않으면 당하기 힘든 상대 다. 저 늙은이가 손을 쓰기 전에 우리가 먼저 공
격을 해야 한다. 그럼 준비해라...]
대살은 계속해서 당천호를 노려보며 소살에게 은밀히 기습 을 제의했다. 그
의 판단은 정확했다. 그들이 당천호를 상대로 이기는 방법은 당천호가 암기를 발출하기 전에
손을 써서 그 기회를 주지 않는 것 뿐이었다. 그가 손을 쓴다는 것은 그땐 이미
그들이 죽음을 선고받는 것과 마찬가지의 의미였다.
대살은 당천호를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용서하시지오. 제 동생이 어르신을 잘 몰라서....하앗!"
인사를 하던 대살은 온 힘을 모아 쌍륜을 던졌다. 그것을 신호로 소살도 자
신의 부를 휘두르며 당천호에게 달려들었 다. 대살이 던지 쌍륜을 두 갈래로 갈라져 당천호
를 노렸는 데 그 빠르기나 기묘한 변화가 몹시 위력적이었다. 게다가 그 뒤에
서는 소살이 덤벼들고 있으니 함부로 몸을 움직이기 도 뭐했다. 하지만 당천호는 여유가 있었
다.
"흥!"
가만히 서 있던 당천호는 자신의 가슴을 노리고 왼쪽으로 파고드는 륜으로
오히려 달려가더니 재빨리 몸을 돌려 륜을 낚아 챈 다음 돌아가는 몸의 탄력에 힘을 실어 그
륜을 자신 에게 달려오는 소살에게 던지고 자신의 오른쪽을 파고드는 륜은 미
처 잡지 못하고 가볍게 흘려버렸다. 대살이 던진 륜 을 피해 어떻게든지 행동을 보일 당천호
의 약점을 파고 들려 했던 소살은 갑작스럽게 자신의 눈앞에 형이 던진 륜이 나타
나자 허겁지겁 몸을 돌려 피할 수밖에 없었다. 당천호가 던 지 륜은 소살의 간발의 차이로
머리카락만을 자르고 멀리 날 아가 버렸다. 되돌아오는 하나의 륜을 잡은 대살은 그저 어
안이 벙벙했다. 세상에 자신의 륜을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걸 무기 삼아서 자신의
동생을 공격하다니... 하지만 감탄을 하고 있을 수많은 없었다. 공격을 당했던 당천호의 손이
서 서히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심해라!"
대살은 재빨리 경고를 했다. 하지만 소살도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
었다.
"탈영비접(奪影飛蝶)!"
느릿하게 움직이던 당천호의 손이 순간 사라졌다. 그리곤 세 개의 자그마한
물체가 소살에게 날아갔다. 조그마한 노리 개의 크기를 지닌 나비모양의 암기(鐵蝶)였는데 손의
빠름에 비교해서는 너무도 느리게 날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소살은 나비처럼
너울거리며 날아오는 그 암기의 움직임을 도무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저리 느리게
날아오는 암기를 피해 뒤로 도망을 가자니 체면이 서질 않았다.
"어디 이따위 것으로..."
"꺼져라! 부풍파암(斧風破巖)!!! "
"안돼!!"
소살은 대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날아오는 암기를 향해 자신의 무기를 휘
둘렀다. 하지만 그렇게 느리게 날아오던 철 접은 마치 살아있기라도 하듯이 소살의 부를 피해
그의 정수 리와 목, 그리고 가슴에 깊이 박혀버리고 말았다.
"이...이..."
소살은 대살을 보며 뭐라 말을 하려 했지만 끝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평생을 자신과 같이 보 낸 세상에 하나뿐인 혈육이었다. 소살의 죽음을 본
대살은 이성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죽어라!"
하나뿐인 륜을 들고 마구잡이로 덤벼들었다. 하지만 이미 흥분을 한 대살의
공격은 더 이상 위력적이지 않았다. 당천 호는 그저 몇 개의 우모침(羽毛針)을 선사했을 뿐이
었다. 그 것으로 끝이었다. 패천궁에서 새롭게 호법으로 발탁된 귀면 쌍살 형제
는 그렇게 땅에 쓰러지고 말았다. 당천호는 나란히 쓰러져 있는 그들을 보며 조그맣게 읇조렸
다.
"그 누구도 당가를 모욕할 수는 없다.... 설령 그가 신이라 할 지라도..."
싸움은 이미 끝이 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천호의 등장 은 단지 귀면쌍살
의 죽음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절대고수의 등장!
백 마리의 이리가 편을 나누어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데 홀 연히 나타난 호랑
이 한 마리가 어느 한편을 든 다고 생각해 보라. 이미 그 싸움은 끝이 난 것이나 마찬가지였
다. 게다가 그 호랑이가 자신들의 우두머리를 단번에 물어 죽인다고 하 면...
결국 사기가 오른 백도의 일방적인 도살만이 있을 뿐이었 다.
이렇게 남궁세가의 동쪽과 서쪽에서 치열한 교전이 있었지 만 사실상의 주력
인 남궁세가의 무인들과 궁사흔이 이끄는 흑도의 무인들이 맞붙은 정문의 싸움보다는 다소
모자람이 있었다. 어느새 서로의 사상자가 반수를 넘고 온몸에 피를 뿌리지
않은 자들이 없었다. 이들 또한 흑도의 이름 없는 문 파의 무인들을 앞세우고 남궁세가의 무인
들의 힘을 뺀 다음 그들의 수가 현저하게 줄어들자 이번 전투에서 처음으로 패
천궁의 정예인 흑기당이 나섰다. 흑기당은 앞선 흑도의 무인 들과는 애초에 수준이 달랐다. 물
론 패천궁을 제외하고 흑도 에서도 큰 문파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패천
궁주의 명령에 의해 이번 싸움에 참여를 하지 않았다. 그들 도 훗날을 대비한 중요한
전력이었기 때문이었다.
각설하고 처음으로 싸움에 나선 흑기당은 당주인 은세충의 명령에 따라 일
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오늘날에 대비해 가주인 남궁검이 심혈을 기울여
연습시킨 오행검진(五行劍陣)을 펼치며 필사적으로 대항하고 있었다.
다섯 명이 한 조를 이루어 만드는 오행검진은 무당의 칠성검 진(七星劍陣)이나
소림의 나한진(羅漢陣)에 비할 바는 아니지 만 나름대로 공수의 짜임이 탄탄한 검진이었다. 하
지만 그들 을 상대하는 흑기당 또한 그들 나름대로의 방법을 만들어 공 격을 하
였는데 이들이 만들어낸 방법은 처음부터 의도한 것 이 아니라 오랜 싸움의 경험을 통해 저절
로 터득하게 된 실 용적인 연수공격 방법이었다. 지금껏 뒤에서 전투를 지휘하
던 남궁검도 지금은 흑기당의 당주인 은세충과 부당주인 추 혼마도 (追魂魔刀) 요양(堯洋)
을 맞이하여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이대 일의 싸움임에도 조금도 밀리지 않는 남궁검의
모습은 세가의 무인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었다.
"허허, 오행검진인가 봅니다. 대단하외다" "글쎄요, 그것에 맞서 싸우는 저
들 또한 상당한 실력을 지 닌 자들 같소이다."
중앙의 치열한 싸움과는 다르게 한가로이 노니는 두 명의 노인이 있었다.
백의를 입은 노인은 백도에서 검성이라 칭송 받는 남궁상인 이었고, 맞은편의 갈의를 입은 노
인은 남궁세 가를 치기 위해 패천궁을 이끌고 온 천살검존 궁사흔이었다.
궁사흔이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펼치는 오행검진을 칭찬하 자 남궁상인도 흑
기당을 치켜세웠다. 하지만 이들의 내심을 살펴보면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헐, 예상은 했지만 역시 대단하군...많이 지쳐있을 터인데...
흑기당을 상대로 저리 버티다니! 역시 흑기당을 뒤로 돌리기 를 잘했구나....처
음부터 나섰다면 상당한 피해를 보았을 터!' '흑기당이 저 정도면 아직 나서지 않은 패천혈
마대의 무위 는 어느 정도란 말인가? 정녕 하늘은 우리 남궁가를 버리시 려는
것인가?'
두 절대자가 서로의 마음을 감춘 채 더욱더 치열하게 전개 되고 있는 장내의
싸움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남궁세 가의 동쪽에서 일단의 무인들이 나타났다. 갑자기
등장한 그 들을 보며 장내의 사람들은 잠시 싸움을 멈추고 나타나는 이 들을 주
시했다. 과연 어느 쪽의 사람들인가? 남궁세가를 지 원하는 무인들인가? 아님 그들을 전멸시
킨 흑도의 무인들인 가?
"와아!!!"
"이겼다!!"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칼을 높이 쳐들고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새벽의
미명(微明)을 배경으로 하여 나타난 사람들은 당가와 백도의 무인들이었다. 동쪽으로 침입했던
흑도의 무 인들은 모조리 전멸시킨 이들은 암왕 당천호를 필두로 하여 당당하
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보는 궁사흔의 모습 은 담담했지만 내심 크게 당황하고 있었
다.
'아뿔싸! 당천호가 이곳에 있을 줄이야.... 멍청한 놈들! 당 가의 인물이 왔다
고만 했지. 왜 그 속에 당천호가 있음을 몰 랐단 말인가? 오늘은 힘들 것 같군....빌어먹을!'
"오늘은 이쯤 합시다. 암왕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구려...
허허허, 당형! 오랜만이외다."
궁사흔은 남궁상인에게 조용히 말을 한 후 고개를 돌려 자 신에게 다가오는
당천호에게 인사를 했다.
"오! 이게 누구신가? 천살검존 아니시오? 참으로 오랜만이 외다."
당천호 또한 반갑게 인사를 했다. 사람들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수
하들은 죽을 둥 살둥 싸우고 있는데 그 우두 머리 되는 자들은 서로 반갑게 한담이나 나두고
있다니...
남궁검을 비롯하여 백도를 이끈다는 사람들이 이러니 그 밑의 수하들의 혼
란은 더욱 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백도 의 무인뿐만 아니라 궁사흔을 따라온 흑도의 무인
들 또한 마 찬가지였다. 하지만 세 명의 절대자들은 이들이 어찌 생각을 하건
자기들끼리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우두머리가 이러니 싸움이 될 리가 없었다. 그 치열했던 싸움은 순식간에
멈추어 버렸다. 도대체 자신들이 싸우기는 한 것인가? 하고 의심을 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럼 난 이만 돌아가리다. 조만간 다시 인사를 하러 오겠 소이다. 그때는 각
오를 좀더 단단하게 하셔야 할 것이외다." "하하하! 좋소. 인사라면 얼마든지 받아줄 것이니
염렬랑은 붙들어 매시구랴"
당천호가 남궁상인을 대신하여 호탕하게 외쳤다.
"돌아간다!"
궁사흔은 남궁상인과 당천호에게 가볍게 포권을 하고 뒤돌 아 멍청히 서있는
은세충에게 명령했다. 그리곤 뒤도 안 돌 아보고 남궁세가를 빠져나갔다. 은세충은 뭐라 말을
하고 싶 었지만 자신의 옆을 스쳐 지나가는 궁사흔의 얼굴에 깔린 살 기를 보곤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제서야 상황 파악이 됐다.
믿기진 않지만 이번 싸움에선 자신들이 패한 것이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당천호가 나타났다는 것은 내포하는 그 의 미가 달랐다. 결국 자신들을 이끌고 온 궁사흔은
치욕스럽게 물러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겉으로는 옛 강호 동도를 오 랜만에
만나 웃음으로 헤어진다는 미명하에....
흑도의 무인들은 올 때도 그랬지만 사라질 때도 매우 신속 하게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지자 비로소 싸움이 끝났음을 실 감할 수 있었다. 싸움은 끝났지만 단 한번의 싸
움으로 잃은 것이 너무나 많았다.
삼백을 헤아리던 남궁가의 무인들이 무려 백 여명이 목숨 을 잃고 또 그
정도의 수가 부상을 입었다. 서쪽을 맡았던 황보세가에서 삼십 명, 팽가에서도 삼십 여명이 죽
었고 특히 동쪽을 맡았던 백도의 무인들이 피해가 막심했는데 삼백의 인원 중
살아남은 자가 고작 칠십 명에 불과했다. 가장 피해 가 적었던 곳은 싸움엔 직접 참여를 하지
않았던 제갈세가와 단 두 명만을 잃은 당가였다.
흑도의 피해는 이보다 훨씬 컸다. 호법인 귀면쌍살을 비롯 하여 동쪽으로 쳐
들어왔던 인원 사백이 모조리 전멸했고 서 쪽으로 쳐들어왔던 적들 또한 이백에 가까운 시체
를 남기고 물러갔다. 정문의 인원까지 합하면 최소 구백에 이르는 흑도 의 무인
들이 쓰러졌다.
단 한번의 싸움으로 무려 천 삼백에 달하는 무인들이 죽어 버렸다. 지금까지
이처럼 많은 사망자를 낸 싸움이 없을 정 도였으니 오늘밤의 치열함을 능히 짐작할 수 있으리
라...
하지만 문제는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궁 세가가 무너지거
나 그들이 아예 포기하거나 결말이 날 때까 지 이 싸움은 계속 될 것이었다. 이것이 대승을
거두고도 백 도인들이 근심하는 이유가 되었다.
그리고 이들의 연장선상에서 또 다른 싸움이 일어날 조짐 이 보이고 있었
다. 그 시작은 패천궁의 또 다른 호법 목사혁 이 혈궁단 이십 명과 이백 여명의 수하를 이끌고
남궁가에서 정확하게 오 십리 북쪽에 있는 야산에 매복을 하면서 부터였 다.
첫댓글 즐감하고갑니다.
차어다서타냐
감사합니다.
즐겁게 보고갑니다!
즐감
잼납니다
즐감 ~!
ㅎㅎㅎ
이제부터가 시작
즐감하고갑니다.
즐감요~
ㅈㄷㄳ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즐독했습니다~~감사합니다.
즐감하고갑니다.
좋아좋아
즐독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