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살롱은 누구든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토론장이자 새로운 정보의 유통 공간이었습니다. 칼럼을 통해 조금이나마 여러분의 궁금증을 해소하고, 다양한 토론거리를 제시하고 싶습니다. 트윈스 살롱이 열정적인 LG 팬들과의 소통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유강남이 보여주고 있는 '공격형 포수'로서의 가능성이 LG 팬들을 두근거리게 하고 있다.
프로야구 선수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매년 바늘 구멍보다 좁은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어렵게 프로 무대에 발을 디딘 선수들에게는 끝없는 경쟁이 기다리고 있다. 2군에서 1군으로 올라서야 하고, 1군에서는 또 주전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2군에만 머무는 선수들 조차도 아마추어 시절 각자의 무리에서 최고로 꼽히던 이들이다. 혹자는 "야구를 해서 프로에 입단하는 것이 공부를 해 사법고시를 패스하는 것보다 어려울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만큼 프로의 명함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프로라고 다 같은 프로는 아니다. 그 안에서 다시 수준이 나뉜다. 신인 지명 때부터 선수들의 랭킹이 정해진다. 어떤 선수는 높은 순위에 지명돼 거액의 계약금을 받으며 큰 기대 속에 프로 유니폼을 입고, 누군가는 어렵사리 막차를 타고 프로에 입성한다. 육성선수(과거 신고선수) 계약이라는 일종의 패자부활전을 거치는 선수들도 있다.
높은 순위에 지명될수록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 대형 FA 선수를 자주 경기에 내보낼 수 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다고 후순위 선수들에게 기회가 없는 것도 아니다. 어느 분야든 포기하지 않는 인생에는 반전이 기다리게 마련. 올 시즌 LG 트윈스에는 그런 반전 스토리의 선수들이 여럿 눈에 띈다.
◆ 유강남, "듣보잡"에서 공격형 포수로
올 시즌 공격형 포수로 성장하고 있는 유강남(24)은 아마추어 시절을 묻는 말에 씨익 웃으며 "듣보잡이었죠"라고 답했다. 듣보잡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잡놈'이라는 뜻의 시쳇말이다. 유강남은 201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7라운드 전체 50순위로 LG의 부름을 받았다. 지명을 받은 총 78명 중 평균 이하, 하위권 순위였다.
유강남의 입단 계약금은 4천만원. 당시 최대어로 한화와 7억원에 계약한 유창식(현재 KIA)과 비교해보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수준이었다. 팀 내 1라운드 지명자 임찬규의 계약금 3억원에도 비교하기 어려운 금액이었다. 무엇보다 유강남이라는 이름에 주목하는 이가 거의 없었다. 냉정히 따져 그의 존재감은 스스로의 말처럼 '듣보잡'이라는 단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강남이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LG는 잇따라 포수 유망주들을 상위 순번에 지명했다. 2012년에는 조윤준이 1라운드 지명을 받았고, 지난해에는 김재성이 부활한 1차 지명을 통해 LG 유니폼을 입었다. 그만큼 LG 안방의 미래가 불투명했다는 뜻. 바꿔 말해 유강남에 대한 기대치는 여전히 낮았다.
그러나 유강남은 조금씩 성장해나갔다. 2011년 3경기, 2012년 13경기에 출전에 그쳤지만, 상무에서 제대해서 복귀한 지난해에는 주전 안방마님 자리를 꿰찼다. 그리고 올 시즌에는 데뷔 첫 연타석 홈런을 터뜨리는 등 장타력을 뽐내며 타율도 3할을 훌쩍 뛰어넘는다. 공격형 포수로 진화하는 모습이다.
입단 당시를 떠올리며 유강남은 "어릴 땐 불안감이 컸다. 지명 순서가 늦었기 때문에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했다"며 "그런데 그럴수록 좋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열심히 보내다 보면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이라 믿었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유강남은 입버릇처럼 "내 것만 하자"는 말을 하고 있다. 기회는 주변의 상황보다는 스스로 쏟아붓는 노력의 양에 따라 주어진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상무 시절 팔꿈치 수술을 받으며 장점이던 송구 능력이 반감됐던 위기를 야구에 대한 간절함으로 승화시킨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가 바로 유강남이다.
◆ 채은성, 숱한 시련 딛고 'LG 외야의 한 축'
신고선수 입단, 현역 입대 등의 난관을 뚫고 1군에서 살아남은 채은성
채은성(26)만큼 굴곡진 야구인생을 걷고 있는 선수도 드물다. 채은성은 신고선수로 어렵사리 프로의 문을 통과한 뒤 현역병(의장대)으로 군복무를 마쳤다. 언제 방출돼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태가 계속됐다. 방출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는 소식도 들렸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채은성은 아직까지 프로에서, 그것도 1군 무대에서 생존 중이다.
채은성이 포수 출신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내야수로 입단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포수로 전향한 것은 어떻게든 프로에서 살아남겠다는 채은성의 발버둥이었다. 내야수보다는 포수로 뛰는 것이 출전 기회가 많을 것이라 판단한 서용빈 코치의 제안을 채은성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채은성은 "이렇게 해서 잘리나, 저렇게 해서 잘리나 똑같았다"며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볼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포수의 길은 쉽지 않았다. 중학교 시절 잠시 마스크를 썼던 것이 전부였던 채은성은 다른 포수들보다 더 많은 훈련을 소화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입스(yips)라 불리는, 타겟에 정확히 공을 던질 수 없는 증세까지 찾아왔다. 결국 채은성은 방망이 실력을 살리기 위해 다시 내야수로 돌아갔다. 갖은 노력 끝에 입스 증세를 극복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채은성은 아마추어 시절을 회상하며 "나는 야구를 잘 못했다. 프로 지명은 생각도 못하고 있을 정도였다"며 "운 좋게 신고선수로 프로에 올 수 있었지만, 야구를 잘하는 선수들과의 실력 차이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선수들을 보며 '나는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고 말했다.
2013년 퓨처스리그에서 펄펄 날던 채은성은 2014년 양상문 감독의 부임 이후 1군에서 뛰며 서서히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역시 대부분의 시간을 1군에서 보냈고, 올 시즌에는 팀의 외야 한 자리를 차지한 분위기다. 15일 현재 채은성은 34타점으로 히메네스(49타점)에 이어 팀 내 두 번째로 많은 타점을 기록 중이다.
3할을 넘겼던 채은성의 타율은 최근 2경기 연속 4타수 무안타 침묵으로 2할9푼9리로 내려앉았다. 타율이 더 떨어질 수도, 그리하여 주전 경쟁에서 다시 밀려날 수도 있다. 그러나 채은성은 위기를 극복하는 법을 알고 있는 선수다. 지금까지 숱한 시련 속에서도 살아남은 채은성에게 잠깐의 슬럼프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 임정우, 보상선수 성공사례 '차세대 마무리'
임정우(25) 역시 입단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았던 선수는 아니다. 201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4라운드 전체 26순위로 SK 유니폼을 입었다. 비교적 높은 순위였지만 그렇다고 '특급 유망주'라고 하긴 어려웠다.
신인 시즌을 마친 뒤에는 곧바로 팀을 옮기는 경험까지 해야 했다. SK가 포수 조인성(현 한화)을 FA로 영입하자 그에 대한 보상선수로 LG가 임정우를 지명한 것.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갓 프로에 데뷔한 임정우에게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임정우는 "SK는 데뷔하기 전부터 정말 뛰고 싶던 팀이었다. 프로 첫 팀이라는 정도 들어 있었다"며 "그런데 1년만에 팀을 옮기게 돼 어린 나이에 상처를 좀 받았다"고 설명했다.
임정우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데뷔 1년만에 경험하는 생각지 못했던 이적을 기회로 삼기로 했다. LG도 임정우의 가능성에 주목해 당장 2012년부터 임정우를 1군 경기에 등판시켰다. 이후 임정우는 꾸준히 팀 내 비중을 높여나갔고, 올 시즌에는 봉중근이 내놓은 마무리 중책을 맡았다.
팀의 핵심 보직을 맡기까지 임정우는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쳤다. 처음에는 선발로 기회를 잡았지만 이후 불펜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다시 선발로 육성 방향을 틀었지만 결국 다시 '불펜의 꽃' 마무리가 됐다. 그런 과정 속에서 혼란스러울 법도 했지만 임정우는 묵묵히 주어진 역할 속에서 최선을 다했다.
풀 타임 마무리 첫 시즌. 어느새 10세이브를 따낸 임정우
사실 임정우는 곱상한 외모와는 달리 소위 말해 '깡다구'가 있는 편이다. 신인 시절에는 "4순위로 지명됐지만 내 공은 앞선 순위의 선수들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올 시즌을 앞두고 정찬헌과 함께 마무리 후보로 거론될 땐 "마무리를 할 수 있겠냐"는 양상문 감독의 물음에 "할 수 있다"고 당당히 답했다.
보상선수로 LG 유니폼을 입을 때까지만 해도 임정우가 누군지 아는 야구팬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제 임정우는 LG의 차세대 마무리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올 시즌 어느새 10세이브를 기록했다. 블론세이브도 3차례 범했고 최근 5경기에서는 4패를 떠안으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성장해 나가는 과정일 뿐이다.
◆ 빠른 출발이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서용빈 타격코치도 1994년 2차 6라운드 지명을 받고 LG에 데뷔, 그 해 깜짝 활약을 펼치며 1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신인의 반란과도 같은 활약. 아직까지 서용빈 코치는 후순위 지명의 성공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서용빈 코치는 "노력하는 수 밖에 없었다. 신인 때 따라간 스프링캠프에서 하루 4시간 밖에 못 자며 훈련했다. 나와의 싸움이었다"며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중요하다. 비록 마지막 지명을 받고 프로에 왔지만, '할 수 있다'는 믿음이 그 때 나에겐 있었다"고 말했다.
출발이 빠르다고 해서 결승선을 빨리 통과하는 것은 아니다. 서용빈 코치의 말대로 성공을 보장해주는 것은 꾸준한 노력과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다. 출발이 늦다면 더욱 열심히 달리면 된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뤄낸 성공의 열매가 훨씬 달다.
유강남과 채은성, 임정우가 써내려가고 있는 반전 스토리에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평범 또는 그 이하였지만 팀의 주축 선수로 성장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안겨주기 충분하다. 세 선수의 도전이 현재진행형이라는 것도 중요한 사실 중 하나다.