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서울 제대군인지원센터. 3층 입구에 들어서자 ‘국가를 위한 숭고한 희생, 호국으로 보답하겠습니다’라는 ‘6월 호국보훈의 달’ 포스터가 붙어 있다. 복도엔 6·25전쟁 당시 의정부에서 105㎜ 야포로 북한군 T-34 전차를 격파하고 전사한 ‘6·25 전쟁영웅’ 김풍익 중령의 사진도 걸려 있다.
그러나 포스터와 사진 뒤에 보이는 현실은 안보를 책임졌던 전역 장교·부사관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취업난이었다. 이곳은 전역 군인들의 취업과 사회 적응을 돕는다. 안내실에 늘어선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구직 정보를 뒤지던 포병 출신의 김모(58·중령 예편)씨는 “33년을 국가에 충성하고 2005년 전역했는데 그동안 만난 거라곤 사회의 벽밖에 없다”며 “초등학교 보안관 자리를 찾고 있는데 줄이 너무 길다”며 답답해했다.
김씨는 “그래도 나는 전역 직후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예비군 대대장으로 5년 근무하는 기회를 가졌지만 요즘 전역하는 후배들을 보면 내가 미안할 정도다. 취업이란 게 하루가 다르게 더 어려워진다”고 한숨을 쉬었다.
보훈처에 따르면 2007년부터 5년간 전역한 중·장기 군 복무자(장교·부사관)는 2만9090명. 이들 중 취업자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1만6269명(55.9%)에 불과하다. 나머지 절반 가까운 전역자는 사실상 실업자다. 문제는 군의 특성상 전역 군인 대부분이 40~50대 가장이란 사실이다. 자녀 교육비와 내집 마련 등으로 많은 돈이 필요한 시기이나 사회에서 안정된 직업을 갖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육군에 따르면 정년 제한에 따라 전역하는 평균 나이는 대위 43세, 소령 45세, 중령 53세다. 오경준 보훈처 제대군인취업과장은 “44.1%란 비(非)취업자 비율은 세계적으로 찾기 힘든 대단히 높은 수치”라며 “선진 각국의 경우 90% 취업이 일반적”이라고 소개했다.
취업의 내용과 질도 높지 않다. 취업자 대부분이 월급 100만원대의 비정규직·단기계약직에 몰려 있어 ‘100만원 취업’으로 불린다. 서울 제대군인지원센터의 복장규 컨설턴트는 “시설 관리·경비 등의 저임금 단기계약직과 보험 등의 판매·영업직이 전역 장교·부사관들에게 기회가 오는 자리”라며 “아파트 경비직은 실수령액이 120만원 안팎”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군 전역자들의 취업난이 이들만의 문제에 머물지 않고 군 전반의 사기와 안보태세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육군 소령 B씨(41)는 “몇 년 전 미국 워싱턴에서 근무할 때 군복을 입고 사무실을 나서면 거리에서 미국인이 다가와 악수를 청하면서 ‘고맙다’고 인사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땐 자부심이 컸는데, 요즘엔 퇴역이 곧 실업으로 연결되는 현실을 보면서 가족보다 나라가 우선이라는 믿음이 흔들릴까 두렵다”고 토로했다. 국방부에서 근무하는 중령 C씨는 “다들 어려운데 군만 볼멘소리를 한다면 곤란하겠지만 우리가 복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사회와 기업이 전역자들에게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대한 직업군인 취업난의 최대 원인은 우리 사회 전반의 일자리 전쟁에 있다. 그렇다 해도 최근 퇴역했거나 전역을 앞둔 장교들이 입학한 1970년대 말~80년대 육군사관학교는 엘리트의 산실이었다. 젊은 인재가 몰려 사관생도는 여대생에게 1등 신랑감으로 꼽혔다. 30여 년이 흐른 뒤 많은 장교와 부사관들은 재취업의 어려움에 몰려 중산층 탈락의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다.
“제대 군인을 지원대상 아닌 우수인재로 보는 인식 가져야”
박종왕 국가보훈처 제대군인국장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박종왕 국가보훈처 제대군인국장(사진)은 22일 “제대한 직업군인을 위한 복지야말로 국가 안보와 직결된다”고 주장했다. 제대 군인에 대한 복지가 강화돼야 우수 인재가 군으로 향하고 그래야 대한민국 안보의 질이 높아지기 때문이란 것이다.
-직업군인의 위상과 사기를 과거와 비교하면 어떤가.
“아주 많이 떨어진다. 10~20년 전만 해도 전역을 앞둔 장교 대부분이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엔 전역하면 과거와 달리 재취업이 매우 어렵다. 소령이나 중령으로 예편하는 군인들은 대략 40~50대다. 돈이 아주 많이 필요한 시기인데 경제적으로 불안정해진다. 이런 상황을 보는데 우수 인재라면 누가 직업군인이 되려고 하겠나. 개선책이 없다면 앞으로 군과 국가 안보의 질 저하는 불가피하다.”
-제대 군인에겐 연금 혜택이 있지 않나.
“20년 정도 복무하면 150만~200만원 수준의 연금을 받는다. 아끼고 살면 살 수야 있겠지만 부양가족이 있는 가장이라면 일을 해야 한다. 문제는 군사·안보 관련 직업의 문이 좁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전역하면 경력을 살리지 못하고 택시기사, 아파트 경비원으로 가고 있다.”
-군에서 재취업 교육은 없나.
“20년 이상 복무한 군인에게 전역 준비기간을 준다. 표면적으로 이 기간에 직업교육을 받으며 자신의 적성을 찾아나갈 수 있다. 문제는 교육의 실효성이다. 효과적인 직업교육이 되려면 채용 당사자인 기업이 교육을 맡는 게 옳다. 군에선 일반 교육기관에 직업교육을 위탁하는 상황이어서 커리큘럼 자체가 취업과 직접 연관성이 떨어진다.”
-제대한 뒤엔 어떤 지원을 하나.
“보훈처는 2008년부터 전국에 6개의 제대군인 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엔 3800여 명의 제대군인이 센터의 도움을 받아 취업했다. 2012년엔 4000명으로 늘리는 게 목표다. 그러나 실질적 도움을 주기엔 역부족이어서 ‘제대군인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도 추진 중인데 입법화가 어렵다.”
-개선책은 뭔가.
“제대군인에 대한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국가를 위해 온몸을 바친 인재들이다. 나라를 위해 충성하겠다는 마음이 강하고 성실한 분들이다. 단순하게 지원 대상으로만 볼 게 아니라 우수 인재라고 생각해야 한다. 제대 군인 스스로도 마음 가짐을 바꿀 필요가 있다. 군에선 주로 지시를 내리던 입장이었으니 사회에선 박탈감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 태도와 자세를 스스로 털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